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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프로가 아니었다

그는 프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프로였다면 현직 경찰관인 국회의장 경호원의 멱살을 잡지 않았을 겁니다. 그가 프로였다면 멱살잡이 사진과 비난이 인터넷에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경호원을 찾아가 사과했어야 했습니다. 그가 프로였다면 여론의 눈치를 보며 나흘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가 프로였다면 경찰 고발을 몇 시간 앞두고 “사과했다”며 속 보이는 증거사진을 공개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가 프로였다면 ‘사과의 증거사진’을 찍을 일이 없도록 ‘멱살잡이의 증거사진’을 찍히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가 '진정한 프로'였다면 ‘사과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그 시선’을 들키지 말아야 했습니다.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하고 완벽하게 감췄어야 했습니다. ..

국회풍경 2016.09.06

카메라가 낯설어 지던 날

러시아 월드컵 한국과 중국의 최종예선처럼 관심을 끄는 경기는 기자실 자리 잡기 경쟁부터 치열합니다. 경기 시작 전 대여섯 시간 일찍 가는 게 기본이지요. 시작 두 시간 전에는 자리 추첨을 합니다. 번호순대로 선호하는 자리를 고르고 명함을 붙입니다. 좋은 자리가 반드시 좋은 사진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런 자리를 차지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자리 추첨의 운으로 취재사진 결과물의 운을 점쳐 보기도 하는 것이지요. 국내에서 하는 A매치 시간은 보통 오후 8시. 신문 마감시간과 물려 있어 마음은 바쁩니다. A매치 취재는 오랜만이었지요.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시종 허둥댔습니다. 몸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접이식 의자 하나의 폭 안에서 두 대의 카메라와 무릎 위에 펼쳐 놓은 노트북을 다뤄야 했..

사진이야기 2016.09.05

'할배·할매에게 클럽을 허하라'

나이 들며 서러운 이유가 여럿이겠지만 ‘놀 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이 그 중 하나이지 싶습니다. ‘나잇값’을 한다는 것이 솟는 욕구를 누르거나 쾌락의 자제로 풀이되는 것도 같습니다. 어르신들이 즐거움을 찾아서 누릴 공간과 문화가 드문 것은 나잇값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28일 홍대 앞의 한 클럽에서는 50대 후반에서 70대에 이르는 어르신들이 클럽 DJ가 틀어주는 ‘젊은이들’ 취향의 음악과 싸이키 조명 아래 춤을 췄습니다. 박수가 춤의 전부인 저는 어르신들의 다양한 팔동작과 스탭, 거기서 발산되는 에너지에 놀랐습니다. 한때 좀 ‘노셨던’ 모습이 그 위로 겹쳐 보였습니다. 한 노인은 “오늘 난 20대”라고 외치기도 했지요. 지칠 줄 모르고 몸을 흔드는 어르신들의 얼굴 주름에 ..

사진이야기 2016.09.01

그의 '폴더인사'

입사 초, 회사나 취재현장에서 ‘90도 인사’를 부지런히 했더랬습니다. ‘나’를 빨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 바닥을 먼저 경험한 선배들에 대한 예의와 존경의 표현이라 나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취업의 설렘과 새로운 배움에 대한 기대도 그 인사에 스몄을 테지요. 저의 ‘90도 인사’에 선배들의 평가가 보태지며 “인간이 됐더라” “경향 수습 잘 뽑았더라” 심지어 이제 막 들어온 병아리기자에게 “일 잘 하더라”는 비약까지 말이 커졌습니다. ‘농반진반’으로 후배들에게 얘기합니다. “인사의 약발로 여기까지 왔다”고. 세월이 흘러 제 ‘인사의 각도’는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만, 저의 ‘초심’이라면 그때 그 인사의 마음과 태도가 아닐까, 가끔 생각합니다. 당시 가장 두려웠을 말은 “인사만 잘하더라” “인사가 가식이..

국회풍경 2016.08.25

사진에 대한 예의

사진하는 사람들은 가끔 ‘자식 같은 사진’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자기 손에서 태어난 사진이 그만큼 귀하다는 말이지요. 자식이 쉽게 여겨지고 가벼운 대우를 받는다면 맘 편할 부모가 있겠습니까. 출근길에 들여다 본 페이스북에 익숙한 사진이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엔 잘못 봤나 싶었습니다. ‘자식’ 못 알아볼 리 없지요. 중앙일보 기명 칼럼을 소개하며 이 사진을 페북에 걸었습니다. 취재 당시 중앙일보 기자가 없었으므로 자사 사진이 아닌 것은 확실했지요. ‘어떻게 내가 찍어 게재한 사진이 중앙일보 페북에 쓰였을까.’ 회사에서 따로 연락을 받거나 사진을 건넨 이가 없었지요. 페북 관리자가 온라인에 올라있는 경향신문 기사에서 사진을 캡처해 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 사진이 어떤 허락이나 양해구함없이 무단으로 사용된..

