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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내려놓을 용기

시리아발 사진 한 장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사진기자 때문에 그 메시지가 더 부각되었지요. 주인공은 시리아 한 매체의 사진기자 압둘 카디르 하바크입니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현장에서 오른손에 카메라를 손에 쥔 채로 부상당한 아이를 안고 달려 나오는 사진이었습니다. 일상적인 것이 그러하듯 시리아 테러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특히 한국 언론의 관심에서는 더 멀지요. 그런 중에 현장의 위험을 무릅 쓴 사진기자의 정의로운 행동이 기록된 사진이 널리 공유되고 찬사를 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리아의 참상이 이 피사체인 사진기자 덕에 드러나고 관심의 영역으로 잠시 들어왔습니다. 만약 구조대원이 아이를 안고 뛰어나왔다면 역시 일상성의 범주 안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짐작도 해..

사진이야기 2017.04.24

우병우 퍼포먼스

가끔 퍼포먼스 사진을 찍습니다. 구호 외치고 회견문을 읽는 평범한 그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진기자들을 위해 소위 상징적인 그림을 만들어주는 주최자의 정성입니다. 그 퍼포먼스는 회견 마지막 순서라 기자들을 회견 내내 붙잡아둘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경험 많은 기자회견 주최측과 사진기자의 암묵적 거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10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세척작업을 찍으러 갔다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찍게 된 것도 진행자의 “퍼포먼스가 있다”는 말에 솔깃했던 겁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얼굴 가면을 쓴 이가 수의를 입고 무릎을 꿇은 퍼포먼스였지요. 우 전 수석의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두고 있어 이보다 시의적절한 퍼포먼스는 없었지요. 구호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1..

사진이야기 2017.04.14

세월호 인양과 그의 정신승리법

지난 22일 야근하며 이르면 23일 새벽에 세월호 선체가 물 밖으로 드러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보도를 봤습니다. ‘그게 그리 쉬운 거였나’ 간절히 바라면서도 반신반의했습니다. 다음날 휴대폰 속보에 세월호의 선체가 드러난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눈자위가 뜨거워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곧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런 걸 3년 동안이나...’ 사진/이준헌 기자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불과 두 주일 만에, 인양 작업 이틀 만에 물 위로 올라온 부식된 배를 보며 허탈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정부는 인양의 의지가 없었던 것이지요. 아찔한 건 대통령 탄핵이 기각이 됐다면 인양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선체 인양이 탄핵 심판 결과에 달려있었다니 ‘세월호의 진실’을 누가 가리고 훼방하고 있..

사진이야기 2017.03.25

'용한 그림'을 청와대를 꿈꾸는 이들에게

민중화가로 불리는 홍성담 작가를 지난 2월 초 만났습니다. 사진기획하며 만난 풍자 예술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풍자화 작업과 관련한 얘기를 재밌게 들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그림 앞에서 포즈를 부탁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듯 큰 캔버스를 들고 와 벽에 기대 세웠습니다. 작품은 ‘벚꽃노리’(2013년 작)였습니다. 지난 2013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자, 이를 기념해 그린 풍자화입니다. 박 전 대통령이 그의 부친 박정희를 닮은 아이 손을 잡고 벚꽃 길을 따라 걸어가는 뒷모습입니다. 홍 작가는 작품의 벚꽃은 허무를 상징하며 저 꽃길을 따라 사라지는 박 대통령을 표현했다고 밝혔습니다. 홍 화백은 이 그림을 그리기 수개월 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출산 그림을 그려 논란..

사진이야기 2017.03.20

달콤 씁쓸한 탄핵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됐습니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날, 저는 헌재 인근 안국동 거리에서 선고 생방송을 지켜보는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목소리가 무대 위에 설치된 화면에서 흘러나왔지만 잘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휴대폰을 통해 방송을 지켜보는 세월호 가족과 주위에 모인 시민들의 표정으로 선고 상황을 짐작했습니다. 처음 얼마간 환호로 시작한 선고가 탄식과 함께 무겁게 변해갔습니다.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세월호 관련 선고 내용이 간간이 들려왔고 유가족들은 얼굴을 묻었습니다. 기각인가? 이어지는 선고 결정문에서는 문장마다 환호가 터졌습니다. 그 속에서 비교적 또렷하게 이 재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

사진이야기 2017.03.13

"뭐 찍어요?"

