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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금주의 B이라는 코너가 신설됐습니다. B컷은 A컷에 밀려 쓰지 못한 아까운 사진을 말하지만 신문에 쓰기 부족한 사진의 의미도 있습니다. 나름 골라냈으나 지면에서 외면받은 사진뿐 아니라 아예 폴더 내에서 잠자던 사진도 B컷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코너가 생기다보니 삭제 직전에 기사회생해 'B컷'의 지위를 당당하게 누리게 되는 사진이 늘 것 같습니다.      

 

신문에 쓰지 못하는 사진을 신문에 쓰는 것이니 B컷이 아니라 A컷이 되는 셈이지요. 아래 사진들은 B컷 코너를 위해 준비했지만, 지난 주말 정치 덕후커버스토리에 꼽사리 끼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뒤통수 보고 누군지 맞혀 보시라'는 퀴즈가 되었던 것이지요.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청문회에서 찍어두었던 사진입니다.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의 뒷모습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신문 지면에서 웬만하면 뒷모습은 쓰지 않습니다. 위기의 인물을 표현하거나,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가끔 허용되지요. 금기시하고 있는 뒤통수를 향해 셔터를 눌렀던 건 아마도 이 ‘B코너를 염두에 두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겠지요. 

 

 

셔터를 누르는 동안 뒤통수의 뒤인 얼굴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느라 다양한 표정을 섞어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었습니다. 미동도 표정도 없는 뒤통수만이 증인들의 본모습이자 진실처럼 느껴졌습니다. 평생 스스로 볼 일 없는 자신의 뒤통수지만, 남들은 노골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신체 부위지요.

 

청문회 증인들의 이 뒤통수 사진이 독자에게 어떻게 가 닿을지 궁금했습니다.

 

뒤통수 조심할 사람이 많은 세상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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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박범신의 소설 <소금>의 무대 논산과 강경을 다녀왔습니다.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70인과의 동행'의 탐방지였지요. 회사 창간기획 행사에 무한애정으로 참가하고 있는 아내의 ‘지시로 출장에 앞서 소설을 읽었습니다. 읽고 가면 뭔가 맥을 짚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암시를 하면서 말이지요.   

 

논산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소설을 떠올리려니 주인공 이름부터 가물거렸습니다. 책에 수십 번은 반복됐을 이름인데 나이 탓인가?’했지요. "재밌게 잘 읽었다"며 덮었던 책인데 어떻게 그렇게 깨끗이 지워질 수 있는지.

 

강경 옥녀봉에서 박범신 작가를 만나고 탐방 코스를 돌며 소설에 묘사됐던 지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소설 속 막연했던 장면이 구체적인 모습을 띄니 하얗게 지워졌던 인물부터 내용까지 조금씩 되살아났습니다. 그나마 예습이 없었다면 무감하게 지나치거나 영혼없는 셔터를 눌렀을 장면들이었겠지요.

 

옥녀봉에서는 금강이 내려다보였습니다. 작가가 이 풍광을 묘사했었지요. 

 

옥녀봉은 높지 않은 암산이지만, 서북으로는 휘돌아가는 강에 발을 대고 동남간으로는 너른 벌판을 사이에 둔 채 계룡의 준령들과 대둔산에 뻗대어 있어, 그곳에서 보는 정경은 모난 데 없이 늘 원만하고 풍요로웠다. 옥녀봉 아래는 강경포의 전성기에 수많은 상선들과 어선들이 들어와 짐을 내리고 싣던 국제적 관문이기도 했던 곳이다(63).”

 

그저 밋밋한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만, 그 안에는 한때 잘 나가던 포구의 모습, 소설 속 인물들의 발걸음과 시선이 녹아있다고 우기렵니다


 

소설 속 옥녀봉 꼭대기 소금집의 배경이 됐다는 슬레이트 지붕의 허름한 집도 흐릿해진 내용을 살려내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인공 선명우가 가출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집이지요. 그가 기타 치고 노래하는 자유의 공간이며, 소설 내 화자인 가 그를 만나는 곳이며, 소설 마지막 부분 가 선명우를 찾아나선 딸 시우를 다시 만나게 되는 장소였지요. 장면이 하나씩 복기되었습니다.

 

옥녀봉 북동쪽 맨 위에 그 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북으로는 배수 펌프장 어둔 지붕 너머로 논산천이 금강 본류와 합쳐지는 정경이 손바닥처럼 내려다보였고 동쪽으로는 성동면 너른 벌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계룡의 연봉들은 윤곽만 우뚝했다.....마당 끝으로 말라붙은 도라지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서쪽은 살림방인 거 같았고, 동쪽은 소금 창고였다....바닥엔 멍석이 깔려 있었고, 한쪽에선 파전을 구워내고 있었으며, 막걸리병과 양재기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65).”

 

소설에 다소 낭만적으로 표현된 것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런 모습이었지만 소설의 핵심적 공간이었다는 데 위안을 얻습니다. 작가가 이곳에서 내려다 본 풍광을 소설 속에 그대로 담았으리라 짐작했습니다.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온 것도 순전히 책 때문이었지요. 작가가 책 전반부에 배롱나무에 대해 길게 표현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제대로 본적도 없고, 봐도 지나쳤을 배롱나무가 시선을 붙들었지요. 글 속 와 시우의 첫 만남이 한 폐교의 배롱나무 앞이었습니다. 박 작가의 논산 집필실 앞마당과 답사지 돈암서원 마당에서 꽃은 물론 그 줄기도 남달라 예로부터 선비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16)”는 그 나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보는 이 없는 폐교의 운동장을 여름 내내 지키고 있었을 배롱나무였다. 꽃잎들이 하롱하롱 지고 있었다....밑동에서 쌍으로 나눠진 두 가지가 밀어내듯 서로 멀어지다가 되구부러져 돌아와 스치는 형국으로 만나면서 여러 잔가지로 나누어 자랐다..... 균형 잡힌 좌우대칭이 미학적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그 위에서 수많은 꽃이 막 떠오르는 우주선처럼 장중한 타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태양의 광채를 품은 비의적인 영원성을 아낌없이 내게 보여주었다(18).”

 

꽃이 흐드러진 배롱나무를 보니 괜히 반가웠습니다. 



금강과 낡은 집과 배롱나무 세 장면으로 소설<소금>의 내용을 기억 속에 어느정도 되돌려놓았습니다. 결국 기억은 시간과 함께 사라지겠지만 적어도 이 세 장면은 기억에 남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 장면들과 더불어 매력적인 이야기꾼박범신 작가를 만났던 것은 적지 않은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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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지난 6월 해외 출장 중 부서 단체 카톡방에 안부 인사를 남겼습니다.

경향신문 지구의 밥상기획 중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거쳐 케냐 나이로비에서 일정을 소화한 뒤 에티오피아로 출발하기 전날이었습니다.

