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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로스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습니다. ‘반려동물의 부재(죽음 또는 가출)’ 정도로 짐작했습니다만, 그리 간단한 게 아니더군요. ‘펫로스증후군이 흔한 병리적 현상이란 걸 알게 됐지요. 개인적으로 개나 고양이를 좋아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키울 계획도 없어 애초에 제 관심 영역으로 들어올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펫로스기사와 관련된 사진을 찍기 위해 병들어 입원했거나 죽음을 앞둔 반려동물을 찍기 위해 분당의 한 동물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주인이 있는 반려동물을 함부로 찍을 수 있을까싶었지요. 병원장이 취재에 앞서 주의사항을 말할 때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전이든 사후든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야 사진을 찍고 쓸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막상 사진을 찍기 어려운 상황이 되니 속으로 투덜대지요.세상이 이리 변했나. 이건 좀 심하지 않나.’

 

병원을 둘러보다 CT실에서 검사를 받고 있는 대형견을 발견했습니다. '이거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지 의료진에 물었으나 단박에 거절당했습니다. 기계 속으로 들어가는 반려견의 머리(얼굴)가 보이지 않았기에 이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했던 거죠.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은 의료진의 표정에서 설득의 의지는 꺾였습니다.

 

응급중환자의료센터에는 병들어 입원한 크고 작은 반려견들이 층층이 쌓인 병실 케이지에 들어있었습니다. ‘중환자라는 말이 반려동물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생경했습니다. 대상이 동물일 뿐 의료기기나 약제, 의료진 모두 사람에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단 찍고 쓸 사진에 한해 허락을 받으면 되겠다 생각습니다. 

 

막상 입원한 반려견의 모습을 찍다보니 병든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가 좀 그랬습니다. 기사의 취지에 가장 가까운 사진일 텐데도 말이지요. ‘동물권을 생각하는 시대에 꼭 그런 사진을 써야했나라는 반응을 살짝 의식했습니다. 쉽게 허락하지 않을 보호자의 반응도 짐작했습니다. 병원 측의 난처한 입장도 있고 말이지요.

 

  

그럼 모자이크 처리를 해볼까?’ 동물의 얼굴 모자이크라...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림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물의 얼굴이나 눈에 모자이크 처리를 한 것을 본 적이 없고,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저 재밌는 상상이었다며 넘겨버렸지요.

 

  + 펫로스 이미지 컷 위해 동원된 동물병원 반려견 정우.

 

결국 이래저래 불편하지 않은 사진게재를 위해 연출된 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동물병원에서 키우는 반려견 동건이와 정우가 모델이 되었습니다. 멋진 배우의 이름을 딴 개들이 이미지 사진을 위해 연기(?)를 한 것이지요. 미안했지만 최선이었습니다.    

 

   +병원 반려견 동건이.

 

새삼스럽지만, 반려동물 사진 찍기도 조심스러워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동물 초상권에 대한 논의가 떠들썩하게 일어날 지도 모르겠습니다. 궁금해서 동물 초상권을 검색하니, <동물 초상권까지 보호하는 영국>이라는 한 시사주간지 기사가 시선을 붙듭니다. 한 남성이 말에게 성적 학대를 가했다가 징역 3년 선고받았고, 영국언론은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피해 말 사진의 눈 부분에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는 겁니다.

 

그저 먼 나라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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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날씨사진은 사진기자들이 일상적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보통 날씨스케치라 부릅니다.

 

스케치라 하여 다소 가볍게 들리지만 지면 내에서는 비중인 큰 사진거리입니다. 날씨는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관심사 중 하나지요. 대게 날씨스케치는 덥다’ ‘춥다처럼 몸으로 느끼는 것을 시각화하거나, ‘’ ‘같이 눈에 보이는 것에 적절한 의미를 담아 표현합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폭염도 아주 더운 날씨이지만 기록적이라는 수식이 붙으며 사건과 사고의 영역입니다. 재난이지요. 폭염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은 폭염스케치라는 취재명으로 사진부기자의 주요 일정이 되었습니다.

 

보통 일간지에서 더위스케치는 늦봄이면 시작됩니다. 광화문광장 분수대나 여의도 물빛광장이 대체로 그 시작입니다.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 한강다리 그늘 속 시민들, 한강공원 수영장·계곡·해수욕장 개장과 절정의 인파, 강과 호수의 녹조 등을 번갈아 씁니다. 더위가 채 가시기 전 입추즈음해서 가을의 단서를 서둘러 찾습니다. 더위가 아직 남아있을 때 성큼 다가온 가을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게재되곤 합니다.

 

관측 이래 최고의 폭염이라는 이 대형사건은 예년과 달리 매일 스케치에 대한 강박을 불렀습니다. 유례없이 길어지는 폭염 앞에서, 기존 스케치 정보에 새로운 걸 보태지만 소재는 고갈되지요. “더 이상 찍을 게 없다는 푸념을 선후배들의 SNS에서 종종 읽습니다. 늦봄부터 시작한 더위스케치 아니겠습니까. 상상력과 창의력이 한계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더위에 상상과 창의가 제 구실을 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최근 새로운 폭염사진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올여름 히트상품처럼 등장한 열화상카메라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기자들 사이에 장비에 대한 정보는 어렵지 않게 공유됩니다. “사진 좋더라. 그 열화상카메라 어디서, 얼마주고 샀니?”라는 물음에 몰라라고 할 야박한 기자는 없지요. 폭염에 더운 모습이나,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모습 대신 더위 그 자체, 뜨거움의 정도를 색으로 보여주려는 시도가 일단은 신선해 보입니다. 산업용으로 쓰이던 장비가 언론사 사진부의 기본 장비로 편입된 것이지요.

 

 

   +열화상사진 폭염취재 전담 이준헌 기자

 

불볕더위에 에어컨 바람 쐬기도 어려운 취약 계층과 땡볕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을 떠올리면 짜증도 호사라는 생각이 드는 날들입니다. 사진기자들 역시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는 긴급재난문자를 들여다보고도 가장 더운 시간, 가장 뜨거운 곳에서 축축한 셔터를 누릅니다. 먹고사니즘의 엄숙함을 새삼 느낍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위로의 말조차 약발이 떨어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폭염 잘 견디시길 바랍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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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달 전 술자리에서 좋아하는 후배 사진기자가 술기운(?)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형님 사진은 늘 그대로에요.”

이 새끼 주글래?”

 

웃음 띤 채 말하기에 장난처럼 받았지요. 늦은 밤 형님,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고, 그저 웃자고 했던 말이 아니었음을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친하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평소 느낌을 말한 것일 테지요.

 

며칠 전엔 한 친구가 제 사진에는 저만의 색이 있다고 하더군요. ‘너다운 사진’ ‘너니까 찍는 사진같은 평가도 덧붙었습니다. 과찬이지요. ‘내 사진에 정말 그런 게 있기는 할까’ 고마웠고 한편 부끄러웠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칭찬과 돌직구가 엉켰습니다. 익숙한 시선과 몸에 새겨진 버릇이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반복적으로 찍어댔겠지요. 고민하는 척(그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하다, “이쯤하자며 누구나 찍는 고만큼에 타협해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상반돼 보이는 평가가 결국 다르지 않은 말이라 느껴집니다. 앞의 평을 이어붙이면 늘지 않아 머물러 있는 사진이 나의 색이다라는 서글픈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사진을 좀 더 까다롭게 읽는 사진기자나 사진가, 소위 업자들의 말이 더 아프게 남습니다.

 

 

나아지지 않는 사진에 대해 생각이 많은 요즘입니다. 생각만큼 되지도 않는 사진을 반복해 찍으며 짜증을 냅니다. 어느 날 조바심과 낙담 사이에서 카메라를 바꿔들다가 셔터가 그냥 눌렸습니다. 사진 마감을 하다 그렇게 눌린 사진에 시선이 멎었습니다. 버릴 사진을 버리지 못하고 남겼습니다. 찍은 것도 찍지 않은 것도 아니며, 어디 쓸데도 없는 사진에 묘한 끌림이 있었지요. 이 말도 안 되는 사진이 답답함을 토닥입니다. 이 맥락 없는 위로는 뭡니까?  

 

 

사진이 안 돼서 몹시 짜증이 났던 2018년 폭염 속 어느 날의 기록으로 남깁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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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조금 열린 차창으로 케냐 초원의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이게 초원의 냄새겠지. 바람을 한껏 들이마셨다. 멀리 초원 끝에 걸린 구름과 그 사이에 내민 저물녘의 태양, 붉어지는 하늘색에 압도되었다. “참 좋다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일 예상치 못했던 일로 가슴을 졸였던 첫 일정이 저 아름다운 석양과 함께 마무리 되고 있다는 것에 나름 안도했다. 그때 운전하던 사이먼이 오른쪽을 가리켰다. 초원의 웃자란 나무사이로 야생 얼룩말 무리가 지나고 있었다. “우와~” 환호했다. ‘이건 아프리카의 축복이야.’

 

  +해질녘 케냐 초원

 

시야를 가리지 않는 초원 위로 펼쳐진 하늘은 가늠할 수 없이 넓었다. 어디쯤인지 저 먼 곳의 하늘은 맑았고 일행이 달리던 거친 길 위의 하늘은 구름이 짙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주위가 서둘러 어두워져갔다. 전날에 이어 다시 비를 머금은 진흙탕 길은 얼음판처럼 미끄러웠다. 핸들을 움직이는 사이먼의 손이 분주하고 불안했다. 길 앞쪽에 비스듬하게 길을 막은 채 멈춘 버스가 헛바퀴를 돌리고 있었고 몇몇 마사이 승객들이 버스를 밀었다.

