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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신안군 안좌도 오동리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왜 하필 그곳에 갔을까, 궁금해 하는 분들이 주변에 서너 명 있더군요. ^^ 오동리 마을은 사진기자 ㅂ선배가 나고 자란 고향입니다. 그 선배의 소개로 마을 이장님과 통화하고 다큐길에 오르게 된 것이지요.

 

수년 전 다큐하러 어느 농촌을 찾았다가 사기꾼으로 의심을 산 적이 있습니다. 이거다 싶은 사진을 못찍어 다양하게라도 찍으려다보니 긴 시간이 필요했지요. 종일 옆에서 이것저것 묻고 사진 찍고 하다보니 ‘이 사람 뭐지?’ 했던 것이지요. 기자라고 다시 신분증을 내밀어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안전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사람을 보증으로 내세웠던 것이지요.

 

안좌로 들어가는 배 안에서 선배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좀 누추해도 우리집 가서 자면 된다. 울 엄니께는 얘기했어. 엄니가 요즘 공공근로 나가셔서 아침 드시는 시간이 좀 빠르기도 하고... 그래도 손님인데 반찬도 없다고 하시길래, 그냥 아들이라고 생각하시고 식사하실 때 수저랑 밥 한 그릇만 더 놓고 드시라고 했으니... 찬 없고 그래도 이해하시길

 

 

ㅂ선배의 엄니, 김순례 어머님과 밥상을 놓고 마주 앉았습니다.

 

내 집이다 생각허고, 어려워 말고.”

나름 서먹한 가운데 예의를 갖추려하자 즉시 말씀하셨지요.

 

찬 없어도 맛나게 묵어라고 하셨지만, 평소 집에서 먹던 반찬보다 많았습니다. 어머님은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았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이것저것 차리셨던 겁니다. 어머님은 밥을 먹는 동안에 문득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던졌습니다.

 

둘이 묵으이 맛나네.”

 

 

5남매 키워 모두 뭍으로 내보내고, 대부분의 끼니를 혼자 차려서 드셨을 테지요. 문득 던진 그 말을 곱씹다가 먹먹해졌습니다. 평소 김치와 나물 두어 가지쯤 놓고 드셨을 거라 짐작했습니다. 낫을 챙겨 공공근로를 나서면서도 제게 점심 꼭 챙겨먹으라 당부하고 또 당부하셨지요.

 

목포로 나오는 배에서 어머님의 밥상을 생각했습니다. 매일 아침상에 계란찜이 올라왔습니다. 일찍 일터로 나가는 바쁜 아침에 계란찜은 확실히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삼겹살과 동그랑땡도 번갈아 밥상을 차지했지요. 선배가 좋아하던 찬이었겠다 싶었습니다.

 

마을 회관에서 만난 어르신이 말씀하셨지요. 맛있게 묵어야제. 그래야 (밥상 차린 사람이) 안 미안허제

맛있게 잘 먹어보여 드렸어야 했는데 깨작거리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추석에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은 자식, 손주들과 함께 밥상에 둘러앉으셨겠지요. 그 넉넉한 미소와 털털한 웃음이 그려집니다. 연휴 끝나고 다시 밥상 앞에 홀로 앉으실 때 참 허전하고 적적하시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섬을 떠나기 두어 시간 전 기사를 마감하고 있는데 일 나가신 어머님이 집전화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찬 없으니 계란후라이라도 해묵어~”

 

어머님,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건강하세요.

 

둘이 묵으이 맛나네.”

이 세상의 못난 자식들을 민망하게 하는 말입니다.

 

 

 

[포토다큐] 세월만큼 굽은 허리, 펼 틈 없는 어머니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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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다큐

지난 주 마감했던 <포토다큐>는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번식연구에 대한 것이었지요. 작년 가을 무렵 반달가슴곰 취재를 시도했다가 시기가 맞지 않아 다음을 기약했었습니다.

 

잊고 있던 반달곰을 다시 떠올린 건 지난 3월 취재했던 평창동계패럴림픽이었지요. 마스코트가 반달가슴곰 반다비였습니다. 뭐 이런 순간에 몇 달 후 지면을 어렴풋이 그려보기도 하지요. 마음을 굳힌 건 반달가슴곰 세계 최초 인공수정 출산 성공이라는 뉴스였습니다.