사진이야기 2016.08.16

세 장면으로 남은 소설 '소금'

박범신의 소설 의 무대 논산과 강경을 다녀왔습니다.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70인과의 동행'의 탐방지였지요. 회사 창간기획 행사에 무한애정으로 참가하고 있는 아내의 ‘지시’로 출장에 앞서 소설을 읽었습니다. 읽고 가면 뭔가 맥을 짚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암시를 하면서 말이지요. 논산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소설을 떠올리려니 주인공 이름부터 가물거렸습니다. 책에 수십 번은 반복됐을 이름인데 ‘나이 탓인가?’했지요. "재밌게 잘 읽었다"며 덮었던 책인데 어떻게 그렇게 깨끗이 지워질 수 있는지. 강경 옥녀봉에서 박범신 작가를 만나고 탐방 코스를 돌며 소설에 묘사됐던 지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소설 속 막연했던 장면이 구체적인 모습을 띄니 하얗게 지워졌던 인물부터 내용까지 조금씩 되살아났습니다..

사진이야기 2016.08.05

'쌍팔년도 사진'

어떤 류의 사진은 사진을 찍기 전에 이미 익숙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대게 이런 이미지를 피하고 싶은 게 평균적 사진기자의 마음입니다. ‘주식거래 30분 연장’ 사진도 그랬습니다. 벽시계를 걸고 객장을 찍는다는 게 경험 있는 사진기자들이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입니다. 한 증권사 객장을 찾았습니다. 저와 타사의 몇몇 후배들이 거래 마감시간 즈음해서 모였습니다. 한 후배의 손에 벽시계가 들려있었습니다. 이미 지면으로 증명되어 온 '굳은 이미지'는 떨치기 힘든 것이지요. “정성이 대단하다”고 한마디 툭 던졌습니다. 시황 모니터 상단에 숫자로 시간이 표시돼 있어 벽시계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빤한 이미지'를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후배는 준비한 시계를 카메라 앵글 속에 넣어 연방 셔터를 눌렀습니다...

사진이야기 2016.08.02

몸이 의도한 사진

“블로그에 올릴 게 참 없었구나”하는 방문자들의 의심과 염려를 감안하고 올립니다. 제겐 의미 있는 사진입니다. 보도사진이 아니니 객관성을 담보할 필요도 없지요. 우격다짐의 주관적 사진에도 관대해진 사진 환경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카메라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나름 진지하게 기록한 숱한 사진 중에서도 몇 장만 골라지고 나머지는 지워져야할 운명을 맞습니다. 메모리카드를 열어보면 대체로 규칙적이고 가지런하게 배열된 사진 중에서 유독 거슬리듯 눈에 띄는 사진이 있습니다. 내가 눌렀지만 내가 누르지 않은 사진입니다. 나의 것도 아니면서 나의 것인 사진입니다. 대게 이런 사진은 카메라를 드는 중에 눌리거나, 걸어가다 골반 즈음의 살인지 뼈인지 모를 어정쩡한 부분에 건들려 찍힌 것이지요. 젤 먼저 삭제될 운명의 사진이..

사진이야기 2016.07.22

'무기력이 씁쓸한 위안으로'

황교안 국무총리가 사드 배치와 관련, 주민 설득을 위해 15일 경북 성주를 찾았습니다. 주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설명회는 파행됐지요. 과정이 생략된 일방적이고 전격적인 발표와 대통령 해외순방 시작 날 황급히 달려와 수습하려는 정부의 빤하고 딱한 '매뉴얼'에 화가 나더군요. 여기에 더 화가 났던 건 이를 사무실에서 TV 화면을 통해 지켜본 것이었습니다. 뉴스를 보는 동안 갑갑했습니다. 저는 정부가 사드 지역을 발표하던 날(13일) 성주에 갔다가 다음날(14일) 밤에 올라왔거든요. 총리의 전격방문이 이날 밤늦게 결정되었고 이 일정을 미처 체크하지 못해 사진부에서는 현장에 기자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오전 9시 넘어 기사를 통해 체크한 총리의 일정은 11시 성주였지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었습니다. 총리가 ..

사진이야기 2016.07.16

"개·돼지를 위하여"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지난 11일 국회에 출석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상임위 회의실이 아닌 회의실 앞 복도를 가득 메운 채 나 기획관을 기다렸습니다. 그의 망언에 대한 국민 분노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고향에서 급히 상경해 정신없을 그가 복도에서부터 플래시 세례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개·돼지들이 가득 메우고 있어 놀라겠다”는 씁쓸한 농담이 흘러 나옵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 들어선 나 기획관은 시종 고개를 숙인 채 땀을 흘렸습니다. 그에게 국회 출석은 부담스럽지만 변명의 기회이기도 했을 겁니다. 사진 찍는 입장에서 고개 숙인 모습만 담는다면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그가 벗어나려 했던 99%의 측은지심을 자극할 수도 ..

국회풍경 201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