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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숭고해지는 생명

아스팔트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스팔트 위 작은 틈에서 이름 모를 풀이 고개를 내밀었다. 지나치지 못하고 그 앞에 발길이 멈췄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리 자란 사연을 생각했다. 수시로 지나는 차량의 바퀴에 밟히면서도 꿋꿋하게 그 생명을 견뎌냈다. 보잘 것 없는 풀의 생명이 더 없이 커 보이는 건, 이 곳이 수 많은 죽음이 기려지고 있는 현충원이어서 일까. 쉽고 가볍게 스러지는 숱한 삶들의 세상에서 연약한 풀의 질긴 생명력은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그 작고 고독한 생명이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나날히 숭고해지고 있었다. yoonjoong

연평해전 10년, 남겨진 슬픔

10년 전 대한민국은 온통 월드컵 열기에 뒤덮여 있었지요. 당시 대표팀이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4강까지 가는 동안 재미와 기쁨보다는 피곤과 짜증이 조금더 자리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부서 막내였던 저는 월드컵을 온전히 즐길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선배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 그해 6월29일은 대한민국과 터키의 3,4위전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며 힘을 내 출근했었습니다. 이날 오전 우리 해군은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과 교전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영하 대위를 포함해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속보로 이 소식이 알려지자, 월드컵에 혼이 쏙 빠져있던 부원들은 허겁지겁 군 병원과 국방부, 연평도 등으로 흩어져 달려갔습니다. 군 병원으로..

사진이야기 2012.07.02

군대의 기억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 일정을 따라 백마부대를 다녀왔습니다. 이날 여야 대표가 각각 강원도와 경기도에 위치한 군부대를 방문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종북 논란' 속에 안보를 챙기는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함이지요. 부대에서 내 준 소형버스를 타고 백마부대의 한 초소로 향하는 길. 여기저기서 군 시절의 얘기들이 들립니다. 은근히 해병임을 드러내는 선배도 있고, 젊은 기자들의 파업으로 카메라를 잡고 있는 M사의 국장급 간부는 12.12사태때 군생활을 꺼냅니다. "그때 노태우씨가 여기 사단장이었다" 남자의 전유물 같은 군대 얘기에 뒷자리 여기자도 거듭니다. "학사장교 지원했었다...떨어져 기자됐다" 여대에도 학사장교, ROTC 바람이 분다지요. 다행히 이동시간이 길지 않아 '축구'얘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 이..

사진이야기 2012.06.22

변장복 할아버지 부부와의 만남

포토다큐 지면을 받아 가뭄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번 다큐에 강원도 화천귀농학교를 다녀왔고, 이번에 충남 예산의 농촌마을을 다녀왔으니, 올해는 유난히 '땅'과 인연이 많은가 봅니다. 다큐의 정석은 뭐니뭐니해도 발품입니다. 제 기준입니다만. ^^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헤집고 다니며 묻고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기록하는 과정의 반복이지요. 차를 타고 돌아다녔으니, 발품이 아니라 '차품'인가요. ㅎㅎ 여하튼 발품을 열심히 팔던중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 마을에서 변장복 할아버지 부부를 만났습니다. 30도까지 오르는 땡볕에 논에 나와 계시더군요. 할아버지는 이틀전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물을 댄 논과 그 옆에 붙은 흙먼지 날리는 논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평생 단 한 번도 놀린적이 ..

사진다큐 2012.06.12

430:40:0

남들 다 논다는 일요일날 출근하는 게 이젠 너무 익숙한 연차입니다. 일을 하면서도 신기하게 몸은 휴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요일 국회는 대체로 평일보다는 한가합니다. 몸도 그 정도의 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난 3일 아침, 국회 기자실로 출근해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들어온 일정을 확인했습니다. 세상에 일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버릇처럼 먹던 달달한 커피 맛이 갑자기 써 지더군요. 먹다 만 커피를 버리고 첫 일정을 챙기러 나섰지요. 10시 27분 국회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실. 18대 법사위원 및 19대 법조인 국회의원의 대법관 추천 관련 성명 발표. 10시38분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비박(비박근혜) 김문수, 이재오, 정몽준 후..