 

케냐 일정을 끝낸 뒤 사진을 정리하며 골라낸 몇 장의 기념사진을 안부문자와 함께 보냈습니다. 뉘앙스를 알 수 없는 “(포토)다큐 하나 하자K선배(보조데스크)의 답글이 즉시 돌아왔습니다. ‘건강 잘 챙겨라는 통상적인 인사대신 말이지요. 그저 잘 지내고 있구나라는 말의 다른 표현쯤으로 이해했습니다. 국내 메르스 취재로 장기간 시달리던 터라 제가 보낸 한가한 기념사진에 골이 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존 기획에 집중해야 하는데 또 다른 기획을 도모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며 거부의 뜻을 밝혔습니다.

 

애초에 계획이 없었기에 사실 안 해도 그만인 다큐인데 에티오피아로 향하는 길 내내 다큐하나하자...다큐하나하자라는 문자가 환청처럼 들려왔습니다.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금세 고민에 빠져들었지요.

 

뉘앙스를 알 수 없는 안부인사 같은 지시를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문자를 보낸 이의 권위보다 그 짧은 문자 안에 간절한 바람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해외출장에 나선 사진기자가 기존 기획에 기획 하나를 더 챙겨온다면 이 얼마나 고효율적인 취재인가. 또 그간 포토다큐가 대체로 국내용 소재로만 다뤄지다 보니 다양성 측면에서 해외 다큐 하나 할 만한 타이밍이다.' 거부했던 다큐를 스스로 이런 합리화 과정을 거쳐 진행하게 됐습니다. 조직에 참 잘 길들여진 저를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밥상기획' 취재지역의 초등학교를 섭외해 사진을 엮어보자 생각했습니다. 이미 방학이 시작됐더군요. ‘그럼 아이들이 방학에 뭘 할까로 방향은 급전환됐습니다. 본 기획 사이에 곁다리 기획을 한다는 것은 조급해지고 산만해지는 일입니다. 몇 차례 더 방향이 흔들리며 틈틈이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큐 마감을 앞두고 아이들의 사진을 꺼내 이리저리 모아보며 왜 이 순간에 이 아이의 사진을 찍었을까’하고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냥 찍었더라도 그냥 찍은 그 이유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를 찾는다면 수많은 아이들 사진 중에 몇 장을 골라내는 기준이 될 것이었지요.

 

아이들의 눈망울이었습니다. 그 거부할 수 없이 맑은 눈빛이 카메라를 들게 한 것이었지요.

 

 

 

[포토다큐] '가난도 빼앗지 못한 눈빛'

 

아이들의 눈망울은 투명하고 깊었다.

먼 이국땅의 피부색 다른 동양인을 보는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370km 떨어진 시다마 존(Zone) 훌라 지구

(Woreda)는 한국월드비전(국제구호개발 NGO)이 지역 아동의 행복과 마을의 자립을 위해 후원 사업을 하는 곳이다.

 

훌라 지구의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의 주요 일과는 집안일을 돕는 것이었다. 10살 전후의 아이들이 초원에서 가축을 먹이거나 우물물을 긷는 모습이 흔했다. 듬성듬성 떨어진 농가를 잇는 거친 비포장 길을 걷는 동안 소를 치던 아이도, 나무를 타던 꼬마도, 삼삼오오 어울려 놀던 녀석들도 어느새 우리 일행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궁금증 가득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멀리서 온 손님의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를 신기한 듯 지켜봤다. 눈이 마주쳐 살람(안녕)”하고 손이라도 흔들어주면 정말 재미난 일이 벌어진 듯 까르르넘어갈 듯 웃었다.

 

 

아이들의 남루한 옷을 보고, 먹고 사는 것의 궁핍을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 아이들이 몰려왔을 때 무엇을 달라는 의미라 짐작했다가 즉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맑은 눈망울에 순박한 수줍음과 따뜻한 관심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수하고 천진한 표정 앞에서 가난을 전제로 한 선입견들은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대신 아이들의 그 눈빛을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눌러야 했다. 예쁜 눈에 어려 있는 꿈과 희망을 온전히 가꾸며 자라나길 바랐다.

 

월드비전이 2007년부터 훌라 지역의 교육 사업을 지원한 뒤 초등학교 입학률이 41.5%에서 98%, 문해율(읽고 쓰는 능력)34%에서 54%까지 올랐다. 한 교실 당 아이들이 85명에서 62명으로 줄었고, 책상 하나당 5명에서 3, 교과서 한 권당 7명에서 2명까지 보급되는 등 교육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2014년 기준)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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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에티오피아하면 굶주림을 떠올립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아이의 축 늘어진 몸과 비정상적으로 커 보이는 눈이 함께 생각나지요. 지난달 며칠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앞으로 커피를 함께 떠올릴 것 같습니다. 커피를 그저 단맛으로 흡입했던 저는 예가체프니, 시다모니 하는 것이 에티오피아 커피 브랜드였다는 사실을 현지에 가서야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커피 맛을 알게 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커피의 멋을 경험했습니다. ‘커피 세리머니라는 건데요. 에티오피아에서 귀한 손님을 맞는 전통의례랍니다. 처음 들었을 때 설마 커피를 뿌려대는 것은 아니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현지 일정 중 방문했던 월드비전 사무소와 숙소였던 시골의 로지에서 커피 세리머니의 호사를 누렸습니다.

 

 

 

저를 포함한 일행을 반겨주는 행사였습니다. 흑인 여성이 화로에 숯불을 피운 뒤 생두를 작은 프라이팬 위에 놓고 서서히 볶았습니다. 연두색 생두가 까만 원두로 변할 때까지 느긋하고 정성스럽게 굴렸습니다. 색이 변해가며 풍기는 향이 또렷해서 참 좋았습니다. 볶은 원두를 절구에 빻고 다시 끓인 뒤 조그만 잔에 담아 건네 왔습니다. 차와 우유, 설탕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취향에 따라 타서 마시라는 것이지요. 제 싼 입맛에는 설탕 넣은 커피가 제일이었습니다


최근 무시럽 아메리카노에 겨우 익숙해졌는데 다시 설탕 듬뿍 넣은 달달한 아프리카노의 맛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쉽게 먹던 커피를 거의 한 시간쯤 진행되는 의식의 끝에 마시니 그 맛이 더 특별한 것 같았습니다. 슬로우 푸드이며 소울 푸드’라 할 만 하지요.

 

세리머니의 과정에는 현대식 기구와 기계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통 의례라고 하니 에티오피아에서 커피의 깊은 역사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환영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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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대형 집회가 있을 땐 어느 건물에 올라가 찍을까를 먼저 고민합니다. 한 장의 사진으로 그 규모와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정작 서울시내에는 올라가 찍을 곳이 드뭅니다. 찍기 적당한 건물을 발견해 들어서면 안내데스크에서 대부분 거절당합니다. 아래에서 다양한 사진을 찍어도 전체를 조망하는 사진이 없으면 뭔가 찝찝함을 느끼는 것은 카메라를 쥔 자들이 공유하는 심정일 겁니다. 반대로 높은 데서 내려찍은 그림이 있으면 좀 든든해져서 아래에서 찍는 일이 좀 수월해 진다고 느낍니다.

