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상가로 잘 알려진 을지로 일대의 재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을지면옥 같은 오래된 가게(노포)를 없애야 하느냐는 등 반대여론이 일자 서울시는 재개발을 다시 검토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요. 이 과정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습니다. 서울시의 입장이 발표된 뒤 논란은 조금 잦아들었습니다.
많은 기사들이 이미 나왔습니다만, 을지로를 사진으로 기록해보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찍어 의미를 담을 수 있을까.’ 무작정 골목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무엇’은 손 글씨 간판이었습니다. ‘칠 벗겨진 낡은 간판 위에 정성스럽게 쓴 글씨와 점포의 작명과 역사에 담긴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이리저리 재다가 결국 ‘사람’으로 방향을 슬쩍 돌리고 말았습니다.
골목 안에는 30~50년 가까이 갈고 깎고 자르고 문질러 물건을 만들던 ‘장인’들이 많았습니다. 첨단의 시대에 손기술의 실력자들입니다. 이들에 의해 이곳은 ‘다품종 소량생산’의 메카가 되었지요. 차가 지나는 큰길을 지날 때 볼 수 없었던 삶이었습니다. 장인들의 모습과 공간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장인들의 모습이 들려주는 은근한 이야기가 사진을 읽는 독자들에게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명확한 주장이 담긴 글이 아니라도 결코 가볍지 않게 전달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사실 지면에 실은 다섯 장인의 사진은 그저 나열돼 개별성을 갖습니다만, 저의 궁극적 의도는 이들(또는 사진들)의 끈끈한 연결이었습니다. 하나의 물건을 만들 때 여러 공정에서 각기 다른 기술을 가진 장인들의 손을 거쳤습니다. 공존과 공생의 구조이며 그에 따른 문화가 형성돼 있었습니다. 밀어버리고 높이 올리는 일방적 개발이라면 이런 장인들의 기술과 연결된 삶과 공존의 문화도 함께 지워지겠다 싶었지요.
골목에서 만난 장인들은 불안해했습니다. 이미 재개발이 진행돼 눈앞에서 스러지는 점포들을 목격했고 여전히 골목을 파고드는 굴착기의 굉음을 두려워했습니다. 최근, 산림훼손 논란으로 중단됐던 제주 비자림의 도로확장공사가 재개됐습니다. 다시 나무가 베어지는 사진을 보며 을지로를 떠올렸습니다. 전기톱 앞의 나무 같은 삶들을 생각했습니다.
속도와 돈으로 얘기가 끝나는 효율 만능의 세상입니다. 을지로도 비자림도 그 안에서 몸서리를 치고 있습니다. 효율 위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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