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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다를 매일 보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제주에서 한 달 휴가를 보내게 됐습니다. 근속 휴가에다 연차를 보탰습니다. 쉬고 싶어 긴 휴가를 낸 것이 아니라 써야 할 휴가가 생기니 길게 쉬고 싶어 졌습니다. 제주 구좌읍의 한적한 마을에 독채 민박을 구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길을 걸어 주소지에 닿았을 때는 해거름이었습니다. 짐가방을 풀기도 전에 민박집 지붕 위에 드리운 하늘을 보며 ‘잘 왔구나’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작정한 휴가였지만, 막상 와서 보니 그 ‘아무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몸 가는 대로, 마음 시키는 대로 느슨하고 즉흥적인 하루하루 살아보자는 정도에 합의를 봤습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간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매일 하늘과 바다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

사진이야기 2021.06.08

문 앞에서

'바로 저 문이었구나' 눈앞의 문은 앞서 출장을 경험했던 동료들이 얘기했던 바로 그 문이었습니다. 굳게 닫힌 문 앞에는 기자들이 바짝 붙어 섰습니다. 들었던 말에 의하면 선한 얼굴을 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미국 기자들에게 속아선 안 됩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미소 띤 표정으로 인사를 합니다만 딱 고만큼만 받아서 웃어주되,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닫힌 문 너머에는 한미 양국의 정상들과 참모들이 회담을 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기자들이 먼저 자리를 잡지만, 이곳에서는 회의 중에 잠깐 문이 열리고 기자들이 들어가 취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 출장을 하루 앞두고 한 동료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 전화였지요. 그는 트럼프 시절 문 ..

사진이야기 2021.05.29

컵라면을 먹으며

늦은 밤, 서울공항에 내려 코로나 진단검사를 받았습니다. 면봉이 코 깊숙이 들어오자, 역시나 기침이 났습니다. 예상보다 덜 아팠지만 꾹 참으려다 터진 재채기에 면봉을 든 간호사에 민망하고 미안했습니다. 한미정상회담 하루 전 워싱턴에서도 진단 검사를 받았습니다. 백악관에서 나온 의료진이었습니다. 면봉이 콧구멍으로 들어올 때 반사적으로 긴장을 했지만 서너 차례 간질이다 말더군요. 설마 이게 다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스크를 내려 입을 벌리려는데 검사가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 음성이라고 통보를 하더군요. 제대로 된 검사일까, 의심이 들면서도 같은 검사라면 왜 굳이 면봉을 깊이 쑤셔 넣어 고통스럽게 하는 걸까,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서울공항을 떠난 버스는 집이 아니라 김포의 한 호텔로 ..

사진이야기 2021.05.26

'꽃 한 송이 놓지 못했구나'

'입양의 날'(5월11일)이라고, 양부모 학대에 숨진 정인이가 묻힌 경기 양평의 한 공원묘원으로 향했습니다. 묘원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야 달력에도 없는 '입양의 날'과 '평일 낮'이라는 애매한 시간에 정인이의 묘소를 떠올리는 발상이 지극히 '사진기자적'이라는 생각했지요. 묘원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군데군데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팻말만이 햇볕을 받아 반짝였습니다. 정인이의 자리를 찾아 보도를 통해 익숙한 사진을 가만 들여다보다가, 묘역을 느릿느릿 한 바퀴 돌았다가, 축대 벽에 붙은 나태주 시인의 추모시를 읽다가, 방문객들이 놓고 간 선물을 훑어보다가, 몇 장의 사진을 찍다가, 반가운 인기척을 들었습니다. 60대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쓰레기봉투를 든 채 익숙하게 묘소 주변 오래된 음식물..

사진이야기 2021.05.15

취재 마무리는 기념사진

노년에 한글을 배워 시를 쓰고 시집도 냈다는 ‘칠곡 할매’들은 이 코로나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할매’들의 한글공부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 기사를 읽다 문득 궁금했습니다. 경북 칠곡군을 찾았습니다. 지난해 말 코로나 3차 유행 이후로 ‘할매’들의 배움터는 다시 문을 닫았습니다. 학교 가서 공부하는 즐거움을 감염병에 잃은 어르신들은 “하루하루가 참 지엽다(지겹다)”고 했습니다. “자꾸 이자뿐다(잊어버린다)”는 할매들은 ‘감’을 잃지 않으려고 일상을 삐뚤빼뚤 글로 옮겨도 보고,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두세 쪽이라도 책을 읽었습니다. “배우고 난깨 인제 풀 한 포기도 예사로 안 보이더라고예.” 북삼읍 숭오2리에서 만난 봉재순 할머니의 말입니다. 배움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하고 배웠습니다. 할머니는 공..

