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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7.03.06 "뭐 찍어요?" (2)
  2. 2016.11.17 100만 촛불의 날에
  3. 2014.08.29 소설을 품은 사진
  4. 2014.08.17 그건 위로였을까? (2)
  5. 2014.08.14 '4시간 16분 동안의 사진전'
  6. 2014.04.11 B컷 그러나 내겐 베스트 컷 (4)

회사에서 만난 타 부서 선배들이 제게 다가와 묻습니다. “다친데 없냐?”.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했더니, 주말 소위 태극기 집회라 불리는 친박 단체집회에서 제가 겪은 작은 해프닝을 전해 들었던 모양입니다. 제 옆자리 이야기꾼’ S선배의 입을 거쳐 나간 것이라 짐작합니다. 두어 다리 건너간 얘기는 극적이고 긴박해지고 포장되고 과장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지난달 25일 촛불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장비를 챙겨 회사를 나섰습니다. 가는 길에 “30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하는 친박 단체 집회를 잠깐 찍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태극기를 든 어르신들이 하나둘 스쳐갔습니다. 집회가 한창인 서울광장 일대는 붐볐습니다.

 

광화문광장 쪽으로 향하며 적당한 위치를 찾아 섰습니다. 무대에서는 제법 거리가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드는 순간 60대 전후쯤 보이는 아주머니가 뭐 찍어요?”하고 묻습니다. 뭐 딱히 궁금해 묻는 것은 아니었지요. “집회 사진이요” “왜 찍으세요?” “취재하는 겁니다. 경향신문 기잡니다.” 두세 명의 비슷한 연배의 아주머니들이 제 주위에 둘러섭니다. 잘 걸렸다는 듯이 말이지요.

 

 

살짝 위기감을 느낀 저는 아버지를 팔았습니다. “아버지도 만나겸 해서...” 상황 모면용 내지는 짐짓 여유를 부리는 말처럼 뱉은 겁니다. 사실 지난주 아버지께서 친구분들과 처음으로 이 집회에 참가하셨다는 것을 둘러서 듣게 되었지요. 여하튼 이날 또 나오셨다면 우연히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있었던 터라 그런 말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이봐, 여기 가방에 노란리본 달았네.” 몸에 태극기를 지니지 않아 의심했던 저를 이제 확신에 차 몰아붙입니다. “노란리본 단 사람이 여기서 무슨 사진을 찍어?” “(앞쪽 빈 공간을 가리키며) 여기 빈 데 찍어서 몇 명 안 왔다고 쓰겠지.” 앵글지도까지 하십니다. 회사를 나서며 노트북 가방에 달린 노란리본 뱃지를 뗄까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건 좀 비겁해 보였지요. 설마 했는데 그 뱃지 때문에 취재는 불가능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떼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니겠습니까. 소란에 시선들이 꽂혀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노란리본 달면 안 됩니까?”라는 말을 소극적으로 던진 채 자리를 벗어나려다, ‘도망치듯 사라지면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울까싶어, 태연한 척 그 자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 몇 컷 찍으며 천천히 걸어서 광화문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자식을 키우고 손주 재롱을 볼 분들이 어떻게 노란리본을 적대할 수 있나?’ 또 큰 위협은 아니었지만, ‘만약 아버지가 거친 공격을 당하는 나를 보셨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따라붙었습니다. 물론 그날 아버지께서 그곳에 계셨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 사진가는 뭘 찍냐?”는 물음에 태극기를 전문으로 찍는 사람이라 답 해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빤한 집회현장에서 기자에게 뭘 찍냐?’ '왜 찍냐?'고 따져 묻고 취재를 방해하는 비정상의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그 수모를 견디며 취재하는 모든 동료 기자들에 박수를 보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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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100만 촛불이 일렁이던 날에 촛불 아닌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집회에 참여한 셈이지만 일이었지요. 최대 100만이 예상된다는 뉴스에 나름 마음의 준비를 했건만 그 규모는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서울광장에서 광화문광장까지 걸어가는데 1시간 반쯤 걸렸습니다. 양 어깨에 카메라를 걸고 노트북 가방을 메고 3단 사다리를 들고 인파 속에서 밀고 밀리며 다녔습니다.

