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S선배 "어, 내가 불렀다"

나이스가이V 2014. 6. 19. 15:29

브라질월드컵 러시아와 경기에서 이근호가 골을 넣는 순간에 무슨 생각들 하셨습니까?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먼저 그 짜릿함에 환호를 터뜨렸을 테지요. 집에서 혼자 중계를 보던 저는 생애 첫 월드컵에서 골을 넣고 격하게 환호하는 이근호를 보며 저걸 과연 찍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부서에서 ‘S선배가 브라질에 '특파'되어 있거든요.

 

월드컵 같은 큰 대회에 축구장 광고판 뒤로 앉아 있는 사진기자들은 초조하고 또 고독합니다. 제가 4년 전에 남아공월드컵을 다녀와 봐서 압니다. ^^ 누군가는 쉽게 그냥 찍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만, 카메라가 좋아져도 결국 셔터를 누르는 것은 사람이기에 집중력과 판단력, 경험이 요구됩니다. 골도 순간이지만, 세리머니도 표정과 액션이 절정인 순간은 길어야 2~3. 선수들이 달려와 엉기면 이미 절정의 표정과 동작은 사라지고 말지요.

 

월드컵 취재차 브라질에 간 사진기자들이 러시아와 경기를 앞두고 자리 추첨을 했다더군요. 이는 불필요한 소모전을 줄이기 위함입니다. 제가 다녀온 지난 월드컵에서는 선착순 원칙을 고수해 자리 경쟁으로 경기 시작 전에 진이 다 빠지기도 했습니다. 자리 추첨은 공평하고 정의로운 제도입니다. 이 제안은 분명 정리의 달인‘S선배의 작품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앞 순번은 벤치 쪽 코너 부터 자리를 차지합니다. 왜냐면 골이 나면 골 맛을 좀 아는 선수들은 사진기자들이 많은 그 코너를 향해 뛰며 세리머니를 펼칩니다. 지난 2002년 박지성은 골을 넣고 손가락을 입에 댄 채 히딩크 감독을 향해 냅다 질주했었지요. 그 장면은 벤치 건너 편 라인에서는 멀기도 하거니와 제대로 찍을 수도 없는 것이지요.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확률이 높기 때문이지요.

 

후반 교체 투입된 이근호는 자신도 놀란 골을 넣고 환호하며 벤치 건너편 코너쪽을 향해 뛰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S선배가 제대로 찍었을까를 걱정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요. 그날 최고의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출근해 보니 환호하는 이근호의 생생한 사진들이 수도 없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S선배는 자리 추첨에서 후순위를 뽑아 벤치에서 먼 쪽 코너에 앉았고 이근호는 S선배를 위한 것인 양 극적인 표정과 액션을 갖춘 채 뛰었습니다.

 

                                                                                                            사진 경향신문 서성일 기자

오늘 아침에 축구대표팀 선수들의 회복훈련 사진을 보낸 뒤 ‘S선배가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버릇처럼 야 피곤해 죽겠다를 연발하며. 잠 못 자고, 긴장되고, 장거리 이동에 체력소모가 많은 취재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어제 들어온 내·외신 사진 중에 S선배 사진이 젤 좋았다며 격찬을 쏟아낸 뒤, 정확히 정면을 바라보는 이근호의 거수경례 사진이 떠올라 근데, 이근호가 S선배 보고 거수경례하데요라고 했더니, S선배 왈 , 내가 불렀다.” (웃음) 제가 아는 S선배는 진짜 이근호를 손짓해 불렀을 겁니다.

 

어쨌든 병장 이근호는 ‘S선배의 카메라를 통해 환호하고 있을 대한민국 국민에게 경례로 첫 골 신고를 한 것이지요.


yoonjoong 

 

                                                                                                                                                 사진 경향신문 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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