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468

여수 밤바다에서

여행(트래블) 출장지 여수를 돌아다니며 그룹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수없이 흥얼거렸습니다. 그렇게 들어도 이어지는 가사가 떠오르지 않아 “여~수 밤바다~~” 딱 고까지만 반복했지요. 더위에 지쳐 몸이 무거운데도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는 리듬과 가사. 대중가요의 힘이지요. 잠깐 잊었다 싶으면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됩니다. 환청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노래 탓인지 여수는 밤바다를 피할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관광객이 다녀가고 또 사진 찍었을 밤바다. 다르게 찍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바다와 구도심의 야경을 찍을 요량으로 구봉산에 올랐습니다. 해가 지고 깜깜해지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지요. 어두워져가는 여수 앞바다를 보며 셔터를 수시로 눌렀습니다. 어둠을 가만..

사진이야기 2017.06.16

내게 위로가 되는 사진

지난 4월 말 동네 조그만 북카페에서 ‘책 읽는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북카페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아내가 ‘책 시장’과 함께 기획한 것으로 이 공간에서는 처음 갖는 행사였지요. ‘웬만하면 쉬는 날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는 나름의 소신이 있지만, 본행사인 ‘책 시장’ 날짜를 잡는 것도 부대행사인 ‘사진 찍기’ 성사여부에 달렸다는 ‘협박(?)’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뭐, 늘 이런 식이지요. 북카페을 이용하거나 책모임, 바느질 모임 등 이런저런 소모임을 하는 이웃들이 사진신청을 했습니다. 가족과 친구 등이 짝을 지어 소품인 책을 든 채 제가 정해준 자리에 앉거나 섰습니다. 휴대폰 카메라와 셀카의 ‘즉흥’에 익숙해진 시대에 묵직하고 시커먼 카메라는 살짝 긴장을 유발하지요. “앉으세요” “기대세..

사진이야기 2017.06.06

100만의 인연

엊그제 블로그 방문자가 100만을 넘어섰습니다. 숫자의 노예가 된 시대를 살면서 숫자에서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이 좀 더 사람다운 삶을 보장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블로그에 표시된 ‘1000000’이라는 숫자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아래 하루 방문자 수가 1000 단위가 넘어가는 것은 앞에 올린 문재인 대통령 관련 글 덕입니다. 평소 100~200 정도인데 '대통령 특수'를 누리고 있지요. ^^ 지난 2004년 5월31일 남산타워에 올라 찍은 파란 하늘 사진과 함께 ‘사진기자라서...’라는 첫 글을 올렸습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사진기자로 나름의 고민도 긁적였고 남기고 싶은 기억도 새겼습니다. +생애 첫 블로그 글 블로그는 일단 ‘가볍고 재밌어야 한다’며 시작했는데 힘이 들어가고 다소 무거워지고 있..

사진이야기 2017.05.24

5년 전 장미대선은 예견됐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옛 사진과 영상들이 꺼내져 수시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대세를 거스를 수 없어 저도 옛 자료를 뒤지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때 ‘계간 사진기자’ 기고용으로 썼던 취재기를 찾았습니다. 취재기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 단일화 신경전 끝에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사퇴를 선언했다. 목소리는 몹시 떨렸고 캠프를 떠나며 눈물을 글썽였다. 안 후보의 전담 마크맨으로 두 달여 쫓아다녔던 나는 허탈해졌다. 그 여운이 며칠 동안 이어졌다.” 간단한 일기처럼 쓴 취재기는 11월28일부터 기록돼 있었습니다. D-21.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캠프로 넘어왔다. 오자마자 충남, 전남, 경남, 경북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이 시작됐다......전담 후보가 달라졌다고 일이 달라질 리 ..

사진이야기 2017.05.18

마네킹...좀 짠한

가끔 카메라를 든 현장에서 무언가 ‘훅’하고 꽂히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곧 이러저러한 생각과 연결되기도 하고 그 이유를 찾다 때론 비약으로 흐르곤 합니다. 어제는 현장에서 ‘마네킹’에 꽂혔습니다. 소방기술경연대회에 소품으로 동원된 마네킹이었지요. 부상자 대역의 묵직한 마네킹이 '참 고생이 많다' 싶었습니다. 참가자들은 흙바닥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마네킹을 안아서 끌고 저만치 약속된 구역까지 가서 버리듯 내려놓았습니다. 실제 사람이었다면 그리했을 리 없겠지만, 시간측정으로 순위를 매기다보니 마네킹을 패대기 칠 수밖에 없어보였지요. 흙먼지 속에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꼬였습니다. 대회 진행요원들이 제자리로 가져다놓기를 반복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짠했습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겠지요. 마네킹을 카메라에 ..