 

해가 졌고 갈 길은 멀었다. 사이먼은 가로막은 버스와 길 옆 깊은 도랑 사이 공간을 통과하려차를 몰았다. 아슬아슬 지나던 차는 미끄러지며 버스와 척 달라붙었다. 두 차량을 떼어놓으려 사이먼이 엑셀을 밟았고 마사이 남성 서너 명이 차를 밀어냈다. 왼쪽 앞바퀴가 급기야 깊은 진창에 빠지고 말았다. 장정들 여럿이 달라붙어 차를 밀었지만, 흙탕물만 잔뜩 뒤집어썼다. 주위는 깜깜했고 빗발은 굵어졌다. 난감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조난을 당한 것이다.

 

                  +조난 지점

 

   +이날 세번째 빠진 차량

 

저물녘 하늘이 유난히 좋더니만아프리카의 축복 운운하며 까불었더니

 

헛바퀴를 돌리던 버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승객을 태운 뒤 유유히 떠났다. 안내와 통역을 하던 마사이 여성 셀리나가 “(버스 탔던) 마사이가 집에 가서 사고소식을 전하고 도울 방법을 찾을 것이라 했다. ‘버스는 이 험한 길을 따라 언제 도착할 것이며, 그들이 제대로 연락을 취해 우리를 구할 것인가.’ ‘연락을 취하면 또 얼마나 걸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막막했다. 불신과 불안이 가득 차올랐다.

 

비에 젖은 몸은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이 밤을 여기서 꼬박 셀 수도 있겠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무엇보다 다음날 일정이 어그러질 거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셀리나는 친구가 가까운 마을의 트랙터 가이를 불렀다고 했다. ‘부를 것이라는 건 지, ‘불렀다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아듣지 못해 시간을 두고 몇 번을 확인했다. 그저 트랙터 가이가 올 것이라는 말에 희망을 걸 수밖에. “가까운 마을이라고 했지만, 마사이의 화법에서 가깝다라는 거리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진짜 와주기는 할까.’

 

빗소리는 거칠었고 주위는 칠흑이다. 보기 좋던 초원도 어둠에 싸이자 그저 막막한 어둠일 뿐이었다. 사방으로 작은 빛도, 인가의 단서도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이 일었다. 우리는 자연 앞에서 철저하게 무기력했다. 휴대폰의 손전등을 켜서 길을 향해서 차량 앞 유리창에 걸쳐뒀다. 누구라도 이 불빛을 조난의 신호로 봐주길 바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였다.

 

   +휴대폰의 손전등을 길을 향해서 차량 앞 유리에 올려뒀다.

 

철저하고 완벽하게 검은 밤이었다. 이날 진창에 세 번째 차량을 빠뜨린 기사 아저씨는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웃었다. 그러고는 하쿠나~마타~~(스와힐리어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뜻)”를 읊조리며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이 양반이 정말.’ 속 타는 출장자들의 마음도 모르고 유쾌하고 여유롭기 짝이 없는 안내자 셀리나는 차 안에서 콧노래까지 불렀다. ‘지금 노래가 나오나?’

 

   +두번째 빠진 진창에서 차를 밀어올린 뒤.

 

  +셀리나와 사이먼

 

셀리나는 휴대폰을 붙들고 친구와 현지어로 긴 통화를 했다. ‘지금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겠지싶으면서도 통화중에 짓는 표정이나 목소리, 웃음으로 짐작했다. ‘너 잡담하고 있니?’ 긴 통화 끝에 차에서 내린 그녀가 제안했다. “트랙터 가이가 올 때까지 인근 마사이 집에 가 있자는 것. 인가를 추정할 만한 불빛도 흔적도 없는데 휴대폰 손전등을 밝힌 셀리나가 앞장섰다. “트랙터가 곧 온다면서 왜 가는가?” 격앙된 어조가 빠진 채 건조하게 영어로 던져진 질문은 그냥 묻혔다. ‘마사이 가정에서 하루를 묵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누군지도, 어딘지도 모르는 마사이 가정으로 무작정 찾아가는 것이었다. 길 같지 않은 길을 비추며 셀리나는 초원을 향해 걸었다. 불안과 의심으로 신경이 곤두섰지만 화를 낼 처지도 못됐다. 전적으로 그녀에게 의지할 수밖에.

 

  +마사이 가정 찾아가는 길

 

 마법처럼 마사이의 집이 나타났고, 셀리나가 가까운 이웃집처럼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렸다. “수바~” 인사하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마사이 가족이 일행을 맞아주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늘 해오던 것처럼 당연하게반겼다. 작고 낡은 TV가 틀어져 있었고, 벽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두어 줄 장식처럼 걸렸다. 작은 화롯불 앞에서 떨리던 몸을 녹였다. 긴장도 의심도 따라서 녹는 듯했다. 세계 어디서든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의 방문은 큰 구경거리다. 잠들지 않은 서너 명의 아이들이 방의 커튼을 젖히고 신기한 듯 내다봤다.

 

 딱히 할 말도 찾지 못한 채 작은 거실에 앉아있는 동안, 막막함 속에서도 이 마사이 가족의 환대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문 밖을 내다보고 있던 사이먼이 멀리서 트랙터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가만히 귀기울여보니 깊은 어둠 속, 먼 곳에서부터 희미한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희망의 소리를 확인해서인지, 그 순간 마사이의 환대가 한층 더 뜨거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셀리나는 밤에 불쑥 찾아든 낯선 사람들을 집 안으로 들이고 대접하는 마사이의 따뜻한 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진창에서 우리를 구해 줄 트랙터 가이는 몸을 사리지 않고 진흙탕에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 조난 차량에 사슬을 걸었다. 믿음직했고 눈물겹게 고마웠다. ‘뭐지?’ 지금 이 구원의 순간에 구원자와 사이먼의 표정이 어두웠다. 트랙터와 조난 차량에 연결할 쇠사슬 고리의 사이즈가 맞지 않았던 것. ‘결국 여기서 아침을 맞아야 하는가?’ 초면에 막중한 미션을 떠안은 두 파트너는 끙끙대며 차량 아래 어딘가에 고리를 고정했다. 트랙터가 굉음을 내며 끌었다. 차는 그대로 둔 채 쇠사슬만 떨어져 나갔다. ‘다시 한 번. 다시 쇠사슬만 끊어지듯 튕겨져 나갔다. ‘여기까지구나.’ 세 번째 시도. ‘진짜 마지막이다. 제발차량이 구덩이 가장자리를 밟으며 길 위로 겨우 올라섰다. 우리는 일제히 환호했다. 숙소인 나이로비로 갈 길은 멀고도 멀었다. 다시 진창길을 비틀거리며 나아갔다.

 

  +트랙터 가이가 나타났다.

 

 구조에 대한 대가는 지불해야했다. 트랙터 사나이의 마을에 다리가 부러진 한 남성을 차에 실어 병원으로 옮겨주는 것. 고통스러워하는 남성의 신음을 들으며 포장도로에 진입한 차량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이로비는 오른쪽인데내일 일정은 어찌하나.’ 나이로비로 가는 도로가 끊어졌을 거라는 얘기도 들렸다. ‘나록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길고 지친 하루를 내려놨다. 하루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되뇌자 허탈인 듯 안도인 듯 웃음이 새 나왔다. 2주 출장의 첫날 일정이었다.

 

'그래도 길에서 아침을 맞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막막한 사고와 극적인 도움의 손길.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느껴졌다.

 

어쨌거나 ~쿠나~마타~~”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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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남북정상회담 이후 가진 포토다큐 회의에서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는데 DMZ의 생태 어때요?”라 던졌습니다. “그거 좋네. 해봐라는 즉답이 왔고, 저는 바로 막막해졌습니다. 참 큰 말들이죠. ‘한반도의 긴장완화‘DMZ 생태’가 어떻게 연결되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DMZ 생태를 찍겠다는 건 함부로 할 말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취재가능성과 접근성을 고려않고 던졌던 것이지요. 무엇보다 생태를 모르면서 쉽게 생태 운운하는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생각 끝에 생태의 자리를 고라니로 대체했습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보다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 하나로 승부를 걸자는 것이었습니다. 고라니 역시 비무장지대 생태의 주요한 구성 종이니까요.

 

공문을 넣고 군부대 협조를 받았습니다. 허가받은 시간은 대략 첫날 오후와 다음날 오전 서너 시간이었지요. 철책선 안쪽 물웅덩이를 주시했습니다. 그곳에는 고라니가 좋아하는 연잎이 가득했습니다. 물에 들어가거나 말거나는 순전히 고라니의 의지지요.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운 자연 앞에서 초조해하는 생명체는 오직 저 하나 뿐이었습니다.

 

고맙게도 고라니는 저의 마감을 위해 나타나주었습니다. 풀을 뜯고, 헤엄을 치고, 철조망을 바라보는 여러 고라니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마감을 하며 신문에 쓰려니 한 장이면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여러 장은 쓸데없는 부연, 구질구질한 변명 같았습니다. 인간에겐 수십 년 동안 정치적, 군사적 긴장이 이어진 공간에서 고라니는 세상 어디에 있을까 싶은 가장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었습니다.

 

다큐의 착안과 시작은 남북 정상들의 만남이었으나,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완전한 비핵화, 한반도 긴장완화, 정전선언 같이 수없이 쏟아졌던 단어를 쓰지 않고 글을 쓰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애초에 발제하며 고라니 빙의’ ‘고라니 시점으로 쓰자고 장난처럼 말했는데 실제 그리 되고 말았습니다.

