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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난 누굴 만났나'

2017년이 가고 있습니다. ‘올해의 뉴스’와 ‘올해의 사진’ 등 내·외신 매체들이 한해를 정리하는 뉴스를 내놓고 있지요. ‘나는 올해 무슨 사진을 찍었나?’ 싶어 개인 외장하드를 한 번 훑었습니다. 매년 12월 요맘때면 하는 연례행사지요. 올해 만났던 사람이 눈길을 붙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았습니다만 마음가는대로 즉흥적으로 골랐습니다. 1월, 경향신문은 ‘대선의 꿈’이라는 신년 기획으로 대선주자 신년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단독’ 촬영했습니다. 인터뷰 장소였던 한 호텔 앞 인도에서 “5년 전 대선에서 제가 마크맨이었습니다”라고 인연을 앞세우며 “걸어오시겠습니까?” “카메라 보시면서 미소 지어주시겠습니까?”라고 했었지요. 조기대선 이후 ..

사진이야기 2017.12.21

"옛날 가수라서..."

10살 때쯤 기억인가 봅니다. 가요순위 프로그램 ‘가요톱10’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잊혀진 계절’을 TV 앞에서 따라 불렀었습니다. 매주 1위를 하던 파마머리의 가수 이용은 정말이지 '톱스타'였습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월의 마지막 밤’이 되면 노래와 함께 가수 이용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이용 선생(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이 인터뷰차 회사에 왔습니다. 4년 만에 13집 앨범 ‘미안해 당신’을 냈다는군요. 회사에서 11시 인터뷰. 먼저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제가 까먹고 있었습니다. 출장 관련 자료를 뒤지느라 그만... 제 책상 옆에서 그분이 저를 보고 있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앞자리 선배가 스튜디오로 안내하고 저는 카메라를 챙겨 뒤따라갔습니다. 이용 선생은 스튜디오 구석 분장실(이라 하기..

사진이야기 2017.12.12

남의 일이 아니라서

출장 다녀온 지 한 달이 다 돼 갑니다만 아직 ‘로힝야’ 얘기를 우려먹습니다. 지면 등을 통해 보도된 뒤, 보여주지 못한 더 많은 사진은 ‘향이네’에 사진취재기를 연재해 내보였습니다. ‘금주의 B컷’으로 또 한 장의 사진을 싣기도 했지요. 출장 한 번 갔다 와서 사진을 너무 수다스럽게 늘어놓는 것 같아 좀 민망합니다. 난민사진을 찍으며 제게 던지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나(의 카메라)는 난민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 ‘이 사진이 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이 사진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힐까?’등등. 연차를 먹는다는 것은 대책 없고, 답 없는 질문이 늘어간다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질문하는 것은 윤리적 고민과 회의 등을 '퉁'쳐버리는 고도의 수법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여하튼 끝도 없는 질문도..

사진이야기 2017.12.08

이별의식

새 카메라가 들어왔습니다. 이 밥벌이 도구가 도착하자, 사무실에 있던 부원들은 박스를 뜯어 카메라와 부속 장비를 꺼내 살펴보고 정리하느라 부산했지요. 앞서 쓰던 카메라는 반납돼 한쪽으로 치워지고 있었습니다. 새 장비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지요. 저는 마감을 핑계로 그 부산함의 대열에 끼지 않았습니다. 또 다음날부터 사흘간 외부교육이 있어 박스를 뜯고 정리할 시간이 없었지요. 잘 됐다 싶었습니다. 원래 새 물건을 좀 묵혔다 쓰는 버릇이 있어, 최종 반납 독촉 때까지 시간을 끌었습니다. 니콘D4. 제 손에 들려 지난 5년의 시간을 새긴 카메라입니다. 제 40대 전반을 온전히 함께 했지요. 취미 아닌 밥벌이를 책임졌다는 사실에 좀 짠해 집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뉴스현장에서 저의 눈이 되고, 시선을 ..

사진이야기 2017.11.26

'밑줄을 긋다보니...'

놓치고 싶지 않은 문장은 너무 많아지고 격랑의 파도 속에서 밑줄을 긋다 보면 글이 좋아 밑줄을 긋는 것인지 밑줄을 긋기 위해 글을 읽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 되기도 한다 (134p) 자기의 인생관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거나 지금껏 보고 들어 알고 있었어도 느끼지 못했던 통찰의 획이 마음속에 그어지는 순간이 있다.(135p) 사진가 허영한의 에세이 (새움)를 읽으며 제가 딱 그 지경이 되었습니다. 책은 그의 깊은 사유와 통찰이 녹은 ‘사진인문학에세이’입니다. 그는 이런 ‘말의 규정’을 싫어할 것이 분명합니다. ^^ 저와는 평소 소주 한 잔 하는 사이인지라, 그의 깊이는 진작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 경험하는 것은 새삼스럽습니다. 책을 읽으며 줄을 많이 그었습니다. 동시대에 카메라를 들고 밥벌이를 하다 보니, 그..