 

아스팔트(사진기자들이 일하는 현장, 특히 거리를 뜻하는 은어)를 뛰다보면 앵글의 높이에 한계가 있습니다. 보통 가장 낮은 시선인 엎드려 찍기부터 휴대용 3단 사다리를 좀처럼 넘기 힘듭니다. 더 높이 오를 곳이 없어 아쉬운 때도 많지요. 사진기자들은 높이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강박이 있는 게 사실이지요.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무인항공기)’이 들어왔습니다. 이 기계를 들여와 스튜디오에서 시운전 하던 날. 저를 포함한 부원들은 드론에 시동이 걸렸을 뿐인데 ~”하고 환호했습니다. 이 비행물체가 살짝 날아오르자 ~~”하며 탄성을 질렀었지요. 저는 두어 주가 지나 회사 옥상에서 드론 조종기를 처음 잡아봤습니다. 이미 드론으로 수차례 좋은 사진을 보여준 후배가 교관이었지요. 시동을 걸고 띄우고 좌로 우로 앞으로 뒤로 회전 그리고 착륙. 손가락을 까딱여 이 고급 장난감을 움직여 본 뒤, 취재를 위한 도구임에도 어릴 적 동심에 가 닿은 듯 신기하고 재밌었습니다.

 

드론 사진은 일상적으로 보고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그림과는 좀 다르더군요. 특히 사다리 외에는 오를 곳 없는 곳에서 드론은 색다른 앵글, 시선의 확장을 가져왔습니다. 낯선 시선과 더불어 의외의 사진을 건질 가능성도 있겠다 싶더군요. 건물 옥상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를 확보할 수 있지요. 새의 시선, 버드아이를 사진기자가 갖게 된 겁니다. 직접 날진 못해도 드론이라는 기계가 분신이 되어 날고, 분신이 보는 시선을 손 안의 폰으로 소유하게 되는 것이지요.

 

서성일·이준헌 기자

 

이준헌 기자 

 

언론사들이 다투어 드론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새로 갖게 된 시선으로 경쟁하겠지요. 지금껏 없던 여러 가지 사진 실험이 이뤄질 여지도 큽니다. ‘드론이라는 기계에 다시 사진을 의존하게 되는구나하는 회의가 없진 않지만, 사진기자가 드론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탐구와 발견을 해 나갈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보는 만큼 생각할 수 있다면 사진기자의 사진에 대한 사고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새겨봅니다.

 

필름사진 찍으면서 사진기자 시작했는데 디지털에서 더 나아가 항공사진이라니. 필름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선배들의 낡은 조끼를 그렇게 멋스럽게 봤었는데 이제 항공점퍼를 입어야 할 세상이 됐네요. 빠른 세월도 그러하지만 변화의 속도가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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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7년 만에 K리그에 복귀한 박주영이 FC서울 입단식을 가졌습니다. 취재진이 일찌감치 진을 쳤습니다. 누군가 툭 뱉습니다. “내내 고개 숙이고 있는 거 아냐?”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디어와의 불편한 관계를 함축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박주영이 회견장에 들어섰습니다. 장기주 FC서울 사장이 등번호 ‘91’의 유니폼 상의를 건넸고 박주영이 취재진 앞에서 입었습니다. 최용수 감독이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사장, 감독, 선수가 손을 모으고 포즈를 취했습니다. 박주영은 구단 관계자의 진행에 따라 일사천리로 행사가 이뤄지는 동안 단 한번 웃음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입단식에서 꼭 웃어야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지만, 사진기자들은 바랍니다. 취재진 앞에서는 통 웃지 않는 박주영이라 더더욱 화끈하게 웃는 모습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기자들과 문답을 했습니다. 질문과 답이 오가다보면 한번쯤은 웃지 않을까 했습니다. 살짝 흐릿한 미소를 한두 차례 지었다고 생각했으나 사진으로 웃는 모습이라 우기기엔 많이 모자랐습니다.

 

그의 복귀에 K리그 흥행의 짐을 지우고 팬과 소통 부족, 미디어와의 불편한 관계 등의 숙제해결을 요구하는데 그 무게가 간단하지는 않지요. 웃음을 바라는 건 무리였을까요. 흔히 그러데요. 프로선수의 고액 연봉에는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하는 불편함 감수, 그로 인한 감정노동의 노고에 대한 보상도 들어있다고.

 

2005년 12월 어느날, 몸값이 치솟고 언론 인터뷰가 쇄도하는 박주영과의 단독 인터뷰를 체육부에서 성사시켰습니다. 그때도 여전히 인터뷰하기 까다로운 선수였습니다.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인터뷰한 뒤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세워 좀 웃어요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기념사진을 한 컷 남겼습니다. 몸값 더 올라 해외로 진출하기 전에 기념사진 남겨둬야 한다는 선배의 말에 솔깃했었지요. 그게 10년 전 일이군요. 당시 싸이월드에 사진과 같이 올린 짧은 글에 수줍은...” “잘 웃지 않는 이 친구...” 같은 말이 써져 있더군요. 그런 박주영의 천성이 미디어에 의해 불편한 관계로 정의되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이날 입단식에서 웃기를 바랐던 것은 보다 나은 사진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운동선수의 웃는 사진에는 여유와 자신감, 각오가 스며있기 때문입니다무표정은 이를 제일 먼저 카메라 파인더로 보게 되는 사진기자를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웃음이 팬 소통과 미디어 관계회복의 신호가 되고, 거기서 오는 여유가 경기력에 도움이 되고, 좋은 성적이 다시 큰 웃음이 되어 나오는 선순환을 기대합니다. 복귀 환영합니다. 웃어라 박주영!!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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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데스크는 콧바람이나 쐬고 오라12일 트래블(여행) 출장 지시를 내립니다. 사진이 지면 절반을 차지하는 지면 특성상 콧바람의 여유나 설렘은 사실 없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부담을 갖고 떠나게 되더군요. 보통 여행지의 날씨에 민감합니다. 대체로 맑은 날이면 해가 뜨고 지는 주변의 시간 때에 빛의 변화나 빛의 색감으로 좋은 사진을 찍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 데이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처럼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이 좀 높다는 것이지 좋은 날씨가 곧 좋은 사진을 담보하진 않지요. 완성도가 떨어지는 사진을 안 받쳐준 날씨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습니다. 여행사진에서 날씨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발품입니다. 사진의 완성도에 발품은 상당한 기여를 합니다. 여기서 발품이라 함은 그저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발품에는 사진을 찍을 때 고려하는 수많은 조건과 요소들의 이런저런 조합을 고민하고 또 최적의 조합을 찾는 노력이 포함됩니다.

 

여행전문기자인 선배와 트래블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전북 익산 일대의 천주교 성지 등을 돌았습니다. 그중 120년쯤 된 아름다운 나바위성당을 메인으로 정했습니다. 이날 날씨는 흐렸습니다. 해질녘의 빛에 기대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해가 떨어지는 방향도 성당과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잔뜩 흐린 날이지만 하얀 눈이라도 내리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겠지만 유난히 따뜻했던 이날엔 잠깐씩 비가 내렸지요. 날씨를 포기를 하면 예의 그 발품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성당 주위를 돌고 또 돌며 카메라를 이리저리 부지런히 대보았습니다. 한참 뒤 발품의 결과로 사진 찍을 포인트를 발견했습니다.