 

저기쯤 담고 싶은 장면이 보여도 이동이 불가능할 땐 안달이 났습니다. 엄청난 인파에 통신이 두절되니 계획했던 시간대별 사진마감도 불가능했습니다. 광장을 벗어나야 겨우 통화와 사진전송이 가능했지만 그 이동 시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기록적 인파 때문에 사진부에서만 4명이 투입됐는데 그 인파 때문에 일이 안 된다고 툴툴거렸습니다. 역사적 현장의 기록이라는 거룩한 사명도 지금 당장 이동의 불편함과 마감에 대한 강박 앞에 무력해져 버렸습니다


 

 

 

늘 그러하듯 지나고 생각하니, 안달해봐야 그 순간에 해결될 것도 없지요. 좀 느긋하게 현장을 느끼고 즐기듯 취재했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테지요. 이건 뭐, 병이랄 수밖에 없습니다. 카메라를 드는 순간에 따라 일어나는 욕심이 현장에 있지만 현장에서 저만치 물어나 버리게 하는 것이지요.

 

회사로 돌아와 장비들을 벗어놓자 조바심은 달아납니다. 카메라를 놓고 나서야 촛불의 시간을 복기할 수 있었습니다. 가을밤을 수놓은 100만 시민의 촛불은 뭉클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내려오라외치는 사람들의 외침은 단호했습니다. 이심전심으로 나누는 참가자들의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분노해 모였지만 시민들의 표정들은 대체로 밝았습니다. 축제같은 집회가 분노를 표현하는 가장 진화된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광장에서 마음 졸이던 자는 저와 집회 참가자들의 청와대 앞 진출을 두려워한 '경찰 간부' 뿐이었겠지 싶었습니다. 사다리를 밟고 선 제 옆을 지나며 경향신문 응원합니다라는 격려를 건네는 분들이 기억나 훈훈해 졌습니다. 환자가 발생해 구급차가 들어오는데 인파가 홍해처럼 갈라지던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8년 전 광우병 촛불MB는 청와대 뒷산에서 이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청와대에서 광장의 외침이 안 들릴 수 없고, 촛불의 물결이 안 보일 수 없지요. 박 대통령도 듣고 보았을 테지요. 하지만 광장을 가득 메운 분노의 촛불을 볼만한 장관으로 받아들이고, 하야 촉구의 행진을 흥겨운 축제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우울하고 씁쓸한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대통령과 그 주변에 상식과 상상을 초월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자기합리화의 귀재 Q’정신승리법을 구사하고, '우주의 기운'에 기대 유체이탈을 도모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암울한 시대에 그나마 희망을 보는 것은 허무맹랑한 우주의 기운을 압도하는 또렷한 사람들의 기운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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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가끔 어떤 장면은 서둘러 셔터를 눌러라명령을 합니다. 몸과 마음이 급해집니다. 흘러가버려 다시 담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 아쉬움이 생각보다 짙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자리 잡고 명령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일단 찍고 본다는 게 더 정직한 표현이겠지요. 경험적으로 이렇게 얻는 사진들은 신문에 쓸 사진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어디 쓰냐구요? ㅋㅋ블로그에 씁니다. ^^

 

찍은 뒤에 무엇이 찍게 했는지, 왜 찍었는지를 다시 생각합니다. 명령은 장면을 기록하는 일에 익숙해진 몸의 명령인지, 움찔하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가슴의 요구인지도 답하기 어렵습니다. 사진을 노트북에 띄워놓고 다시 추궁합니다. 왜 찍었냐고. 찍은 당시의 상황을 세밀하게 더듬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모니터 위에서 보는 사진과 기억 속 현장 상황은 간극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찍을 당시의 절실함이 희미해진 곳에서 사진은 심심하고도 담담한 얼굴을 하고 저와 마주 봅니다. 사진이 무어라 답을 할 때까지 바라봅니다. 그러다보면 사진은 단어나 문장의 형태로 하나씩 말을 던집니다. 얘기를 풀어내는 것은 이미지인지, 저인지, 억지인지도 헷갈립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행진해 서울 광화문광장에 도착한 대학생과 교수, 시민들이 청와대 인근 유가족 농성장을 향해 걸으려다 경찰과 차벽에 막힌 상황. 돌아갈 길을 찾아 광장을 걸어 나오는 행진 참가자들의 모습에 알록달록 분수쑈가 한 앵글에 있습니다. 간절한 발걸음의 묵직함과 시원한 소리와 함께 흩어지는 물입자의 가벼움이 조화롭지 않습니다. ‘상황 파악도 못하는 분수.’  사진을 찍는 바로 그때 제 등 뒤 시민 동조 단식농성장에서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었고, 때마침 통기타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지요. 분수는 노래 박자에 맞춰 물을 뿜는 듯 했습니다. ‘분위기 좀 아는 분수’··· 뭐 이런 얘기들이 들립니다.

