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다큐의 절반은 소재를 찾고 선택하는 일입니다. 사진으로 표현되는가가 가장 큰 고민이지요. 소재를 고르는 데는 자연스럽게 사진기자로서의 경험이 작용합니다. 확실한 건(이것도 경험인데요), 그런 경험이 소재의 폭과 참신함을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겁니다. 외려 지난 경험이 쉬운 단념과 적당한 타협을 부추깁니다. ‘이건 이번엔 안 되겠네’ 싶어 포기하거나 다음 기회를 도모하지만 한편으로 찜찜해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내가 포기하는 이 소재를 멋지게 표현해 낼 거야.’ 유연함과 용기를 앗아가는 경험이란.
다큐를 앞두고 두어 개의 소재를 종이에 낙서처럼 써놓았습니다. 죄 없는 종이를 쏘아보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던 중에 예정에는 없던 ‘가습기살균제사건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가게 됐습니다. 특조위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지원 사례를 발표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지요. ‘이번 다큐로 이건 어떨까.’ 예비 소재가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발언자로 나선 한 피해자 남편의 표정에 마음을 굳혔습니다. 찌푸린 미간과 눈빛에서 말보다 짙은 고통과 분노가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사진취재를 허락한 세 분의 피해자를 만나기 전, 머릿속에 그림을 그립니다. ‘투병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어떨까’ ‘세 피해자 각각의 고통스런 얼굴을 찍어 강렬한 인물사진을 만들까.’ 뭐, 생각은 자유지만, 그런 순진한 생각대로 되는 취재는 좀처럼 없습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여러 조건이 달랐고, 피해자들의 그날 몸 상태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고통을 담아야하는 순간에는 늘 그렇듯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아픈 사람의 품위와 자존감도 지켜야지요. ‘오버하지 않기’라는 자세를 취재하는 내내 유지하려 했습니다.
다큐기사가 나가면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빼먹은 내용이 떠오르고 곳곳에 구멍이 보입니다. 사진들이 이렇게 구성됐으면 어땠을까 하고 뒷북을 쳐댑니다. 개인적으로 메인이라 생각했지만 ‘신뢰’하는 두 분의 선배들이 다른 사진을 지목하는 바람에 쓰지 못했습니다. 투병 중인 피해자와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인공호흡기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진입니다. 긴 투병에 야윈 뒷모습, 창밖으로 던지는 시선, 방 안 구석에 놓인 가족사진 등을 독자들이 세심하게 읽어주길 바라면서 찍었습니다. 애초 머릿속에 그렸던 노골적이고 강렬한 사진보다 피해자의 고통에 더 다가가게 할 수도 있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온라인 기사가 지면기사보다 하루 먼저 나갔습니다. 그날 저녁, 휴대폰으로 기사에 언급된 기업 홍보담당자의 긴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피해자 발언을 인용한 기사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부 부처의 담당 사무관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일부 표현에 대한 곤혹스러움을 토로했습니다. 담당자들이 기본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이해합니다. 제가 꼼꼼히 챙기지 못한 건 당연히 바로잡아야지요.
하지만 곧 씁쓸해지고 말았습니다.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와 가족들 앞에서는 느긋하고 소극적인 가해 기업과 정부가 기사 하나에 이리도 예민하고 재빠르고 적극적으로 반응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포토다큐] '피해자의 단계'라는 게, 우리를 더 숨차게 한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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