 

보물 상자가 묻힌 지점을 표시한 ‘X같은 지점이었습니다. 반 발짝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는 그런 포인트였습니다. 석양은 진작 포기했고 밤을 기다려 야경을 찍는다면 반드시 이 자리여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성당이 가장 잘 표현될 지점이었지요. 날씨나 계절의 변화가 바로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는 한 이 자리가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가장 좋은 사진이 찍힐 확률이 높은 자리라 판단했습니다. 발품이 보답을 해올 때 쾌감이 있습니다.

 

트라이포드를 받치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부터 장시간 노출을 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때마침 저녁 미사를 시작한 성당 창을 통해 불빛이 새어 나왔습니다. 셔터 릴리즈를 누른 채 속으로 열, 열다섯, 스물 등을 반복해 세어가며 하늘이 완전히 까매질 때까지 찍었습니다.



사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색감도 기대했던 것보다 좋았습니다. 이제껏 찍힌 나바위성당 최고의 사진은 아니겠지만 이날 주어진 조건에선 저로서는 최선이었고 또 만족한 사진이었습니다. 밤에 잠을 편하게 잘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때로 마음 편하게 해주는 트래블 사진은 사진기자의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향신문의 트래블 지면이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예전 경향신문 매거진 X’라는 섹션지면에 실렸던 트래블 사진을 보고 여행지를 찾은 다수의 독자들이 사진 속 그런 장소는 없더라고 했다는 '발품의 전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사진보고 여행가고 싶다는 마음만 들게 할 수 있다면 더한 바람은 없을 겁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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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지난 12일 제 블로그에 비밀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이 잘 붙지 않는 블로그라 댓글이 표시되면 설렙니다. 제법 긴 댓글이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뭉클해졌습니다.


“···몇 달 전 세월호 희생자이자 그룹 샤이니의 팬이었던 다영양의 이야기를 기자님 블로그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당시 글에 다영양이 사고나기 전 샤이니의 공연도 보러 갔다고 하셨었지요? 제 짐작으로는 다영양이 본 공연이 올 초 3월 7일~8일 양일간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있었던 샤이니의 콘서트였을 것 같아요. 저도 갔던 공연인지라, 비록 다영양의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지만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함께 환호하고 노래 불렀을 다영양을 생각하며 눈물이 났더랬습니다. 이렇게 댓글을 남기는 건 다름이 아니오라, 다영양이 참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로 그 콘서트의 라이브 실황 앨범이 어제 발매되었어요. 그런데 이 앨범에 노래하는 샤이니의 목소리 뿐 아니라 샤이니의 노래를 다함께 부르는(떼창이라고 하죠) 팬들의 목소리도 꽤 많이 담겨있답니다. 특히 이번엔 당시 팬들이 샤이니에게 무반주로 노래를 불러주었던 이벤트를 아예 하나의 개별적인 트랙, sung by SHINee WORLD(샤이니월드는 샤이니 팬클럽의 이름입니다)로 만들어 앨범에 히든트랙으로 실었다고 해요. 물론 만 여명에 이르는 관객들이 다함께 부른 노래라 한명 한명의 목소리를 찾을 수는 없지만 이 안에 다영이의 목소리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다영이 부모님께서도 이 앨범을 들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건 샤이니 팬이 아니면 모르는 소식이라 다영이와 아주 친했던 친구들이라 하더라도 부모님께 챙겨드릴 수 없는 부분이기에 마음이 쓰이네요. 그래서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앨범 2장을(하나는 다영이가 잠들어 있는 곳에 전에 받은 샤이니 싸인CD와 함께 기념으로 놓아둘 수 있도록, 또 다른 한 장은 부모님께서 댁에 두고 언제든 들으실 수 있도록) 다영이 부모님께 우편으로 보내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있을까요? 곧 크리스마스도 찾아오는데 부모님들께서 다영이 목소리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나마 들어있는 앨범으로 추운 겨울을 달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댓글에는 이름도 연락처도 없이 메일만 남겨 놓았습니다. 다영양 아버지께 앨범을 보낼 주소를 물어 답 메일을 보내며 세월호의 기억과 가족 위로를 위해 이 사연을 기사화해도 되겠는지 물었습니다. 일이 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아이돌 팬의 괜한 생색내기로 비춰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없지 않지만 이 일로 인해 지난 봄 잔인했던 세월호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되살려 볼 수 있다면, 그래서 희생자 및 유가족분들께 위로가 된다면 제가 굳이 사양할 이유가 없을 듯합니다”라고 답해왔습니다. 사연은 ‘세월호 가족 울린 샤이니 CD 성탄 선물’(경향신문2014.12.25일자 11면, 조형국 기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 되었습니다.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연의 주인공은 ‘경기 남양주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였습니다. 다영양과 부모님께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겠지요.

   

선행의 완성은 드러내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사연을 얘기하지 못했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겁니다. 팍팍한 세상에 숨통이 조금 트이지 않습니까. 2014년의 마지막 날 훈훈한 사연으로 올해 블로그를 마감해 참 좋습니다.

  

샤이니와 샤이니월드 팬들에게 블로그를 통해 감사인사 전합니다.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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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지난 일요일 아침 선배의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도착한 회사 앞은 경찰, 철도노조원 등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입사 이후 정동길이 이렇게 밀도가 높았던 적은 본적이 없습니다. 회사 신분증을 내밀며 인파를 비집고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로비에서 상황을 지켰습니다.

 

현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노조원이 대치했습니다. 철도노조 간부를 연행하려는 경찰의 경고 방송과 노조원의 구호가 뒤섞였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경찰 체포조가 현관 유리문 앞으로 바짝 다가섰습니다.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밀어 붙이는 경찰에 노조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여의치 않았던 경찰은 망치 등을 동원해 현관 바깥쪽 유리문을 부수고 유리문 사이에서 저항하던 노조원들을 연행됐습니다. 내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다시 힘겨루기를 하던 중 경찰은 벌어진 문틈으로 노조원들의 얼굴을 향해 최루액을 발사했습니다. 게임을 하듯 쏘았습니다. 최루액 총질 앞에서 노조원은 인격체가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최루액을 피하지 못해 그 매운 맛에 눈을 한참이나 뜨지 못했습니다.

 

 

                                                                                                           김정근 기자 취재사진

 

 

 

 

밀어붙이는 경찰과 버티는 노조원들 사이에 다시 119구조대의 특수장비가 동원되고 내부 유리창마저 깨졌습니다. 경찰이 들이닥치는 동안 뒤로 바짝 물러난 노조원들이 서로의 팔짱을 끼고 스크럼을 짰지만 서너 명의 경찰이 한 명씩 붙들자 힘이 소진된 이들이 더 견디지 못하고 한 명씩 끌려나갔습니다.

