10년 전 2010남아공월드컵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일찌감치(아마도 경기시작 10시간 전쯤ㅎㅎ)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좋은 사진취재석을 잡으려면 한발이라도 먼저 도착해야 합니다. 선착순으로 자리를 고를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내내 서 있는 건 아니고요. 모노포드나 가방 등 자신의 물건으로 줄을 세워놓습니다.
나쁘지 않은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물론이고 메시, 이과인, 테베스 같은 유명 선수들이 저의 카메라 앞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데 그 현장성이 문득 사진기자의 행복이라 생각했습니다.
카메라는 대체로 축구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선수들의 다툼에 주목합니다. 메시가 공을 잡는 순간 손에는 더 힘이 들어가고 렌즈는 바짝 긴장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왼쪽에 앉은 아르헨티나 사진기자의 렌즈방향이었습니다. 공을 따라가야 할 그의 렌즈가 엄한 쪽을 좇는 바람에 경기 중 렌즈의 잦은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야이~씨.’ 초면의 타국기자에게 몇 차례나 경고의 인상을 썼습니다. 의미를 아는 그도 조금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리를 바꿀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그리되면 제 오른쪽에 있던 사진기자의 렌즈와 그의 렌즈가 부딪칠게 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슥해 보이며 어쩔 수 없다며 양해를 구해왔습니다. 그의 렌즈가 주시한 것은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 디에고 마라도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메시 같은 세계적 선수를 제쳐두고 경기 내내 ‘오로지’ 마라도나 만을 바라봤습니다. 사실, 이날 경기 시작 전부터 마라도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전했고 절대적이었습니다.
가끔 저의 렌즈도 틈틈이 벤치를 향했습니다.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이 아르헨티나에 많이 뒤졌기 때문에 허정무 감독과 마라도나의 상반된 표정을 담기위한 것이었습니다. 마 감독의 표정과 동작은 분주하고 역동적이고 다채로웠습니다. 유명세와 더불어 찍는 이를 지겹지 않게 하는 매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감독의 열정으로 현역 때의 뜨거움을 거꾸로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지요.
‘축구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가 지난 11월 26일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뇌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전 세계가 애도하고 있습니다. 연일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마라도나와 관련된 사진의 양이 그의 존재감과 그와 함께한 세계인들의 추억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더 성대했을 애도의 물결이었겠지요.
1986년, 저는 ‘중딩’이었습니다. 틈만 나면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저와 친구들은 멕시코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보여준 손을 이용한 ‘창조적’인 골을 흉내 내며 낄낄대곤 했습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찍었던 그의 사진 몇 장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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