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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정체는?

그녀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인천아시안게임 북한 선수단 1진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던 날, 선수들 사이에서 니콘 카메라를 든 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성급한 걸음으로 출국장을 나오며 남한 쪽 사진기자를 향해 셔터를 마구 눌렀습니다. 그의 엉성한 자세를 보며 사진기자가 아닐 거라 생각했습니다. 예전 이산가족상봉 취재차 금강산에 갔을 때 카메라를 든 북측 인사의 대부분이 기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난 뒤 생긴 의심도 작용했을 겁니다. 드라마 속에서 보는 어설픈 사진기자 엑스트라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카메라를 든 자의 어색한 움직임은 사진기자의 눈엔 쉽게 포착됩니다. “북에서는 그리 찍습네다”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시선을 끄는 또 한 명의 사진기자가 있었으니 카메라를 멘 여..

사진이야기 2014.10.10

찍느냐 마느냐

지난 달 21일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탈북자 단체 회원들이 ‘대북전단’을 날린다는 내용의 일정 보고에 데스크는 망설였습니다. 이런 행사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신문의 편집 방향에 비춰 게재 확률은 떨어지고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삐라 살포에 왕복 두 시간 이상 거리는 빠듯한 취재인력에 데스크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지면에 사진으로 쓴다 해도 이 단체가 의도하는 정치적 메시지만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니냐는 것도 고려되는 부분입니다. 몇 차례 대북전단 취재를 해본 제 경험으로는 풍선에 매단 전단을 정확히 북으로 날려 보내는 것보다 행사에 대한 언론의 주목에 더 의미를 두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많은 단체들이 그러하듯 조직의 존재와 사업 내용을 알리기 위해 언론의 취재만큼 효율적인 수단이 없지요. 북한이 전..

사진이야기 2014.10.10

매번 실패하는 기념사진

인터뷰의 주인공을 앉힐 의자를 세심하게 놓으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인터뷰 장소인 카페를 둘러보며 사진 찍을 세 군데쯤의 공간과 동선을 미리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열린 문 사이에 둔 의자는 마지막 사진을 찍을 공간이었지요. 이날 주인공 이미지의 완성은 의자에 앉은 채 찍은 컷이었으면 했습니다. 자신만만한 ‘지존’의 모습을 연출해 담고 싶었습니다. 계산대로 3층 테라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그리고 의자에 앉혔습니다. 강렬하고 깊은 눈빛이 참 좋은 배우였습니다. 시간 단위로 반복되는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그였지만 스스로 연출하는 포즈엔 여유와 근성이 느껴졌습니다. 한 시간 주어진 인터뷰 시간에 사진기자의 시간은 10여분. 결과물이 그럴듯하다 할지라도 영혼 없는 사진을 찍을 가능성이 큰 ..

사진이야기 2014.09.29

고은비, 권리세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해 2월 다섯 명의 앳된 여성들이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섰습니다. 가요계 데뷔를 앞두고 있는 걸그룹이라고 했습니다. 신문사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데뷔를 앞둔 떨림인지, 아직 인터뷰가 어색해서인지 얼굴들이 다소 긴장한 듯 상기돼 있었습니다. 분위기를 말랑하게 만들 요량으로 “이 스튜디오는 예전 문화방송 라디오 스튜디오였다”는 공간의 역사부터 빨간 원색의 의자를 가리키며 “저기에 장동건, 김수현 등 대한민국 알만한 배우와 가수들 대부분이 앉았다”는 얘기까지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말요?” “와 신기하다” 곧 특유의 발랄함을 회복했습니다. 시답잖은 얘기에 웃어주는 센스 만점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스튜디오는 활기를 띄었습니다. 데뷔곡 중 손으로 연출할 수 있는 춤동작 포즈를 ..

사진이야기 2014.09.10

번개를 왜 찍을까?

번개 사진 찍어보셨나요? 지난 29일 밤 야근 중에 번개가 내려쳤습니다. 번개 칠 때의 행동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사무실 창을 열고 카메라를 하늘을 향해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릴리즈를 이용해 저속으로 촬영합니다. ‘똘똘한 놈 하나만 걸려라’는 심정으로 반복해서 셔터를 누릅니다. 창을 열면 저만치 서울N타워가 보여 다른 앵글을 찾아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한 자리에서 우직함만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하늘을 가르는 번개를 카메라에 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눈에 본 대로 사진에 새겨지지도 않고 셔터 타이밍을 놓쳐 눈으로만 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기술이나 경험보다는 운에 '잘~' 기대는 것이 최선입니다. 단순 반복 셔터질을 하다 문득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 물었습니다. 복잡한 작업이..