 

최루액이 무자비하게 발사되고 경향신문이라 써진 현관문이 무기력하고 깨지고 노조원들이 무차별적으로 연행되는 과정을 보며 씁쓸하고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지나고 생각하니 참 분노해야 할 상황에 너무도 차분하게 사진을 찍어댔다 싶었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이겠지요. 그 순간은 반드시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사건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해야할 요즘, 잠을 한참이나 못 잔 것처럼 예민해지고 또 찜찜하고 사소한 것에 짜증을 내고 있습니다. 저는 확실히 안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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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포토다큐를 지난 토요일 지면에 내 보내고 찜찜한 뒤끝이 계속 되네요.  

이번 다큐엔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난민 얘기를 다루었습니다.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사람들입니다.

책 <내 이름은 욤비>난민 관련 책을 두 권 읽고, 난민지원단체 간사의 권유로 논문도 하나 읽었습니다.

지면에서 8매 정도의 글로 전달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등지고 온 난민들이라 신변의 위험은 늘 잠재되어 있는 것이지요.

카메라를 드는 것도 한참을 망설이고 머뭇거렸습니다.    

 

난민을 돕는 단체를 통해 한 가족을 소개받았습니다. 

코트디부아르 난민 마마두의 가족입니다.

부부와 두 아이가 서울 모처에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조카의 작아진 옷들과 장난감 등을 가득 들고 갔습니다.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가족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다시 찾았을 때 벽걸이용 가족사진을 액자에 담아 전달했습니다.

너무 선해 보이는 이 가족이 좋아하는 모습에 저도 참 좋았습니다.

가족사진 중 마마두의 얼굴이 조금 아웃포커스 된 사진을 보여주며 신문에 써도 되는지 물었고, 그는 흔쾌히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여러 차례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보였던 모습은 그가 만에 하나 다큐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상 내지는 보험이었나? 라고 제게 묻고 있는 중입니다. 옷과 사진을 챙겨가는 순간에 스스로 의심치 않았던 진정성이 신문 게재를 목적으로 했기에 거짓이었나? 라고 지금 묻고 있는 중입니다. 

 

 

 

 

 

 

 

 

yoonjoong

 

<난민, 그들에게 한국은 '좋은 나라'인가>

 

마마두씨(40)는 난민이다. 2002년 사업차 한국에 체류 중이던 그는 고국인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으로 귀국하지 못하다 상황이 진정된 2005년 돌아갔다. 사업 재개를 위해 친구들을 만나던 중 정권 와해를 위한 활동으로 오인한 친정권파 군인들의 습격을 받았다. 반정부 모임과 시위를 조직했던 전력 때문이다. 마마두씨는 한국으로 피신해 출입국관리사무소 난민실에 난민 인정 신청을 냈다. 4년이 지난 2009년 법무부로부터 불허 통지를 받았다. 이의신청과 행정소송으로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긴 난민 심사기간 동안 생계지원도 없고 합법적인 직업도 가질 수 없는 고난과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마마두씨는 2012년 아들의 수술과 치료 등의 이유로 ‘인도적 체류’가 허용됐다. “한국의 자유”가 좋다는 그는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니제르에서 온 난민여성 루카야씨(37)는 아이를 안고 난민지원단체 ‘피난처’에서 운영하는 난민공동체학교를 찾았다. 매주 토요일 성인 난민을 위한 요리교실과 한국어교실이 열리는 곳이다. 그녀는 반죽 위에 쪽파와 해물을 얹어 해물파전을 구웠다. 입맛에 맞는지 파전에 쉴 새 없이 손이 갔다. 이어지는 한국어교실. 루카야씨가 교사의 선창에 “가나다라...”를 따라했다. 돌 지난 딸이 옆에서 “다다다다”하고 엄마 흉내를 냈다. 새로 배운 단어를 곧잘 따라 읽는 그녀에게 교사가 엄지손가락을 내밀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먼 이국땅의 고단한 일상에서 공동체학교의 수업은 위로가 되고 있었다. 

  
음악교실에서 만난 자비(9)는 난민부모를 둔 아이다. 자비는 또래와 장난을 치다가도 금세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곤 했다. 한국어를 국어처럼 쓰는 자비의 국적은 말리다. 하지만 자비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인”이라고 했다. 국적을 가진 자비와 달리 상당수의 난민아동은 부모가 박해가능성 등의 이유로 자국 대사관에 출생등록을 하지 못해 무국적 상태로 살고 있다.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고시합격보다 어렵다고 할 정도로 난민 인정에 인색하다. 난민 신청자 5485명(2013년 5월말 기준) 중 난민 인정자가 329명, 인도적 체류가 173명, 불인정이 2550명이다. 매년 1000여 명 정도가 난민 신청을 하고 있다. 

 

‘피난처’의 난민숙소이자 커뮤니티 ‘라이트하우스’의 집들이 날. 6년이 걸려 난민 인정을 받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욤비 토나(46)씨가 초대받은 이들 앞에서 난민을 얘기했다. “한국 사람들 1950년(한국전쟁)에 난민이었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난민이었어요. 우리나라(콩고) 괜찮아지면 다시 갈 거예요. 콩고에서 누가 물어보면 한국이 “감옥이었어요”라고 말하면 안 되잖아요. 좋은 나라 기억 남기세요. 누구나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어요.”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Posted by 나이스가이V

"4월이구나, 장애인의 날이 다가오는구나, 싶었어요"

"기자들이 (장애인에게) 대우 받으려면 4월 빼고 연락해야 돼"

윤수씨는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평소 잠잠하던 기자들이 최근 연락이 잦아지 조금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유독 저의 방문을 허락한 것은 11년 전 '장애인 이동권' 취재의 인연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지난 2002년 제 생애 첫 다큐의 '메인사진'이 휠체어 탄 윤수씨 사진이였지요.(맨 아래 사진)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도 궁금했고, 또 다큐가 게재되는 날이 공교롭게 '장애인의 날'이다보니 민망함을 무릅쓰고 연락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대우 받지 못할 연락에 미안함을 표했고 윤수씨는 쿨하게 받아주었습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다"는 윤수씨의 유머스러운 어법은 지난 세월에 전혀 녹슬지 않았더군요. 윤수씨의 어떤 모습과 얘기를 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앞둔 기사들은 흔히들 아프고 서럽고 외롭고 차별받는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사회적 배려와 복지 정책의 변화를 얘기하지요. 물론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굳이 저까지 삶 앞에 수동적인 수혜자로서의 장애인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윤수씨가 2006년 쓴 자전에세이 '꽃보다 활짝 피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자칭 '공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늘 유쾌하고 당당하게 살아온 모습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녀를 '당당한 공주'로 보여주는 것이 이번 다큐의 목적이었습니다.

 

늘 꿈을 위해 도전하고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중증장애인, 정윤수!

 

 

 

'나는 아름답다'

 

'장애인 이동권'보도 후 11년... 휠체어 탄 여행작가, 정윤수씨의 당당한 삶

 

 정윤수씨(42)는 자칭 공주. 꼿꼿이 고개 들고 우아한 삶을 추구한다. 그런 그녀에게 특별한 사진이 어울릴 것 같아 그녀의 임대아파트 작은 방을 스튜디오처럼 연출했다. 거울 앞에 앉은 그녀는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정성껏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화장을 머금은 얼굴이 거울 속에서 수줍은 듯 웃었다. “장애인이기 전에 예뻐 보이고 싶은 여자라고 했다.