 

다큐 글은 나는 고라니다라고 시작합니다. 난생 처음 동물이 되어 글을 썼습니다. 다소 유치하거나 부끄러울 수 있다는 것을 감수했습니다. 그럼에도 사진에는 딱 맞는 글이라고 내심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포토다큐] DMZ의 고라니 (2018.6.23 14면)

 

나는 고라니다. 풀숲에서 아침을 맞았다. 초여름 햇볕이 이른 아침의 찬 기운을 밀어냈다. 간밤에 함께 풀을 뜯던 녀석이 남쪽 물웅덩이에 ‘개연꽃’이 한창이라고 귀띔했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물웅덩이로 향하는 길은 늘 즐겁다. 이어지는 무더위에 물이 그립던 터였다. 거친 수풀을 헤치고 개활지를 만나면 겅중겅중 뛰었다. 인적이 없고, 천적도 드물어 살기 좋은 이곳은 남과 북으로 긴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다. 65년 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정착해 살았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때 이후 아무도 철책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다.


북쪽 평강에서 남쪽의 철원까지 4㎞쯤 걸었을까. 더운 공기 사이로 물 냄새와 연꽃향이 훅 끼쳐 왔다. 덤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저만치 물 위에 노란 개연꽃이 활짝 피었다. 주위를 살피며 다가갔다. 목을 축이고 발을 살짝 담갔다. 아 시원해. 연잎을 한 입 크게 물었다. 연한 이파리가 입 안에서 녹았다.

 

수영이나 한 번 해볼까. 이래봬도 나의 학명 ‘Hydropotes inermis’는 ‘물(Hydro-)을 좋아하는(-potes)’이라는 뜻이 들었다. 심지어 영어명은 ‘워터디어(water deer·물사슴)’다. 


이 여유가 참 좋다. “착착착” 철책 너머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누굴까. 군 초소 쪽에서 나를 향해 카메라를 든 인간들이 나직한 음성으로 속삭이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문득, 얼마 전까지 남쪽과 북쪽에서 경쟁하듯 들려오던 확성기의 소음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로로로록” “휘휘루루” “끼약” “뻐꾹” 확성기에 묻혔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또렷하다 못해 투명하게 느껴졌다.          

 

동물적 감각, ‘야생의 감’이라는 게 있다. 철책 밖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고 있구나. 며칠 전 철원평야를 날아온 철새의 말이다. “모내기 끝난 논에 한반도기가 펄럭이고 있더라.” 낙원의 평화와 아름다움 위로 대립과 적대의 긴장이 흐르던 이곳 ‘비무장지대’에도 변화의 기운이 전해지는 것 같다. 저 견고한 철책이 열릴 수 있을까. 바깥 세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기대와 설렘 속에 내 가족과 이웃 야생종들의 걱정이 하나 생겼다. 우리 삶의 터전이 망가지지 않겠냐고.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인간이 그리 무정한 종은 아니라고 들었다. 어떤 변화에도 ‘공존’의 가치를 저버리지는 않을 게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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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서랍 속 외장하드를 꺼냈습니다. 목적을 가지고 꺼낸 게 아니라 꺼낸 다음 목적을 찾았습니다. ‘2010폴더를 열었습니다. 거기엔 ‘2010남아공월드컵이라는 하위 폴더가 들었습니다. 그때 사진을 보고 싶었던 겁니다.

 

사진을 넘겨보는 동안 당시 기억들이 불려나옵니다. 사진을 찍던 훈련장, 경기장, 도시와 이동하던 거리 등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 주변의 풍광들이 생각보다 또렷하게 그려졌습니다. 8년 전으로의 여행이었지요.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사진은 8년 전의 시간에서 다시 지금의 자리로 돌려 놓았습니다. 재밌는 사진이었습니다. 8년 이라는 시간의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임을 느끼게 했습니다. 찍을 당시에는 그저 밋밋한 훈련사진이었는데 말이지요.

 

사진설명에는 "한국 월드컵 대표팀이 2010남아공월드컵 나이지리아전이 열리는 더반에 입성한 20일, 선수들이 프린세스 마고고 경기장에서 헤딩패스를 이어가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돼있네요. 짐작하시겠지요? 사진 속 이영표, 박지성, 안정환 세 선수는 8년 후 각각 KBS, SBS, MBC의 2018러시아월드컵 해설위원이 되었습니다. (서 있는 순서가 시청률의 순일까요?)

 

 

당시 기분 좋은 첫 승 상대, 그리스와의 경기 선발출전 선수들 기념사진도 흐른 시간을 느끼게 합니다. 저 선수들 중 러시아월드컵엔 기성용만 뛰고 있네요. 차두리는 코치로 대표팀에 합류했지요. 가깝고도 가깝지 않은 과거가 된 사진은 세월은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공평하게 흐른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당시엔 30대였군요. ㅎㅎㅎ

 

 

남아공월드컵은 우리 대표팀이 해외에서 16’에 오른 대회였지요. 그때 저는 역사적인 월드컵을 기록하는 사진기자로서 16강 진출의 기쁨이 작지 않았습니다만, 한 경기 추가로 출장이 닷새 이상 늘어나 투덜거리기도 했었지요. 지쳤고 기쁨 이전에 일단 긴장되는 일이다 보니...

 

하지만,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제 인생샷’이라고 할 만한 사진을 건지게 됩니다. 블로그에 한 번 썼던 사진인데 다시 보니 또 그 현장의 리얼한 영상이 되살아나는군요. 후반전, 우루과이 공격수 수아레스가 굵은 빗줄기 속에서 역전골이자 결승골을 터뜨린 뒤 골 세리머니를 하는 장면입니다. 흥분한 수아레스가 경기장을 돌아 A보드 광고판을 뛰어넘는 순간, 사진을 찍던 제가 그의 발아래에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외신사진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돼 전 세계에 타전됐습니다. '한국의 8강행 좌절'이라는 묘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악동' 수아레스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활약이 대단하더군요. 어쨌든 대표팀의 16강 진출이 비록 굴욕적일지언정 인상적인 제 기념사진을 남겨주었습니다. 저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월드컵 명장면'입니다.

 

4년 마다 한 번쯤 열어보는 외장하드 속 남아공월드컵 사진들. 4년 뒤에는 어떤 말을 걸어올까요.

 

러시아월드컵 우리 대표팀을 응원합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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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날이 덥습니다. 지난 주 취재차 수락산에 올랐다가 땀을 엄청 흘렸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서일까요.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다 문득 굴뚝 위에서 농성 중인 박준호씨를 떠올렸습니다. ‘굴뚝 위은 지금 얼마나 더울까, 좁은 공간에 달궈진 시멘트와 철제 난간은 얼마나 뜨거울까.’

 

작년 여름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공사현장에서 준호씨를 만났습니다. 취재하러 갔다가 일을 좀 거들면서 그와 두세 차례 작업을 했었지요.

 

당시 취재일기엔 이렇게 남아 있네요.

 

오늘 시마이~”하고 외친 박준호씨가 부루스타에 쥐포를 구웠다. “물보다 시원합니데이~”하면서 맥주 한 깡통을 내게 건넸다. 그는 내내 싱글벙글했다. “즐겁게 일하니까 힘든 줄도 모르겠다는 그다. 이 더위에, 무보수에도 말이다. 여전히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그에게 꿀잠은 그런 곳이었다. 이날 작업이 끝나자 박씨와 노순택 작가 등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문화제가 열리는 광화문농성장으로 향했다. (2017725)

 

   지난해 7월, '꿀잠' 공사현장의 준호씨.

 

파인텍 노동자 준호씨는 동료 홍기탁씨와 11월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높이의 굴뚝에 올랐습니다. 파인텍 모기업인 스타플렉스가 노조와 약속한 고용승계, 단체협약 등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땅에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하늘감옥이라 부르는 곳에 스스로를 가뒀습니다. 그리고 200일이 지났습니다. 추운 겨울을 다 보내고 봄을 지나 세 번 째 계절을 맞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정지윤 기자 촬영

 

  굴뚝농성 200일,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촬영

 

농성 시작한 지 한 달을 넘어섰던 지난해 12, 송년호 사진을 찍으며 농성 1년이 될 때 어떤 사진기획물을 내 놓을까하는 잔인(?)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농성이 길어지리라 예상했습니다. ‘하늘감옥옥바라지를 하고 있는 동료 차광호씨가 앞서 408일 동안 펼쳤던 고공농성의 아픈 기록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노동자의 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저 굴뚝농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외치는데 들어주는 이가 없습니다. 농성이 길어지고 다시 새로운 기록이 세워지면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게 될까요. 미안하고 한편 무력감을 느낍니다.

 

준호씨는 저와 동갑입니다. 환경과 인연, 의지와 우연, 삶 앞에 펼쳐진 수많은 선택이 같은 해 태어난 그와 제 삶을 굴뚝 위아래로 나누었습니다. ‘어쩌면 저 굴뚝에 내가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물론 용기는 없습니다 ㅠㅠ)는 생각에 닿았습니다. 

 

그 뜨거웠던 여름날, 준호씨가 땀을 비처럼 쏟고 있는 저에게 시원합니데이~”하고 건넨 차가운 맥주의 맛이 입 안에 머금은 듯 느껴집니다. 굴뚝농성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까요.

 

제가 준호씨에게 시원한 맥주 한 잔건넬 날이 서둘러 왔으면 좋겠습니다. 날이 참 덥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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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한인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편하고 안전한 차량렌트를 권했습니다. 10여 년 전 이곳 방글라데시에 와서 처음 오토릭샤(CNG)를 타던 날 사고가 나 그 이후 절대로 타지 않는다면서 말이지요. 오후에 잡혀있는 인터뷰를 앞두고 아침밥을 먹고 숙소를 나선 일행은 그냥 오토릭샤를 탔습니다. 여행지로는 좀처럼 추천되지 않는 다카라는 도시를 경험하기엔 가장 적절한 교통수단이었지요. 조그만 불편과 위험은 감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인터뷰 약속 장소인 다카국립대로 향했습니다. 서둘러 출발한 건 인근에 있는 방글라데시국립박물관 관람을 위해서였죠. 외국인이라 5배를 더 내고 들어가 신속하게 둘러봤습니다. 거리의 사람과 차량의 밀도가 공간을 인식하는 기준인 듯 전시물들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었지요. 식물부터 현대미술까지 모든 것이 망라돼 있었지요. 시인 타고르가 방글라데시인이라는 것에 놀랐고, 한국관이 따로 있는 게 신기했고, 세계적인 화가의 명작이 좀 어설프게 프린트된 채 걸려 있는 것이 의아했지요.

