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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이상의 다큐...낙엽 지는 가을에

J선배와 사진다큐 회의를 했습니다. 보통 그렇지만 회의는 막연한 가운데 시작합니다. 막연함이야말로 회의의 조건인 셈이지요. 정동길의 어느 한적한 아지트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말들을 나눕니다. 적당한 조바심에 한숨도 더해 지곤합니다. 막연함을 떨쳐내지 못한 채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며 회의 장소를 나서다 배롱나무 낙엽 앞에 멈췄습니다. 낙엽을 주웠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특유의 모양과 다양한 색의 변화가 보였습니다. 같은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뭉뚱그려 ‘무슨 나무의 낙엽’으로 불리기엔 이파리마다 개별성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회의 중에도 ‘단풍으로 할 수 있는게 없을까’하는 얘기는 있었지만, 역시 막연했지요. 고개들고 걷다보면 그냥 밟고 지났을 것을, 회의에 한마디 나왔다고 낙엽을 들여다보게..

사진다큐 2018.11.04

밥 두 그릇

김의정씨(가명)는 홀로 사는 50대 남성입니다. 그는 가난하고 아픕니다. 이틀을 함께 보냈습니다. 다친 다리에 통증을 느끼면 12개의 알약을 털어 넣었습니다. ‘식후 30분’이라 써 있는데 식사는 먹는 둥 마는 둥 했지요. 애초에 ‘50대 고독사가 많다’는 뉴스에서 시작한 다큐였습니다. 고독사를 찍을 수 없어, ‘고독사 위험군’에 속하는 대상으로 섭외를 했습니다. 혼자 밥 먹는 모습을 찍고 싶었습니다. “평소 어떻게 드시냐?” 물었더니, “뭐 대충 고추장에 비벼서 먹는다”고 했습니다. 밑반찬도 없이 말이지요. 취재를 마무리할 무렵, 그가 쌀을 불려 밥을 지었습니다. ‘마지막 사진 컷이 되겠구나.’ 그는 반쯤 남은 카레 가루를 들어보더니 야채를 사왔습니다. 10500원을 썼습니다. 그에겐 가볍지 않은 지출..

사진다큐 2018.10.22

"당신이 가난을 알아?"

제가 사는 집 가까이에 백사마을이 있습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는 곳이지요. 이사 와서 자주 다녔습니다. 끊어진 듯 연결되는 골목을 무작정 따라 걷는 게 좋았습니다. 골목이 주는 묘한 위안이 좋더군요. 미로 같은 골목을 뛰며 놀던 어릴 적 추억이 소환되곤 했습니다. 13년 전 ‘포토르포’라는 기획면에 사진과 글을 실었습니다. ‘달동네 골목골목 꿈이 익는다’는 제목으로 나간 기삽니다. 고단한 삶이 드러나는 곳이지만 골목마다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꿈을 읽으려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랬습니다. “중계동 산104번지에는 여느 해바라기보다 고개를 더 길게 빼고 있는 해바라기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달’동네의 ‘해’바라기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이 심은 꿈이 아닐까.” 좀 오그라들지요..

사진다큐 2018.10.08

"둘이 묵으이 맛나네"

추석을 앞두고 신안군 안좌도 오동리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왜 하필 그곳에 갔을까, 궁금해 하는 분들이 주변에 서너 명 있더군요. ^^ 오동리 마을은 사진기자 ㅂ선배가 나고 자란 고향입니다. 그 선배의 소개로 마을 이장님과 통화하고 다큐길에 오르게 된 것이지요. 수년 전 다큐하러 어느 농촌을 찾았다가 사기꾼으로 의심을 산 적이 있습니다. 이거다 싶은 사진을 못찍어 다양하게라도 찍으려다보니 긴 시간이 필요했지요. 종일 옆에서 이것저것 묻고 사진 찍고 하다보니 ‘이 사람 뭐지?’ 했던 것이지요. 기자라고 다시 신분증을 내밀어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안전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사람을 보증으로 내세웠던 것이지요. 안좌로 들어가는 배 안에서 선배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좀 누추해도 우리집 가서 자면 된다..

사진다큐 2018.09.26

'동건'이와 '정우'

‘펫로스’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습니다. ‘반려동물의 부재(죽음 또는 가출)’ 정도로 짐작했습니다만, 그리 간단한 게 아니더군요. ‘펫로스증후군’이 흔한 병리적 현상이란 걸 알게 됐지요. 개인적으로 개나 고양이를 좋아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키울 계획도 없어 애초에 제 관심 영역으로 들어올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펫로스’기사와 관련된 사진을 찍기 위해 병들어 입원했거나 죽음을 앞둔 반려동물을 찍기 위해 분당의 한 동물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주인이 있는 반려동물을 함부로 찍을 수 있을까’ 싶었지요. 병원장이 취재에 앞서 주의사항을 말할 때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전이든 사후든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야 사진을 찍고 쓸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막상 사진을 찍기 어려운 상황이 되니 속으로 투덜대지요. ‘세상이..