사진다큐 2021.04.06

소심한 저의

신문 1면에 여의도 벚꽃 사진이 실렸습니다. 사진 제목은 “여의도 벚꽃대궐…오늘부터 윤중로 보행통제” 뒤 이은 사진설명의 첫 문장은 “서울 여의도 윤중로를 찾은 시민들이…”로 시작합니다. 마지막 바이라인 “강윤중 기자.” 네, 맞아요. 바로 접니다. ‘윤중’이라는 그리 흔하지도 않은 단어가 두세 줄 되는 글에 세 번씩이나 등장하니 좀 낯설다가 민망해지기까지 하더군요. 윤중로를 검색하면 ‘여의서로’로 뜹니다. “여의서로의 일부 구간”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어쨌든 “여의서로를 찾은 시민들이…”로 시작되어야 하는 사진설명이지요. 그럼에도 사람들 입에 붙어 익숙한 ‘여의도 윤중로 벚꽃’이 계속 쓰이고 있는 겁니다. 사실, 사진설명을 쓸 때 멈칫했습니다. 여의서로로 써야할까. 하지만 윤중로로 쓰기로 했습니다. 다들..

사진이야기 2021.03.31

기다림과 행운

취재했던 사진 원본 파일을 다시 들여다볼 때가 있습니다. 가끔의 필요를 대비해 마감한 사진 이외의 사진 파일들을 바로 삭제하지는 않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며 쓸모의 가능성이 거의 사라지고, 메모리카드의 공간이 부족해질 때 오래된 취재사진부터 삭제를 해갑니다. 파일 전량을 보관하는 이들도 있지만, 저는 그 방대한 양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사진 에세이를 쓸 목적으로 원본사진이 든 메모리카드를 다시 열었습니다. 비슷비슷한 한 뭉텅이씩의 사진을 조금 더 꼼꼼하게 보게 됩니다. 현장마감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여유 때문이겠지요. 다시 보이는 사진이 있습니다. 당시 골라내진 않았지만 더 선명하게 찍히거나 좋아 보이는 앵글의 사진이 있고, 찍으려 했던 의도에 더 어울려 보이는 사진도 뒤늦게 눈에 띕니다. 한번 봤..

사진이야기 2021.02.08

복귀 첫날 본 눈물

내근 생활 1년을 하고 다시 현장에 ‘복귀’했습니다. 첫날 일정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를 만들고 판매한 기업의 전직 대표들에 대한 1심 선고였습니다. 재판을 앞두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관련 단체 활동가들이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고, 법원 관계자들이 청사에서 집회 금지 등의 규정을 근거로 회견을 막으면서 승강이가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을 카메라에 담다가 낯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조순미씨. 2019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사진다큐를 하며 그를 만났습니다. 나를 기억할까, 마스크까지 썼으니 알아보겠나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나온 현장의 서먹함에다가 다툼이 벌어진 상황에 인사 할 생각은 못했습니다. ‘기자회견 하면 안 된다’ ‘매번 해오던 거다’ 승강이는 이어졌..

사진이야기 2021.01.15

크리스마스 선물

제주 출장 나흘째 밤입니다. 밤마다 다음날 아침 날씨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해가 떠 줄까. 새해 지면에 게재할(수도 아닐 수도 있는) ‘신년호’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매일 해 뜨기 전 시간쯤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아침 날씨는 연일 ‘흐림’을 예보하고 있지만, 극적으로 하늘이 열리고 여명의 기운이 카메라 안에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지요. 제주에 오기 전 주간 날씨예보를 체크했고, 수요일(어제) 아침에는 원하는 느낌의 사진을 찍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정작 당일 아침엔 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뭐, 그런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출장 일정을 연장했고, 코로나에 들뜰 일 없는 크리스마스이브를 출장지에서 홀로 보내고 있습니다. 꼽아보니 송·신년호 사진을 찍기 위한 출장을 꽤 오랜만..

사진이야기 2020.12.24

마라도나를 위한 작은 애도

10년 전 2010남아공월드컵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일찌감치(아마도 경기시작 10시간 전쯤ㅎㅎ)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좋은 사진취재석을 잡으려면 한발이라도 먼저 도착해야 합니다. 선착순으로 자리를 고를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내내 서 있는 건 아니고요. 모노포드나 가방 등 자신의 물건으로 줄을 세워놓습니다. 나쁘지 않은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물론이고 메시, 이과인, 테베스 같은 유명 선수들이 저의 카메라 앞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데 그 현장성이 문득 사진기자의 행복이라 생각했습니다. 카메라는 대체로 축구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선수들의 다툼에 주목합니다. 메시가 공을 잡는 순간 손에는 더 힘이 들어가고 렌즈는 바짝 긴장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