 

한 끼 때우려 다카대학 야외 카페테리아로 갔습니다. 햄버거세트를 먹기로 결정한 순간 돈을 달라는 아이가 달라붙었습니다. 경계심이 발동하고 그 집요함에 짜증이 났지요. 햄버거를 포기한 채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뒤 눈치를 챈 건, 여기 사람들은 돈을 달라는 이들에게 생각보다 쉽게 돈을 쥐어준다는 것이었지요. 구걸이 당당하고 주는 것도 인색하지 않아보였습니다. ‘다수가 가난한 나라에서 나름 나눔의 방식일까?’ 싶었지요.

 

결국 다카대 구내식당에 들어섰습니다. 20타카(260원쯤)의 저렴한 점심식사 메뉴는 오직 하나. 노란 밥에 작은 닭조각 하나가 허무하게 빠진 묽은 카레. “익스큐즈미, 두유헤브 포크 올 스푼?” 주방 사람들에게 참 낯선 질문이었습니다. 일단 학생들을 따라 손을 씻고, 잠시 머뭇거리다 카레를 밥 위에 흩뿌리고 손가락으로 밥을 이리저리 비벼 모았습니다. 따로 노는 밥풀을 힘주어 붙들고 입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절반은 흘리고 입 주위에 밥풀을 붙여가며 먹었습니다. 우릴 둘러싼 대학생들의 뭇 시선을 느꼈습니다. 큰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던 겁니다.

 

 

오후 2시 인터뷰 대상인 샤킬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기획 취재 출장지인 이곳 방글라데시에서 취재팀의 통역을 맡았던 분입니다. (경향신문이 곧 멋진 기획을 선보입니다!!) 16년간 한국에서 노동자로, 이주노조 활동가로 살았습니다. 방글라데시로 돌아온 지는 10년이 되었답니다. 사실 출장의 공식일정은 마무리됐지만 아쉬움이 크게 남았던 취재기자가 전날 인터뷰(경향신문 55일자 보도)를 요청했던 것이지요.

 

인근 공원에서 샤킬씨의 인터뷰가 진행됐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독재반대 운동을 했고, 20대에 한국에 가서 노동자로 살다가 이주노조 운동에 뛰어들었지요. 2008MB정권 때 활동가에 대한 표적단속으로 다카로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 40대 중반. 청춘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그와 내가 활동가와 사진기자로 어느 현장에서 마주치지 않았을까.' 왠지 한 번은 마주쳤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의 얘기에 어렴풋이 제 기억이 포개지는 부분이 있었지요. 이 글을 쓰다말고 회사 사진DB를 뒤졌습니다. 한 장의 사진을 찾았습니다. 그와 저의 인연은 2007년 한국에서 시작되었지요.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다카적인거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이동할 때 샤킬 선생이 말했습니다. “이렇게 털어 놓으니 정말 속이 시원합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가슴에 쌓아둔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 말에 미안했고, 조금 짠했습니다. ‘참 다행이다. 인터뷰를 할 수 있어서.’ 그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샤킬씨는 다음날 자신의 집으로 우릴 초대했습니다.

 

 

 

듣던 것보다 안전하고 차보다 매력적인 오토릭샤를 올라타고 샤킬씨의 집이 있는 남다카 주레인으로 갔지요. 낡은 상가건물 앞에서 그를 기다렸습니다. 얼굴이 좀 더 하얗다는 이유(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로 일행은 벵갈인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인구밀도가 높다는 것을 개념이 아니라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밀려서 오고가는 사람들과 꼬리를 문 각종 차량이 얽히고설켰고, 정지한 듯 거리를 메웠습니다. 진창길과 곳곳에 파인 물구덩이, 그 안에 떠다니는 쓰레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샤킬 선생이 남다카에서 진짜 방글라데시를 볼 수 있다고 한 것이 이런 거구나 했지요.

 

 

 

샤킬씨를 만나 다시 동네 CNG’ 올라탔습니다. 골목길을 한참 달렸습니다. 골목 곳곳에 물이 넘쳤습니다. 오토릭샤 바퀴 절반이 물에 잠긴 채 비릿한 냄새의 하수를 튕겼습니다. 어느 골목 끝에 초록과 노랑, 주황으로 채색된 그의 집은 골목 하수에 무거워졌던 이방인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샤킬씨의 아내 시에다가 차려준 점심상은 정성이 가득했고 입맛에 잘 맞았습니다. 그의 집 1층에는 이웃의 릭샤 운전사, 가사도우미 등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 수업이 한창이었지요. 그가 운영하는 기쁨공부방입니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안녕하세요하고 반겨주었습니다. 옆에서 그가 뿌듯하고 넉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샤킬 선생은 인터뷰에서 다시 26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한국에 가지 않을 거라 했습니다. 고단했던 삶과 상처를 짐작했습니다. 40대 중반에 고국에 돌아와 뒤늦게 이룬 가정과 그로 인한 행복이 지난날을 더 아쉽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샤킬씨는 출국을 위해 북다카로 돌아가는 일행의 오토릭샤를 잡아주고 흥정까지 대신해 주었습니다. 릭샤가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정말 보고 싶어요." 그의 인터뷰 마지막 말은 함께 활동했고 또 도움을 주었던 한국인 동지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었지요. 옛 동료들과 가끔 찾았다던 "해운대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찍혀비자발급이 안 될 거라 했습니다

 

샤킬씨가 아내 시에다, 딸 이디다의 손을 잡고 해운대 백사장을 밟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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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앗살라말라이쿰

엉성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자 아이들이 웃습니다. 수줍은 듯 혼잣말 같은 답인사가 돌아옵니다. 피부색과 옷차림이 다른 아저씨의 등장에 아이들의 호기심이 커졌습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비행기로 40분 거리의 라즈샤히주에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에 빠져들었습니다. 크고 또렷한 눈에 시선을 뺏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요. 게다가 그 안에 궁금증이 잔뜩 들어앉았습니다. 카메라는 반사적으로 작동합니다. “! ! !”셔터 소리는 , 저 눈 좀 봐하는 감탄사처럼 울려 퍼졌지요.

 

 

 

꼬마들의 눈에 사진을 찍고 있는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들어있지요. 때 묻지 않은 선한 눈에 사진 찍는 아저씨에 대한 느낌이 드러나는 것 같아 재밌습니다. 어쩌면 저를 통해 마을 밖, 나라 밖의 세상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요. 바깥세상을 향한 아주 작은 창이 열리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기획의도에 충실한 멋진 그림을 찍고 모아서 돌아가야 할 해외 출장의 강박과 긴장 속에서 아이들의 눈망울은 제가 찾은 휴식처요, 위안이었지요.

 

 

 

앞서 머물렀던 케냐에서 , 방글라데시에서는 아이들의 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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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이야기

검은 대륙 위를 달립니다.

 

끝이 어디쯤일까 싶은 녹색의 초원을 양쪽 날개인 듯 거느리고 길은 이어집니다. 길게 뻗은 2차선 아스팔트를 질주하고, 때론 몸이 튀어 오르는 비포장 길을 달렸습니다.

 

차창을 통해 바라보는 길에 끌렸습니다. 아니, 그 길을 딛고 선 사람들에 끌렸습니다. 어디로, 어디까지 가는지 알 수 없는 막연한 걸음이 낯설고, 한편 그 고된 걸음이 짠했습니다.

 

지구 반대편,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나와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했던 삶들을 길 위에서 만났습니다. 스쳐 지났지만 내가 바라본 순간의 인연이 가볍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동시에 내 안의 탐욕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 낭만, 자유, 만남, 인연, 함께 같은 단어를 품고 있는 길 위에서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말을 떠올리며 마음가는대로, 눈 가는대로 셔터를 눌러 케냐를 담았습니다.

 

 

 

 

 

 

 

 

 

 

 

 

 

 

 

 

 

 

 

 

 

20180413~20180420 케냐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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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아내가 <사진강의 노트>(필립 퍼키스·박태희 옮김, 안목, 2014)라는 책을 내밀었습니다. 잘 알려진 책이고 사진이 제 밥벌이니 사진강의한 번 들어보라는 것이었지요.

 

필립 퍼키스는 사진가이며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쳤습니다. 50년간의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라는군요. 공군에서 기관총 사수로 복무하며 사진을 찍었다는 이력이 재밌습니다. 사진 셔터와 기관총의 방아쇠는 여러 의미로 잘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필립 퍼키스

 

책에는 사진과 삶에 대한 그의 경험과 철학을 담았습니다. 밑줄을 그은 문장이 여럿이었습니다만제 현실과의 거리 또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일부만 적습니다.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그의 당부입니다.

 

보여 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사진이 찍혀지는 순간까지 그것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이름을 주지도, 상표를 붙이지도,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마라. 그저 바라만 보아라.”

