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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선 딸래미

중2 딸아이는 잠이 많습니다. 토요일이면 어지간해 12시 전에 일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보통 낮 한두 시가 되어야 부스럭거리며 일어납니다. 지난 토요일 10시가 좀 넘은 시간에 눈 뜬 아이가 친구와 약속에 늦었다며 서두릅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날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에 가기 전에 친구랑 피켓을 만들기로 했다더군요. 딸래미가 주말 ‘오전에’ ‘스스로’ 일어나는 것은 저희 집에서는 사건입니다. 집회에 다녀온 아이의 손에는 현장에서 만들었다는 피켓이 들려있었습니다. 가상 ‘한국사’ 국정교과서 표지에 낙서한 피켓이었지요. ‘한국사’ 글자 위에 덮어 쓴 문구가 재밌습니다. 초등학생 때 국어책에도 ‘국어’를 ‘꿇어’로 바꿔 써 놓았던 것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웹툰을 많이 봐서 다소 만화적인 표현을 ..

사진이야기 2016.11.06

오늘 검찰에 '장'이 섰다

‘장이 섰다’고 하더군요. 장날도 보통 장날이 아니었습니다. ‘비선실세’의 검찰 출석을 찍기 위해 기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렸습니다. 스포츠지, 연예지, 외신기자들까지 모였으니 짐작할 만하지요. 제 입사 이후 검찰에 모인 기자 규모는 이날이 최대였습니다. 기자 규모는 정확히 뉴스의 크기에 비례하지요. 전날 ‘최순실씨 31일 오후 3시 피의자 신분 소환 조사’라고 휴대폰에 속보가 뜨자마자 가슴이 뛰었습니다. 종소리에 침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 같은(ㅋㅋ) 반응이지요. 최대 뉴스의 현장에 있다는 것은 기록하는 자에겐 존재이유이지만 한편 살짝 긴장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기자이기 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끓는 분노가 그 떨림에 한 몫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방으로 여러 줄 겹쳐 선 기자들이 겨..

사진이야기 2016.10.31

1분을 위한 8시간

오랜만에 뻗치기를 했습니다. 아시겠지만 뻗치기는 일종의 ‘기다림’인데 설렘은 전혀 없는 그런 막연한 기다림이지요. 언제 끝날지 몰라 더 지루하고 길게 느껴집니다. 늑장 부리던 검찰이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 관련 재단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 했습니다. 데스크 전화를 받고 달려간 곳은 최씨의 신사동 자택이었지요. 이미 와 있던 타사의 사진기자들이 반겨줍니다. 동료기자들이 모인다는 것은 이날 9곳의 압수수색 장소 중에서도 비중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죠. 더 중요한 건 ‘덜 외로우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긴 시간 버티며 의지할 사람이 왔다는 것이지요. 종일 한 공간에서 같은 목적으로 뻗치다 보면 애틋함이 솟아납니다. 그동안 왜 안 보였나, 어떻게 지냈나, 그간 어떤 재미난 일들이 있나 등 시시콜..

사진이야기 2016.10.28

나는 사기꾼이었다

저는 사기꾼이었습니다. 좀 억울했지만 입장을 바꿔보니 영락없는 사기꾼이었지요. 두 주일 전에 사진다큐를 위해 찾은 한 농촌에서의 일입니다. 며칠 계속된 비에 땅이 질어 가을걷이에 나선 농민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무작정 헤매다 콤바인 작업에 나선 노부부를 만났습니다. 이번 다큐의 핵심 주제인 쌀값에 대한 얘기도 듣고 사진도 찍을 요량으로 다가갔습니다. 서글서글한 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틈틈이 던지는 물음에 답도 잘 해주셨지요. 내내 농사일을 지켜보며 가끔 사진 찍고 가끔 질문을 했습니다. 모르는 쌀농사는 지켜보는 거 이상 답이 없었지요. 시간을 충분히 두고 대화하다가 자연스레 집으로 초대받는 모양새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더 깊이 다가가 노부부의 사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마감에..

사진이야기 2016.10.21

흘낏 본 일본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여행할 수 있는 곳이지만 제겐 그 마음이 잘 안 먹어지는 나라였지요. 7년 전 쯤 회사 출장이후 지난달에 요코하마와 고베로 출장 다녀왔습니다. 정치·역사적으로 여전히 오만불손한 나라이지만, 현지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부러움이 일더군요. 우리와 다른 것이 보일 때 그게 새로워서 부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착시일 수 도 있겠지요. 정보가 넘치는 일본이지만 출장 일정 틈틈이 제 눈으로 ‘일본스러운’ 것들을 보려 했습니다. 아마도 블로그를 염두에 뒀던 것 같습니다. ^^ 잊고 있다가 출장 다녀온 지 한 달이 돼 이 블로그를 끼적이는 것은 나라꼴이 말이 아니어서 어디 시선을 좀 피할 데 없나 싶었다는 게 그 이유지 싶습니다. 일본의 일상에서 느낀 단상입니다. 나흘 간 스치며 본 일본이어서 영 엉뚱..

