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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웃겨 주세요"

지난해 12월29일 두 건의 인터뷰 사진을 맡았습니다. 두 건 모두 새해 첫 1면 사진 후보에 올라 있다며 전날부터 데스크는 은근히 압박을 가했습니다. 혁신학교 용인 흥덕고 3학년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전날 인터뷰는 했고 사진만 다시 찍는 것이었지요. 졸업과 대학 입학을 앞둔 학생 4명을 모으는 게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나가는 사진이죠?" 한 학생이 물어왔습니다. "1면에 나갈 사진이야. 희망적인 내용에 어울리는 밝은 표정의 사진..." 1면에 나간다는 책임지지 못 할 말을 냉큼 내뱉었습니다. 신기해 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교실로 올라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시작은 무표정입니다. 슬슬 달궈 가는 것이지요. "조금 더 밝게 해볼까" "조금 더, 이가 보이도록" "자~ 활짝 웃자" ..

사진이야기 2013.01.07

비와 문재인

유세를 따라다니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비오는 날 사진기자는 손이 세 개쯤 됐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찍는 동안에는 우산을 겨드랑이와 목으로 지탱합니다. 카메라가 젖지 않게 하기 위함이지요. 빗발이 굵어지면 이마저 소용이 없습니다. 어제는 일하는 내내 물기를 닦았습니다. 그래도 렌즈에 뿌옇게 앉는 습기. 비오는 날 술 마시긴 좋아도 일하는 건 귀찮습니다. ^^ 엊그제는 춥다고, 손발이 시려서 일하기 힘들다고 툴툴댔는데, 추위 물러가고 내리는 비가 또 싫습니다. ㅎㅎ 천상 '사람'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후보의 이날 마지막 유세장인 부산 서면에 도착해 유세차에 먼저 올랐습니다. 노래'그대에게'가 울려 퍼지고 문 후보가 흠뻑 젖은 채 등장했습니다. 우비를 입었지만 들이치는 비는 어..

사진이야기 2012.12.15

어느 무명화가의 작업실

사진기자로 살면서 제 개인적인 계획으로 명소를 찾아가는 일은 드뭅니다. 일하다보면 언젠가 가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지요. 통영 동피랑 마을도 그런 곳입니다. 안철수 전 후보가 사퇴하기 한 달 전쯤 동피랑 마을 방문해 따라갔었지요. 이날 후보의 전 일정들이 많아 굳이 사진을 마감할 생각보다는 기념사진이나 몇 장 찍으려 했었지요. 안 후보가 동피랑 꼭대기에서 마을주민과 대화하는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늘짜집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써진 계단을 기어이 올랐습니다. 마을 아래로 아담한 통영항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옥상 아래 대문과 현관문 사이 좁은 공간에는 화구들이 널려있었지요. 캔버스엔 통영항이 담겼습니다. 야외에 작업실을 만든 이의 '낭만'이 느껴졌습니다. 그때 눈에 띈 것은 현장 노동자..

'기억하겠습니다. 안철수 후보'

"백의종군을 선언한다"는 안철수 후보의 회견 첫 마디가 떨어지자, 기자들 사이에서 "아~"하고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안 후보가 직접 기자회견 한다는 문자메시지가 30분 전에 들어왔고, 앞서 대리인을 통한 단일화 협상도 접점을 찾지 못한 터라 다시 '직접 나서서 담판을 하겠다'는 정도의 회견을 생각했었지요. "백의종군"이라는 말을 듣고도 순간 귀를 의심하며 셔터를 눌렀습니다. 동료 기자들의 움직임이 무척 빨라졌습니다. 취재기자들의 노트북 두드리는 소리, 사진기자의 셔터 소리도 분주해져 회견의 무게감을 꿈에서 깨듯 알게 됐지요. 만감이 교차했을 안 후보는 선언문을 읽어가다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울먹였습니다. 여기저기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기자였는지 지지자였는지 캠프 관계자 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게..

사진이야기 2012.11.26

"혹시 게이세요?"

"저...강기자님...혹시...?""아니요. 저는 '일반'입니다"공연을 앞둔 게이합창단 G_Voice의 연습을 취재하고 뒷풀이 자리에 끼었습니다.처음 본 한 여성 객원 단원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물었습니다. 1년 반 전 '게이'에 대한 사진다큐를 한 뒤 형·동생하는 게이 친구들이 좀 생겼습니다.게이는 일간지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않거나, 애써 외면하는 소재중 하나지요.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게이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한 번 더 하고 싶었습니다.그래서 이번에는 국내 유일의 게이합창단을 다큐 소재로 잡았습니다. 연습실을 찾은 첫 날. "여기 경향신문 강윤중 기자입니다. 아쉽지만 '일반'이예요.""아~~" 단원들은 아쉬워하는 감탄사로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지난해 인연으로 단원의 3분의 1정도는 낯이 익..

