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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봄

세월호 참사 후 다섯 번째 봄이 왔습니다. 이전의 봄과는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이제 4월은 더 이상 옛날의 4월이 아니”라는 시를 떠올립니다. 다시 4월, 다시 세월호를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난 세월을 핑계로 희미해지기도 했지요. ‘참사의 기억과 참사 후 각자의 자리에서 품었던 나름의 다짐을 다시 환기할 수 있을까.’ 그렇게 사진다큐를 준비했습니다. 지난해 4월에도 세월호 관련 기획을 했었지요. 단원고 생존학생 장애진씨가 주인공이었고요. 그의 바뀐 꿈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애진씨가 활동하는 생존학생 모임 ‘메모리아’를 짧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다큐에는 ‘메모리아’의 활동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섭외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아팠고, 두..

사진다큐 2019.04.11

사람이 먼저

공구상가로 잘 알려진 을지로 일대의 재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을지면옥 같은 오래된 가게(노포)를 없애야 하느냐는 등 반대여론이 일자 서울시는 재개발을 다시 검토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요. 이 과정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습니다. 서울시의 입장이 발표된 뒤 논란은 조금 잦아들었습니다. 많은 기사들이 이미 나왔습니다만, 을지로를 사진으로 기록해보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찍어 의미를 담을 수 있을까.’ 무작정 골목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무엇’은 손 글씨 간판이었습니다. ‘칠 벗겨진 낡은 간판 위에 정성스럽게 쓴 글씨와 점포의 작명과 역사에 담긴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이리저리 재다가 결국 ‘사람’으로 방향을 슬쩍 돌리고 말았습니다. 골목 안에는 30~..

사진다큐 2019.03.25

버터링쿠키와 아메리카노가 문득 그리워진 날에

1년 전 이맘 때 평창동계패럴림픽 출장에서 돌아왔습니다. 이후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만, ‘1년 전’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그 사이의 많은 것들이 뭉텅 잘려나가 버리고 1년 전의 기억으로 즉시 빨려듭니다. 사진과 함께 기록된 기억은 좀 더 구체적인 기억으로 남는 모양이지요. 지난해 평창에서 올렸던 블로그를 찾아봤습니다. 하루하루의 단상을 써 모았던 글이 출장의 기억을 또렷하게 살렸습니다. 글의 시작은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일기처럼 모았다. 훗날 사진과 함께 돌아볼 때 입체적으로 기억이 소환될 것”이라 써 놓았네요. 동계올림픽에 비해 관심이 덜한 패럴림픽, 개회식 전에 이미 찾아든 피로, 미투·MB소환 등 굵직한 뉴스에 묻힌 대회, 규칙도 모르는 낯선 종목들, 동료 사진기자..

사진이야기 2019.03.20

터진 봄, 터진 감성

사진기자는 계절을 앞서 감지해야 합니다. 여름이 오기 전에 시원한 물놀이를, 가을이 아직 저만치 있는데 물든 단풍을, 겨울이 미처 닿기도 전에 움츠린 출근길 시민들을 사진에 담습니다. 이것도 업자들 사이에 경쟁이 되다보니 어색하고 설익은 사진으로 억지를 부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지요. 뭐, 저라고 자유롭겠습니까. 추위가 예년만 못했다고는 하나, 겨울이 지나지 않았는데 다가온 봄을 사진다큐에 담고 싶었습니다. 설 이후 남도의 한 수목원에 연락했습니다. 몇몇 꽃나무에는 꽃망울이 올라왔다고 알려줬습니다. 꽃눈을 ‘잘’ 찍어보기로 했습니다. '출장을 언제가나' 타이밍을 잡고 있는 동안에도 제주와 일부 지역에서 서둘러 핀 꽃사진이 지면에 실리기도 했지요. 조바심이 약간 생겼지만 꿋꿋하게 꽃눈에 집착했습니다. 흔히 관..

사진다큐 2019.02.25

안현수와 사골블로그

제 블로그에 의외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안현수입니다. 지금은 러시아 국적의 빅토르 안으로도 불리지요. 최근 그의 인터뷰 사진을 찍었습니다. 잊을 만하면 글 하나 올리는 나태한 무파워 블로그 15년째. 지금 이 글이 그에 대한 세 번째 글이 되는군요. +2019.2. 하남 자택에서 인터뷰 중인 안현수. 러시아 대표팀의 도핑 문제로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이후 언론과 가진 첫 인터뷰였습니다. 도핑 의혹, 은퇴설, 중국 국가대표 코치설, 한체대 플레잉코치설 등 온갖 ‘썰’들에 대해 맘고생하며 눌렀던 말이 많은 모양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언뜻언뜻 예전 그의 훈련장면을 떠올렸습니다. 그와의 첫 대면은 12년 전이었습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하고..