사진이야기 2012.06.07

선물같은 새 사진

제가 선해진 게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최근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딱따구리와 참새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보는 것을 넘어 카메라에 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새를 잘 모르는 제게 이런 기회가 온다는 것, '착한 이'에게만 주어지는 어떤 선물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이지요. ㅎㅎㅎ 새 사진에 전문인 선배들을 보면 정보와 노하우를 기본으로 부지런함, 끈기, 신중함, 집중력, 느긋함, 기다림 등 살면서 잘 실천되지 않는 덕목들을 두루 갖추고 계시지요. 무엇보다 자연과 생태, 새에 대한 무한한 애정를 가지신 분들이지요. 이런 기본에서 동떨어진 제게 거의 공 것으로 주어진 새 사진, 선물이라 생각할 만 하지요? ^^ 뭐 그리 귀하디 귀한 새는 아닐지 모르지만, 제가 찍은 새 사진을 보면서 제..

사진이야기 2012.05.24

행복 파종하는 초보농부들의 귀농학교

요즘 귀농·귀촌이 다시금 화두로 떠올라 귀농학교를 다녀왔습니다. 사진다큐을 위해서 말이지요. 찾은 곳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유촌리 '화천현장귀농학교'입니다. 이곳에서는 은행지점장, 관세사, 제빵사, 자영업 등 도시에서 각 기 다른 삶을 살았던 12명의 초보농부들이 5월 따가운 햇살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슬쩍 끼어 삽질도 해보고 잔일을 좀 해보았습니다만, 온 종일 땡볕을 받아들이는 몸의 노동이 쉽지 않았습니다. "다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어야 겠다"라는 가볍고 무책임한 말을 이제는 장난으로라도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 귀농을 준비하는 예비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밭을 갈고 흙을 쌓아 올린 두둑에 골을 만들어 희망을 담아 더덕 씨앗을 뿌린다. 막 농사를 시작해 아직은 고..

사진다큐 2012.05.14

몬스터와 이방인

레이디가가의 내한공연(지난 4월27일)이 4시간 쯤 남은 시간, 공연장인 잠실 주기경장 앞에는 가가의 공연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몬스터 핏(스탠딩석)'에 자리할 선택된 팬들이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긴 행렬의 맨 앞으로 가서 이 '리틀 몬스터(가가의 팬을 지칭)'들을 쓰윽 훓어 보았습니다. 독특한 코스프레를 한 이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전날 와서 줄을 섰음이 분명한 앞자리의 몇이 힐끗힐끗 쳐다봐서 눈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눈싸움, 기싸움에서 번번이 밀리고 말았지요. 다소 과한 분장과 일부 간소한 옷차림을 대놓고 사진에 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접하는 코스프레지만 이날은 문화적 충격이 살짝 있었던 것이지요. 이 낯섦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완전히 새 되신..

사진이야기 2012.05.07

배우 박해일과 기념사진을 찍다

지난 23일 영화 의 개봉을 앞두고 배우 박해일의 인터뷰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 시간씩 쪼개서 신문, 온라인, 전문지 등 다양한 매체들과 종일 인터뷰를 합니다. 몇 일씩 하기도 하구요. 많을 때는 7~80개의 매체와 한다고도 하네요. 배우 입장에서 보면 체력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닐테지요. 비슷한 얘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도 스트레스일 겁니다. 배우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요. ^^ 이날 경향신문은 마지막 타임에 인터뷰를 했습니다. 삼청동 깊숙이 있는 한적한 카페에서 오후 6시 넘어 그를 만났습니다. 영화에 출연하며 그때마다 주연배우로서 인터뷰를 했을 테지만, 인연이 없었는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밝게 인사를 건넸건만, 다소 지친 모습에 엷은 미소로 답해 왔습니다. 우리 앞의 매체 인터뷰가 조금 길..

사진이야기 2012.04.27

구럼비는 울고 있었다

"강정마을에 가서 한 잔 더 할래. 방 있으니까 거기서 자도 되고..." 해군기지 건설로 발파작업이 진행되면서 강정마을에 들어와 수 주 째 취재하고 있던 한겨레 선배가 서귀포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제안했습니다. 총선 취재차 제주도에 왔다가 얼떨결에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지요. 한 번은 왔어야 하는 곳이라 생각했거든요. 사진기자는 소위 '현장'이라는 곳에 가지 못하고 있으면 어떤 불안 내지는 부채의식 같은 것을 느끼는 직업인가 봅니다. 어둠에 잠겨 더 고요해 보이는 마을 입구에 '황제호프'가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선배는 "치킨과 노가리 맛이 최고"라고 했지요. 안주로 노가리를 시켰습니다. 아담한 호프에 한 테이블은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이 차지했고, 또 한 테이블은..