 

 

 

 윤수씨는 11년 전인 2002년 경향신문과 인연을 맺었다. ‘장애인이동권보도를 통해서였다. 그간의 안부를 묻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며 신산했던 지난 시간을 특유의 유머로 요약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너무 갖고 싶었던 윤수씨는 7년 전 5월의 신부가 됐지만 결혼 생활은 2년을 넘기지 못했다. “돌싱이에요라며 웃으면서 상처가 깊다고 했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큰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두 팔을 예전처럼 쓰지 못한다.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왼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상처와 아픔에 주저앉을 그녀가 아니다.

 

  윤수씨는 평생교육원에 다니며 웃음치료사, 자원봉사지도사,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등 자격증을 수두룩하게 땄다. “따 놓고 당장 쓰지는 못해도 내 만족이며 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여행작가 과정을 이수한 그녀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서울의 명소를 찾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장애인 시설 실태 조사원으로 활동하는 윤수씨는 학업에도 열심이다.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인 윤수씨는 요즘 과제 때문에 죽겠어요. A4지 한 장 치는데 15시간 걸려요. 살찔 시간이 없어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배워야 정책을 알고 그래야 바꿀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윤수씨에게 물었다. “웃지 마세요. 한복모델을 해보고 싶어요훗날에는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양성하는 학교를 세우겠다는 야무진 꿈도 갖고 있다. 비장애인의 선입견으로는 무모해 보이는 많은 일들을 그녀는 현실의 삶으로 끌어들이며 살아왔다. “절망의 끝을 맛본 뒤 열심히 노력해 현재의 삶을 만족하게 됐다는 윤수씨는 지금 이 순간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2013.4.20 15면)

 

 2013년 4월 안양천 벚꽃 나들이

 

2002년 9월26일 17면 장애인이동권 다큐 중에서

yoonjoong

 

 

Posted by 나이스가이V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강행하고, 일본 정부 고위 인사들이 이 행사에 참석하면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은 하루종일 일본 규탄 집회로 북적였습니다. 행사의 일환으로 유관순 한복을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손색없는 그림이지요. 대사관 앞에 모인 수 많은 내외신 매체의 카메라가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남성이 "일본 물러가라"를 외치며 윗옷을 들어올리고 카터칼로 배와 팔을 번갈아 그었습니다. 

 

 

카메라는 어린이들에서 이 자해하는 남성으로 일제히 옮겨갔습니다. 길게 빼지 않은 칼로 그어 긁힌 상처에 살짝 피가 맺혔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아이들 앞에서 무슨 짓입니까?"라며 C사 후배기자가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등지고 이 남성의 칼 든 손을 잡아챘습니다.

 

 

이어 경찰이 들어와 이 남성을 현장에서 끌어냈지요. 어수선해진 현장이 정리되고 그 상황을 복기해 보면서 '용기있는' 후배의 행동에 모두 찬사를 보냈습니다. 경황이 없는 순간에 아이들을 생각했다는 것도 그렇고 카터칼일지라도 위험한 흉기인데 반사적으로 손목을 잡아채는 행동이 참 멋있었던 것이지요. 어떻게든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셔터를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 민망했습니다. 점심으로 부대찌게를 먹는데 이 정의로운 친구가 라면사리를 부셔 넣는 모습도 근사해 보였습니다. ^^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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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이야기

그는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있었습니다. 양복 차림이었으니 집에서나 신는 홈패션의 일환은 아니었지요. 거실 바닥에 깔아 놓은 두툼한 러그 속으로 발을 넣었다 뺐다 하는 동안 제 눈에 띄었습니다. 찍었냐구요? 눈으로만 봤습니다. ^^ 강지원 변호사. 그는 정책중심선거로 기존 정치판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와 0.2% 득표해 낙선했지요. 강 변호사와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부부를 만났습니다.

  

 

부부는 삼청동 한옥에 살고 있었습니다. 마당까지 40평 남짓 되는 아담한 한옥에서 지난 2년간 월세로 살았다는 군요. 밖으로 난 창과 문에는 큼직한 비닐을 덮어 새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고 있었습니다. 덧 댄 비닐과 구멍 난 양말로 이 부부의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짐작하는 것은 오버입니까? ^^

 

유머와 호탕한 웃음을 가진 강 변호사와 수줍은 미소와 차분한 말투의 김 전 위원장은 달라서 더 어울려 보였습니다. 웃는 얼굴은 많이 닮았습니다. 차 한 잔 마시며 부부의 대화를 듣는 동안 사진 찍기 전 가졌던 부담이 사라졌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 아저씨, 아주머니 같이 반갑고 편안했습니다. 부부의 내공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진 찍던 중 빛이 들어온다며 평상을 직접 옮기는 부부.

 

 

손잡아 달라는 주문에 덥석 부인의 손을 잡는 강 변호사. 사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반응을 걱정했습니다. 거실, 마당, 대문 앞, 골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았습니다.

 

 

처음 삼청동 자택에 들어설 때 환한 웃음으로 맞아 주는 부부를 보며 좀 미안했습니다. 대선 후보를 담당한 사진기자로 선거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강 전 후보를 찍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습니다.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또 그리 살아갈 이 부부를 위해 기념사진을 좀 남겨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괜히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변호사님, 위원장님 "행쇼~"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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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안철수 후보'  (11) 2012.11.26
Posted by 나이스가이V

야권 후보 단일화를 놓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간에 주도권 경쟁이 가열되고 있지요. 하지만 '정면충돌'이라는 센 제목으로 시작하는 기사와 함께 나간 두 후보의 사진에서는 이미 단일화가 시작되고 있는 듯 합니다.

 

편집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재밌는 편집이어서 보여드립니다.

 

문재인 후보의 흙먼지 덮인 구두를 클로즈업한 사진과 '소통과 융합'을 강조하며 한쪽 눈을 가린 안철수 후보의 손을 부각시킨 사진이 나란히 쓰였습니다. 기사는 다툼이지만, 사진은 화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과 발'이 따로 일 순 없지요.

좀 억진가요? ^^

 

<경향신문 10월11일자 5면>

 

다음 사진에서는 확실한 '단일화'의 이미지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같은 날 신문 8, 9면을 나란히 장식한 대선기획 문 후보, 안 후보 '뒤집어 보기'에 실린 사진 보시죠.

문재인 후보가 전북 정읍을 방문해 벼베기를 도운 뒤 농민들에게 막걸리를 따르는 사진을 썼습니다.

막걸리에는 찌짐(전) 만한 안주가 없지요.

 

 

 

 

그렇습니다.

 충남 천안의 오이 농장을 방문한 안철수 후보는 오이 빈대떡을 부쳤습니다.

절묘하지 않습니까.

'손과 발'에 이어 '술과 안주'라......

 

 

.

 

 

두 후보의 다툼 기사에 물려있는 후보들의 소통하는 듯 한 사진.