사진이야기 2019.02.15

'한 번 해볼까요'

올 겨울에 눈이 왔던가, 쌓인 눈은 본 적이 있던가, 싶습니다. 설 연휴 끝나고 출근했더니 강원 영동북부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답니다. ‘누굴 보내야 하나?’하는 부장의 눈빛을 읽었고, “제가 함 가볼까요?”라고 자원했습니다. 대개 ‘함 가볼까요?’라는 말에는 이런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일단 가서 보고, 아니면 마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 ‘대설’이면 사건·사고의 범주에 드는 사진을 찍어야지요. 내린 눈의 성격에 맞는 사진을 담아야 하는 겁니다. 인제군에 들어서니 날씨는 포근했고 하늘은 파랬습니다. 도로에 ‘대설’이 아니라 ‘소설’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한 번 가볼까요?”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부령이냐 한계령이냐를 저울질하다 한계령을 택했..

사진이야기 2019.02.09

우리의 목소리는 '예술'이다

새해 나의 첫 다큐는 무엇이면 좋을까. 보통은 뭔가 희망적인 것을 찾기 마련입니다. 여의치 않으면 ‘황금돼지의 해’니까 돼지와 연결되는 것은 없을까, 고민에 빠집니다. 빤한 고민에 답이 잘 찾아지지 않았지요. 머리를 쥐어뜯다 지난해 포토다큐를 결산한 마지막 다큐 글의 맨 마지막 단락이 불쑥 끼어듭니다. “한해의 포토다큐를 돌아보며 아쉬움도 남습니다. 놓치고 외면했던 삶들이 스쳐갑니다. 어두운 귀는 상처받은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고, 둔한 손은 그 삶의 순간들에 셔터를 누르지 못했습니다. 2019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에서 아파하고 상처받는 ‘작은 사람들’에게 더 깊이 공감하며 다가가겠습니다. 그 삶에 가만히 카메라를 들겠습니다.”(2018년12월29일자) ‘아파하고 상처받는 사람들...’..

사진다큐 2019.01.28

새가 있는 풍경

앞서 올린 글 ‘새가 없는 풍경’에 이어지는 얘깁니다. 있어야 할 곳에 새가 없었으므로 당황했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어 다른 철새를 수소문했습니다. 순천만 습지의 흑두루미. 고창의 아름다운 석양을 아쉬워하며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흑두루미는 가능할까?’ 불안했지요. 순천의 한 모텔에서 잠을 설쳤습니다. 인근 나이트에서 나온 유흥객들 취기 섞인 말소리가 잠결에 들려왔습니다. 불편했던 잠은 다음날 일정의 불안감을 가중시키지요. 전날 꺾인 전의는 회복 기미가 없었습니다. 순천만생태공원. 취재지원을 하는 직원분은 때마침 해외출장 중이었지요. 난감했습니다. 전망대 망원경으로 멀찌감치 앉아 있는 흑두루미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고맙게도 전망대에서 만난 명예습지안내인이 저를 대신 안내했습니다. 그는 순천만 습지의..

사진이야기 2018.12.05

새가 없는 풍경

요맘때면 철새 사진을 한 번씩 찍습니다. 이왕이면 스케일이 크면 좋겠지요. 개인적으로 한 번도 찍지(성공하지) 못한 석양 속 가창오리의 군무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해봤습니다. 수일 전 올라온 어느 블로그 영상에서 새들의 멋진 군무를 볼 수 있었지요. '그래 가창오리 한 번 찍어보자.' 영상 속의 장소인 전북 고창으로 향했습니다. 미세먼지에 황사가 더해져 제대로 보일까 걱정이 들더군요. 이 상태로 저물녘에 군무가 펼쳐진다면 ‘가창오리떼가 미세먼지 속에서도 아름다운 군무를 펼치고 있다’고 설명을 쓰기로 했습니다. 오후 4가 못 돼 도착한 동림저수지는 바람이 불었고, 그래선지 걱정보다 하늘이 맑고 깨끗했습니다. 석양은 더없이 좋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망원렌즈를 장착해 저수지 이곳저곳을 살펴봤습니다. ..

사진이야기 2018.11.29

다시 만난 인연

“쪼~옥 쪼~옥 쪽쪽~” 노들장애인야학을 떠올리면 환청처럼 따라붙는 소립니다. 11년 전인 2007년 취재한 야학은 서울 구의동 정립회관에 있었지요. 술 한 잔 생각나는 날, 학생과 교사들에게 10cm도 안 되는 술집의 문턱은 까마득한 벽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던 곳은 지하철 출입구 옆 포장마차. 그곳은 턱이 없던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단골이었지요. 사장님은 단골이 들어서자, 종이컵과 빨대를 재빨리 테이블 위에 세팅했습니다. 손이 굽어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종이컵 가득 부은 소주를 빨대로 빨았습니다. 그 속도와 구체적인 소리.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중증장애를 가진 이들 또한 '한 잔'의 욕구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그런 생각조차 없었으니까요. 경험해야 ..

사진다큐 2018.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