회사에서 만난 타 부서 선배들이 제게 다가와 묻습니다. “다친데 없냐?”고.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했더니, 주말 소위 ‘태극기 집회’라 불리는 ‘친박 단체’ 집회에서 제가 겪은 작은 해프닝을 전해 들었던 모양입니다. 제 옆자리 ‘이야기꾼’ S선배의 입을 거쳐 나간 것이라 짐작합니다. 두어 다리 건너간 얘기는 극적이고 긴박해지고 포장되고 과장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지난달 25일 촛불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장비를 챙겨 회사를 나섰습니다. 가는 길에 “30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하는 친박 단체 집회를 잠깐 찍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태극기를 든 어르신들이 하나둘 스쳐갔습니다. 집회가 한창인 서울광장 일대는 붐볐습니다. 광화문광장 쪽으로 향하며 적당한 위치를 찾아 섰습니..

사진이야기 2017.03.06

긴 겨울 지나 이제 봄

봄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여느 때보다 길게 느껴지는 겨울이지 않습니까. 이른 꽃소식이 지면에 몇 차례 소개됐지만 개의치 않고 남도로 향했습니다. 만개한 꽃보다 꽃이 피기 전의 모습을 담고자 했습니다. 왠지 이 시국에 정의로운 국민의 바람이 개화를 앞둔 꽃눈과 다르지 않다는 식의 억지 최면을 걸었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 종일 내린 지난 22일 전남 완도군에 있는 완도수목원을 찾아갔습니다. 빗속엔 제법 따스한 기운이 스며있었지요. 카메라에 접사렌즈를 끼웠습니다. 사실 여의도 벚꽃, 구례 산수유, 광양 매화 등 규모 있는 꽃 축제 사진은 수차례 찍어보았습니다만, 그때도 접사렌즈를 장착하지는 않았습니다. 접사렌즈를 이용해 꽃사진을 찍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지 않았었지요. 그런류의 사진은 따로 취미를 둔..

사진이야기 2017.02.28

"이집트 놈"

이집트 국적의 난민 이마드가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지난 17일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난민정책에 항의했습니다. 미국을 향해 피켓을 들었지만 그가 말하려고 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대한민국 난민정책이었지요. 이마드는 콥트교(기독교 분파) 신자로 이집트에서 종교적 박해를 받다 2007년 태국으로 도피했고, 2012년 다시 한국으로 입국했지요. 그는 한국에서 3차례 난민신청을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현재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출국이 5월 초까지 유예된 상태입니다. 이마드가 미 대사관 근처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사복 경찰이 다가와 길 건너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시위를 하라고 했습니다. 이마드는 거듭 그 이유를 물었지만 결국 대사관 앞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마드는 ..

사진이야기 2017.02.21

파리 스케치

답답한 날들입니다. 지난 몇 개월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했던 날이 있었는지 가물거립니다. 이 비정상의 상태를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는데 그 고민도 강박처럼 죄어옵니다. 어수선한 시국과 허무하게 먹고 있는 나이가 보태져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딘가로 좀 떠나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해법을 던져보지만 매인 몸이라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외장하드를 뒤졌습니다. 1년 전 요맘때 큰 맘 먹고 다녀온 파리 사진을 넣어둔 폴더를 찾았습니다. 문득 그때 찍었던 사진이 보고 싶었던 겁니다. 여행 갔다와서 ‘사진 몇 장 골라 뽑아야겠다’ 해놓고 그렇게 한 해를 무심히 처박아 두었습니다. 인화할 사진도 고를 겸 사진들을 다시 훑었습니다. 여행 전, 여행지에서 카메라를 내려놓으면 더 가까이, 더 ..

사진이야기 2017.02.13

남성적 시선 '비포 & 애프터'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곧, 바이!’展에 걸린 작품 ‘더러운 잠’이 논란입니다. 작가는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를 패러디해 대통령의 얼굴을 누드화 위에 합성했지요. “풍자와 표현의 자유”와 “여성 혐오와 비하”라는 주장이 맞섭니다. 보수단체 회원이 전시된 작품을 떼어내 내동댕이쳤고, 새누리당은 이 논란을 빌미로 정치공세를 펼쳤습니다. 결국 전시를 주관했던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당 윤리심판원에서 징계를 받았지요. 개인적으로 ‘여성 혐오’ 보다는 ‘무능한 권력자에 대한 풍자’가 더 와닿았습니다. 남자라서 그렇겠지요. 논란을 보면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사진을 떠올렸습니다. 공교롭게도 ‘곧, 바이’전은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의 시국비판·풍자 전..

사진이야기 2017.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