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세이&B컷 32

증명해야 하는 슬픔

지난 18일 36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앙상한 팔을 걷어 보이고 허리둘레보다 두 배쯤 커져버린 바지춤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앞서 한 정치인은 “제대로 된 단식이면 실려 갔을 것”이라 비아냥댔지요. 딸에 대한 사랑과 딸을 잃은 아비의 슬픔을 의심받아야 하고, 목숨을 건 단식의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참 잔인합니다. 겨울 나뭇가지 같은 아슬아슬한 몸을 드러내 보이고 딸과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에 통장까지 공개하도록 하는 가학적인 의심과 무책임한 발언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인간성이 상실된 이들에게 절망하다가도 ‘진상이 규명되고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동조 단식에 나선 시민들을 보며 다시 희망을 쥐어 봅니다. 목숨 건 단식에 ‘아빠’라는 이유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눈물 타고 흐르는 전기

밀양 주민과 시민들이 서울 대한문 앞에서 촛불을 들었다. 100일 전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음독해 유명을 달리한 유한숙 할아버지를 위한 촛불이다. 쌀쌀한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뒤로 빌딩의 불빛이 미동도 없이 빛났다. 밤이지만 어둡지 않은 도시 한 가운데서, 해 지면 소박한 불빛 밝혀 사는 밀양 주민들이 외친다. "전기보다 생명이 소중하다"고. 서울 전기 자급률 3%.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2014.3.14 서울 대한문 yoonjoong

'영웅'

서울시청 외벽에 걸린 대형 걸개의 글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스쳐 지나며 읽은 문구에서 조그만 위안을 얻으며 흐뭇했습니다. 때마침 신호에 걸려 차창을 내리고 사진을 한 컷 찍으려는데 벤치에 누운 지쳐 보이는 남자가 글과 함께 앵글에 들어왔습니다. ‘영웅’과 ‘드러누운 남자’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어 보였습니다. 글귀와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간사하게도 바로 조금 전 위안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 수도의 가장 상징적인 곳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담고 있는 ‘희망의 메시지’는 도처에 널린 무기력하고 좌절적인 삶에 대한 역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이 되겠다”는 검찰의 말처럼 공허하기도 했습니다. ‘난세영웅’이라 했으니, 너도나도 영웅이어야 할 어지러운 ..

파란 봄

신문사 입사한 그해 가을로 기억합니다. 당시 부장께서 외신 사진 한 장을 벽에 붙였습니다. 참신해 보이고 시도해 볼만한 계절 스케치 사진을 그런식으로 붙이셨지요. 바닥에서 벽으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낙엽을 쓸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부장께서 좋다고 생각하신 사진을 어떤식으로든 흉내내 찍어보려 낙엽지는 가을마다 기회를 노리곤 했었지요. 결국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꽤 긴 시간 머릿속에 남아 있던 이미지였습니다. 그제 인터뷰 갔다가 건물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사진을 한참 바라보며 '내가 왜 이 사진을 찍었을까?'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기자 초년병 시절 각인된 이미지에 저도 모르게 끌린 것이지요. 가을이 아닌 봄이, 빗자루 대신 롤러가, 낙엽 대신 파란 페인트가 그 자리를..

연탄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달동네 104마을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사진 좀 찍어봤다는 이들은 한 번쯤 걸었을 곳이지요. 운동이라도 하려고 나설 때면 일부러 이 동네를 지나갑니다.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이 꽤 매력이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극적으로 또다른 골목과 연결이 되지요. 7년 전 중계동으로 이사 온 뒤 수도 없이 다녔던 동네가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낯설게 느껴집니다. 오래돼서 낯선 것들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카메라가 없어서 아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지난 4일 눈 많던 날, 104마을에는 골목골목마다 매캐한 연탄냄새가 떠다니고 있었지요. 연탄재를 찍었습니다. 서울 중계본동 104마을 골목에 정성껏 쟁여놓은 연탄재가 쌓인 눈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연탄재는 폭설이 쏟아진 이날 가파..