 

한 장의 사진이 앵글 안팎으로 많은 것을 품고 있지만 다 보여주지는 않지요. 유추해 내기 쉽지 않지만 적게 보여주고 많은 걸 상상케 하는 것이 사진이라는 매체의 매력이지 싶습니다. 생각의 깊이와 글재주가 모자라 이 정도의 얘기만 들렸고 고만큼만 썼습니다.

 

소설가 공지영 씨는 신문의 단신기사를 보고 장편소설 도가니를 썼다지요. 누군가는 이 장면을 보고 장편소설을 써낼 수도 있을 겁니다. 대학생, 종교인, 예술가, 정치인, 그냥 시민들, 기자, 심지어 이순신 장군까지. 등장인물들이 아주 짱짱하기 때문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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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미사 POOL 취재(취재인원이 많고 장소가 협소할 경우 구역이나 일정을 나눠 취재한 뒤 그 사진 또는 기사를 공유하는 것)에 제 명단이 올랐을 때 그리 반갑지 않았습니다. 이른 토요일 아침에 100만 명 운집이 예상된다는 곳에 그것도 일하러 가야하는 것은 천주교인도 아닌 제게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요.

 

시복식을 며칠 앞두고 가톨릭 신자인 한 선배는 어디서 들었는지 저의 POOL 취재를 아주 부러워했습니다. ‘어디서 봐야하나, 볼 수는 있을까걱정하더군요. 교인에게는 먼발치에서 점처럼 지나가는 교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겠지요. 이런 주변 반응에 조금 자극을 받아 비교적 가까이서 교황을 볼 수 있는 것을 복이라 생각키로 했습니다.

 

시복미사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의 인파는 엄청났습니다. 취재 비표를 받아들고 자원봉사자의 안내로 미리 정해져 있는 좌측 취재단상에 섰습니다. 미사가 집전되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취재석인데 제단까지는 까마득해 보였습니다. 멀 뿐 아니라 제단의 네 기둥이 앵글을 방해했습니다. 카메라 앵글 고민 없이 단상을 만들었다며 투덜댔지요.

 

교황을 근거리에서 찍을 수 있는 근접완장을 담당 공무원이 나눠줬습니다. 좌우 단상 POOL 기자 중 내신 사진기자에게 배정된 완장은 석 장. 이도 미리 정해졌던 것인지 제가 있던 좌측 단상의 선배 두 분이 완장을 차고 인파 사이로 제단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잠시 후 길 건너 우측 단상에서 제단 접근이 불가능하다며 우측 단상 몫의 남은 근접 완장이 극적으로 제게 왔습니다. 원래 저의 몫으로 예정됐던 것처럼. 투덜댐에 대한 하늘의 답이었던 걸까요 ^^


 

교황청 직원의 지시 같은 안내에 따라 교황의 이동 경로에 따른 취재 위치에 섰습니다. 무개차를 탄 교황이 다가왔습니다. 교인과 시민들이 일제히 비바 파파를 연호했고, 교황은 이에 답하듯 좌우를 공평하게 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몸을 숙여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아이들에겐 입을 맞추었습니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늘 보던 장면인데도 바로 그 현장의 느낌은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지요. 3자적 시각으로 기록되어야 하는 일과 당사자가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에 빠져드는 상황 그 중간 어느 지점에 제가 있었습니다. 교황의 얼굴에 포커스를 맞추며 계속 그 표정을 지켜보았습니다. 누군가의 표정이 평화롭다고 말한다면 바로 이런 표정일 것이며 이제껏 누군가의 표정을 그리 표현했다면 그것은 거짓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감동이, 아니 감동이라 단순히 표현하기엔 좀 아쉬운 무언가가 가슴을 뻐근하게 눌러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막대한 부 곁에서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고 하셨다지요. 이 문장에서 한국을 서둘러 찾은 이유가 읽혔습니다.

