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1

안현수와 사골블로그

제 블로그에 의외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안현수입니다. 지금은 러시아 국적의 빅토르 안으로도 불리지요. 최근 그의 인터뷰 사진을 찍었습니다. 잊을 만하면 글 하나 올리는 나태한 무파워 블로그 15년째. 지금 이 글이 그에 대한 세 번째 글이 되는군요. +2019.2. 하남 자택에서 인터뷰 중인 안현수. 러시아 대표팀의 도핑 문제로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이후 언론과 가진 첫 인터뷰였습니다. 도핑 의혹, 은퇴설, 중국 국가대표 코치설, 한체대 플레잉코치설 등 온갖 ‘썰’들에 대해 맘고생하며 눌렀던 말이 많은 모양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언뜻언뜻 예전 그의 훈련장면을 떠올렸습니다. 그와의 첫 대면은 12년 전이었습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하고..

사진이야기 2019.02.15

그들의 뒤통수

신문에 ‘금주의 B컷’이라는 코너가 신설됐습니다. B컷은 A컷에 밀려 쓰지 못한 아까운 사진을 말하지만 신문에 쓰기 부족한 사진의 의미도 있습니다. 나름 골라냈으나 지면에서 외면받은 사진뿐 아니라 아예 폴더 내에서 잠자던 사진도 B컷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코너가 생기다보니 삭제 직전에 기사회생해 'B컷'의 지위를 당당하게 누리게 되는 사진이 늘 것 같습니다. 신문에 쓰지 못하는 사진을 신문에 쓰는 것이니 B컷이 아니라 A컷이 되는 셈이지요. 아래 사진들은 B컷 코너를 위해 준비했지만, 지난 주말 ‘정치 덕후’ 커버스토리에 꼽사리 끼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뒤통수 보고 누군지 맞혀 보시라'는 퀴즈가 되었던 것이지요.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찍어두었던 사진입니다. 청문회에 출석한 증..

세 장면으로 남은 소설 '소금'

박범신의 소설 의 무대 논산과 강경을 다녀왔습니다.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70인과의 동행'의 탐방지였지요. 회사 창간기획 행사에 무한애정으로 참가하고 있는 아내의 ‘지시’로 출장에 앞서 소설을 읽었습니다. 읽고 가면 뭔가 맥을 짚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암시를 하면서 말이지요. 논산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소설을 떠올리려니 주인공 이름부터 가물거렸습니다. 책에 수십 번은 반복됐을 이름인데 ‘나이 탓인가?’했지요. "재밌게 잘 읽었다"며 덮었던 책인데 어떻게 그렇게 깨끗이 지워질 수 있는지. 강경 옥녀봉에서 박범신 작가를 만나고 탐방 코스를 돌며 소설에 묘사됐던 지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소설 속 막연했던 장면이 구체적인 모습을 띄니 하얗게 지워졌던 인물부터 내용까지 조금씩 되살아났습니다..

사진이야기 2016.08.05

"다큐 하나 하자"는 그냥 안부였을까?

지난 6월 해외 출장 중 부서 단체 카톡방에 안부 인사를 남겼습니다. 경향신문 ‘지구의 밥상’ 기획 중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거쳐 케냐 나이로비에서 일정을 소화한 뒤 에티오피아로 출발하기 전날이었습니다. 케냐 일정을 끝낸 뒤 사진을 정리하며 골라낸 몇 장의 기념사진을 안부문자와 함께 보냈습니다. 뉘앙스를 알 수 없는 “(포토)다큐 하나 하자”는 K선배(보조데스크)의 답글이 즉시 돌아왔습니다. ‘건강 잘 챙겨라’는 통상적인 인사대신 말이지요. 그저 ‘잘 지내고 있구나’라는 말의 다른 표현쯤으로 이해했습니다. 국내 메르스 취재로 장기간 시달리던 터라 제가 보낸 한가한 기념사진에 골이 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존 기획에 집중해야 하는데 또 다른 기획을 도모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며 거부의..

사진다큐 2015.08.09

에티오피아의 멋 '커피 세리머니'

에티오피아하면 굶주림을 떠올립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아이의 축 늘어진 몸과 비정상적으로 커 보이는 눈이 함께 생각나지요. 지난달 며칠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앞으로 커피를 함께 떠올릴 것 같습니다. 커피를 그저 단맛으로 흡입했던 저는 예가체프니, 시다모니 하는 것이 에티오피아 커피 브랜드였다는 사실을 현지에 가서야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커피 맛을 알게 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커피의 멋을 경험했습니다. ‘커피 세리머니’라는 건데요. 에티오피아에서 귀한 손님을 맞는 전통의례랍니다. 처음 들었을 때 ‘설마 커피를 뿌려대는 것은 아니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현지 일정 중 방문했던 월드비전 사무소와 숙소였던 시골의 로지에서 커피 세리머니의 호사를 누렸습니다. 저를 포함한 일행을 ..