그러고보니, 기사와 사진도 지면 내에서 화해와 소통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yoonjoong 

 

 

Posted by 나이스가이V

아침부터 한 보도채널에서는 태풍(카눈)피해와 태풍이 동반한 많은 비 소식을 주요뉴스로 전하며 호들갑이었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빗발은 잦아들었고, 바람은 나무 잔가지를 겨우 흔들고 있었습니다.

피해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TV에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 앵커, "현장에 기자를 연결하겠습니다.(기자가 연결되자) 바람이 많이 부는군요" 

현장 기자의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살랑살랑 날리고 있었지요.

 

그럼에도 뉴스에 의해 계속 조장되는 긴장.

양재천 일대 도로 일부가 침수돼 교통이 통제됐다는 기사를 보고 나섰습니다.

반바지 갈아입고 장화 신고 우비를 걸치고 카메라엔 레인커버까지 씌웠습니다.

보기 드문 완전무장이죠.

 

양재천에 도착하자 해가 내려쬐기 시작했습니다.

비 한방울 맞지 않은 우비 안에서는 땀이 배기 시작했지요. ㅎㅎ 제 복장이 과했습니다.

천변 주차장까지 찼던 물은 조금씩 빠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날이 개자,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어르신이 물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넘쳐난 물에 떠내려온 '자라' 한 마리가 움츠리고 있었지요.  

어르신의 개는 난생 처음보는 '자라'를 경계하듯 거리를 두고 이리저리 어슬렁거렸지요.

어느 '건강원'에서 키우는 개가 아니라면 '자라' 볼 일이 있었겠습니까.  

 

 

 

'자라'라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미심쩍은 마음에 지나는 말로 "이게 자란가?"했더니, 

어르신은 "지난 초파일날 방생한 자란데 이만큼 컸다"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지요.

어른신은 깊은 물로 향하려는 자라를 우산으로 은근히 밀어 얕은 곳으로 수차례 옮겨 놓았습니다.

놓아주자니 아깝고, 잡자니 주위에 보는 눈이 있고... 갈등하시는 모양이었습니다. ㅎㅎ

 

 

초면인 어르신의 양심을 믿어 보기로 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재밌는 사진을 찍었다는 생각에 조금 신이 났지요.

'자라보고 놀란 개' '개가 난생처음 자라를 만나던 날'...사진 제목을 머릿속에 그리며 회사에 도착,

사진을 작업해 올렸습니다.

 

마감시간 쯤,

인터렉티브팀(제 블로그의 방문자 수를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권한을 가진 조직^^) 후배의 문자,

"선배 똑똑한 네티즌들이 양재천 사진보고 자라가 아니라 붉은귀거북이라고 지적해줬네요.ㅋㅋ"

경향신문의 페들의 '릴레이 지적'이 있었더군요.

'자라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부터 '사진'에 '백과사전'까지 올린 것을 후배를 통해 확인했지요.

민망했습니다.

양재천 어르신을 이제와 원망해 본들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얄팍한 짐작으로 확인없이 설명을 써서 올렸으니...

 

설명을 잽싸게 고쳤고, 다음날 신문에는 다행히 '붉은귀거북'이라고 나갔습니다.

신문에까지 '자라'로 나갔더라면 두고두고 민망할 뻔 했던 것이지요.

 

경향신문 페친, 트위터 팔로워 여러분, '욕'대신 '친절한 지적'에 두고두고 감사하겠습니다.

기자 하나 살리신 겁니다!!! ^^

 

그나저나 '붉은귀거북'은 양재천으로 무사히 돌아갔을까요?

 

 

yoonjoong

 

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회부 후배의 다급한 전화.

" 강선배 10분 후에 나온답니다"

카메라 들고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 탔습니다.  

중부경찰서로 가시겠습니다." "중부서 아시죠?”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님은 베테랑의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안다"는 대답 대신 제 무릎 위에 올려져 있는 카메라를 보며

카메라가 묵직해 보이네요.”라고 말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 예~.” 대답을 하면서도 조급함에 죄송하지만 조금만 서둘러 주시겠습니까."

서두르는 것에 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사실은 CJ회장을 미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삼성 직원이 오늘 조사를 받았는데 곧 나온답니다.”

나오는 거 사진 찍으시게요? 기자세요? 어디...?”

예, 경향신문 사진기자입니다

기사 어른신은 감춰뒀던 환한 웃음으로 즉각 반색하며 , 반갑습니다. 경향신문 독자입니다."

그러세요. 선생님. 반갑습니다

너무 좋아합니다. 경향신문 보면 속이 후련해 집니다. 태우게 돼서 영광입니다

아니 별말씀을...감사합니다. 제가 영광입니다

김재호 판사 기소청탁 의혹에 경찰이 김 판사를 소환한 것과 관련해

경찰이 판사나 검사를 소환하는 게 가능합니까?”라고도 물었고, 

얼마전 경기경찰청장 구속 건 때문인 것 같은데, 맞아요?라고도 했습니다.

어떤 신문보면 김재호 판사를 너무 감싸는 것 같데요. 왜 그러죠?

'기자는 모두 알리라' 생각하셨던지 신문보면서 의아했던 것을 몇 가지 물어오셨습니다만,

들 뾰족한 답이 있겠습니까. 마음은 급하고... "아 예" "그렇습니다" 정도와 웃음으로 때웠습니다. ^^

 

안 늦었어야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경찰서 가까이와서 차가 조금 밀린것 때문인지 저보다 더 걱정을 했습니다.

잔돈 200원을 덜 받은 것이 독자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지요.

급히 문을 열고 내리는데 뒤에서 사랑합니다라고 택시 기사님의 목소리가 수줍은 듯 들려왔습니다.

그 낯설었던 찰나에 적당한 대답을 찾았지만 네 감사합니다”하고 답하고 말았지요.

경찰서로 뛰어올라가면서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걸...'하며 후회했지요. 

과분한 칭찬과 대접에 쑥스러웠습니다만 기분은 괜찮더군요. ^^

곧 나오기로 했던 삼성의 직원은 한참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름 모를 택시 기사가 이름 모를 기자에게도 건네는 사랑합니다라는 말,

형제 사이에 오간다면 삼성과 CJ처럼 다툴 일은 없겠지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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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설마 했습니다.
설마 이리 추운날,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로 뚝 떨어진 날,
물대포를 쏠 줄은 몰랐습니다. 



23일 밤 한미FTA 비준안 강행 처리에 반발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이날 밤 마감은 이랬습니다. 
오랜만에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그 규모를 보여주려 했지요.
서울광장이 내려보이는 곳에서 서둘러 사진전송을 했습니다. 
10여분 뒤 다시 광장을 내려다보니 참가자들이 더 늘어 있었지요.
다시 찍었습니다. 그리고 마감...'그새 또 늘었군'...다시 찍고 마감.
여하튼 어젠 그랬습니다. 



본 집회가 끝나고 광장에서 을지로와 무교동 쪽으로 빠져나가는 집회 참가자들.
날이 추워 이쯤에서 끝나겠지, 싶었습니다. 그런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곳곳의 길목을 막아선 경찰. 이에 항의하는 시민.  
비준 무효 구호는 거세지고, 
곧 경찰의 경고방송과 함께 물대포 줄기가 밤하늘에 하얀 곡선을 그리며 집회참가자들 머리 위에 골고루 퍼졌습니다.



