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옥 쪼~옥 쪽쪽~”
노들장애인야학을 떠올리면 환청처럼 따라붙는 소립니다. 11년 전인 2007년 취재한 야학은 서울 구의동 정립회관에 있었지요. 술 한 잔 생각나는 날, 학생과 교사들에게 10cm도 안 되는 술집의 문턱은 까마득한 벽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던 곳은 지하철 출입구 옆 포장마차. 그곳은 턱이 없던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단골이었지요. 사장님은 단골이 들어서자, 종이컵과 빨대를 재빨리 테이블 위에 세팅했습니다. 손이 굽어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종이컵 가득 부은 소주를 빨대로 빨았습니다. 그 속도와 구체적인 소리.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중증장애를 가진 이들 또한 '한 잔'의 욕구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그런 생각조차 없었으니까요. 경험해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지요. “쪼~옥~.”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지만, 즐겁게만 추억할 수 없는 씁쓸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당시 노들야학은 정립회관 측에서 업무 공간 부족을 이유로 퇴거요청을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공부할 곳을 잃을 처지에 놓인 장애인들과 교사들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지요. 야학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 참에 접근성 좋은 새로운 공간을 기대하기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후 천막을 친 채 야학을 이어갔고, 2008년 마로니에공원 뒤편에 독자적인 교육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정수연씨, 2007
정수연씨, 2018
처음 노들야학을 찾은 지 11년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그때 얼굴이 있을까. 두번 째 찾은 날, 당시 사진다큐 메인 사진의 주인공 정수연씨를 만났습니다.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 수연씨의 뒷모습을 찍었었지요. 어떤 간절함이 배어나오는 사진이었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연씨의 몸을 고정한 커다란 휠체어는 여전히 수연씨의 어머니가 밀고 있었습니다. 나이보다 앳돼 보이는 수연씨에 비해 어머니는 지난 세월이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 대한 또렷한 기억이 없으신 듯 했지요. “수연씨 저 기억하세요?” 그는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짧은 소리를 몸을 흔들며 밀어냈습니다. 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요.
이영애씨, 2018
이영애씨, 2007
또 한 명의 사진 속 주인공 이영애씨. 40대였던 그는 50대가 되었습니다. 35년 동안 집에만 있다 2002년 야학에 들어가 처음 한글을 배웠지요. 그러니까 야학에 17년을 다니고 있는 것이지요. "오래 다녀 좀 지겨워요”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나오면 재밌고…딱히 갈 데가 없으니까.” 그러고는 활짝 웃었습니다. 그 웃음은 눈 내리던 11년 전 기억을 소환했습니다. 수업 중 창밖으로 굵은 눈발이 날렸고 곧 쌓였습니다. 하굣길에 교사와 학생들이 눈싸움을 벌였지요. 그나마 두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는 이들만 가능했습니다. 조그만 몸의 영애씨는 휠체어에 누운 채 내리는 눈과 눈싸움을 하는 동료들을 큰 웃음으로 지켜봤었지요. 이후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긴 경사로에서 미끌어내리는 육중한 전동휠체어를 붙들고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1년 만에 기록한 노들야학의 모습입니다. 이제 다큐도 크게 한 바퀴를 돌아온 것 같습니다.
▶▶ [포토다큐] 세상을 조금씩 바꿔 온 노들야학 25년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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