사진이야기 2017.11.13

연 날리는 아이

하늘에 연이 날아올랐습니다. 아이는 바람이 걸리지 않는 언덕 제일 높은 곳에서 연줄을 잡았습니다. 높이 오른 연이 자랑스러운 듯 미소 한가득 머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 건너의 고향집에서 하던 놀이였을 거라 짐작합니다. 연이 날고 있는 맑은 하늘과 하늘 아래 나무와 천으로 엮은 허름한 집들이 대조를 이뤘습니다. 다행히도, 정말 다행스럽게도 연은 구름 쪽이 아니라 파란하늘 쪽에 날고 있었습니다. - 7일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하킴파라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10년 만에 재두루미를 찍으며

재두루미를 찍기 위해 한 10년 만에 강원도 철원의 민통선 안에 들어갔다왔습니다. 10년 전에도 이곳에서 재두루미를 찍었습니다. 지나며 보이는 농로가 익숙해서 얼마 전 왔다간 듯했지요. 10년 세월이 그런 식으로 지났다 생각하니 서글퍼졌습니다. 드넓은 철원평야를 바라보니 서 있으니, 초년병시절 가창오리떼를 찍기 위해 천수만 간척지에 서 있던 저와 시간을 건너 연결됐습니다. 당시 지평선처럼 아득한 간척지에서 지구에 남은 마지막 인간처럼 홀로 서서 한 시간여를 보냈습니다. 제 삶에 다시없을 경험이었습니다. 특별한 감상에 빠졌었지요. 살짝 스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자유롭다’ ‘편안하다’는 느낌이 더 크게 남았습니다. 민망한 얘기지만, 당시 취재차량 운전하시는 형님이 거친 엔진소리를 내어 새떼를 날게 ..

사진이야기 2017.11.03

아파서 찍을 수 있었던 사진

왼쪽 어깨에 석회가 끼었답니다. 나이도 나이지만 어깨를 오래 그리고 많이 사용한 탓이겠지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찍은 사진 두 장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왼쪽 팔을 들 수 없는 지경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지금 연차가 되도록 한 번도 시도한 적 없었던 사진입니다. 좀 다른 사진을 찍었다는 생각인데, 그것이 ‘의지’보다는 ‘망가진 몸’이 시발이었다는 게 좀 민망해집니다. 5일장을 찍기 위해 지방 출장을 떠났습니다. ‘좀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어깨는 계속 아팠고,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데 의욕이 좀 꺾였습니다. 그림이 될 만한 익숙한 장면이 시선을 잡아도 마음도 그다지 동하지 않았지요. 즉시 카메라를 드는 몸에 밴 습관이 몸 상태 때문에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던 겁니다. 사진과 마감에 대한 조바심이 없진 않..

사진이야기 2017.10.14

'에덴미용실'

장돌뱅이처럼 5일장 돌았습니다. 뭘 팔았냐고요? ‘발품’입니다. ^^ 전날 함평장에 이어 전남 신안군의 지도장을 찾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머리에 보자기를 두른 할머니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 할머니를 뒤따라 들어선 ‘에덴미용실’은 읍내에 있는 여러 미용실 중 한 곳입니다. 파마약과 염색약이 스며들 시간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수건을 머리에 감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추석 앞두고 5일장 사진 찍으러 온 경향신문 기잡니다.” 어르신들이 반겨주셨고 미용실 원장님도 “우리 엄마들 잘 찍어주세요”라고 취재를 허락했습니다. 명절 앞이라 새벽 6시부터 손님이 몰려들었지요. 아마도 ‘늙고 아프다’는 얘기 중에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한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젊어 보이려고 (머리)하..

사진이야기 2017.10.02

'눈이 하는 말'

야생동물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본 일이 있습니까? 전남 구례에 있는 야생동물의료센터를 다녀왔습니다.(9월23일자 포토다큐) 부상당하거나 어미 잃은 야생동물이 구조돼 들어와 치료·재활을 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찍어온 사진을 고르다 다시 한 번 야생동물들의 눈을 응시하게 됩니다.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서 야생동물을 찍을 수 있어 마주치는 눈을 바라보기도 했었지요. 사람 사진도, 동물 사진도 눈에다 포커스를 맞춰 찍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동물의 눈이 잘 보이는 사진 몇 장 모았습니다. 문득 ‘저 반짝이는 눈이 무슨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떤 슬픔 같은 게 읽힙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동물들이어서겠지요. 크게 다친 동물들의 폐사율이 높다고 하니, 아마 ..