좌우로 넓게 뿌리다 앞쪽에서 구호를 외치는 이들에 집중적으로 또다시 넓게...



그리고 경찰투입과 연행이 반복됐습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우비에 우산을 들기도 했지만, 대부분 몸으로 그 찬물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도 서너 바가지쯤 덮어썼습니다. 
방수대책을 전혀 생각지 않은 탓에 그대로 젖었습니다.
이가 딱딱딱 부딪칠 정도로 추웠던 건 차치하고,
물맞은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깝깝했습니다.
사진기자에게는 생명같은 카메라 아니겠습니까?
이런날 설마했던 물대포를 그렇게 하염없이 맞다보니, 그 물대포의 폭력성이 배가 되더군요.


이제 더 추워질 것이고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물대포라면 대책을 강구해야 겠지요.
카메라와 겉옷의 방수 및 동파방지 대책을 세우고,
도로의 결빙에 대비해 스케이트라도 준비해야 할까 봅니다.


물대포에 감기는 오지 않았지만, 카메라는 맛이 갔습니다.
조금전 자식같은 카메라를 수리센터에 보냈습니다.
수리비는 어데다 청구해야 합니까?

1면에 썼던 집회 사진을 3면으로 밀어낸 비준안 찬성 국회의원 151명의 사진.
오늘 들어온 문자메시지의 절반을 격려와 칭찬으로 도배해준 충격적인 1면.
그로 위안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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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오후 한가한 시간에 테이블 위에 있는 일간지 9종을 펼쳐 보았습니다.
각 사가 1면 사진을 무엇으로 썼나를 보는 겁니다. 
전날 '수능'이라는 '거사'가 있었기에 수능 사진을 어떻게들 썼는지 보려는 것이지요.   
예년 같으면 시험치느라 고생한 자녀를 안아주는 부모 사진, 혹은 수험생 기도+부모의 기도를 엮은 사진 등으로 전 신문이 도배를 했을 겁니다. 거의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각 사가 주목한 이슈를 사진으로 내세웠습니다. 
어제는 수능시험도 있었지만,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309일 만에 내려왔구요. 
국회 앞에서는 한미FTA반대 집회도 열렸습니다.

먼저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김진숙 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사진을 썼습니다.
물론 톱기사도 마찬가지구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한미FTA반대 집회 사진을 실었지요.
기사 역시 FTA 관련 기사가 톱입니다.
사진은 시위대에 둘러싸여 맞고 있는 경찰의 모습입니다.


신문이 가치를 두고 다루는 기사가 이렇게 확연이 갈립니다.
신문사진도 그 가치에 충실하게 기여하지요.

아래는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실은 한미FTA 반대집회 사진입니다.


조선, 중앙과 시선이 완전히 다릅니다.
경찰의 무자비한 물대포를 맞는 시위대의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문득, 신문이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신문을 비교하며 보는 이들은 극소수일테고,
그 와중에 사진을 비교하는 독자들은 더더욱 없을 터이니,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ㅎㅎ 

다른 신문들은 예년과 다름없이 수능사진을 1면에 소화했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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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MBC 조의명 기자가 해빙기 익사사고 보도중 물에 빠지는 아찔한 영상이 화제군요
익사사고의 위험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줄 순 없겠지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위험성을 보여줬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사실 'NG'영상이지요
이를 과감하게 내보냈다면 '위험경고'의 극대화를 꾀한다는 뉴스 편집자의 의도가 있는 것이지요
문화방송의 차별화된 주말 뉴스에 맞는 영상이라 생각도 했을 테구요
또 이런 아찔한 영상과 조 기자의 이름이 온라인 뉴스를 통해 일파만파 번질 것이라는 
소위, 또 한 명의 스타기자 탄생을 머릿속에 그렸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폭설 뉴스를 전하던 박대기 KBS 기자를 기억하듯이 말입니다 
  
현장에서 접하는 방송기자의 보도도 조금 변하고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지요
시청자가 보기엔 고만고만 하지만 선수들 사이의 경쟁은 조그만한 것,
시청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승부를 얘기하고 일희일비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신문도 마찬가집니당~)
게다가 인터넷 시대에 눈길을 끄는 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대로 다음날 온라인을 달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니, 조금더 과감해 지거나,
몸을 사리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는 분위깁니다

가끔 현장에서 보면 '고생이 많구나' 하면서도 과하게 '쇼'적이라는 생각도 살짝 들더군요 ^^

얼마전 특전사 겨울훈련에서 얼음물에 몸을 담구고 이를 달달 떨면서 리포팅을 하던 기자들이 생각나네요 
멘트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물을 박차고 나갔지요 
특전사 요원들과 대조적인 하얗고 비만한 몸이 아프게 가슴에 남았습니다 
이 영상도 인터넷에 돌더군요 
식스팩이 선명한 기자가 그 속에서 리포팅 할 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직감합니다
난리가 나겠지요 ^^*

모쪼록 대한민국 기자들, 올 한 해 사고없이 몸도 좀 사리며 일했으면 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할 일이 태산 같기에...

by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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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뻗치기'라는 기자들이 쓰는 은어가 있습니다.
군대에서의 얼차려를 연상케하는 단어인데요.
단어의 뉘앙스가 그러하듯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약이 없지만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어떤 상황이나, 뉴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마냥 기다리는 
조금은 무식하고 단순한 취재방법이지요. 
지겹습니다. 하지만 왠만큼 간이 크지 않으면 자리를 떠서 다른 무엇을 할 수도 없습니다.
꼭 자리를 비운 잠깐동안 상황이 발생해 버릴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지요. 

그제 태광그룹 회장의 어머니 집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는 뉴스를 보고 
바로 장충동으로 향했습니다. 기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었지요. 
그저 '압수수색 영장발부'라는 사실에 '설마 이 늦은 밤에 하겠나'하는 의심을 가지면서도 모여든 것이지요.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지겨워지기 시작합니다.
한 일간지의 수습기자라 소개한 친구가 다가옵니다. 검찰이 언제 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에 대해 물었고,
뉴스보고 왔다. 정확한 건 없다,고 답해 줬습니다.
지난 사흘간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이곳을 지켰다는 이 친구는 기자들이 몰려들자,
홀로 있던 외로움에서 벗어난 기쁨과 이제 지난 사흘간의 별 소득없는 뻗치기가 막을 내리는 구나, 하는 
기대감에 표정이 밝았습니다.

건너편 빌라 옥사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인내의 시간을 벌서듯 보내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는 진돗개와 고양이 한 마리가 마당에 돌아다니는 데요" 자신만이 확인하고 본 유일한 모습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예의 그 밝은 표정으로.

밤 12시가 넘어서자, 기자들이 하나둘씩 '오늘은 아니구나'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리 허무할지 알면서도 '혹시나'나는 마음에 움직이는 이들이 기자들이지요.
그 수습기자는 또하루 늘어난 '뻗치기'에 한 숨을 내쉬겠지요.

결국 다음날 압수수색이 실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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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