사진이야기 2016.10.17

국회 출입증을 반납하며

얼마전 국회 출입증을 반납했습니다. 지난 2년 가까이 국회 출입을 했습니다. 등록된 경향신문 출입 사진기자는 모두 3명. 그중 2진으로 출입했습니다. 앞서 3진으로 두 차례 출입했을 때와는 여러모로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3진 때보다 출입 횟수가 많아져 뉴스 흐름 파악에도 유리했고 앞서 출입 때보다 책임감도 더했겠지요. 국회의 일상과 그 안의 패턴을 읽는 시야도 넓어졌습니다. 매번 비슷한 대상과 상황을 사진에 담으면서 이 사진이 무엇을 새롭게 드러내는지, 마감했던 사진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기계처럼 찍어대고 생산한 사진이 쉽게 여겨지고 한없이 가벼워져 버린 게 아닌지, 그저 잠깐의 목적을 위한 일회용품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닌지, 정치를 조금 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방향으로 표현할 일은 요..

국회풍경 2016.09.26

그는 프로가 아니었다

그는 프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프로였다면 현직 경찰관인 국회의장 경호원의 멱살을 잡지 않았을 겁니다. 그가 프로였다면 멱살잡이 사진과 비난이 인터넷에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경호원을 찾아가 사과했어야 했습니다. 그가 프로였다면 여론의 눈치를 보며 나흘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가 프로였다면 경찰 고발을 몇 시간 앞두고 “사과했다”며 속 보이는 증거사진을 공개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가 프로였다면 ‘사과의 증거사진’을 찍을 일이 없도록 ‘멱살잡이의 증거사진’을 찍히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가 '진정한 프로'였다면 ‘사과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그 시선’을 들키지 말아야 했습니다.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하고 완벽하게 감췄어야 했습니다. ..

국회풍경 2016.09.06

카메라가 낯설어 지던 날

러시아 월드컵 한국과 중국의 최종예선처럼 관심을 끄는 경기는 기자실 자리 잡기 경쟁부터 치열합니다. 경기 시작 전 대여섯 시간 일찍 가는 게 기본이지요. 시작 두 시간 전에는 자리 추첨을 합니다. 번호순대로 선호하는 자리를 고르고 명함을 붙입니다. 좋은 자리가 반드시 좋은 사진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런 자리를 차지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자리 추첨의 운으로 취재사진 결과물의 운을 점쳐 보기도 하는 것이지요. 국내에서 하는 A매치 시간은 보통 오후 8시. 신문 마감시간과 물려 있어 마음은 바쁩니다. A매치 취재는 오랜만이었지요.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시종 허둥댔습니다. 몸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접이식 의자 하나의 폭 안에서 두 대의 카메라와 무릎 위에 펼쳐 놓은 노트북을 다뤄야 했..

사진이야기 2016.09.05

'할배·할매에게 클럽을 허하라'

나이 들며 서러운 이유가 여럿이겠지만 ‘놀 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이 그 중 하나이지 싶습니다. ‘나잇값’을 한다는 것이 솟는 욕구를 누르거나 쾌락의 자제로 풀이되는 것도 같습니다. 어르신들이 즐거움을 찾아서 누릴 공간과 문화가 드문 것은 나잇값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28일 홍대 앞의 한 클럽에서는 50대 후반에서 70대에 이르는 어르신들이 클럽 DJ가 틀어주는 ‘젊은이들’ 취향의 음악과 싸이키 조명 아래 춤을 췄습니다. 박수가 춤의 전부인 저는 어르신들의 다양한 팔동작과 스탭, 거기서 발산되는 에너지에 놀랐습니다. 한때 좀 ‘노셨던’ 모습이 그 위로 겹쳐 보였습니다. 한 노인은 “오늘 난 20대”라고 외치기도 했지요. 지칠 줄 모르고 몸을 흔드는 어르신들의 얼굴 주름에 ..

사진이야기 2016.09.01

그의 '폴더인사'

입사 초, 회사나 취재현장에서 ‘90도 인사’를 부지런히 했더랬습니다. ‘나’를 빨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 바닥을 먼저 경험한 선배들에 대한 예의와 존경의 표현이라 나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취업의 설렘과 새로운 배움에 대한 기대도 그 인사에 스몄을 테지요. 저의 ‘90도 인사’에 선배들의 평가가 보태지며 “인간이 됐더라” “경향 수습 잘 뽑았더라” 심지어 이제 막 들어온 병아리기자에게 “일 잘 하더라”는 비약까지 말이 커졌습니다. ‘농반진반’으로 후배들에게 얘기합니다. “인사의 약발로 여기까지 왔다”고. 세월이 흘러 제 ‘인사의 각도’는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만, 저의 ‘초심’이라면 그때 그 인사의 마음과 태도가 아닐까, 가끔 생각합니다. 당시 가장 두려웠을 말은 “인사만 잘하더라” “인사가 가식이..

국회풍경 201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