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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의 까막눈들

평창동계패럴림픽을 취재하는 하루하루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일과를 끼적거려 일기처럼 모았습니다. 훗날 사진과 함께 돌아볼 때 좀 더 입체적으로 기억이 소환되리라 믿어서지요. 패럴림픽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도 이 블로그를 서둘러 쓰게 했습니다. 관심이 이어질까 (3월6일) 관심을 받던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이어지는 패럴림픽 개막 사흘을 앞두고 평창으로 향하는 동안 설렘과 걱정이 뒤섞였다. ‘관심이 유지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관심이 줄어들겠지만 그 폭이 최소화됐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취재 온 동료 사진기자들의 수가 앞선 대회보다 줄어든 것으로 ‘관심'의 정도를 가늠한다. '언론의 외면일까, 국민 외면의 언론 반영인가?' 닭이냐, 달걀이냐 같은 물음이다. 답 없고 소모적이다. 사진기자들 ..

사진이야기 2018.03.16

'아름답다, 패럴림픽'

평창에 출장 왔습니다. 패럴림픽 개막 사흘 전에 와서 이제 일주일쯤 지났습니다. 보통 출장이 그렇듯 하루가 참 깁니다. 회사 출근시간보다 일찍 일을 시작하고 마감시간을 넘겨 일해서겠지요. 10년 전 베이징패럴림픽을 취재한 경험이 있어 패럴림픽 취재는 두 번쨉니다. 하계와 동계의 종목이 다르니 낯선 취재이긴 마찬가집니다. ‘어떻게 찍을까.’ 보이는 대로, 셔터가 눌리는 대로 찍히겠지만, 적어도 스포츠에서 장애인과 장애를 어떻게 드러내고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해 볼 좋은 기회지요. 쉽게 할 수 있는 취재가 아니라서 이번이 아니면 고민해 볼 기회가 다시 없을 지 모릅니다. 10년 전에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일정을 촘촘히 짜서 하루에 되도록 많은 경기(아마도 4종목쯤)를 보려고 애썼습니다. 당시 절단장애든, 시..

사진이야기 2018.03.13

"사진 기다리고 있다"

봄 사진을 찍으러 남도로 향하는 걸음은 가벼웠지요. 전날 숙취로 내내 졸면서도 차창 밖으로 흐르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풍광이 좋았습니다. 계획대로 되면 더없이 흐뭇한 출장이겠거니 했지요. 순천의 한 사찰에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린다는 홍매화를 담는 것이 첫 계획. 전남으로 들어서자 빗발이 굵어지고 바람이 강해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붉게 피었을 꽃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사찰엔 인적이 없었습니다. 홍매화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붉게 흐드러졌어야 할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나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내 수두룩한 나무엔 작은 꽃도 달리지 않았지요. 언제 꽃이 될까 싶은 꽃눈만 가지 위에 달렸습니다. 당황했습니다. ‘꽃이 폈다’는 걸 의심하지 않고 왔기 때문입니다. 즉시 계획을 수정했습..

사진이야기 2018.03.02

먹고 사는 일

시골장터에서 나물을 팔던 상인이 좌판 뒤 저만치 떨어져 앉아 허겁지겁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손님이 나물 3000원 어치를 싸달라고 하자, 나물을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나물값을 받으려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손이 앵글 안에 들어왔고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손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적지 않았습니다. 햇볕에 그을린 손이 거칠었습니다. 손등의 살갗은 터서 갈라졌습니다. 좀 전까지 나물 다듬던 손은 흙투성입니다. 손톱 사이에 까만 흙이 또렷합니다. 나물값을 받으려 내민 손은 밥 먹던 젓가락을 움켜쥐었습니다. 카메라 모니터로 사진을 확대해 보는 동안, 가슴이 저릿해지고 눈자위가 시큰해졌습니다. 살아가는 일에 대한 강한 은유로 다가왔습니다. 세월이 내리고 억척이 스며든 ‘어머니’의 거친 손을 공경과..

'향수 DNA'

지난 추석에 이어 설을 앞두고 5일장 취재차 다시 전남 신안군을 찾았습니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동일한 장소에 간다는 게 살짝 민망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가야했던 이유가 여럿입니다. 장이 열리는 날이 출장일정과 맞았고, 지난해 B컷(쓰지 못한 사진)이 되고 말았던 사진에 대한 아쉬움이 좀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잠깐씩 스쳤던 사람들의 따스함이 끌어당겼던 것이지요. 장날에 맞춰갔지만 사실 5일장 자체를 찍으러 간 것은 아닙니다. 설 대목장에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뭔가 설 앞둔 ‘설렘’과 ‘고향의 정’ 같은 걸 찍어낼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명절의 설렘과 정을 굳이 멀리까지 가서 찍어야 하나?’ ‘도시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골의 정서가 얼마나 가 닿을까?’하는 물음이 없진 않았습니..

사진이야기 2018.02.19

'밀가루는 어디갔나?'

