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치유자라는 생소한 직업을 가진 이가 있습니다. 사진치유자 임종진. 제가 좋아하는 선배이자 친한 형이기도 합니다.
이웃 언론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다 어느 날 훌쩍 캄보디아로 떠나 국제구호기구 활동가로 일했습니다. 돌아와서는 ‘달팽이사진골방’이라는 사진교실을 열었습니다. 느리고 깊게 사유하는 사진 찍기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이 정신없는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 말이지요.
그의 도전은 이어졌습니다. 뜻을 품고 대학원으로 가서 상담심리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치유적 사진행위”를 개척하는 사진치유자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그를 소개하는 키워드는 김정일과 김광석이었습니다. 6차례 방북해 ‘뿔 달리지 않은’ 현지 주민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고, 아마도 그런 이유로 김정일이 아는 남한의 유일한 사진기자일 거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이 시대 중년들에겐 신화가 된 가수 김광석과의 인연도 특별합니다. 남겨진 김광석의 수많은 사진은 대부분 그의 손끝에서 나왔습니다. 임종진이라는 사람의 시선과 깊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근 그는 2015년부터 진행해온 간첩조작사건 고문피해자들의 사진치유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처와 대면’ ‘원존재와 대면’이라는 두 축으로 진행된 자기회복의 과정을 담은 사진들이 인권유린의 상징적 공간인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전시될 예정입니다.
고문피해자들이 치유를 위해 카메라를 들고 고문의 현장에 섰다고하나, 기억과 그로 인한 분노와 고통은 어쩔 수 없어보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치유자 임종진은 피해자 어르신들을 가만히 감싸 안았습니다. 같은 고통의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지요. 그 순간의 위로가 피해자들에게 더 큰 치유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치유자라 불리는 이는 기본적으로 공감능력이 큰 사람이겠지만, 때론 냉정해져야 하는 일이라는 게 저의 상식입니다. 임종진은 상대의 입장에 서서 곧 그 사람이 되어보는 이 능력이 제가 아는 한 최고인 사람입니다. 아니, 공감의 과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잉만큼의 상처는 그의 몫이 되고, 그를 버겁게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문득, 이 치유자는 정작 본인의 치유는 어떻게 할까 궁금해졌습니다.
전시를 앞두고 마무리작업에 분주한 이 멋진 치유자와 고문피해자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좋은 기운을 받았습니다. 이런 걸 치유라고 해야지요.
사진치유자 임종진은 제가 존경하면서도 '잘 아는 형님'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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