사진다큐 2012.11.19

기자들이 시장상인에게 박수를 보낸 이유

대선 취재의 '영업비밀'을 하나 밝혀야 겠네요 후보의 일정 중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전통시장 같은 곳은 취재전 캠프측과 조율을 합니다 넓지 않은 곳에 후보와 캠프 관계자, 경호원과 기자들 그리고 후보를 보기위해 몰려드는 시민들이 엉기면 엉망이 됩니다 10년 전 대선에 출마한 한 후보는 앞에서 다투어 취재하는 기자를 향해 "내가 기자들 보러왔나?"며 역정을 냈다더군요 후보와 후보를 보고파하는 시민들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사전 조율을 통해 후보의 동선 중 '그림이 될만한 곳'에 미리 자리를 잡고 취재한 뒤, 이후 동선에서 빠져주는 것이지요 지난 4일 안철수 후보가 익산 솜리 5일장을 찾았습니다 미리 동선을 따라 시장을 둘러보다 호떡과 도너츠 등을 파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실 가게보다는 웃음 띠고 있는 ..

사진이야기 2012.11.06

손편지

거리에서 우체통을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늘 거기 있었을 텐데도 개인적으로 쓰임이 없고 관심을 두지 않으니 보이지 않았을 수 밖에요. 파란 가을 하늘 빛과 대비되는 붉은 색이어서 눈에 띄었나 봅니다. 아니, 편지가 떠올려지는 계절이라 시선이 갔나 봅니다. 썼다 지웠다 하며 손으로 쓴 편지를 부친 기억이 십 수 년은 된 것 같습니다. 가끔 손으로 눌러 쓴 제 글씨가 낯설게 보입니다. 심지어 수첩에 긁적인 저의 글씨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태까지 생겼습니다. '내 주위에 누구의 글씨를 기억하고 있나?' 생각해 보니, 당장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e메일과 카톡이 대세인 시대에 손으로 쓴 편지는 이벤트에나 출연을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편지 한 통 써서 부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또 '누구에게 쓸 것인가' 고민에..

야권 후보 단일화 해답은 사진에...

야권 후보 단일화를 놓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간에 주도권 경쟁이 가열되고 있지요. 하지만 '정면충돌'이라는 센 제목으로 시작하는 기사와 함께 나간 두 후보의 사진에서는 이미 단일화가 시작되고 있는 듯 합니다. 편집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재밌는 편집이어서 보여드립니다. 문재인 후보의 흙먼지 덮인 구두를 클로즈업한 사진과 '소통과 융합'을 강조하며 한쪽 눈을 가린 안철수 후보의 손을 부각시킨 사진이 나란히 쓰였습니다. 기사는 다툼이지만, 사진은 화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과 발'이 따로 일 순 없지요. 좀 억진가요? ^^ 다음 사진에서는 확실한 '단일화'의 이미지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같은 날 신문 8, 9면을 나란히 장식한 대선기획 문 후보, 안 후보 '뒤집어 ..

사진이야기 2012.10.16

문재인의 흙구두

대선후보들의 행보에 '발언' 만큼이나 '이미지'도 중요합니다. 현장을 따라다니다보면 사진 앵글에 들어오는 후보의 표정과 행위는 좀 더 크고, 적극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습니다. 후보가 얘기를 하면 제스처를 써주길 바라고, 웃으면 목젖이 드러나도록 웃어주길 바라고, 아이를 만나면 안아주길 바라고, 거리에 포장마차라도 들어가면 떡볶이나 오뎅을 집어서 먹었으면 하고, 이왕 먹으면 맛있는 표정으로 한 입 거칠게 베어 먹길 바라지요. 이런 바람이 있으면서도 후보들이 이를 너무 잘 소화하면 조금 얄밉고, 이를 너무 모르면 답답하지요. 혹자는 연출이라며 정치인들의 사진을 폄훼하기도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데 의식하지 않을 이는..

사진이야기 2012.10.12

안철수 후보의 사진, 사실은...

안철수 대선 후보가 아이의 등을 쓰다듬고 있는 사진 한 장이 경향신문 4일자 4면에 게재되었습니다. 자상하고 따뜻한 안철수 후보의 이미지가 드러났지요. 사실 이 장면을 찍으며 기자들은 웃었습니다. 한 컷의 사진이 실리다보니 앞 뒤 상황을 독자들이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지면에서 연속 컷으로 보여주기도 쉽지않고, 캡션에 주저리주저리 쓰는 것도 시도된 바가 없지요. 그 상황을 보여드리려구요. 거리가 있어 대화의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냥 제가 알아서 씁니다. ^^ 호남 민심잡기에 나선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을 찾았습니다. "자연 보전 자체가 산업으로 연결되는 신성장 동력 모델이라는 점에 주목한다"고 했지요. 안철수 후보가 생태공원 관계자의 얘기를 들으며 걷습니다. ..