어느 무명화가의 작업실

사진기자로 살면서 제 개인적인 계획으로 명소를 찾아가는 일은 드뭅니다. 일하다보면 언젠가 가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지요. 통영 동피랑 마을도 그런 곳입니다. 안철수 전 후보가 사퇴하기 한 달 전쯤 동피랑 마을 방문해 따라갔었지요. 이날 후보의 전 일정들이 많아 굳이 사진을 마감할 생각보다는 기념사진이나 몇 장 찍으려 했었지요. 안 후보가 동피랑 꼭대기에서 마을주민과 대화하는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늘짜집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써진 계단을 기어이 올랐습니다. 마을 아래로 아담한 통영항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옥상 아래 대문과 현관문 사이 좁은 공간에는 화구들이 널려있었지요. 캔버스엔 통영항이 담겼습니다. 야외에 작업실을 만든 이의 '낭만'이 느껴졌습니다. 그때 눈에 띈 것은 현장 노동자..

손편지

거리에서 우체통을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늘 거기 있었을 텐데도 개인적으로 쓰임이 없고 관심을 두지 않으니 보이지 않았을 수 밖에요. 파란 가을 하늘 빛과 대비되는 붉은 색이어서 눈에 띄었나 봅니다. 아니, 편지가 떠올려지는 계절이라 시선이 갔나 봅니다. 썼다 지웠다 하며 손으로 쓴 편지를 부친 기억이 십 수 년은 된 것 같습니다. 가끔 손으로 눌러 쓴 제 글씨가 낯설게 보입니다. 심지어 수첩에 긁적인 저의 글씨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태까지 생겼습니다. '내 주위에 누구의 글씨를 기억하고 있나?' 생각해 보니, 당장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e메일과 카톡이 대세인 시대에 손으로 쓴 편지는 이벤트에나 출연을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편지 한 통 써서 부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또 '누구에게 쓸 것인가' 고민에..

남자들의 이별

추석 열차표 예매하던 날, 시민들의 긴 행렬을 위에서 내려찍기 위해 서울역 2층 대합실로 올라갔습니다. 군복을 입은 병사 세 명이 다정하게 셀카를 찍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드는지, 아니면 여러 장을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 찍고 또 찍었습니다. 이날 제대한 이들은 집으로 가는 열차 시간이 다가오자 헤어지기 아쉬웠던 모양이었습니다. 훌쩍 19년 전 기억이 스쳤습니다. 저는 논산훈련소 26연대 146번 훈련병이었지요. '전우조'라는 게 있었습니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훈련병 생활을 하라며 세 명씩 짝을 지어 주었습니다. 145번, 147번 동기들이 제 전우조였지요. 힘들 때 많이 의지했습니다. 4주 훈련을 마치고 각자 배치받은 부대로 가기 위해 새벽녘 기차역으로 향하던 중 우리 세..

담벼락에 걸린 눈

영화 '이웃사람'의 원작 만화가 강풀씨의 인터뷰를 앞두고 시간이 남아 인근에 있는 팔판동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삼청동길 들어서서 왼쪽으로 있는 동네입니다. 조선시대에 열덟 명의 판서가 나왔다고 팔판동이랍니다. 묵직한 유래에 비해 이름은 다소 가벼워 보이는 동네지요. 아담한 이 동네는 골목을 따라 예쁜 카페촌이 형성돼 연인이나 관광객들이 많습니다. 카메라를 든 이들도 많구요. 일부러 오기 힘든 동네고, 시간은 때워야 하고, 오랜만에 여유를 누렸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어슬렁 거렸습니다. 한 번 지났던 골목인데 어떤 끌림이 있어 다시 한 번 걷게 되었지요. 저를 끌어들였던 것의 정체는 '벽에 그려진 눈'이었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매서운듯 하면서도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는 눈이었지요. 전봇대 옆, 쓰레기 ..

노동자의 얼굴, 2012

집회 현장에서 그렇게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고, 노골적으로 얼굴을 클로즈업 한 적이 제 기억엔 드뭅니다. 그는 아스팔트도 녹일 듯 뜨겁던 날, 국회 앞에서 열린 '용역의 폭력'을 고발하는 노동자들의 회견에 나왔습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은 절실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핑계로 서둘러 자리를 뜨면서도 그 눈빛이 밟혔습니다. 불면의 밤을 선사했던 올림픽과 그 대미를 장식한 축구 한-일전이 선사한 기쁨에, 그의 고통, 노동자의 아픔은 가려지고 잊혀져 버렸습니다. 그의 눈빛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기업이 고용한 '용역 폭력'의 실태를 공개하는 회견장에서 한 노동자의 눈과 마주쳤다. 짧게 깎은 머리에 검게 그을린 눈빛엔 그간의 고통과 분노, 아픔이 드리워져 있었다. '국격'을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