 

그의 바라봄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자연이란 비평의 대상이 아니며 우리가 자연 속에서 느끼는 경외감은 빛, 공간, 질감, 그리고 공기의 울림과 관련이 있고, 자연이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다는 놀라운 발견에 눈을 뜨게 되었다. 행운이란 순간적으로 바위에 드리워진 나뭇가지의 그림자 같은 것이다. 빛이 반짝거리는 웅덩이에 둥둥 떠다니는 나뭇잎이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사물들 간의 위계질서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저 바라보기는 것이 그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진기자는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지요. 대체로 저에겐 그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간혹 그저 바라만 볼 때가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그의 바라봄과는 질적으로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응시는 의도와 계획이 아니라 대상이 그에게 다가오는 우연성에 기대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그의 사진작업은 보통 사진기자의 경험과는 정반대로 진행되는 것입니다사진기자 앞의 마감시간은 우연을 기다려주지 않지요. ㅎㅎㅎ

 

퍼키스의 사진은 그의 '바라보기'와 어떤 '우연'이 앵글 속에 들어왔나 살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뉴욕, 1989

 

     리오 데 자네이로, 1995 

 

     멕시코시티, 1993  

 

         뉴욕, 1984

 

            코네티컷, 1968 

 

       뉴욕, 1994

 

그는 책에서 낚시꾼의 비유로 디지털 시대 사진의 느슨함을 지적하기도 했지요. 낚싯대를 드리울 때마다 최상의 고기를 낚는다면 더 이상 낚시꾼의 천국이 아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었습니다. 디지털 전에는 제한된 조건에서 치열한 고민을 했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만, 디지털 시대의 고민 역시 그의 시대 못지 않지요. 궁금해졌습니다. 퍼키스가 최신 디지털카메라를 쥐고 지금 거리에 선다면 어떤 것을 응시할까. 그가 나의 자리에서 밥벌이를 한다면 무엇을 바라보려 할까. 나와 얼마나 다를까.

 

필립 퍼키스는 "65세의 일선에서 은퇴한 노인(자신)의 내면에 여전히 '나중에 성장했을 때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관한 궁금증이 존재한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제자이며 하버드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존 리바인은 그런 퍼키스의 말을 듣고 "그건 니오타니(Neoteny)'예요"라고 답했습니다. 니오타니는 생물학적 성장이 끝났는데 의식 안에서는 호기심, 상상력, 장난치기,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의 욕구 같은 초기 성장 단계를 여전히 밟아 나가며, 어린 시절의 감성과 환상들을 그대로 간직한 어른을 은유적으로 지칭하는 생물학적 용어라고 설명합니다. 

 

'난 무엇으로 그리 될 수 있을까.' 그런 게 가능하다면 그게 사진이어도, 아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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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살벌하지만 ‘총 맞았다는 표현을 종종 씁니다. 예정 없던 일을 떠안게 되거나, 막 일어난 '쎈' 사건·사고 지역에 갑자기 출장을 가게 되는 경우 그리들 말합니다. 

 

지난 28일 강원 고성에 산불이 났고, 상황을 지켜보던 부장이 외부에 있던 선배에게 출장지시를(총을) 내렸습니다(쏘았습니다). 뒷날 봄 스케치 출장 일정을 잡아놓은 저는 총을 피했습니다. “불났는데 꽃 사진은 좀...” 후배는 산불이 주말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산불 출장을 자원했습니다. 총부리를 제게로 돌린 것이지요.

 

불을 어떻게 찍어야 하나, 드론을 띄울 수 있나, 마스크는 몇 개쯤 써야할까, 서너 개 챙겨 온 미세먼지 마스크가 효과가 있을까, 신고 간 등산화는 열에 버틸까.

 

고성에 도착하니 큰불이 거의 잡혔다고 했습니다. 불이 더 번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사진이나 찍고 난 뒤에 꺼질 것이지하는 못된 생각이 빼꼼이 고개 들었습니다. 바람이 센 곳이라 조그만 불씨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 밤 상황을 대비했습니다.

 

 

 

바람은 밤새 숨을 죽였습니다. 아침부터 육군 장병들이 까맣게 그을린 야산에서 혹시 모를 잔불을 찾아 흙을 뒤집었습니다. 불 찍으러 왔는데 불이 없어 불자국을 찍었습니다. 불의 불씨가 잦아든 그때 포기했던 봄 스케치의 불씨가 살아났지요. 남도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남한땅 북동쪽 끝에서 가장 먼 전남으로 향했습니다.  

 

한 달 전 매화가 피기도 전에 찾아갔다가 당황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광양 매화마을을 찾았습니다. 만개한 매화를 규모 있게 찍고 싶었지요. 다시 당황했습니다. 매화는 절정을 지나 꽃을 떨구고 있었지요. '열흘이면 지고 마는 허망한 꽃'에 이리 집착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요.   

 

오로지 매화를 생각하고 달려왔던 그길 옆에 흐드러졌던 벚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광양과 하동에 벚꽃이 경쟁하듯 하얀 띠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가는 길에 절정을 이룬 벚꽃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일인지라 봄의 정취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애초에 틀려먹은 것이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마음에 공간이 조금 생겼는지 좋네. 좋아를 연발했습니다.

 

 

 

불이 지나간 자리의 새까만 것에서 봄이 오는 길목의 새하얀 것으로 시야가 채워지고, 코끝에 맺힌 듯 남았던 재냄새를 벚꽃향이 밀어냈지요. 까망과 하양, 탄내와 꽃향, 죽음과 생명의 강한 대비가 출장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총' 맞아 시작한 일이었지요. 결국 '힐링'으로 끝이 난 것 아니겠습니까. ^^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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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지난 블로그에 이어 평창패럴림픽 동안 짧게 메모했던 단상을 옮겼습니다. 폐막한 지 닷새가 지났지만 여운이 여전합니다.

 

311파이팅을 외치다.

크로스컨트리. 설상의 육상이다. 한국 신의현이 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사진이 될 것 같은 포인트를 옮겨가며 앵글을 잡았다. 전날 허둥댔던 바이애슬론 취재가 도움이 됐다. 북한의 마유철과 김정현도 첫 경기를 펼쳤다. 북한은 처음으로 동계패럴림픽에 나왔다. 경사로를 오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마유철과 김정현이 카메라 앞을 지나갈 때 동료들이 너나없이 외쳤다. “마유철 파이팅.” “김정현 힘내라.” 현장에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을 향해 소리 내 응원한 적이 있었던가. 두 선수는 나란히 최하위를 기록했다. 같은 경기에서 신의현은 동메달을 따냈다. 대한민국 첫 메달 신고였다.

 

 

 

 

312일 메달은 중요하다

메달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장애를 극복한 승리자다.” 흔한 말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누군가의 인사말에 약간 변형이 있을지언정 예외 없이 구사되는 문장이다. 이 문장에 태클이 걸고 싶어졌다. 선수들에게 메달은 중요하다. 현실은 장애인에게 더 가혹하지 않나. 연금이나 포상금이 절실한 선수들이 많지 않았을까. 이번 패럴림픽에서 장애인 선수에게 흔히들 붙이는 상투적인 미사여구가 어쩌면 비장애인의 시선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313일 버터링쿠키와 아메리카노

평창과 정선, 강릉을 오가는 취재를 매일하고 있다. 오전과 오후 각각 한 종목을 보는 것이 취재의 기본이다. 분위기를 탄 한국 아이스하키팀과 금메달 1순위 미국의 경기가 낮 12시에 진행됐다. 어정쩡한 경기 시간에 평창이나 정선에 가서 다른 종목을 볼 수 없었다. 아이스하키 하나 똑바로 보는 것이 최선. 오전 시간이 비었다. 경기 시작 1시간30분전쯤 하키센터에 도착했다. 미디어센터 무료 제공 간식코너에서 버터링쿠키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자리에 가지고 와서 느긋하게 먹었다. 출장 와서 처음 맛보는 여유다. 여기 쿠키는 유난히 맛있다. 군대에서 먹던 초코파이 같은 느낌이랄까. 훗날 이 쿠키의 맛을 동료기자들과 얘기할 것 같다. ‘모처럼의 여유라는 의미까지 담아서.

 

 

 

314일 선택

평창동계패럴림픽은 아이스하키, 휠체어컬링, 알파인스키, 스노보드,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등 총6개 종목으로 이뤄졌다. 동계올림픽에 비해 대폭 줄어들었지만 혼자 감당하기엔 부담이다.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만 하라는 선배의 충고도 현장에선 도움 되지 않는다. 선택 앞에 매순간 갈등이다. 무슨 종목부터 볼까? 오후엔 어느 종목으로 이동할까? 메달 가능성 있다는데 어제 이어 오늘도 봐야하나? 결승선 사진포지션에서 볼까, 산중턱에 갈까? 경기장 1층에서 찍을까, 2층에서 찍을까? 600mm렌즈를 빌릴까, 말까? 찍으며 마감할까, 끝나고 마감할까? 평창을 선택한 뒤엔 정선과 강릉이, 강릉에선 평창과 정선의 사진이 어땠을까를 궁금해 하고, 결승선에서 찍으며 산중턱의 그림이 낫지 않았을까 불안해한다. 경기 하나를 찍으면서도 선택할게 참 많구나.

 

장애인 선수들은 삶 속에서 어떠한 일련의 선택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됐을까

 

 

 

 

315셔터 대신 인사

패럴림픽 선수촌. 북한 선수단이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이다. 평창에는 아침부터 빗방울이 굵었다. 한 시간쯤 기다리자 선수단 20여명이 선수촌에서 나와 버스에 올랐다. 사진기자들의 셔터소리가 요란하다. 버스에 앉은 선수들의 모습을 담으려했지만 까맣게 코팅된 차창 안은 보이지 않았다. 열려있는 버스 출입문 가까이에 앉은 정현 북한 선수단장이 보였다. 그가 활짝 웃었다.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자 그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마땅히 그 모습을 카메라로 바라보았어야 했던 내가 따라서 꾸벅 인사를 했다. ‘이건 뭔가?’ 결정적 장면은 아닐지라도 앵글 속 피사체의 행동에 셔터를 누르는 대신 왜 인사를 받았을까. 종종 나를 이해 못 할 때가 있다. ^^ 

 

 

 

②주요 뉴스

매체들이 지금 가장 큰 뉴스로 다루고 있는 ‘MB’미투소식이 내겐 멀고 낯설고 사소하다. 출장지에서는 내 출장의 목적이 가장 큰 뉴스가 된다. 내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바라보는 뉴스보다 중요한 뉴스는 없다. 패럴림픽에 와서 바이애슬론센터, 알파인 스키장, 하키센터, 컬링센터, 선수촌만큼 중요한 출입처도 없고, 여기서 찍어내는 사진 이상으로 내게 중요한 사진이 없다. ‘바로, 지금, 여기, 내가바라보고 빠져들어 있는 뉴스가 가장 크다는 생각이다. 평창패럴림픽이 크게 다뤄지지 않고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그만큼 패럴림픽에 집중하고 빠져들어 있기 때문이겠지.