사진이야기 2018.09.04

버거운 다큐

사진다큐는 소재를 찾고 회의하고 결정하고 연락하고 일정을 잡으면서 시작합니다. 일단 취재원을 만나 얘기 나누고 카메라를 들면 웬만하면 다른 소재로 갈아타기는 어렵습니다. 대체로 어렵게 취재를 허락한 취재원에 대한 예의도 아니지요. 마감시간이 제법 남았는데도 이미 급해진 마음에 ‘이건 아니다. 다른 거 찾자’는 결단은 좀처럼 내리지 못합니다. 이번 다큐도 그랬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여름휴가'를 찍어보자고 시작했지만 머릿속에 미리 그렸던 그런 휴가는 없었습니다. 달리 전개되는 상황과 애초의 의도 사이에서 수시로 갈등했습니다. 어정쩡한 상태로 ‘이정도면 됐다’며 버릇처럼 합리화를 했지요. 결국 이주노동자의 ‘여름휴가’는 바다로 놀러가는 ‘하루짜리 캠프’로 대체됐고, 피하고 싶었던 평범한 기념사진이 메인사진이 ..

사진다큐 2018.08.23

폭염 스케치

날씨사진은 사진기자들이 일상적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보통 ‘날씨스케치’라 부릅니다. ‘스케치’라 하여 다소 가볍게 들리지만 지면 내에서는 비중인 큰 사진거리입니다. 날씨는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관심사 중 하나지요. 대게 날씨스케치는 ‘덥다’ ‘춥다’처럼 몸으로 느끼는 것을 시각화하거나, ‘눈’ ‘비’ 같이 눈에 보이는 것에 적절한 의미를 담아 표현합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폭염도 ‘아주 더운 날씨’이지만 ‘기록적’이라는 수식이 붙으며 사건과 사고의 영역입니다. 재난이지요. 폭염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은 ‘폭염스케치’라는 취재명으로 사진부기자의 주요 일정이 되었습니다. 보통 일간지에서 더위스케치는 늦봄이면 시작됩니다. 광화문광장 분수대나 여의도 물빛광장이 대체로 그 시작입니다. 아..

사진이야기 2018.08.06

머물러 있는 사진

몇 달 전 어느 술자리에서 좋아하는 후배 사진기자가 술기운(?)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형님 사진은 늘 그대로에요.” “이 새끼 주글래?” 웃음 띤 채 말하기에 장난처럼 받았지요. 늦은 밤 “형님,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고, 그저 웃자고 했던 말이 아니었음을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친하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평소 느낌을 말한 것일 테지요. 며칠 전엔 한 친구가 제 사진에는 저만의 색이 있다고 하더군요. ‘너다운 사진’ ‘너니까 찍는 사진’ 같은 평가도 덧붙었습니다. 과찬이지요. ‘내 사진에 정말 그런 게 있기는 할까’ 고마웠고 한편 부끄러웠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칭찬과 돌직구가 엉켰습니다. 익숙한 시선과 몸에 새겨진 버릇이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반복적으로 찍어댔겠지요. 고민하는 척(그거라도 해야 할..

사진이야기 2018.07.31

'곰의 일'

지난 주 마감했던 는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번식연구’에 대한 것이었지요. 작년 가을 무렵 반달가슴곰 취재를 시도했다가 시기가 맞지 않아 다음을 기약했었습니다. 잊고 있던 반달곰을 다시 떠올린 건 지난 3월 취재했던 평창동계패럴림픽이었지요. 마스코트가 반달가슴곰 ‘반다비’였습니다. 뭐 이런 순간에 몇 달 후 지면을 어렴풋이 그려보기도 하지요. 마음을 굳힌 건 ‘반달가슴곰 세계 최초 인공수정 출산 성공’이라는 뉴스였습니다. 지난해 한 차례 취재시도, 패럴림픽 마스코트, 세계 첫 인공수정 출산 등 일련의 과정이 ‘거부할 수 없는' 계시로 다가왔습니다.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 반달곰 인공수정 연구진 반달곰 복원에 애쓰는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에 연락을 하고, 그날 밤 구례로 달려갔습니다. 다음날..

사진다큐 2018.07.24

어쨌거나 "하쿠나마타타~"

조금 열린 차창으로 케냐 초원의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이게 초원의 냄새겠지. 바람을 한껏 들이마셨다. 멀리 초원 끝에 걸린 구름과 그 사이에 내민 저물녘의 태양, 붉어지는 하늘색에 압도되었다. “참 좋다”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일 예상치 못했던 일로 가슴을 졸였던 첫 일정이 저 아름다운 석양과 함께 마무리 되고 있다는 것에 나름 안도했다. 그때 운전하던 사이먼이 오른쪽을 가리켰다. 초원의 웃자란 나무사이로 야생 얼룩말 무리가 지나고 있었다. “우와~” 환호했다. ‘이건 아프리카의 축복이야.’ +해질녘 케냐 초원 시야를 가리지 않는 초원 위로 펼쳐진 하늘은 가늠할 수 없이 넓었다. 어디쯤인지 저 먼 곳의 하늘은 맑았고 일행이 달리던 거친 길 위의 하늘은 구름이 짙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진이야기 2018.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