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468

배철수 아저씨

MBC FM DJ 배철수라는 인물. 제게는 추억 속의 인물입니다. 송골매 멤버로 한창 활동할 때 저는 꼬마였지만 ‘가요톱10’ 등에 나오는 당시 노래를 곧 잘 따라 불렀습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사진기자가 된 뒤 언젠가 막연히 ‘배철수 아저씨’를 찍을 날이 있겠지, 했습니다. 꼬마가 나이 마흔이 넘어 그 ‘아저씨’를 만납니다. 서울 상암동 MBC 신사옥에서 그의 주말기획 인터뷰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 추억이나 옛 기억의 어느 지점에 있던 인물을 만나면 사진에 조금 더 신경이 쓰입니다. “어릴 때 노래 많이 따라 불렀습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아저씨와 나’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음을 넌지시 던졌습니다. “나이가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요”라는 의례적 인사 같은 답이 돌아옵니다. “점점 더 멋있어 지시는 것..

사진이야기 2015.06.16

'틈새사진'을 허(許)하라

며칠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매너 우산’ 사진이 화제였지요. 헬기에서 내려 우산을 받쳐 든 오바마가 백악관 참모들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오바마가 즉흥적으로 연출했을 가능성이 있지요. 그럼에도 훈훈한 사진입니다. 사진=REUTERS 대통령이 어디에나 카메라가 있다고 인식한다는 것은 언제든 의도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찍힐 수 있지만 같은 이유로 의도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 또한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바마는 눈앞의 상황을 자신에 유리하게 적용시킬 줄 아는 훈련된 사람이며 언론을 충분히 이해하고 또 이용하는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사진에 곁들인 기사를 보면 2년 전 해병대원에게 우산을 씌워 달라 부탁했다가 보..

사진이야기 2015.05.26

나 홀로 출사 '백사마을'

서울 중계동 백사마을은 서울에서 알려진 출사지입니다. 산104번지여서 백사마을이라고 불리는 달동네지요.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이 마을을 가끔 찾습니다. 6,70년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골목골목을 누비며 두어 시간 머물다 집으로 돌아오면 왠지 먼 여행을 다녀온 듯 나른한 기분에 젖기도 합니다. 10년 전 인근에 이사와 이 마을을 소재로 사진다큐를 지면에 싣기도 했습니다. ‘가난에 찌든 동네, 골목골목 꿈이 익는다’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매년 달동네의 사계절을 기록해 언젠가 사라질 마을에 대한 작업을 해보자 다짐을 했었습니다. 집이 가까운 것은 제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작업환경이었음에도 같은 이유로 자라난 게으름 때문에 시간만 흘러 보냈습니다. 저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미련인지 취재용..

사진이야기 2015.05.19

슬픈 사자를 보았다

동물원에 동물이 ‘가두어졌다’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일이 없었습니다. 수년 전 동물원을 소재로 사진을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가벼운 생각은 했었습니다만 그때뿐이었지요. 신문에 실린 칼럼 ‘김산하의 야생학교’에서 ‘동물 노동자의 인권’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가두어졌다는 것, 동물의 감정노동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한 글이었지요. 동시에 사람 복지도 부실한데 동물 복지는 무엇이며, 사람의 감정노동에 무심한 세상에 동물의 감정까지 헤아려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난주 동물의 감정노동에 대한 주말기획기사를 위해 동물원을 찾게 됐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재밌어하는 곳이 동물원이지요. 기획 목적에 맞는 사진을 찍기 위해 시각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구경이 아니라 관찰이어야지요. ‘자유를 박탈당한 동물..

사진이야기 2015.05.12

'자리경쟁'

현장에서 사진기자들의 경쟁 중 상당부분이 자리경쟁입니다. 자리를 먼저 잡으려는 것은 안정적인 상태에서 적절한 사진을 얻을 확률이 높다는 경험에 의한 것이지요. 결국 자리경쟁은 좋은 사진을 찍으려는 경쟁입니다. 뉴스가 클수록 자리 경쟁은 치열해 집니다. 성완종 리스트 인물 중 한 명인 홍준표 경남지사의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두고 수사팀이 있는 서울고등검찰청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3단 사다리를 받치고 포토라인에 명함을 붙여 한 번 더 자리를 확인하는 치밀함도 보였습니다. 예닐곱 명의 사진기자들이 같은 생각으로 각 회사의 영역을 표시했습니다. 소모적인 자리 맡기 경쟁을 해소하자는 차원에서 ‘사다리만 있고 사람이 없으면 자리는 무효’라는 협회에 소속된 사진기자들의 약속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행여나 혹시나 싶..