 

 

 

 

316일 풍경이 되어

동료들이 두세 번쯤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 사진을 찍으며 자신이 생긴 모양이다. 어디서 어떻게 찍을지 우왕좌왕하며 안전빵으로 사진기자 많은 곳에 뭉쳐있었던 것이 불과 사나흘 전이다. 동료기자들이 보이질 않는다.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건 나름 자기의 앵글을 구사하려하고 있다는 것. 나 역시 좀 다른 그림을 찾아 경기 코스를 걸었다. 지난 이틀 포근해 나무와 바닥을 드러냈던 숲이 다시 내린 눈에 하얗게 덮였다. 설원을 배경으로 달리는 선수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자신과 고독한 싸움을 벌이며 눈밭을 가르는 장애인노르딕스키 선수들. 그들이 살아온 삶을 함축하고 있다고 느꼈다. 희디흰 설경 속에 하나의 풍경이 되어 달리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또 달리고 있었다.

 

 

 

 

3월17일 점쟁이가 아닌 것을...

몸은 쉬는 날을 기억한다. 토요일 일하려니 평소보다 피로감이 더 밀려온다. 휠체어컬링 3,4위전과 아이스하키 3,4위전이 있는 날. 두 개의 동메달을 기대되는 날이었다. 메달이 나오는 경기를 놓칠 순 없다. 휠체어컬링의 메달이 아쉽게 좌절되고 바로 하키센터로 이동.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마지막 피리어드에 극적인 골을 넣었다. 동메달이 눈앞에 있었다. 잠시 후 장내 아나운서가 노르딕스키 신의현의 금메달 소식을 전했다. 관중들이 환호했고 사진기자들은 서로 바라보며 허탈해했다. 경기 시간이 겹쳤고 메달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휠체어컬링과 아이스하키를 선택했던 전날 밤, 누군가 지나가듯 웃으며 말했다. “신의현 금메달 따는 거 아냐?” 대한민국 동계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나는 담지 못했다. 어쩌겠나, 점쟁이가 아닌 것을.

 

 

 

 

 

3월18일 사진기자들이 울었다

수시로 코끝이 찡해지고 눈자위가 시큰해지는 게 나이 탓이려니 했다. 장애를 가진 선수들의 도전이 매 순간 눈물을 불렀다. 감동의 눈물이었다. 나만 그런가 싶어 둘러보면 옆에 있는 후배들도 훌쩍거렸다. 대회를 냉정하게 기록해야할 기자들이 울었다. 가장 가까이서 현장을 지켜봐서일 것이다. 그 감동이 내가 찍은 사진에 온전하게 담겼을까.

열흘 동안 열렸던 장애인 선수들의 겨울 스포츠 축제는 끝났다. 장애와 장애인,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한층 커졌으리라 믿는다.

패럴림픽을 찍으며 참 행복했다. 봄이 오고 있다.

 

 

 +저와 함께 패럴림픽을 기록했던 동료 사진기자들이 경기를 마친 이도연 선수에게 "수고하셨다. 멋있었다" 인사를 건네고 있는 모습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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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평창동계패럴림픽을 취재하는 하루하루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일과를 끼적거려 일기처럼 모았습니다. 훗날 사진과 함께 돌아볼 때 좀 더 입체적으로 기억이 소환되리라 믿어서지요. 패럴림픽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도 이 블로그를 서둘러 쓰게 했습니다.       

 

 

관심이 이어질까 (3월6일)

관심을 받던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이어지는 패럴림픽 개막 사흘을 앞두고 평창으로 향하는 동안 설렘과 걱정이 뒤섞였다. ‘관심이 유지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관심이 줄어들겠지만 그 폭이 최소화됐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취재 온 동료 사진기자들의 수가 앞선 대회보다 줄어든 것으로 관심'의 정도를 가늠한다. '언론의 외면일까, 국민 외면의 언론 반영인가?' 닭이냐, 달걀이냐 같은 물음이다. 답 없고 소모적이다.

 

 

  <아이스하키 대표팀 훈련, 강릉>

 

사진기자들 평창에 모이다(3월7일)

국내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이고 앞선 올림픽에 대한 인기의 여운인지 각사의 동료기자들이 속속 평창에 모였다. 대부분이 패럴림픽을 취재해 본 경험이 없다. 이 대회를 경험한 기자들이 앞으로 장애와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10년 전 베이징패럴림픽 취재로 내 시선과 이해가 많이 바뀐 경험이 있어서다. 한편, 올림픽에도 위계가 있어 보인다. 하계올림픽>동계올림픽>하계패럴림픽>동계패럴림픽. 간극을 줄이는데 내 사진이 얼마나 보탬이 될까?

 

 

  <알파인 스키 훈련, 정선>

 

정신은 안드로메다에 (3월8일)

개막을 하루 앞두고 분주하다.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을 미리 답사한답시고 경기도 없는 경기장을 두루 다녔다. 몸은 새로운 일과 생활에 적응하느라 피로했다. 미처 피로를 풀기도 전에 일을 시작하는 날이 되풀이 됐다. 문득 아직 개막도 안 했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난다. 폐막은 까마득해 보였다. 사무실에서 당연하게 사진을 기다리지만 그 사진을 생산하는 자의 긴장은 늘 있는 법이다.

숙소로 돌아와 뭐라도 정리하려 노트북 꺼냈다. 충전케이블이 없었다. 어디에 두고 왔을까. 생전 처음 일어난 일이라 당황했다. 수소문해 선수촌 미디어센터에 꽂은 채 남겨진 케이블을 확인했다. 개막도 안 했는데 정신은 안드로메다를 오가고 있다.

 

   <북한 선수단 입촌식, 평창>

 

'이제 개막이라니...' (3월9일)

평창에 새벽부터 큰 눈이 이어졌다. 이날 안희정 전 지사의 검찰출석, 배우 조민기씨의 자살, 북미관계 청신호, MB검찰소환 예정 등 큰 뉴스들이 서울발 속보로 전해졌다. 평창에서는 이 뉴스들이 참 멀게 느껴졌다. 이 큰 뉴스들 틈에서 패럴림픽 개막 소식이 얼마나 비중 있게 다뤄질 것인가를 생각했다.

개막식 사진기자석 옆자리에 중국장애인협회 소속 직원이 평창의 눈을 배경으로 자신을 찍은 사진과 영상을 자랑하듯 보여줬다. 느닷없이. ‘러브스토리의 명장면을 패러디까지 했다. 눈은 그저 스케치의 대상이거나, 일에 방해가 되는 것쯤으로 여기는 내게 그의 해맑음이 낯설었다. 내게 눈을 즐길 날이 오긴 할까.

공연과 선수입장 등 개막행사가 이어졌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한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한 아이스하키의 한민수가 성화를 등에 진 채 줄을 잡고 성화대를 향해 급경사를 올랐다. 감동이 몰려왔다. 울컥했다. 그 모습에 그가 살아낸 시간과 인내와 도전이 읽혔다. 성화를 건네받은 컬링의 안경선배김은정과 휠체어컬링의 서순석이 성화를 점화했다. 패럴림픽이 개막했다. 뭔가 한참 한 것 같은데 이제 시작이라니.

 

    <패럴림픽 개막식 한국 선수단 입장, 평창>

 

  <한민수의 개막식 성화 봉송, 평창>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성화 점화, 평창>

 

설상의 까막눈들 (3월10일)

말로만 듣던 바이애슬론을 난생 처음 찍는다. 나뿐 아니라 옆자리의 타사 동료들도 마찬가지. 그 넓은 경기장 앞에 난감해하며 서로 묻는다. ‘어디서 출발하고 어디로 들어오나?’ ‘경기시간은 얼마나 걸리나?’ ‘사격을 찍으려면 어디로 가나?’ ‘사격벌칙은 뭔가?’ ‘어디가 사진 포인트인가?’ ‘몇 바퀴 도는 거지?’ 물어봐야 큰 도움이 될 리 없다. 이렇게 무지한 상태에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가 싶었다. 뭐든 처음이 있게 마련이지만 허둥대는 게 민망했다. 심지어 사진설명을 쓰는데 바이슬론인지 바이슬론인지 머뭇대기도 했다. ㅎㅎㅎ

 

  <신의현의 바이애슬론 역주, 평창>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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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에 출장 왔습니다. 패럴림픽 개막 사흘 전에 와서 이제 일주일쯤 지났습니다. 보통 출장이 그렇듯 하루가 참 깁니다. 회사 출근시간보다 일찍 일을 시작하고 마감시간을 넘겨 일해서겠지요.

 

10년 전 베이징패럴림픽을 취재한 경험이 있어 패럴림픽 취재는 두 번쨉니다. 하계와 동계의 종목이 다르니 낯선 취재이긴 마찬가집니다.  

 

 

어떻게 찍을까.’ 보이는 대로, 셔터가 눌리는 대로 찍히겠지만, 적어도 스포츠에서 장애인과 장애를 어떻게 드러내고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해 볼 좋은 기회지요. 쉽게 할 수 있는 취재가 아니라서 이번이 아니면 고민해 볼 기회가 다시 없을 지 모릅니다.