매년 반복되는 취재를 가는 길엔 보통 ‘뭐 좀 다른 거 없을까?’ 생각합니다. 이 생각조차도 버릇처럼 반복되어 온 탓에 딱히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드믑니다. ‘뭐 별거 있겠어?’하고 말지요. 나름의 경험으로 머릿속에 많은 그림을 그려보지만 대게 현장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기 일쑤입니다. 만약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에 가까운 사진을 매번 찍을 수 있다면 카메라를 놓고 점집을 차려야지요. ^^ 오랜만에 여고 졸업식을 찍었습니다. 졸업장 수여 순서가 되자, 한 명씩 호명된 졸업생들이 단상 중앙에서 졸업장을 받아들고 자리로 걸어갑니다. 단상을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선 담임선생님이 일일이 축하와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식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팔을 벌리고 선생님에게 달려가 안고, 단체로 거수경례를 하고, 하트를 그..

사진이야기 2018.02.13

'1억 배우'보다 빛나는 '사진기자'

‘누적관객 1억 배우’라는 수식어가 익숙한 ‘배우 오달수’의 인터뷰 사진을 찍었습니다. 영화 의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라운드인터뷰’였습니다. 라운드인터뷰는 4~5개 매체를 묶어서 동시에 진행하는 집단인터븁니다. 인터뷰하려는 매체가 무지 많기 때문이지요. 대게 1시간쯤 진행되는 인터뷰에 앞서 4~5개 매체의 사진기자들도 무리지어 사진을 찍습니다. 10분쯤 시간이 주어집니다. 각기 조금씩 다른 위치에 선 기자의 카메라를 향해 배우가 시선을 골고루 주는 식이지요. 저같은 경우 대체로 시간에 쫓기며 말없이 찍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관계가 지워지고 셔터소리만 가득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그저 카메라가 되어버렸구나'하는 자괴감도 살짝 들지요. 제 나름의 요구와 표현으로 다시말해 '1대1'로 ..

사진이야기 2018.02.05

사진다큐의 완성은...

새해 첫 다큐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소재가 무겁지 않고 되도록 희망적일 것과 웬만하면 새해의 의미가 사진에서 읽히면 더 좋겠다는 것이지요. “이번 다큐는 ‘개’다” '무술년 황금개띠의 해’에 꽂혀 서둘러 결정했습니다. 이미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건, 제가 쉽게 생각하는 건 누구나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개 기사’가 여기저기서 다뤄졌습니다. 장애인 안내견부터 입양견, 반려견, 유기견까지 사진기획도 다양했습니다. 고민에 빠졌습니다. 개 아닌 다른 소재는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12년에 한 번 오는 ‘개띠 해’의 첫 달에만 가능한 소재다보니 욕심을 죽일 수 없었던 겁니다. '뭘 할까' 하던 중에 지난해 봤던 ‘홀몸노인(독거노인) 가구 수’ 증가에 대한 통계기사가 갑자..

사진다큐 2018.01.30

'계란후라이'와 연대

광화문 천막농성장에서 아침을 맞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김경봉, 임재춘씨가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주저 없이 들어서는 것으로 보아 늘 이용하는 식당인 듯 했습니다. 누룽지를 시켰습니다. 3000원. 가장 싼 메뉴였습니다. 식사를 절반쯤 했을 때 식당 주인아저씨가 누룽지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볶음김치를 한 접시를 내왔습니다. 밑반찬으로 김치, 멸치볶음, 어묵 등이 있어 부족하지 않았지만, 뭔가 특별한 것인양 ‘스윽~’ 테이블에 밀어 넣었습니다. “밥 다 먹었는데 진작 안 주시고...” 고마움에 슬쩍 농담을 건넵니다. 조금 뒤 이번엔 ‘계란후라이’를 인원수만큼 그릇에 담아 내려놓았습니다. 후라이는 순식간에 사라졌지요. 단골에 대한 서비스겠지만, 저는 그 밥상에서 '연대'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작은 계란후라이..

사진이야기 2018.01.15

사소한(?) 인연과 새해 첫 책

‘1주1책’을 다짐했습니다. 얇은 그림책을 읽더라도 한 주에 한 권은 읽어야겠다는 것이지요. 올해 첫 책으로 김승섭 교수의 (동아시아)을 읽었습니다. 베스트셀러 같은 순위는 애써 외면하는 편이지만, 지난 연말 이 책이 경향신문을 포함해 각 언론의 ‘올해의 책’ ‘올해의 작가’ 부문에 일제히 올랐지요. 좋은 평가도 한 몫을 했지만, 그보다 작가와의 ‘사소한 인연’이 즉시 책을 주문해 읽게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5월 성소수자 관련 사진기획을 할 때였습니다. 취재원인 이호림씨를 만난 곳이 고려대 보건과학과대학원이었지요. 김 교수의 직장이지요. 호림씨는 박사과정 학생이었습니다. 취재가 끝나고 “역학연구실 동료들과 기념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하니, 누군가 “교수님을 모셔오겠다”고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제 머릿속..

사진이야기 2018.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