사진이야기 2014.09.03

소설을 품은 사진

가끔 어떤 장면은 ‘서둘러 셔터를 눌러라’ 명령을 합니다. 몸과 마음이 급해집니다. 흘러가버려 다시 담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 ‘아쉬움’이 생각보다 짙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자리 잡고 명령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일단 찍고 본다는 게 더 정직한 표현이겠지요. 경험적으로 이렇게 얻는 사진들은 신문에 쓸 사진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어디 쓰냐구요? ㅋㅋ블로그에 씁니다. ^^ 찍은 뒤에 무엇이 찍게 했는지, 왜 찍었는지를 다시 생각합니다. 그 ‘명령’은 장면을 기록하는 일에 익숙해진 몸의 명령인지, 움찔하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가슴의 요구인지도 답하기 어렵습니다. 사진을 노트북에 띄워놓고 다시 추궁합니다. 왜 찍었냐고. 찍은 당시의 상황을 세밀하게 더듬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모니터 위에서 보는 사진과..

사진이야기 2014.08.29

증명해야 하는 슬픔

지난 18일 36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앙상한 팔을 걷어 보이고 허리둘레보다 두 배쯤 커져버린 바지춤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앞서 한 정치인은 “제대로 된 단식이면 실려 갔을 것”이라 비아냥댔지요. 딸에 대한 사랑과 딸을 잃은 아비의 슬픔을 의심받아야 하고, 목숨을 건 단식의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참 잔인합니다. 겨울 나뭇가지 같은 아슬아슬한 몸을 드러내 보이고 딸과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에 통장까지 공개하도록 하는 가학적인 의심과 무책임한 발언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인간성이 상실된 이들에게 절망하다가도 ‘진상이 규명되고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동조 단식에 나선 시민들을 보며 다시 희망을 쥐어 봅니다. 목숨 건 단식에 ‘아빠’라는 이유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이런 사진기자

군 사망사고 피해자 어머니의 인터뷰 사진을 찍다 멀찌감치 시선이 멎었습니다. 이웃 언론사 후배인 ‘으하하(이름 초성으로 가명 처리함)’기자가 또 다른 피해자 어머니의 얘기를 고개 끄덕여가며 듣고 있더군요. 앞선 기자회견 후 기자 대부분이 철수한 상황이었지요. 보통 사진기자는 캡션에 필요한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사라집니다. 이어지는 다른 일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뜨기도 하지만, 딱히 일이 없어도 바람같이 사라지는 멋(?)을 부립니다. 으하하 기자처럼 그리 긴 얘기를 들을 여유도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무언가를 끼적끼적 받아 적었고 한참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으 기자는 울분과 한숨으로 얘기하는 피해자 어머니 어깨를 쓸어주고 토닥였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그렇게 ..

사진이야기 2014.08.19

그건 위로였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미사 POOL 취재(취재인원이 많고 장소가 협소할 경우 구역이나 일정을 나눠 취재한 뒤 그 사진 또는 기사를 공유하는 것)에 제 명단이 올랐을 때 그리 반갑지 않았습니다. 이른 토요일 아침에 100만 명 운집이 예상된다는 곳에 그것도 일하러 가야하는 것은 천주교인도 아닌 제게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요. 시복식을 며칠 앞두고 가톨릭 신자인 한 선배는 어디서 들었는지 저의 POOL 취재를 아주 부러워했습니다. ‘어디서 봐야하나, 볼 수는 있을까’ 걱정하더군요. 교인에게는 먼발치에서 점처럼 지나가는 교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겠지요. 이런 주변 반응에 조금 자극을 받아 비교적 가까이서 교황을 볼 수 있는 것을 복이라 생각키로 했습니다. 시복미사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의 인파는..

사진이야기 2014.08.17

'4시간 16분 동안의 사진전'

함께 슬퍼했고 함께 분노했던 세월호가 잊히고 있습니다. 사진가들이 나섰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를 사진으로 기록해 온 사진가들입니다. 자신의 사진 한 장을 들고 ‘4시간 16분’ 동안 서울 여의도를 출발해 광화문 광장까지 걸었습니다. ‘4시간 16분 동안의 전시’라는 소위 ‘걷는 사진전’이었지요. 기록되어 기억되는 것이 사진의 본질입니다만, 기억에서 잊히는 세월호 앞에서 새삼 ‘우리는 무엇을 찍는가’, ‘왜 사진을 찍는가’,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고민이 사진가들을 거리에 세웠던 것이지요. 사진기자인 저 역시 이런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진가들은 현수막 천에 출력한 사진을 각목에 고정해 어깨에 얹고 걸었습니다. 전시 소개글에 ‘사진가들이 각자의 십자가인 ..

사진이야기 2014.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