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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품은 사진

가끔 어떤 장면은 ‘서둘러 셔터를 눌러라’ 명령을 합니다. 몸과 마음이 급해집니다. 흘러가버려 다시 담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 ‘아쉬움’이 생각보다 짙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자리 잡고 명령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일단 찍고 본다는 게 더 정직한 표현이겠지요. 경험적으로 이렇게 얻는 사진들은 신문에 쓸 사진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어디 쓰냐구요? ㅋㅋ블로그에 씁니다. ^^ 찍은 뒤에 무엇이 찍게 했는지, 왜 찍었는지를 다시 생각합니다. 그 ‘명령’은 장면을 기록하는 일에 익숙해진 몸의 명령인지, 움찔하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가슴의 요구인지도 답하기 어렵습니다. 사진을 노트북에 띄워놓고 다시 추궁합니다. 왜 찍었냐고. 찍은 당시의 상황을 세밀하게 더듬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모니터 위에서 보는 사진과..

사진이야기 2014.08.29

증명해야 하는 슬픔

지난 18일 36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앙상한 팔을 걷어 보이고 허리둘레보다 두 배쯤 커져버린 바지춤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앞서 한 정치인은 “제대로 된 단식이면 실려 갔을 것”이라 비아냥댔지요. 딸에 대한 사랑과 딸을 잃은 아비의 슬픔을 의심받아야 하고, 목숨을 건 단식의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참 잔인합니다. 겨울 나뭇가지 같은 아슬아슬한 몸을 드러내 보이고 딸과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에 통장까지 공개하도록 하는 가학적인 의심과 무책임한 발언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인간성이 상실된 이들에게 절망하다가도 ‘진상이 규명되고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동조 단식에 나선 시민들을 보며 다시 희망을 쥐어 봅니다. 목숨 건 단식에 ‘아빠’라는 이유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이런 사진기자

군 사망사고 피해자 어머니의 인터뷰 사진을 찍다 멀찌감치 시선이 멎었습니다. 이웃 언론사 후배인 ‘으하하(이름 초성으로 가명 처리함)’기자가 또 다른 피해자 어머니의 얘기를 고개 끄덕여가며 듣고 있더군요. 앞선 기자회견 후 기자 대부분이 철수한 상황이었지요. 보통 사진기자는 캡션에 필요한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사라집니다. 이어지는 다른 일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뜨기도 하지만, 딱히 일이 없어도 바람같이 사라지는 멋(?)을 부립니다. 으하하 기자처럼 그리 긴 얘기를 들을 여유도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무언가를 끼적끼적 받아 적었고 한참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으 기자는 울분과 한숨으로 얘기하는 피해자 어머니 어깨를 쓸어주고 토닥였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그렇게 ..

사진이야기 2014.08.19

그건 위로였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미사 POOL 취재(취재인원이 많고 장소가 협소할 경우 구역이나 일정을 나눠 취재한 뒤 그 사진 또는 기사를 공유하는 것)에 제 명단이 올랐을 때 그리 반갑지 않았습니다. 이른 토요일 아침에 100만 명 운집이 예상된다는 곳에 그것도 일하러 가야하는 것은 천주교인도 아닌 제게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요. 시복식을 며칠 앞두고 가톨릭 신자인 한 선배는 어디서 들었는지 저의 POOL 취재를 아주 부러워했습니다. ‘어디서 봐야하나, 볼 수는 있을까’ 걱정하더군요. 교인에게는 먼발치에서 점처럼 지나가는 교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겠지요. 이런 주변 반응에 조금 자극을 받아 비교적 가까이서 교황을 볼 수 있는 것을 복이라 생각키로 했습니다. 시복미사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의 인파는..

사진이야기 2014.08.17

'4시간 16분 동안의 사진전'

함께 슬퍼했고 함께 분노했던 세월호가 잊히고 있습니다. 사진가들이 나섰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를 사진으로 기록해 온 사진가들입니다. 자신의 사진 한 장을 들고 ‘4시간 16분’ 동안 서울 여의도를 출발해 광화문 광장까지 걸었습니다. ‘4시간 16분 동안의 전시’라는 소위 ‘걷는 사진전’이었지요. 기록되어 기억되는 것이 사진의 본질입니다만, 기억에서 잊히는 세월호 앞에서 새삼 ‘우리는 무엇을 찍는가’, ‘왜 사진을 찍는가’,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고민이 사진가들을 거리에 세웠던 것이지요. 사진기자인 저 역시 이런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진가들은 현수막 천에 출력한 사진을 각목에 고정해 어깨에 얹고 걸었습니다. 전시 소개글에 ‘사진가들이 각자의 십자가인 ..