사진이야기 2017.09.26

낯설게 카메라를 본다

김선우 시인이 쓴 책 ‘김선우의 사물들’(단비)을 읽다가 19번째 사물 ‘사진기’에 대한 글에 유독, 아니 당연히 관심이 쏠렸습니다. 시인의 눈에 사진기란 어떤 것일까. 굳이 ‘사진기’라고 쓴 것은 ‘카메라’라고 했을 때 떠올려지는 다양한 기계를 배제한 채 아날로그적 감성 유지를 위함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탁자 위에 올려둔 사진기 렌즈와 무심하게 눈이 부딪혔나 보다. 커다랗고 둥근 눈, 맑고 깊지만 심중을 헤아릴 수 없는 건조한 광택을 지닌 눈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고……그는 좀체 자신의 표정과 체온을 들키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내 손 안에서 외부를 향해 뜨거운 시선을 던지던 사진기는 손에서 놓여나 탁자 위에 섬처럼 앉은 순간 자신의 내부를 향해 오래도록 면벽한 자의 얼굴로 돌변한다. 그는 손안에서..

사진이야기 2017.09.06

바람으로 오는 가을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하늘은 높아졌습니다. 이런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것은 인간 유전자에 새겨져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맨 처음 누가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난데없이 궁금해집니다. 막상 선선한 바람이 와 닿으니 지난 무더위에 왜 그리 짜증을 냈었는지 무안하고 뻘쭘해지기도 합니다. 연일 비가 내리다 모처럼 파란하늘이 드러나자, 이를 사진에 담기 위해 한강으로 향했습니다. 한강공원으로 내려서니 그새 구름이 하늘을 넓게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구름은 높았고 그 사이로 살짝 보이는 하늘은 파랬습니다. 지난해 기억을 더듬어 공원에 핀 코스모스를 찾았습니다. 어떤 이는 코스모스가 여름부터 피니 가을의 상징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립니다만, 가장 절정인 계절이 가을이니 마땅히 가을꽃이라 해야지요. 높은 하..

사진이야기 2017.08.31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든 혜윤씨

혜윤씨가 눈에 띄었습니다. 묵직한 디지털카메라와 앨범 사진을 펼친 나이 든 사진사 아저씨들 사이에서 가벼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든 젊은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경희대 후기 졸업식장. “폴라로이드 사진 찍으세요~” 혜윤씨가 외쳤습니다. 인파 속에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타나곤 했습니다. 즉석사진을 내밀 때마다 활짝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졸업식장에선 낯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든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뭣이 됐든 가벼운(?) 온라인 기사 하나 쓸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생각보다 인기였습니다. 다시 인화할 수 없는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사진이라는 매력때문일까요. 혜윤씨는 이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전화 통화에서 그녀는 “뭐라도 ..

사진이야기 2017.08.22

드론에 욕해 보셨나요?

1분쯤이라고 체감했지만 그보다 좀 더 길었을 지 모르겠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죄어오는 압박에 심장이 쪼그라들고 아마 피가 좀 말랐을 겁니다. 녹조를 찍기 위해 높이 띄워 올린 드론에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사인이 떴습니다. 조종기에 연결한 휴대폰 어플이 번쩍이며 요란을 떨었습니다. 당황했습니다. “급하면 홈버튼을 눌러라”는 경험자의 조언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올라가는 속도에 비해 하강 속도는 느린데다, 급한 마음이 더해지니 어찔할 줄 몰랐습니다.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드론은 여전히 멀었습니다. 공중에서 곧 터져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긴박함을 이 기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알리고 있었습니다. 조종기 레버를 쥔 손가락에 힘을 잔뜩 주었습니다. 세게 당기면 빨리 내려올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잔여 배터리 5..

사진이야기 2017.08.14

빗방울이 우주다

지금 충청도엔 비가 내립니다. 취재차량 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비가 완전히 멈춰야 시도할 수 있는 사진이지요. 오후 1시가 넘었습니다. 조금 전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는 동안 비가 그쳐 살짝 산책 후 찍어볼까 했더니 다시 비가 내립니다. 아침부터 차에 앉아 차창을 때리는 비를 바라봤습니다. 창에 맺히는 빗방울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참 오랜만입니다. 몸에 수분이 부족하게 되면 물을 보충하듯, 본의 아니게 ‘길게 바라봐야하는 비’는 내게 부족한 '무엇'을 채우려는 것일까 생각합니다. 작은 빗방울들이 주위의 자연을 품었습니다. 빛을 받은 무수한 물방울이 반짝이는 게 ‘별’ 같습니다. 물방울이 부풀어 차창을 타고 흘러내릴 때 긴 꼬리를 끌며 떨어지는 ‘유성우’를 떠올립니다. 유성이 비고 비가 유성인 ..

사진이야기 2017.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