사진이야기 2015.07.29

드론이 들어왔다

대형 집회가 있을 땐 어느 건물에 올라가 찍을까를 먼저 고민합니다. 한 장의 사진으로 그 규모와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정작 서울시내에는 올라가 찍을 곳이 드뭅니다. 찍기 적당한 건물을 발견해 들어서면 안내데스크에서 대부분 거절당합니다. 아래에서 다양한 사진을 찍어도 전체를 조망하는 사진이 없으면 뭔가 찝찝함을 느끼는 것은 카메라를 쥔 자들이 공유하는 심정일 겁니다. 반대로 높은 데서 내려찍은 그림이 있으면 좀 든든해져서 아래에서 찍는 일이 좀 수월해 진다고 느낍니다. 아스팔트(사진기자들이 일하는 현장, 특히 거리를 뜻하는 은어)를 뛰다보면 앵글의 높이에 한계가 있습니다. 보통 가장 낮은 시선인 엎드려 찍기부터 휴대용 3단 사다리를 좀처럼 넘기 힘듭니다. 더 높이 오를 곳이 없어 아쉬운 때..

사진이야기 2015.04.21

웃어라 박주영!

7년 만에 K리그에 복귀한 박주영이 FC서울 입단식을 가졌습니다. 취재진이 일찌감치 진을 쳤습니다. 누군가 툭 뱉습니다. “내내 고개 숙이고 있는 거 아냐?”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디어와의 불편한 관계를 함축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박주영이 회견장에 들어섰습니다. 장기주 FC서울 사장이 등번호 ‘91’의 유니폼 상의를 건넸고 박주영이 취재진 앞에서 입었습니다. 최용수 감독이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사장, 감독, 선수가 손을 모으고 포즈를 취했습니다. 박주영은 구단 관계자의 진행에 따라 일사천리로 행사가 이뤄지는 동안 단 한번 웃음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입단식에서 꼭 웃어야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지만, 사진기자들은 바랍니다. 취재진 앞에서는 통 웃지 않는 박주영이라 더더욱 화끈하게 웃는 모습 한번 보고 싶..

사진이야기 2015.03.13

여행사진 그리고 발품

데스크는 “콧바람이나 쐬고 오라”며 1박2일 트래블(여행) 출장 지시를 내립니다. 사진이 지면 절반을 차지하는 지면 특성상 콧바람의 여유나 설렘은 사실 없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부담을 갖고 떠나게 되더군요. 보통 여행지의 날씨에 민감합니다. 대체로 맑은 날이면 해가 뜨고 지는 주변의 시간 때에 빛의 변화나 빛의 색감으로 좋은 사진을 찍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 데이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처럼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이 좀 높다는 것이지 좋은 날씨가 곧 좋은 사진을 담보하진 않지요. 완성도가 떨어지는 사진을 안 받쳐준 날씨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습니다. 여행사진에서 날씨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발품입니다. 사진의 완성도에 발품은 상당한 기여를 합니다. 여기서 발품이라 함은 그저 열심히 돌아다니는..

사진이야기 2015.02.04

"고마워요 샤이니월드"

지난 12일 제 블로그에 비밀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이 잘 붙지 않는 블로그라 댓글이 표시되면 설렙니다. 제법 긴 댓글이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뭉클해졌습니다. “···몇 달 전 세월호 희생자이자 그룹 샤이니의 팬이었던 다영양의 이야기를 기자님 블로그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당시 글에 다영양이 사고나기 전 샤이니의 공연도 보러 갔다고 하셨었지요? 제 짐작으로는 다영양이 본 공연이 올 초 3월 7일~8일 양일간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있었던 샤이니의 콘서트였을 것 같아요. 저도 갔던 공연인지라, 비록 다영양의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지만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함께 환호하고 노래 불렀을 다영양을 생각하며 눈물이 났더랬습니다. 이렇게 댓글을 남기는 건 다름이 아니오라, 다영양이 참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로..

사진이야기 2014.12.31

안녕하지 못한 이유

지난 일요일 아침 선배의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도착한 회사 앞은 경찰, 철도노조원 등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입사 이후 정동길이 이렇게 밀도가 높았던 적은 본적이 없습니다. 회사 신분증을 내밀며 인파를 비집고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로비에서 상황을 지켰습니다. 현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노조원이 대치했습니다. 철도노조 간부를 연행하려는 경찰의 경고 방송과 노조원의 구호가 뒤섞였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경찰 체포조가 현관 유리문 앞으로 바짝 다가섰습니다.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밀어 붙이는 경찰에 노조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여의치 않았던 경찰은 망치 등을 동원해 현관 바깥쪽 유리문을 부수고 유리문 사이에서 저항하던 노조원들을 연행됐습니다. 내부 ..

사진이야기 2013.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