사진이야기 2014.08.14

식겁한 날

어제 아침 ‘오늘은 조심해야지’하고 휴가 뒤 첫 출근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 때 외우는 징크스 같은 주문입니다. 몸 다치거나 '물'을 먹거나 하는 것을 조심하자는 의미지요. 결과적으로 이날 정말 식겁했습니다. 군 사망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국방부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한 뒤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국방부 정문으로 향했습니다. 위병들이 철제문을 닫아걸었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이 철제문을 부여잡고 오열했습니다. 그때 한 어머니가 철제문을 타고 올라 고함을 질렀습니다. 저는 뒤쪽에 서서 화각이 넓은 광각렌즈를 끼고 이 장면을 담았습니다. 잠시 뒤 뷰파인더 안에서 이 분이 제 쪽으로 떨어지더군요. 그 짧은 순간에 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생각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 찰나의 상황에 비해 생각이 조금 ..

사진이야기 2014.08.07

사진가 노순택

어떤 현장에서는 사진가 노순택을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까맣게 탄 얼굴에 등산복과 등산화를 신고 스윽 나타난 그는 참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지요. 용산, 평택, 제주 강정, 밀양에서 그를 만났고 쌍용차 해고자들 사이에서도 그는 보였습니다. 그의 카메라는 대한민국 갈등의 현장에서 권력을 조롱하고 권력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어루만집니다. 언론이 뜨겁게 모였다 빠져나간 곳에서도 그의 카메라는 머물러 있습니다. 어느 밀양 송전탑 관련 문화제에서 사회자가 “노순택 사진가도 함께하고 계십니다”라는 멘트를 할 정도입니다. 사진을 ‘업’으로 하는 직업인이지만 활동가이기도 한 것이지요. 금세 떠나버리는 사진기자보다 머물러 함께하는 사진가의 카메라가 더 ..

사진이야기 2014.08.06

버리지 못할 사진

메모리카드에서 사진을 지우다 문득 ‘두 개의 의자’가 나란히 있는 컷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인물을 찍기 전 노출을 보려고 대충 찍은 한 컷입니다. 평소 같으면 메모리카드에서 이미 지워지고 없을 사진이지요. 사라져 버릴 사진에 대한 갑작스런 애착이 생겨난 것인지 하여튼 지우지 않은 이 사진 한 컷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듯 했지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인물이 부재한 공간이 어떤 인물을 어렴풋이 그려내고 있는 것 같았지요. 물론 제가 찍었으므로 저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 빈 공간에서 사진의 대상을 추리해 내는 것이 재밌을 것 같았지요. 앵글 내 공간과 사물을 읽으며 사진의 대상을 찾아가는 것이 게임 같네요. ‘두 개의 빈 의자’는 취재 대상이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말합..

사진이야기 2014.07.28

고마워요 샤이니

세상에는 기록될 만한 가치가 충분함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묻어두거나, 기록되지 않아서 기억되지 못하고 흘려버리는 일들이 있지요. 몇몇 소수의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다 사라지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저를 포함한 몇몇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을 여기 블로그에라도 남겨야 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 기록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다큐를 하던 중 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다영이의 엄마와 통화를 했습니다. 섭외에 어려움을 겪던 제게 다영이의 같은 반 친구 엄마들의 연락처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미안한 듯 물어왔습니다. “혹시 샤이니 사인을 받을 방법이 있을까요?” 다영이가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열성 팬이며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고 먼 훗날 샤이니의 디너쇼까지 보겠다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

사진이야기 2014.07.21

잊지 않을게

어김없이 다큐의 순서는 돌아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관련한 다큐를 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간 많은 기사와 사진이 나와서 다른 접근으로 사진을 담아내기엔 부담스러우면서도 막연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사고로 안타깝게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의 방을 떠올렸습니다. 아이들이 꿈을 키우던 방을 사진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했지요. 여기서부터 다시 여러 문제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습니다. 아이의 방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둔 부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가능했지만, 부모들에게 어떻게 다가가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것인가. 또 방이라는 공간으로 의미가 전달 될 수 있나. 기존 다큐에는 대체로 사진 앵글 내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인물의 행위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저 공간을 담은 사진은 낯설 것이 분명했습..