 

10년 전에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일정을 촘촘히 짜서 하루에 되도록 많은 경기(아마도 4종목쯤)를 보려고 애썼습니다. 당시 절단장애든, 시각장애든 장애인의 장애가 가장 잘 드러나는 사진을 찍으려 혈안이 됐었습니다. 장애 정도가 덜한 선수보다 심한 선수를 향해 셔터를 눌렀습니다. 장애가 클수록 인간 승리의 크기가 더 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요.

 

지금 평창에서 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질문을 해봅니다. 절단된 팔과 다리 등의 장애를 드러내고 강조하는 것이 여전히 전부일까. 그런 사진들이 승패에 관계없이 장애를 뛰어넘은 승자라는 비장애인 시선이 다분한 상투적인 메시지를 전하는데 적합할까. 다른 접근으로 감동을 자아낼 수 없을까.

 

 

 

 

 

 

 

주목받았던 앞선 평창동계올림픽에 비해 취재진의 규모도, 매체에 반영되는 기사의 양도, 방송 중계 시간도 대폭 줄었습니다. 무관심이 매체에 반영되고 매체의 외면이 다시 무관심을 키우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무관심은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그리하여, 패럴림픽 사진에 대한 생각은 원점으로 돌아와 정리됐습니다. ‘많이 찍어서 여러 통로로 자주 보이자고 마음먹었습니다저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미투’와 MB소환 등으로 서울은 떠들썩하리라 짐작하고 남습니다. 몸이 좀 피곤해서 그렇지 평창에서 저는 평화롭습니다게다가 패럴림픽은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것을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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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봄 사진을 찍으러 남도로 향하는 걸음은 가벼웠지요. 전날 숙취로 내내 졸면서도 차창 밖으로 흐르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풍광이 좋았습니다. 계획대로 되면 더없이 흐뭇한 출장이겠거니 했지요.

 

순천의 한 사찰에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린다는 홍매화를 담는 것이 첫 계획. 전남으로 들어서자 빗발이 굵어지고 바람이 강해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붉게 피었을 꽃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사찰엔 인적이 없었습니다. 홍매화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붉게 흐드러졌어야 할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나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내 수두룩한 나무엔 작은 꽃도 달리지 않았지요. 언제 꽃이 될까 싶은 꽃눈만 가지 위에 달렸습니다. 당황했습니다. ‘꽃이 폈다는 걸 의심하지 않고 왔기 때문입니다.

 

즉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멀지 않은 광양 매화마을로 향했습니다. 매화마을 내 정보센터에 전화해 확인해보았습니다. “아직 피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그래도 어딘가 햇빛이 잘 들고, 질 좋은 토양에 자란 한두 그루쯤 꽃을 피우지 않았을까.’ ‘그 많은 매화나무 중 하나쯤 삐딱하게 서둘러 피지 않았겠나.’ 발품을 팔면 건질 수 있다는 최면을 걸었습니다. ‘피지 않았다는 관계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극적으로 발견한 꽃 핀 나무를 이미 본 듯한 희열을 미리 느끼며 흐뭇해했지요.

 

네비가 도착을 알린 매화마을은 잘못 들어왔나싶을 정도로 매화꽃의 하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바람이 거세지자 발품의 의지도 꺾였지요. ‘~, 난 무슨 근거로 꽃이 폈다고 믿고 남도로 왔나?’ 꼼꼼하게 정보를 챙기지 못했던 것을 그제야 후회했습니다.

 

아직 피지 못한 매화 꽃망울을 찍었습니다. 마감할 사진을 찍어야한다는 생각보다 그저 셔터라도 눌러야겠다 싶었던 겁니다. 의욕 없이 자책하며 셔터를 누르고 있을 때 걸려온 데스크의 전화. “사진 기다리고 있다. 쓸 만한 거 있지? 찍은 거 마감해라.”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가슴을 바짝 조여왔지요. 급해진 마음에 셔터소리는 요란해졌습니다.

 

 

 

꽃망울에 맺힌 빗방울을 함께 찍었습니다. 마감시간을 훌쩍 넘겨 사진을 전송했습니다. 겨울 가뭄 중에 내린 단비였고 봄을 재촉하는 비라는 의미가 먹혔습니다. 꽃에 멘붕온 저를 계속된 비가 극적으로 건져냈던 것이지요.

 

 

사진기자들은 계절에 민감합니다. 늘 다가오는 계절을 앞서서 찍습니다. 아직 추운데 봄을 찍고, 더위가 물러가기 전에 가을을 찾습니다. 오는 계절을 일찌감치 보여주고, 그 계절의 절정을 찍은 뒤, 서둘러 다음 계절을 찾는 사람들이지요. 계절을 앞서가서 사진을 찍는 것이 세월의 속도를 더 크게 체감케 하는 이유라 생각하니 살짝 억울하군요.

 

사진쟁이의 숙명일지니...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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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이야기

지난 추석에 이어 설을 앞두고 5일장 취재차 다시 전남 신안군을 찾았습니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동일한 장소에 간다는 게 살짝 민망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가야했던 이유가 여럿입니다. 장이 열리는 날이 출장일정과 맞았고, 지난해 B컷(쓰지 못한 사진)이 되고 말았던 사진에 대한 아쉬움이 좀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잠깐씩 스쳤던 사람들의 따스함이 끌어당겼던 것이지요.

 

장날에 맞춰갔지만 사실 5일장 자체를 찍으러 간 것은 아닙니다. 설 대목장에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뭔가 설 앞둔 설렘고향의 정같은 걸 찍어낼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명절의 설렘과 정을 굳이 멀리까지 가서 찍어야 하나?’ ‘도시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골의 정서가 얼마나 가 닿을까?’하는 물음이 없진 않았습니다. ‘억지일까?’ 싶기도 하고 말이지요.

 

 

신안군 지도읍. 버스정류장은 장을 본 어르신들로 붐볐습니다. 음식 재료를 담은 검은 봉지들이 가끔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을 대신해 줄지어 서 있었지요. 이곳은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어르신들은 형제, 친척, 친구, 이웃을 만나 손을 맞잡고 흔들며 반가워했습니다. 주고받는 얘기에 슬쩍 얹히는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지역 정서와 삶의 태도, 마음의 공간을 짐작했습니다. 몇 마디 오가면 반드시 한 차례씩 웃음이 터졌습니다. 매번 타이밍을 놓쳐 사진에 담아내진 못했지만, 함께 터뜨리는 큰 웃음이 보기 좋았습니다. ‘아낌없이웃는, 정말 순수한 웃음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더니, “어디로 가는지...어디서 왔는지?”를 살갑게 물어왔습니다. “5일장 사진 찍으러 온 신문사 사진기잡니다...명절 앞두고 고향의 따스함을 담고 싶어 왔습니다...어른신들 사진 한 장 찍겠습니다.” 낯선 억양의 외지인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셨지요. “쭈글쭈글한 얼굴 찍어 뭐하요? 허허허.” “나 좀 잘 찍어 주소. 하하하.”

 

버스를 따라 탔습니다. 다시 이야기와 웃음이 피어납니다. S자를 그리는 도로를 따라 버스가 기울 때마다 검정 비닐에서는 비릿한 물이 이리저리 흘러 바닥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버스 회차 지점에 차를 댄 나이 지긋한 버스기사님이 늘 있는 일인 듯 흥얼거리며 슥슥밀대로 닦아냈습니다.

 

다시 출발한 버스. 한 어르신이 버스에 올라 요금통에 500원짜리 두 개를 떨어뜨렸습니다. 나이가 적지 않아 보였지만 버스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65세에는 조금 못 미쳤던 것 같습니다. 이날 함께 버스에 오른 이들 중에 요금 1000원을 낸 사람은 저와 어르신 딱 둘이었습니다. 버스기사와 반갑게 인사하더니 어르신의 '사소한'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읍내 농협 앞에 소주 한잔 하러 가는 길...”이라고 기사를 향해 말했습니다. 주변 두어 사람 정도 들릴 정도 크기의 목소리였습니다. 혼잣말 같기도 했고요. 우리집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고양이가 큰 쥐를 한 마리 잡았는데...” 얘기는 버스가 서고 출발하는 소음에 묻혔다가 들렸다가 했습니다. 날씨 얘기가 이어졌습니다. “날이 많이 풀렸다... 요 앞 물에 물고기가 얼어 죽어서 떴더라... 왜가리 4마리가 뜯어먹고 있는 거 봤다...”

 

꼭 누구 들으라 하는 얘기가 아닌 듯 했습니다. 대답과 호응을 원하지도 않아보였습니다. 어쩌면 초면인 제게 들려주는 얘기 같기도 했습니다. 읍내 장터 앞 정류장으로 돌아올 때까지 어르신의 이야기는 계속됐습니다. 그는 이야기꾼이었습니다. 어르신의 말이 거슬리거나 거북하지 않고 편안했습니다. 주변의 소소하고 가벼운 일상의 경험을 구수하고 재미나게 털어냈습니다. 도시에서 경험하는 일상의 큰말들, 공허한 말들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어르신의 작은 말들이 미소 짓게 했습니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말이지만요.

 

고향도 아닌 신안에서 고향을 느꼈습니다. 나고 자라서 추억과 그리움이 있는 곳이 사전적 의미의 고향이지만, 나이 들고 우연히 머문 곳에서 마음이 푸근해지고 왠지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면 그곳 역시 고향이 아니겠나 생각했습니다. 우리 안에 새겨진 향수의 유전자는 그렇게 작동하나 봅니다.