 

회사에 들어와 교황의 사진을 골라내면서 다시 한 번 울림이 있었습니다. 교황의 행보와 메시지가 우리 사회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사진에 담으며 느낀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는 무엇의 정체는 제가 받은 위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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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함께 슬퍼했고 함께 분노했던 세월호가 잊히고 있습니다

  

사진가들이 나섰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를 사진으로 기록해 온 사진가들입니다. 자신의 사진 한 장을 들고 ‘4시간 16동안 서울 여의도를 출발해 광화문 광장까지 걸었습니다. ‘4시간 16분 동안의 전시라는 소위 걷는 사진전이었지요.

 

 

기록되어 기억되는 것이 사진의 본질입니다만, 기억에서 잊히는 세월호 앞에서 새삼 우리는 무엇을 찍는가’, ‘왜 사진을 찍는가’,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고민이 사진가들을 거리에 세웠던 것이지요. 사진기자인 저 역시 이런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진가들은 현수막 천에 출력한 사진을 각목에 고정해 어깨에 얹고 걸었습니다. 전시 소개글에 사진가들이 각자의 십자가인 사진을 들고 걷는 것이라는 표현이 참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카메라를 들고 취재를 겸해 걷는 전시의 일부를 함께 했습니다.


 

짧은 구간을 걸으며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세월호 참사 뒤 진도와 안산에서 다투어 취재하던 사진기자 동료들을 요즘 세월호 관련 취재 현장에서 잘 볼 수 없습니다. 사고 뒤 공분했던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다수의 언론의 태도는 바뀌었습니다. ‘세월호만 쓸 수 없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사건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비리와 부패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언론은 왜 존재하는가라고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월호로 드러난 문제들은 여와 야,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풀어야 할 것들이 아닌가요. 무엇보다 '내가 찍은 세월호 관련 사진은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를 고통스럽게 물어야 했습니다.


 

카메라로 대상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에 직접 행동(?)’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입니다. 50여 명의 사진가들은 더위 속에 4시간 16분을 걸으며 특별한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그저 사진만 들었을 뿐인데 어떤 외침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더군요.

 

가장 짧지만 가장 오래 기억될 사진전'임이 분명했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4시간 16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시간은 어쩌면 294명을 살리고 10명을 찾아내기에 충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 사진전 소개 글 중에서-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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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잘 알려진 전시기획자가 "신문에는 B컷 쓰고, 블로그에는 A컷 쓴다"는 말을 하더군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입니다. 가끔 제가 베스트라고 생각하는 컷이 배제되고 그저 평이해 보이는 사진이 지면에 실릴 때 조금 서운해 집니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나' 싶지요. 

 

매년 반복되는 현장에서 조금 다른 사진을 찍으려는 노력은 사진기자의 존재 이유중 하나입니다. 어제 서울시에서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에 봄맞이 물세척을 실시했습니다. 이순신 장군 세척을 보다가 뒤로 보이는 세종대왕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세종대왕의 시선에서 이순신 장군을 보면 재밌겠다, 싶었습니다. 세종대왕 상 뒤로 걸어가며 제목도 생각했습니다. "이 장군, 시원하시겠소" "내 다 보고 있다" 등등. ^^

뒷모습이라서 더 미소를 머금게 하는 것 같았지요. 표정을 상상해 볼 수도 있구요. 사진을 보고 고르는 시선이 모두 같을 순 없는 건 당연합니다만, 건조한 신문사진들 사이에서 이런 류의 사진의 역할이 분명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B컷이 됐으나 제겐 A컷인 사진이지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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