사진이야기 2012.10.08

남자들의 이별

추석 열차표 예매하던 날, 시민들의 긴 행렬을 위에서 내려찍기 위해 서울역 2층 대합실로 올라갔습니다. 군복을 입은 병사 세 명이 다정하게 셀카를 찍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드는지, 아니면 여러 장을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 찍고 또 찍었습니다. 이날 제대한 이들은 집으로 가는 열차 시간이 다가오자 헤어지기 아쉬웠던 모양이었습니다. 훌쩍 19년 전 기억이 스쳤습니다. 저는 논산훈련소 26연대 146번 훈련병이었지요. '전우조'라는 게 있었습니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훈련병 생활을 하라며 세 명씩 짝을 지어 주었습니다. 145번, 147번 동기들이 제 전우조였지요. 힘들 때 많이 의지했습니다. 4주 훈련을 마치고 각자 배치받은 부대로 가기 위해 새벽녘 기차역으로 향하던 중 우리 세..

문재인 후보에 축하를, 낙선한 세 후보에 박수를...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순회 경선 마지막 일정인 서울 경선 대회장에 일찌감치 도착했습니다. 사진기자석과 동선이 가장 짧은 곳에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수시로 드나들며 마감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선 결과 발표가 마감시간(오후 4시) 이후라 괜히 마음이 조급해 집니다. 발표시간을 당길 수도 없는데 말이지요. 이날 결선 투표까지 가지 않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것이 예상이 된 터라, 캡션도 미리 써 놓습니다. 대회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문재인 대통령 후보 당선자가...’라는 내용의 캡션을 쓰다 보니, 나머지 세 후보에게는 좀 미안해 지더군요. 대부분의 매체가 문재인의 승리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기에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는 기운이 빠질 수 밖에요. 정견 발표를 위해 단..

사진이야기 2012.09.17

대선 후보에 밀린 한류스타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장에는 취재진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민주통합당 대선 광주·전남 경선이 끝나자마자 저도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날 비엔날레 개막식에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경선 후보가 참석할 예정이었습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쪽 바닥에선 대단히 큰 일입니다. 여야 양당의 대선 경선 이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 당내 경선 1위를 달리고 있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첫 만남이었지요. 무대 주변에 몰려든 취재진은 행사 스태프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밀리면 끝장이라는 듯 자리를 굳게 사수했습니다. 박근혜, 문재인, 손학규 후보가 식장에 나타나자 시야를 가리는 모든 이들은 기자들의 적이 됐습니다. "거기 앞에요!!" "좀 나오세요" "후..

사진이야기 2012.09.07

담벼락에 걸린 눈

영화 '이웃사람'의 원작 만화가 강풀씨의 인터뷰를 앞두고 시간이 남아 인근에 있는 팔판동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삼청동길 들어서서 왼쪽으로 있는 동네입니다. 조선시대에 열덟 명의 판서가 나왔다고 팔판동이랍니다. 묵직한 유래에 비해 이름은 다소 가벼워 보이는 동네지요. 아담한 이 동네는 골목을 따라 예쁜 카페촌이 형성돼 연인이나 관광객들이 많습니다. 카메라를 든 이들도 많구요. 일부러 오기 힘든 동네고, 시간은 때워야 하고, 오랜만에 여유를 누렸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어슬렁 거렸습니다. 한 번 지났던 골목인데 어떤 끌림이 있어 다시 한 번 걷게 되었지요. 저를 끌어들였던 것의 정체는 '벽에 그려진 눈'이었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매서운듯 하면서도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는 눈이었지요. 전봇대 옆, 쓰레기 ..

아메리카노를 사랑한 남자

유시민 전 통진당 공동대표가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진보정치 혁신모임 회의실로 들어섰습니다. 최근 '아메리카노 논쟁'을 의식한 듯 만면에 미소를 지었고, 이를 본 기자들과 회의 참석자들이 일제히 웃었습니다.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는 유 전 대표와 손에 쥔 커피에 집중됐지요. 유 전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의원회관은 1800원이에요!" 국회 본청보다 아메리카노가 200원 싸다는 얘기였지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2200이고..." 천진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어디서 커피 CF 안들어 오나?"하고 너스레를 떨었지요. 회의 참석자들과 기자들은 다시 한 번 크게 웃었습니다. 회의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유시민 전 대표가 커피를 입에 대는 순간마다 플래시는 터졌습니다. 유 전 대표와..

사진이야기 201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