사진이야기 2017.05.03

카메라를 내려놓을 용기

시리아발 사진 한 장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사진기자 때문에 그 메시지가 더 부각되었지요. 주인공은 시리아 한 매체의 사진기자 압둘 카디르 하바크입니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현장에서 오른손에 카메라를 손에 쥔 채로 부상당한 아이를 안고 달려 나오는 사진이었습니다. 일상적인 것이 그러하듯 시리아 테러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특히 한국 언론의 관심에서는 더 멀지요. 그런 중에 현장의 위험을 무릅 쓴 사진기자의 정의로운 행동이 기록된 사진이 널리 공유되고 찬사를 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리아의 참상이 이 피사체인 사진기자 덕에 드러나고 관심의 영역으로 잠시 들어왔습니다. 만약 구조대원이 아이를 안고 뛰어나왔다면 역시 일상성의 범주 안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짐작도 해..

사진이야기 2017.04.24

우병우 퍼포먼스

가끔 퍼포먼스 사진을 찍습니다. 구호 외치고 회견문을 읽는 평범한 그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진기자들을 위해 소위 상징적인 그림을 만들어주는 주최자의 정성입니다. 그 퍼포먼스는 회견 마지막 순서라 기자들을 회견 내내 붙잡아둘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경험 많은 기자회견 주최측과 사진기자의 암묵적 거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10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세척작업을 찍으러 갔다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찍게 된 것도 진행자의 “퍼포먼스가 있다”는 말에 솔깃했던 겁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얼굴 가면을 쓴 이가 수의를 입고 무릎을 꿇은 퍼포먼스였지요. 우 전 수석의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두고 있어 이보다 시의적절한 퍼포먼스는 없었지요. 구호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1..

사진이야기 2017.04.14

세월호 인양과 그의 정신승리법

지난 22일 야근하며 이르면 23일 새벽에 세월호 선체가 물 밖으로 드러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보도를 봤습니다. ‘그게 그리 쉬운 거였나’ 간절히 바라면서도 반신반의했습니다. 다음날 휴대폰 속보에 세월호의 선체가 드러난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눈자위가 뜨거워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곧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런 걸 3년 동안이나...’ 사진/이준헌 기자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불과 두 주일 만에, 인양 작업 이틀 만에 물 위로 올라온 부식된 배를 보며 허탈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정부는 인양의 의지가 없었던 것이지요. 아찔한 건 대통령 탄핵이 기각이 됐다면 인양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선체 인양이 탄핵 심판 결과에 달려있었다니 ‘세월호의 진실’을 누가 가리고 훼방하고 있..

사진이야기 2017.03.25

'용한 그림'을 청와대를 꿈꾸는 이들에게

민중화가로 불리는 홍성담 작가를 지난 2월 초 만났습니다. 사진기획하며 만난 풍자 예술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풍자화 작업과 관련한 얘기를 재밌게 들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그림 앞에서 포즈를 부탁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듯 큰 캔버스를 들고 와 벽에 기대 세웠습니다. 작품은 ‘벚꽃노리’(2013년 작)였습니다. 지난 2013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자, 이를 기념해 그린 풍자화입니다. 박 전 대통령이 그의 부친 박정희를 닮은 아이 손을 잡고 벚꽃 길을 따라 걸어가는 뒷모습입니다. 홍 작가는 작품의 벚꽃은 허무를 상징하며 저 꽃길을 따라 사라지는 박 대통령을 표현했다고 밝혔습니다. 홍 화백은 이 그림을 그리기 수개월 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출산 그림을 그려 논란..

사진이야기 2017.03.20

달콤 씁쓸한 탄핵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됐습니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날, 저는 헌재 인근 안국동 거리에서 선고 생방송을 지켜보는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목소리가 무대 위에 설치된 화면에서 흘러나왔지만 잘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휴대폰을 통해 방송을 지켜보는 세월호 가족과 주위에 모인 시민들의 표정으로 선고 상황을 짐작했습니다. 처음 얼마간 환호로 시작한 선고가 탄식과 함께 무겁게 변해갔습니다.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세월호 관련 선고 내용이 간간이 들려왔고 유가족들은 얼굴을 묻었습니다. 기각인가? 이어지는 선고 결정문에서는 문장마다 환호가 터졌습니다. 그 속에서 비교적 또렷하게 이 재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

사진이야기 2017.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