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옛날 가수라서..."

나이스가이V 2017. 12. 12. 08:00

10살 때쯤 기억인가 봅니다. 가요순위 프로그램 가요톱10’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잊혀진 계절TV 앞에서 따라 불렀었습니다. 매주 1위를 하던 파마머리의 가수 이용은 정말이지 '톱스타'였습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월의 마지막 밤이 되면 노래와 함께 가수 이용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이용 선생(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이 인터뷰차 회사에 왔습니다. 4년 만에 13집 앨범 미안해 당신을 냈다는군요.

 

회사에서 11시 인터뷰. 먼저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제가 까먹고 있었습니다. 출장 관련 자료를 뒤지느라 그만... 제 책상 옆에서 그분이 저를 보고 있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앞자리 선배가 스튜디오로 안내하고 저는 카메라를 챙겨 뒤따라갔습니다.

 

이용 선생은 스튜디오 구석 분장실(이라 하기엔 너무 방치해 좀 민망한)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옷매무새와 머리를 만졌습니다. 가수나 배우가 회사로 오면 보통 두세 명의 매니저가 함께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혼자였지요.

 

조명을 세팅하는 동안 그가 취재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아직 오광수 기자있나요? 강수진 기자는요?” 예전에 자신을 인터뷰했던 기자 이름을 댔습니다. 수없이 많은 기자를 상대했을 텐데, 대단한 정성이라 생각했습니다. 조명 앞으로 걸어오며 이 스튜디오가 옛날에 제일 좋았어요.” 낯익은 장소에서 오래전 인터뷰하러 왔던 기억이 떠올랐던 모양입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고 스튜디오에도 세월이 스몄습니다. 어쩌면 이용 선생은 이 스튜디오를 가장 오래 출입한 연예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셔터 소리에 맞춰 포즈를 바꾸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연출해가며 정성껏 촬영에 응했습니다. “사진은 조용필보다 많이 찍었을 거예요. 하하.” 그럼에도 근사해보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고 깜찍(?)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급기야 이번에 발표한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런 표정과 동작을 연출하기도 했지요. ‘까다롭지 않을까했는데 참 편했습니다.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얼굴 한쪽이 그늘진 사진보다 얼굴 전체가 밝게 나온 사진이 보기 좋다며 여성 팬들이 많아서...”라며 웃었지요. 그는 자신이 가진 카메라 모델을 얘기하며 왕년에 사진도 많이 찍었다고 했습니다. 대학시절 옆에 사진과가 있었다는 설명과 함께. “혹시, 남궁옥분씨 아세요?” 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라고 했습니다. 적지 않은 연식을 증명하고 말았지요. ^^ “당시에 남궁옥분 앨범사진 제가 찍었어요.” “~ 정말입니까?” “제 앨범사진은 남궁옥분이 찍었어요. 하하하

 

 

촬영이 끝나자, 그가 명함 있나요?”하고 물었습니다. 없다고 했더니 휴대폰을 꺼내 제 전화번호를 입력합니다. 사진 몇 장 보내달라는 의미로 알고 사진 몇 장 보내드릴까요?”라고 했지요. “아니요. 제가 옛날 가수라서 기자를 관리합니다.” 어떻게 관리하실지... 그게 소주 한 잔 하자같은 빈말일지라도 살가운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태어나서 연예인이 제 휴대폰 번호를 딴 것은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지요.

 

 

국내 최고의 스타로 한 시절을 풍미한 가수 이용. 꼬마였던 제게도 큰 스타였던 그. ‘이용을 찍은 건 일대 사건이구나’ 싶었습니다. 스튜디오를 나서며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yoonjoong 

'사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와 별에 대한 변명  (0) 2018.01.02
'2017년, 난 누굴 만났나'  (4) 2017.12.21
남의 일이 아니라서  (0) 2017.12.08
이별의식  (2) 2017.11.26
'밑줄을 긋다보니...'  (0) 2017.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