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470

세상을 움직인 한 장의 사진

세 살배기 아이 사진 한 장의 파장이 큽니다.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가 터키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모습이 담긴 사진입니다. 야근을 하던 지난 9월2일 밤 아일란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송되는 외신사진 전용 화상데스크를 들여다보는 것이 야근 일 중 하나지요. 이 사진이 시선을 잡았던 건 물가에 엎드린 채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이 잠든 것처럼 평온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 얼굴에 파도가 밀려와 닿아 있어 아이의 죽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캡션을 확인하고 사진을 반복해 보면서도 지면에 이 사진을 쓰자는 말은 꺼내지 못했습니다. 외신으로 수없이 봐 온 난민 사진 중 조금 더 아픈 사진쯤으로 보고 넘겼던 것이지요. 또 아이의 주검사진을 신문에 쓸 수 있을까, 하는 나름 경험적 판단이..

사진이야기 2015.09.18

'설마'

북한이 포격 도발을 감행한 다음날 연천으로 향했습니다. 전날밤 딸래미는 울었습니다.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더러 오간 모양입니다. 아빠가 포탄이 떨어졌다는 연천 지역에 일하러 간다는 말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던 겁니다. “아빠 가지마. 안 가면 안 돼?”라며 질질 짰습니다. 경험이 드문 아이에게 북의 포격과 더불어 난무하는 무시무시한 전쟁 언어들은 그대로의 공포로 다가올 테지요. 아이의 걱정과 달리 저는 연천으로 향하면서 ‘뭘 찍어야 하나?’를 걱정합니다. 전쟁의 가능성은 늘 존재하지만 ‘설마’하는 마음이 그 가능성을 압도합니다. 눈앞의 위기보다 코앞에 놓인 일에 더 신경이 쓰입니다. 비슷한 경험들로 인해 무감해졌기 때문이지요. 이 무뎌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

사진이야기 2015.08.31

Color of Africa

케냐, 에티오피아 등을 10여 일 동안 다녀오면서 사진을 참 많이 찍었습니다. 이 사진들은 그간 허접한 글과 함께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우려먹었습니다. 좀 더 깊고 진하게 경험하고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사진은 두서없고 함께 쓴 글은 두루뭉술하고 부족합니다. 아직 올리지 못한 사진이 많지만 단물이 다 빠졌으므로 이번 아프리카 포스팅으로 출장 얘기는 마감하려 합니다. 언젠가, 어떤 계기로 아프리카를 기억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 또 다른 사진을 보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에티오피아와 케냐의 도시와 시골을 오가면서 제 시선을 잡은 것은 ‘색’이었습니다. 색들이 눈에 들어온 것은 그간 무채색 위주의 색에 눈이 익숙했다는 의미입니다. 원색은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피와 자연을 각..

사진이야기 2015.08.24

'잠보~ 케냐'

두바이 공항에서 케냐로 출발하기 전, 몇 달 먼저 케냐를 경험했던 후배의 카톡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나이로비 공항에서 경찰이 시비를 걸지 모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돈을 바라는 것이라는 뉘앙스였지요. 도착비자 서류 한 장 작성하고 비용으로 50달러를 지불하자 그냥 쉽게 통과됐습니다. 짐 가방을 찾아 끌고 나가는데 경찰이 막았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가방에 담배 있냐?” “담배 안 핀다.” “오케이.” 그렇게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별거 아닌데 카톡 문자에 괜히 쫄았던 겁니다. 경찰이 사람 봐가며 시비를 거는 것이라 결론지었습니다. ^^ 숙소로 이동하며 극심한 교통 정체와 끔찍한 매연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프리카’하면 초원과 밀림을 먼저 떠올리는 수준의 얕은 지식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

사진이야기 2015.08.19

성경책 든 회장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4일 자정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습니다. 의정부교도소 앞에서 최 회장은 “국민께 심려 끼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모은 두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있었습니다. 교도소를 나서고 기자 질문에 답하고 준비된 차량으로 향하는 동안 그의 손에서 성경책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진 정지윤 기자 성경이 상징하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감 생활 중 성경책을 옆에 두고 읽었다는 메시지가 읽히지요. 그 안에는 회개와 뉘우침의 의미도 있고 조금 더 나가면 ‘새사람 됐어’ '나 달라졌어'라는 선언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진정성을 믿고 싶습니다만, 여하튼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궁금했습니다. 홍보담당 직원이 “회장님, 성경책을 왼쪽 손에 들고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했을까요. 최 회장..

