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가고 있습니다. ‘올해의 뉴스’와 ‘올해의 사진’ 등 내·외신 매체들이 한해를 정리하는 뉴스를 내놓고 있지요. ‘나는 올해 무슨 사진을 찍었나?’ 싶어 개인 외장하드를 한 번 훑었습니다. 매년 12월 요맘때면 하는 연례행사지요. 올해 만났던 사람이 눈길을 붙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았습니다만 마음가는대로 즉흥적으로 골랐습니다.
1월, 경향신문은 ‘대선의 꿈’이라는 신년 기획으로 대선주자 신년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단독’ 촬영했습니다. 인터뷰 장소였던 한 호텔 앞 인도에서 “5년 전 대선에서 제가 마크맨이었습니다”라고 인연을 앞세우며 “걸어오시겠습니까?” “카메라 보시면서 미소 지어주시겠습니까?”라고 했었지요. 조기대선 이후 이제 단독으로 찍기 힘들게 됐지만요. 이 글을 쓰는 오늘(20일)이 원래 예정된 대통령 선거일이었네요. 페북이 이날 아침 알려온 5년 전(2012년12월20일) 게시물에는 18대 대선 패배를 인정하는 당시 문 후보의 사진이 제 짧은 소회와 함께 담겨있었습니다.
‘민중화가’, ‘5월화가’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홍성담 화백.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예술가입니다. 국정농단 핵심 자료인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업무일지)에 14번씩이나 이름을 올렸다지요. 홍 화백은 지난 2월 포토다큐에서 다룬 4명의 블랙리스트 예술가 중 한 분입니다. 그의 뒤로 보이는 그림은 ‘벚꽃노리’로 박 전 대통령 취임을 기념해 2013년 그린 풍자화입니다. ‘허무함’을 상징한다는 벚꽃길을 걸어가는 박 전 대통령의 뒷모습. 2017년 탄핵을 기가 막히게 예언했습니다. 그는 차기 작품 계획으로 “김기춘(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를 14번이나 사랑스럽게 불렀으니 이제 내다 답할 차례”라며 “그의 일대기를 풍자화의 최고정점 포르노그라피로 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월, 세월호 3주기를 앞두고 연극무대에 선 ‘세월호 엄마’들을 만났습니다. 안산 단원고 세월호 희생 학생과 생존 학생 엄마 7명으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트라우마 치유를 목적으로 대본을 읽어오다 배우로 나선 겁니다. 슬픔이 가득 들어선 마음에 조그마한 웃음 귀퉁이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하는 그런 연극이었습니다. 막이 내리자 ‘배우’에서 ‘엄마’로 돌아왔습니다. 무대인사 시간. 늘 그랬듯 ‘단원고 2학년 몇 반 누구의 엄마’라고 소개했습니다. 가슴 속 얘기에 관객도 같이 울었습니다. 세월호 3주기. 아픔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엄마들은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다호데이(IDAHO,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 Transphobia,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5월17일을 즈음해 취재했던 국내 성소수자들이 다큐지면을 통해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거센 혐오의 시선과 싸우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박사 공부를 하고 있는 이호림씨, 프로그래머 함경식씨, 청년 정책 활동가 차해영씨. 쉽지 않은 커밍아웃, 그 용기에 다시 박수를 보냅니다.
‘이한열 열사를 안아 일으켜 세웠던 이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을 보며 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이종창씨(파주 가람도서관 관장)를 연세대 교정에서 만났습니다. 이씨는 1987년 6월9일 당시 사진이 찍혔던 바로 그 자리에서 경찰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 열사를 안았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촬영을 하며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많이 나눴습니다. 6월 항쟁이라는 역사적 경험 위에서 촛불혁명도 가능했겠지요.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짓는 동안 ‘노가다 연대’에 발을 담갔습니다. 사진 찍으러 갔다가 일에 탄력이 붙으면 일만 하고 오기도 했지요. 7월 더위에 함께 땀을 흘린 ‘일꾼’들을 찍어 다큐에 썼습니다. 긴 세월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꿀잠은 지난 8월19일 문을 열었습니다.
“폴라로이드 사진 찍으세요.” 경희대 후기 졸업식장에서 외치던 박혜윤씨. 이 학교 재학생인 혜윤씨는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2017년을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함축한다 느꼈습니다. 짠하면서도 믿음직스러웠지요. 혜윤씨를, 또 이 시대 청춘을 응원합니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 접수처에서 만난 64세의 소병화 씨. 세월이 내려앉은 손으로 꾹꾹 눌러 원서를 작성했습니다. 지난 4월 검정고시를 통과했다는 어르신은 첫 수능을 앞두고 "심장이 벌렁벌렁 거린다"고 하셨지요. 이번 수능 시험 잘 치셨는지 궁금합니다.
MB정권의 블랙리스트 피해자 방송인 김미화씨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터뷰 중 “내가 다시 코미디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말이 귓전에 때렸습니다. ‘이제 코미디언으로 돌아가 웃겨 달라’는 의미로 인터뷰 끝난 뒤 활짝 웃는 모습의 사진을 따로 찍었습니다. 포즈를 취하고 웃었지만 사진엔 지난 시간의 아픔이 포개져 있는 듯합니다.
11월에 로힝야 난민촌을 다녀왔습니다. 천막 틈으로 들어온 햇볕이 아이의 눈에서 반짝였습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공포와 상처를 읽습니다. 혹시 난민촌을 다시 가게 됐을 때 누군가 ‘왜 또 가는가’라고 묻는다면 ‘아이의 눈망울 때문이었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12월이 되면 사진기자들은 분주합니다. 평소 일에 더해 한해를 정리하는 송년호와 새해의 힘찬 시작을 담은 신년호를 찍기 때문입니다. 오늘 현장에서 만난 동료들을 한 컷 찍었습니다. 짠해지더군요. 중국 경호원들의 대통령 수행 사진기자 폭행과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누가 뭐라 해도, 현장을 지키며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셔터는 이 시간에도 쉼 없이 울리고 있습니다.
올 한해 만난 소중한 인연들을 생각합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알게 모르게 줬던 상처가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한해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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