사진이야기 2012.04.20

보여주지 않은 총선 사진 몇 장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장 존중받고 대접받는 기간인 총선이 끝났습니다. 유세 기간 10여 일 저는 한명숙 대표를 주로하고, 가끔 땜빵으로 박근혜 위원장을 따라 다녔습니다. 하루 평균 800장 쯤 사진을 찍었구요.(물론 기자들은 연사 기능을 사용해 컷 수가 많아요 ^^) 50~60장 정도를 만들어 전송을 했습니다. 신문에는 한 장쯤 쓰는데 그나마 안 쓴 날도 허다합니다. '타율(게재율)'은 엉망입니다. 몸싸움과 설친 잠 등 들인 정성과 노력을 생각하면 참 비효율적인 취재지요. 그렇다고 안 할 순 없구요. 아쉬운 마음에 B컷 사진(안 실린 사진, 혹은 안 실릴 사진) 몇 장을 올리면서 총선 취재를 정리합니다. 남여노소 할 것 없이 이렇게 큰 인사를 받을 일이 살면서 얼마나 되겠습니까. 심지어 이 선거운..

사진이야기 2012.04.12

어느 택시기사의 사랑 고백

사회부 후배의 다급한 전화. " 강선배 10분 후에 나온답니다" 카메라 들고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 탔습니다. “중부경찰서로 가시겠습니다." "중부서 아시죠?”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님은 베테랑의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안다"는 대답 대신 제 무릎 위에 올려져 있는 카메라를 보며 “카메라가 묵직해 보이네요.”라고 말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 예~.” 대답을 하면서도 조급함에 “죄송하지만 조금만 서둘러 주시겠습니까." 서두르는 것에 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사실은 CJ회장을 미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삼성 직원이 오늘 조사를 받았는데 곧 나온답니다.” “나오는 거 사진 찍으시게요? 기자세요? 어디...?” “예, 경향신문 사진기자입니다” 기..

사진이야기 2012.03.28

마지막 돌고래 쇼

최근 불법포획 논란에 휩싸인 돌고래들이 공연의 잠정 중단을 하루 앞두고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마지막쇼를 펼쳤습니다. 공연을 중단하는 동안 전문가와 시민들의 토론회를 거쳐 돌고래 공연의 존폐여부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정말 '마지막' 일수도 있고, 재개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요. 카메라를 쥐고 신문사에서 일한 이후로 서너 차례는 본 공연이지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쇼라 생각하니, 조금더 집중해 보게 되더군요. 사실 데스크는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의 모습, 즉 조련사와 돌고래의 '마지막 인사' 정도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요. 머릿속 생각대로 되는 일은 잘 없습니다. "무대 뒤의 모습을 보게 해 달라" 부탁에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단호한 "NO" 그렇게 마지막 공연은 시작 됐습니다. 날렵한 물개들이 공..

사진이야기 2012.03.19

나경원의 눈물을 기다리다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지요. 남편의 기소청탁 의혹을 제기한 '나꼼수' 주진우 기자를 고발하는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한 부담 때문이지요. 기자회견 공지 문자를 받은 기자들이 즉시 새누리 당사에 모여 들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오와 열을 맞춰 서거나 앉아, 나 전 의원의 입장을 기다렸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겠지만, 걸어 들어오고 말하고 걸어 나가는 모든 과정을 담습니다. 왜냐면, 워낙 다양한 형태의 사진들이 지면에 실리기 때문이지요. 뭘 쓸지 모른다는 얘기지요. ^^ 또 선거 국면에서는 사진이든 글이든 기사 경쟁이 더 치열해 지기 마련입니다. 기자실 출입문 쪽에서 당직자가 사인을 보내 줍니다. 회견장으로 입장하는 나경원 전 의원.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자 조금 울컥했던..

사진이야기 2012.03.09

다시 찾은 연평도에서

출근 전 샤워하는 동안 회사 번호로 부재중 전화 두 통. 그다지 기분 좋지 않습니다. ㅎㅎ "전화 하셨습니까?" "연평도 갈 수 있니?" 물어보는 모양새지만 들어가라는 얘기지요. 우리 군의 해상사격훈련이 예정돼 있고 이에 북이 대응타격 위협을 했다는 군요. "출장 준비해 나와라. 12시 배다." 위험이 있는 곳으로 기꺼이 향해야 하는 것이 사진기자의 운명이지요.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도착한 인천항에서 함께 연평도로 향할 사진기자 동료들을 만나니 좀 든든해 지더군요. ^^ 해병대가 이날 오전에 서해 5도 일대에서 해상사격훈련을 실시했고, 연평도 주민들은 대피했다는 속보를 확인했습니다. 배에 오른 시간에 이미 훈련이 종료됐지요. 배에 이미 올라탔고, 1년 만에 다시 연평도에 발을 디뎠습니다. 북의 대응타격은..

사진이야기 2012.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