 

이런 느낌과 정서를 사진으로 오롯이 표현할 재주가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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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매년 반복되는 취재를 가는 길엔 보통 뭐 좀 다른 거 없을까?’ 생각합니다. 이 생각조차도 버릇처럼 반복되어 온 탓에 딱히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드믑니다. ‘뭐 별거 있겠어?’하고 말지요. 나름의 경험으로 머릿속에 많은 그림을 그려보지만 대게 현장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기 일쑤입니다. 만약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에 가까운 사진을 매번 찍을 수 있다면 카메라를 놓고 점집을 차려야지요. ^^

 

오랜만에 여고 졸업식을 찍었습니다. 졸업장 수여 순서가 되자, 한 명씩 호명된 졸업생들이 단상 중앙에서 졸업장을 받아들고 자리로 걸어갑니다. 단상을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선 담임선생님이 일일이 축하와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식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팔을 벌리고 선생님에게 달려가 안고, 단체로 거수경례를 하고, 하트를 그리고, 큰절을 올리면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유쾌하면서도 뭉클한 모습이었지요.오늘 사진은 이거다.’ 바랐던 다른 것은 머리가 아니라 현장에서 찾아지기 마련이지요.  

 

 

찍은 사진을 골라내다가 느닷없이 밀가루 사진을 본 지 참 오래다싶었습니다. 한때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식 취재를 갈 때면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쓰고, 찢어진 교복이 너덜거리는 모습을 찾으려 애썼지요. 일부의 모습이었지만 졸업 취재사진의 최고봉처럼 여겨졌던 때였습니다. 쉽게 찍을 수 있는 사진도 아니어서 타사 지면에 이런 사진이 먼저 나면 우리는 왜 이런 거 못 찍나?’ 반성모드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졸업식이 열리는 수많은 학교를 두고 어느 학교가 밀가루와 계란의 등장 가능성이 높을까를 가늠해보기도 했던 기억입니다. 취재협조를 얻어 간 학교에서 밀가루 졸업식사진이라도 찍게 되면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에서...”로 시작하는 학교이름 뺀 친절한(?) 사진설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진들이 매체에 빈번하게 등장하자, 학교 측에서도 단속하려 애를 썼지요. 검색해보니 ‘찢어진 교복과 밀가루'는 일제강점기 일본식 교복에 대한 저항이라는 설이 있더군요. 한때 유행하던 이런 행위들이 지금은 폭행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니 쉽게 실행에 옮길 일이 아니지요. '밀가루 사진'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날 졸업식 사진을 찍으며 졸업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생각했습니다. 문득 눈치 챈 이런 새삼스런 사실이 세월의 흐름을, 세상의 변화를, 연차가 꽤 됐음을 또렷이 느끼게 합니다.      

 

 

금주의 B컷(2018.2.10일자)-“광준쌤, 감사합니다

 

 

서울문영여고 3학년 덕반 김예지 학생이 졸업장을 들고 두 팔을 벌린 채 담임 선생님 이광준 교사에게 달려갑니다. 학창시절 마지막 어리광인 양 선생님을 와락 끌어안고 매달립니다. “~, 감사합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약속해 한 송이씩 준비한 종이꽃을 내밉니다. 예지 학생의 웃는 얼굴에서 당장 입시의 무게를 벗어난 후련함과 새롭게 펼쳐질 내일에 대한 설렘을 봅니다. 다시 오지 않을 여고시절에 대한 아쉬움과 꿈을 찾아 각자의 길을 떠나는 친구들과의 이별의 서운함이 그 위로 포개져 보였습니다. 제자를 떠나보내는 선생님의 미소도 복잡합니다. 졸업생들은 이제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납니다. 이어지는 청년의 삶이 꽃길이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쩌면 더 아프고 힘든 시대를 건너야 할지 모릅니다. 여고시절의 추억이 삶 속에서 작은 위안이 됐으면 합니다. 졸업 축하합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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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관객 1억 배우라는 수식어가 익숙한 배우 오달수의 인터뷰 사진을 찍었습니다. 영화 <조선명탐정:흡혈괴마의 비밀>의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라운드인터뷰였습니다. 라운드인터뷰는 4~5개 매체를 묶어서 동시에 진행하는 집단인터븁니다. 인터뷰하려는 매체가 무지 많기 때문이지요.

 

대게 1시간쯤 진행되는 인터뷰에 앞서 4~5개 매체의 사진기자들도 무리지어 사진을 찍습니다. 10분쯤 시간이 주어집니다. 각기 조금씩 다른 위치에 선 기자의 카메라를 향해 배우가 시선을 골고루 주는 식이지요. 저같은 경우 대체로 시간에 쫓기며 말없이 찍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관계가 지워지고 셔터소리만 가득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그저 카메라가 되어버렸구나'하는 자괴감도 살짝 들지요. 

제 나름의 요구와 표현으로 다시말해 '1대1'로 찍을 수 없다는 이유로 부실한 결과물에 변명과 핑계를 대기도 합니다. 

 

이날 인터뷰가 진행된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인 권혁재 선배를 만났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분입니다. 제겐 늘 배움을 주는 형님이시죠. 사진뿐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이 철철 넘쳐 바닥이 흥건해지는 그런 분이지요. ^^ 사진을 찍는 대상에 대한 이해와 배려뿐 아니라 자신의 시각으로 인물을 해석하고 표현해내는 사진가입니다. 그래서 그의 인터뷰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지요. 그걸 엮는 책 <권혁재의 비하인드>(동아시아)를 보면 인터뷰이 뿐 아니라 가 또렷이 드러납니다. 

 

권선배의 현장 태도에 주목했습니다이미 잘 찍기 힘든 현장 상황으로 합리화의 구실을 중얼대고 있는 저와 달랐던 모습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함께 사진을 찍는 후배들을 배려했습니다같은 공간에서 배우가 조금씩 배경을 바꾸는 그 짧은 틈에 오달수라는 배우 특유의 '개성을 끌어내려 했습니다. 싱겁운 농담 같은 말(정확한 표현은 생각나지 않지만)을 붙였지만 해석된 자신의 시선으로 표현할 모습을 편하게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제가 말했다면 조금만 더 밝게요” 정도였을 겁니다. 배우는 일단 잘나 보이게 찍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저와 대상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다른 것이지요. 그가 추구하는 개성을 표현하는 것은 참 어렵지요. 멋있어 보이도록 찍는 게 어쩌면 가장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어진 조건에 대한 아쉬움이야 저와 권선배가 다를 리 없겠지요. 저는  사진찍기 좋은 조건이 아닌 상황을 탓하고 핑계를 찾지만, 그는 극복하고 해결하려 했습니다. 겸손한 그는 손사래 치겠지만, 제겐 그리 보였습니다. 그 상황에 조명도 적당한 위치에 미리 설치해뒀더군요. 그렇게 또 한 수 배우는 겁니다.

 

오달수를 찍다말고 거울에 비친 사진 찍는 권선배를 몇 컷 담았습니다. 그 순간 제겐 1억 배우보다 그가 더 빛나보였던 겁니다.

 

 

 

“한 시간씩 찍는다고 좋은 사진 찍는 것도 아니더라카페를 나서며 그가 툭 던진 말입니다그만큼 집중하고 노력했느냐는 질문으로 제게 돌아왔습니다. 사진찍는 환경을 탓하고 변명과 합리화에 익숙한 저는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쓰다 보니, '비하인드' 권혁재편이 돼버렸네요. '몰카'를 부디 용서하시길.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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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광화문 천막농성장에서 아침을 맞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김경봉, 임재춘씨가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주저 없이 들어서는 것으로 보아 늘 이용하는 식당인 듯 했습니다. 누룽지를 시켰습니다. 3000. 가장 싼 메뉴였습니다.

 

 

식사를 절반쯤 했을 때 식당 주인아저씨가 누룽지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볶음김치를 한 접시를 내왔습니다. 밑반찬으로 김치, 멸치볶음, 어묵 등이 있어 부족하지 않았지만, 뭔가 특별한 것인양 스윽~’ 테이블에 밀어 넣었습니다. “밥 다 먹었는데 진작 안 주시고...” 고마움에 슬쩍 농담을 건넵니다. 조금 뒤 이번엔 계란후라이를 인원수만큼 그릇에 담아 내려놓았습니다. 후라이는 순식간에 사라졌지요. 단골에 대한 서비스겠지만, 저는 그 밥상에서 '연대'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작은 계란후라이지만, 길고 힘든 싸움을 이어가는 해고노동자와 함께한다는 식당 주인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J선배는 퇴근 후 운동하러 집근처 산에 자주 오릅니다. 그곳에서 얼마간 떨어진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을 본답니다. “얼마나 고생일까.” 두 번째 굴뚝을 바라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했습니다. 그 위에 파인텍 조합원 박준호, 홍기탁씨가 올라가 있습니다. J선배는 지난달 굴뚝에 올라있는 두 노동자들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당장 어찌할 수 없지만, 보고 알게 되었으니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이지요. ‘하늘감옥이라는 굴뚝으로 향하는 시선이 연대’의 마음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진 정지윤 기자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끝이 언제인지 모를 싸움을 하며 거리에 있습니다. 가끔 떠올립니다. 그들이 겪는 아픈 현실이 내 삶에서 아슬아슬하게 비껴 있다는 것과 내 자식이, 또 내 자식의 자식이 맞게 될 슬픈 현실이 될 가능성을 말입니다. ‘남의 일이 아닌 것이지요.

 

최근 농성장을 배경으로 찍은 두 장의 사진을 보며,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일이 100일 혹은 1000일 단위가 늘 때마다 다시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우리 사회의 ‘잔인한 외면’에서 오는 서글픔과 제 사진의 무력함과 초라함을 동시에 받아들여야하기 때문이지요.

 

굴뚝에서는 파인텍의 408+60일이, 땅에서는 콜트콜텍의 4000일이 지났습니다. 이 '아픈기록이 매일 경신되고 있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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