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세이&B컷 33

노동자의 얼굴, 2012

집회 현장에서 그렇게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고, 노골적으로 얼굴을 클로즈업 한 적이 제 기억엔 드뭅니다. 그는 아스팔트도 녹일 듯 뜨겁던 날, 국회 앞에서 열린 '용역의 폭력'을 고발하는 노동자들의 회견에 나왔습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은 절실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핑계로 서둘러 자리를 뜨면서도 그 눈빛이 밟혔습니다. 불면의 밤을 선사했던 올림픽과 그 대미를 장식한 축구 한-일전이 선사한 기쁨에, 그의 고통, 노동자의 아픔은 가려지고 잊혀져 버렸습니다. 그의 눈빛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기업이 고용한 '용역 폭력'의 실태를 공개하는 회견장에서 한 노동자의 눈과 마주쳤다. 짧게 깎은 머리에 검게 그을린 눈빛엔 그간의 고통과 분노, 아픔이 드리워져 있었다. '국격'을 강조..

외로운 등

개화산에 취재갔다 등산로에서 우연히 한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어르신의 배낭에는 개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 '재밌는 장면'이다 싶어 서너장을 급히 찍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개가 참 호강하는구나' 정도의 생각이었지요. 수요일자 '포토에세이'에 쓰려고 사진을 '꼬불쳐' 놓고 몇 번이고 꺼내 보았습니다. 볼때마다 사진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재미있었던' 사진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묵직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최근 가난과 외로움에 힘든 노년을 보내던 노부부의 자살 사건도 사진 위에 어른거렸습니다. 사진 속 어르신 앞으로 길게 나있는 등산로도 살아갈 많은 날들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찍을 당시 개를 먼저 봤다면, 다시 사진을 볼때는 어르신..

나날이 숭고해지는 생명

아스팔트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스팔트 위 작은 틈에서 이름 모를 풀이 고개를 내밀었다. 지나치지 못하고 그 앞에 발길이 멈췄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리 자란 사연을 생각했다. 수시로 지나는 차량의 바퀴에 밟히면서도 꿋꿋하게 그 생명을 견뎌냈다. 보잘 것 없는 풀의 생명이 더 없이 커 보이는 건, 이 곳이 수 많은 죽음이 기려지고 있는 현충원이어서 일까. 쉽고 가볍게 스러지는 숱한 삶들의 세상에서 연약한 풀의 질긴 생명력은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그 작고 고독한 생명이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나날히 숭고해지고 있었다. yoonjoong

철거민, 손주름, 눈물

지난 2일 서울시청 앞에서 강제철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무자비하게 철거 당하는 모습을 행위극으로 보여주던 한 철거민이 북받치는 듯 연방 눈물을 찍어댔다. 얼굴을 감싸쥔 두 손이 눈에 띄었다. 불거진 손마디, 거칠고 주름진 손이 신산한 삶을 웅변하고 있었다. 추위 속에 내쫓기는 철거민의 서러움과 한숨이 전해져 왔다. yoonjoong

행복

수능 시험 가채점 하던 날. 서울시내 한 여고 교실 외벽에 붙은 급훈이 시선을 끌었다.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여고생들은 어른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부모님의 모습에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곧 펼쳐질 대학생활과 취업에 대한 두려움도 녹아 있는 듯했다. 수능 가채점을 하며 희비가 엇갈리는 수험생들을 보며 '수능 점수'가 '행복'의 척도라 믿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나'는 행복한가? yoonjoong

하늘을 날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 전국체전 개막식. 몸에 줄을 매단 무희가 호숫가 하늘을 한 폭의 그림처럼 날아 올랐다. 주변의 배경이 생략된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느린 무희의 움직임을 쫓다가, 문득 '내가 날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카메라에서 눈을 떼는 순간, 막연한 꿈을 꾼듯 했고 놀이기구를 실컷 타다 바닥에 발을 디딘것 처럼 땅의 감촉이 한층더 단단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장자의 '나비의 꿈'을 생각했다면 너무 간 것인가? ^^

“툭”하고 경쾌한 소리가 숲속에 울렸다. 돌아보니 밤송이 하나가 눈에 띈다. 투명한 연두색 가시로 둘러싸인 밤송이가 떨어지며 낸 애교스런 아우성이다. 작년 요맘때 떨어져 누렇게 변해버린 밤송이들 사이에서 반짝였다. 선선한 바람은 밤나무를 재촉해 밤알이 채 여물지도 않은 밤송이를 떨어뜨렸다. 가을이 서둘러 내주는 선물인듯 했다. 2011.9.20 용인 서전농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