사진이야기 2015.08.16

살람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아디스아바바”를 반복해 발음하다보면 왠지 아프리카적인 낭만이 느껴졌습니다. 공항에 내려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시선을 끌었던 것은 공항 앞에 줄지어 선 낡은 택시였습니다. ‘과연 저 택시들이 달릴 수는 있을까.’ 30년쯤 돼 보이는 택시는 ‘너덜너덜’했습니다. 차를 오래 타는 것이 미덕일 순 있지만 그것도 관리와 안전이 동반될 때나 가능한 말이겠지요. 해발 2000m가 넘는 에티오피아의 수도는 선선했습니다. 이곳의 날씨는 출장을 준비하며 알았습니다. ‘아프리카는 덥다’는 것을 진리처럼 알고 산 지난 세월이 좀 민망했습니다. 공항 가까운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길에서 목격한 주민들의 남루해 보이는 삶과 우리 일행이 머문 호텔의 그 현실적인 거리는 얼마쯤 될까 싶었..

사진이야기 2015.08.12

몸싸움

취재현장의 ‘몸싸움’은 사진기자들에게 일종의 '취재 기술'입니다. 몸싸움이란 것은 정당한 것이고 어깨를 부딪치면서도 동료를 배려합니다. 좁은 현장에서 어깨를 밀어가며 사진을 찍다가도 위치가 좋지 않은 동료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기도 하는 암묵적이고 신사적인 룰입니다. 밀려서 좋지 못한 결과물을 얻었다고 동료를 탓하며 화내면 쪼잔하고 무능한 자가 되어버립니다. 몸싸움은 거칠다기보다 밀고 밀림이 유연한 물의 흐름과 같았습니다. 최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롯데 집안의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더 이상 '고상한' 몸싸움은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들어오던 모습을 뉴스 화면을 통해 봤습니다. 화면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경호원과 취재기자, 사진기자, 영상기자들이 서로 엉겨 붙어 ..

사진이야기 2015.08.05

에티오피아의 멋 '커피 세리머니'

에티오피아하면 굶주림을 떠올립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아이의 축 늘어진 몸과 비정상적으로 커 보이는 눈이 함께 생각나지요. 지난달 며칠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앞으로 커피를 함께 떠올릴 것 같습니다. 커피를 그저 단맛으로 흡입했던 저는 예가체프니, 시다모니 하는 것이 에티오피아 커피 브랜드였다는 사실을 현지에 가서야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커피 맛을 알게 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커피의 멋을 경험했습니다. ‘커피 세리머니’라는 건데요. 에티오피아에서 귀한 손님을 맞는 전통의례랍니다. 처음 들었을 때 ‘설마 커피를 뿌려대는 것은 아니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현지 일정 중 방문했던 월드비전 사무소와 숙소였던 시골의 로지에서 커피 세리머니의 호사를 누렸습니다. 저를 포함한 일행을 ..

사진이야기 2015.07.29

장맛비와 동심

장맛비가 내렸습니다. 일부 지역엔 제법 큰 비가 내렸지만 서울에는 고만고만하게 내렸습니다. 블로그에서 두어 번 썼는데 비에도 성격과 각기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내리는 이 비는 어떤 비일까?’가 비 스케치의 미션을 받은 자의 첫 질문이어야 합니다. 비는 애매했습니다. 장마기간에도 변변한 비가 내리지 않아서 인지 가물었던 대지에 내리는 비는 반길 만 한 것이지요. 호우특보가 내린 일부 지역은 마냥 반가울 순 없겠지요. 게다가 태풍까지 북상한다고 하니 비의 색깔을 판단하기 애매했습니다. 강이 불어 위험하다느니 축대가 무너졌다느니 하는 돌발 현장이 없어 일단 비를 사건·사고가 아닌 서정적 시선으로 기록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차창에 맺힌 빗방울을 걸고 행인을 찍어봅니다. 이렇게 찍어서 참 근사하게 표현..

사진이야기 2015.07.25

걷는 아프리카인

출장지였던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외곽지역을 차량으로 오가며 현지인들의 모습을 살폈습니다. 몇 가지 관심을 갖고 본 모습 중에 하나는 ‘걷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걸어서 어디까지 가는 걸까?’ ‘얼마나 걸어왔으며 얼마나 더 걸어갈까?’ 궁금했습니다. 속도에 익숙한 제겐 눈앞에 펼쳐지는 느리고 막연한 걸음이 답답해 보였던 것이지요. 달구지나 오토바이를 타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냥’ 걸었습니다. 걷는 아프리카인들을 달리는 차 안에서 찍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에 좀처럼 속도를 늦추지 않는 차 안에서 걷는 이들을 찍는 것이 ‘비겁하고 소심한 사진 찍기’라 자아비판을 했습니다. 적어도 함께 걸으며 찍었어야 그 의미와 함께 사진의 무게감도 살아났을 테지요. 고로 아주 가벼운 사진들입니다. 멀..

사진이야기 2015.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