사진이야기 2015.05.09

사진에 담은 봄바람

봄이면 먼저 떠올리는 것은 대게 꽃입니다. 사진기자들은 날씨가 풀리면 꽃을 찾으러 다닙니다. 신문사진의 계절 스케치는 실제 계절보다 조금 앞서가는 경향이 있기에 급한 기자들은 서울시내 화단 장식을 위해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꽃을 찍어 서둘러 봄소식을 전하기도 합니다. 전남 광양의 매화, 구례의 산수유, 서울 여의도 윤중로(마이웨이^^)의 벚꽃, 응봉산 개나리, 그리고 목련과 진달래 등이 대체로 매년 지면에 등장하지요. 새로운 장소를 찾거나 빤한 장소에서 새로운 앵글을 구사하는 식으로 반복됩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지만 아마도 독자들보다 기자들이 이런 반복에 더 지겨울 겁니다. ‘청보리’는 좀 참신한 듯해도 매년 보는 꽃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소재입니다. 입사 후 처음으로 고창 청보리밭을 찾았습..

사진이야기 2015.05.04

사진기자 배정현을 추모하며

작년 이맘때 연합뉴스 배정현 기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얀 이를 드러낸 채 해맑게 웃는 모습이 참 멋진 후배입니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를 취재하며 진도 팽목항에서 그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타사 후배의 상기된 표정이 기억납니다. 세월호라는 구체적인 사고도 비현실적으로 인식되는 공간에서 후배의 갑작스런 죽음이 현실적일 수 없었습니다. 소식을 듣기 전과 후는 불과 몇 초라는 시간의 간격이지만 상당한 혼란을 갖게 했습니다. 현장을 함께 뛰던 동료의 죽음은 부정된 채로 허탈감만 짙게 드리웠습니다. 세월호에 놀라고 사고현장의 긴장으로 후배의 죽음을 온전히 슬퍼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습니다. 그가 떠난 지 1주기. 지난 주 갤러리 류가헌에서 추모전시회 ‘짧은 여행의 기록’이 열렸습니다. 전시된 ..

사진이야기 2015.04.30

드론이 들어왔다

대형 집회가 있을 땐 어느 건물에 올라가 찍을까를 먼저 고민합니다. 한 장의 사진으로 그 규모와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정작 서울시내에는 올라가 찍을 곳이 드뭅니다. 찍기 적당한 건물을 발견해 들어서면 안내데스크에서 대부분 거절당합니다. 아래에서 다양한 사진을 찍어도 전체를 조망하는 사진이 없으면 뭔가 찝찝함을 느끼는 것은 카메라를 쥔 자들이 공유하는 심정일 겁니다. 반대로 높은 데서 내려찍은 그림이 있으면 좀 든든해져서 아래에서 찍는 일이 좀 수월해 진다고 느낍니다. 아스팔트(사진기자들이 일하는 현장, 특히 거리를 뜻하는 은어)를 뛰다보면 앵글의 높이에 한계가 있습니다. 보통 가장 낮은 시선인 엎드려 찍기부터 휴대용 3단 사다리를 좀처럼 넘기 힘듭니다. 더 높이 오를 곳이 없어 아쉬운 때..

사진이야기 2015.04.21

총 같은 카메라

카메라와 총의 공통점이 많지요. 셔터와 방아쇠의 유사성으로 ‘shot’이라는 단어를 같이 사용합니다. ‘찰나의 샷’으로 순간을 멎게 하는 것도 유사합니다. 대체로 검고 묵직한 금속성 외양도 비슷합니다. 총열 덮개를 한 손으로 받치듯 카메라 렌즈를 감싸 쥐지요. 이때 팔꿈치를 가슴으로 당겨붙여 고정하고 호흡을 가다듬는 자세도 흡사합니다. 대상을 향해 손끝의 세밀한 감각으로 쏘는 것도 같습니다. ‘앉아 쏴’, ‘엎드려 쏴’ 등의 사격 용어를 사진기자 역시 자연스럽게 쓰고 있으며 ‘빈 총 맞으면 재수 없다’는 것처럼 ‘빈 카메라(필름이나 메모리카드가 없는)에 찍히면 재수 없다’는 직업적 명언도 존재합니다. 메모리카드가 다 차면 ‘총알 떨어졌다’고 하지요. 가끔 카메라가 대상을 두렵게 하는 것도 총과 유사한 점..

사진이야기 2015.04.03

우는 남자

수영선수 박태환, 가수 태진아, 이완구 총리. 직업도 나이도 다른 이 세 사람을 하나로 엮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눈물입니다. 최근 세 남자 모두 기자회견이나 취재진 앞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비슷한 기간 눈물을 보인 여성의 이미지는 딱히 떠오르지 않아 그런지 ‘우는 남자들’의 모습은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왜 울까요. 잘못에 대한 후회와 반성, 대대적인 보도와 의혹제기 등에 대한 억울함,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눈물샘을 자극했겠지요. 여기에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의 눈물이라는 의심도 보태집니다. 대중 앞에서 보인 눈물이 위기의 정면 돌파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 들어가 있는 듯합니다. 대게 인지도 있는 인물의 눈물 사진은 웹과 지면을 도배합니다. 글로 추측되고 증폭되는 ..

사진이야기 2015.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