사진이야기 2014.07.14

축구대표팀에 박수를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알제리전과 벨기에전을 연달아 광화문 광장에서 봤습니다. 그 새벽에 잠 못 자고 본 것은 경기가 아니라 거리 응원이었습니다. 수만의 시선이 대형 전광판을 일제히 주시할 때 전광판을 등지고 그 시선들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약간 서러우면서 민망한 일입니다. 그렇게 경기 중 변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분위기를 담았습니다. 꼭 골이 터지지 않더라도 그 표정으로 경기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일이다 보니 경기 자체를 즐길 수 없고, 경기를 제대로 볼 수도 없어서 그런지 대표팀의 16강 탈락이 확정되자 응원나온 시민들의 실망과는 다르게 그저 '빨리 퇴근하자'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16강 탈락으로 또 한 번의 광화문 거리 응원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은, 제가 뜬 눈으로 광장의 새벽을 지켜야 ..

사진이야기 2014.06.29

S선배 "어, 내가 불렀다"

브라질월드컵 러시아와 경기에서 이근호가 골을 넣는 순간에 무슨 생각들 하셨습니까?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먼저 그 짜릿함에 환호를 터뜨렸을 테지요. 집에서 혼자 중계를 보던 저는 생애 첫 월드컵에서 골을 넣고 격하게 환호하는 이근호를 보며 ‘저걸 과연 찍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부서에서 ‘S선배’가 브라질에 '특파'되어 있거든요. 월드컵 같은 큰 대회에 축구장 광고판 뒤로 앉아 있는 사진기자들은 초조하고 또 고독합니다. 제가 4년 전에 남아공월드컵을 다녀와 봐서 압니다. ^^ 누군가는 쉽게 “그냥 찍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만, 카메라가 좋아져도 결국 셔터를 누르는 것은 사람이기에 집중력과 판단력, 경험이 요구됩니다. 골도 순간이지만, 세리머니도 표정과 액션이 절정인 순간은 길어야 ..

사진이야기 2014.06.19

기억해야 할 것

‘벌써 12년 전의 일이구나’하고 새삼 놀랍니다. ‘벌써’라는 말에 빨리 흘러버린 세월의 의미도 있지만, 그 세월동안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는 ‘망각’의 의미도 들었습니다. 2002년 6월13일 경기도 양주 56번 국도에서 미군 궤도장갑차량에 압사당한 고 신효순, 심미선양의 추모제를 다녀왔습니다. 좁은 국도변에서 30여 명의 추모객들이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이날 사고가 난 바로 그 지점에 사고현장 표지판을 설치했지요. 기억하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지만,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난 추모행사는 왠지 쓸쓸해 보였습니다. 12년 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 앞에서 많은 이들이 분개했습니다만, 광장과 거리에 가득했던 거대한 월드컵 응원의 열기가 시민들의 분개를 가려버렸습니다. 효순·미선이의 죽음과 관련..

사진이야기 2014.06.13

"잘 부탁드립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당선자의 첫 일정은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였습니다. 조 당선자가 현충원에 공식적으로 참배하는 것은 처음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보통 대통령이나 당 대표 등이 새로 선출되면 당선자를 중심으로 좌우에 큰 무리를 이루어 현충탑 앞을 향해 걸어옵니다. 그런 그림에 익숙한 제게 조 당선자와 수행팀장 단 둘이서 걸어 오는 단출한 모습은 좀 어색해 보이더군요. 조 당선자는 참배 후 현충문 앞에서 방명록을 썼습니다. 대여섯 명의 사진기자들이 그를 둘러쌌습니다. 많은 눈이 지켜보는 중에 쓰는 글이 어색한 지, 극적인 당선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방명록 글이 흔들렸습니다. ‘아이들과 교육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는 글은 떨리듯 방명록에 새겨졌습니다. 이도 제겐 낯설었습니다. 차에 탑승하는 그를 찍기 위..

사진이야기 2014.06.06

비는 눈물 되어

25일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번째 진도를 찾았습니다. 지난 번 진도를 찾았을 때 팽목항은 실종자 가족, 자원봉사자,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실종자 가족의 분노와 절규, 울음이 가득했었지요. 다시 찾은 팽목항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원래 진도라는 곳이 이런 모습에 가까웠겠다, 생각했지요. 풍랑주의보가 내린 진도에는 종일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팽목항 빨간 등대로 향하는 양쪽 난간을 따라 노란리본과 연등과 풍경들이 비에 젖은 채 흔들렸습니다. 휴일이라 가족 단위의 추모객들이 가끔 등대길을 찾았습니다. 우산을 받쳐 들고 천천히 등대 주변을 둘러본 부모는 함께 온 아이의 어깨를 가만히 감쌌습니다. 비바람이 거세지고 서너 명의 경찰 근무자뿐인 등대를 향해 걸어보았습니다.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향해..

사진이야기 2014.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