사진이야기 2020.12.02

B컷이란 무엇인가

광화문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한글날을 앞둔 8일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어학당 교원들이 노동환경 개선과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진기자 선후배들과 주먹을 부딪치며 인사를 나누는데 부장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 마감할 ‘B컷’이 없다." 토요일자 지면 고정코너 ‘금주의 B컷’에 쓸 만한 사진이 없다는 얘깁니다. 추석 연휴 뒤라 사진이 부족했으리라 짐작했습니다. 문자가 아닌 육성 전화는 어떤 절실함이 배어있기 마련입니다. 이는 ‘현장에서 마감용 B컷을 챙겨보라’는 완곡한 지시였지요. ‘B컷이란 무엇인가?’ 솟는 질문을 눌러놓고, 바삐 움직였습니다. 뭐가 되든 찍어야했기 때문입니다. ‘B컷을 찍는다는 건 또 무엇인가?’ 때마침 발언자로 나선 한 교원의 간결..

사진이야기 2020.10.11

'어쩔 뻔 했나...'

‘그 순간을 그냥 지나쳤다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5일장을 취재했습니다. 여러 차례 찍었던 현장이지만, 그런 이유로 부담입니다. 보던 사진이 아닌 것을 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 추석은 좀 특별했습니다. 코로나로 고향방문을 자제해달라는 게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었지요. ‘코로나 시대, 명절을 앞둔 5일장’이 취재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느낌은 알겠는데 사진으로 표현이 잘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예년의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진에 그저 사진설명으로 우길 수밖에 없는 상황도 염두에 두었습니다. 지난달 28일 전남 구례군에서는 구례5일장이 열렸습니다. 새벽에 장터를 한 바퀴 돌고 숙소에 들어왔다가 다시 숙소를 나서는 길이었습니다. 취재차량이 숙소 앞 삼거리에서..

사진이야기 2020.10.03

10년 전 눈물사진 한 장이...

사진 한 장을 보며 10년 전 요맘때를 떠올립니다. 새삼스럽게 지금이 ‘2020년 6월’이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기억을 더듬다 세월의 속도를 실감합니다. 사진은 10년 단위 같은 날 경향신문 기사를 살펴보는 모바일팀의 ‘오래 전 이날’이란 코너에 실렸습니다. 사진에는 짧은 머리의 청년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상황을 몰랐다면 눈물을 닦아주고 싶을 만큼 처절하게 우는 모습입니다. 정대세. 북한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한 그는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펑펑 울었습니다. 10년 전 저는 남아공에 있었습니다. 월드컵 출장 중이었지요. 정대세의 눈물은 2010년 6월16일 요하네스버그에서 펼쳐진 조별경기 ‘북한-브라질’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인민 루니’ ‘인민 호날두’라 불리는 청년의 울음에는 월드컵 출전의 감동 이..

사진이야기 2020.06.23

'오월 어머니들'

일주일간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국내 출장치고는 길었습니다. 내근에서 잠시 벗어났습니다. 현장으로 갔다왔더니 이렇게 글이 남네요. 현장 없이는 이 블로그도 존재할 수 없는 겁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부서의 사진기획 회의가 열렸습니다. 저도 기획 아이템을 하나 냈습니다. 아이템을 낸 자가 취재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낸 자와 일하는 자가 따로인 경우도 드뭅니다. 출장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의지의 근거는 내근의 갑갑함이었습니다. 출장을 떠났습니다. 5월18일자에 한 면이 배정됐고, 무엇이 되었든 채워야했습니다. 내근을 벗어나는 자유도 잠시, 어찌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찾아듭니다. 그게 현장이지요. 오랜만에 경험하는 설렘 같은 긴장도 따라붙습니다. 정해진 일정은 5·18유족회 사무실을 찾..

사진이야기 2020.05.21

재갈을 물다

두 달이 지나간 얘기를 꺼냅니다. ‘왜 갑자기?’라고 물으신다면.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누가 고통을 많이 받는가, 누가 더 많이 아프고, 힘든가”를 물어야 한다는 김승섭 교수의 인터뷰 문장에서 한 번, 노동절을 지나면서 또 한 번 자연스럽게 떠오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진을 한 장 올립니다. 누군지도, 어디에 소속이 됐는지도 알 수 없는 두 인물의 사진입니다. 지난해 11월 지면에 게재된 사진이지만, 지금 이 블로그에 다시 쓰면서 ‘이제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는 사진인가?’하고 묻게 됩니다. 무력한 물음이자, 나름의 시위입니다. 지난 2월 어느 날 두툼한 문서가 사진부장 책상 위에 놓인 것을 지나치듯 봤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진 강의를 한 적이 있는 부서장에게..

사진이야기 202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