 

지난해 한 차례 취재시도, 패럴림픽 마스코트, 세계 첫 인공수정 출산 등 일련의 과정이 ‘거부할 수 없는' 계시로 다가왔습니다.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 반달곰 인공수정 연구진

 

반달곰 복원에 애쓰는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에 연락을 하고, 그날 밤 구례로 달려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암컷 반달곰 증식연구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지요. 인공수정 연구라는 것이 연구진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 암컷 반달곰의 몸 상태에 달린 일이었습니다. '곰의 일'을 사람이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반달곰의 인공수정을 위한 발정을 기다렸습니다.

 

주말이 지나도록 발정 소식은 없었습니다. 가슴을 졸였습니다. 마감을 이틀 앞두고 다시 구례로 가서 곰의 상태를 지켜봤습니다. 여전히 인공수정을 할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열흘의 시간이면 충분할 거라 판단했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필연적취재라 운 좋게 인공수정 과정을 담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했습니다. 제 조바심으로 자연이 움직여 주리라 바랐던 건 오만이었지요.

 

계획대로 다큐가 진행되지도 않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지도 못했습니다. 마감 시간까지 연구진 옆에서 무엇인지 모를 극적인메인 사진을 기다리다 결국 포기하고 현장에서 마감을 했습니다. 

 

   +암컷 반달곰 발정상태의 질세포 색과 형태

 

지면 특성상 소재를 고를 때 사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똘똘한 반달곰 사진 한 장이면 되겠지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부터 꼬였습니다. 마취상태에서 혀를 길게 늘어뜨린 반달곰 사진을 메인 컷으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세포사진을 크게 쓰게 된 이유입니다.

 

사진다큐 하나 내놓으면 후련함과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가 뭘 놓쳤지?’ 하는 찜찜함이 며칠은 따라붙습니다. ‘게재된 다큐기사를 본 독자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싶기도 합니다. 밀린 방학숙제처럼 마감에 쫓겨 영혼 없이 때웠나(?) 싶어 돌아보게 됩니다.

 

[포토다큐] '인공수정 1호' 아기 반달곰은 동생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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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야생동물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본 일이 있습니까?

 

전남 구례에 있는 야생동물의료센터를 다녀왔습니다.(923일자 포토다큐) 부상당하거나 어미 잃은 야생동물이 구조돼 들어와 치료·재활을 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찍어온 사진을 고르다 다시 한 번 야생동물들의 눈을 응시하게 됩니다.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서 야생동물을 찍을 수 있어 마주치는 눈을 바라보기도 했었지요. 사람 사진도, 동물 사진도 눈에다 포커스를 맞춰 찍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동물의 눈이 잘 보이는 사진 몇 장 모았습니다. 문득 저 반짝이는 눈이 무슨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떤 슬픔 같은 게 읽힙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동물들이어서겠지요. 크게 다친 동물들의 폐사율이 높다고 하니, 아마 같은 혹은 다른 종들의 죽음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부상 순간의 끔찍한 고통과 잃어버린 어미에 대한 그리움이 고여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야성을 영영 잃거나 완치가 안 돼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본능적 불안도 그 눈빛은 얘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때마침 읽던 책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수렵채집인들은 주변의 동물, 식물, 물건뿐 아니라 자기 신체와 감각이라는 내부세계에 대해서도 완벽히 터득했다……수렵채집인들은 농업혁명 훨씬 이전부터 자연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사냥하는 동물과 채집하는 식물을 잘 알고 있어야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농업과 산업이 발달하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기술에 더 많이 의존할 수 있게 되었고……”(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그 시대 사람들은 동물의 눈빛과 몸짓을 잘 읽어냈을 것도 같습니다. 감각해야 할 것이 수도 없이 많은 이 시대에 대상이 사람이건 동물이건 간에 눈이 하는 말을 읽어낸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겠지요. 수만 년 동안 퇴화해 온 감각일 테니 말이지요.

 

다시, 고대 수렵인의 눈으로 야생동물의 눈빛을 응시합니다. 이런 말이 들립니다.

 

"그 카메라 좀 치워줄래?”

 

그나저나 제 이 작은 눈은 누군가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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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공사 중인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에 대한 사진다큐 기사가 지난 29일자 지면에 실렸습니다. 전날 미리 온라인에 뜬 기사를 본 노순택 작가께서 격려의 메시지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사와 함께 올렸습니다.

 

지난 615일 열린 노순택 작가의 사진전 <비상국가> 작가와의 만남 뒤풀이 자리에 합류해 막걸리를 마시다 다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이니, 그의 지분도 들어있는 것이지요.

 

계획된 다큐 게재일이 한 달이나 남은 6월 말쯤, 분위기나 보려 꿀잠공사현장을 처음 찾은 것을 시작으로 주중 2~3차례 오후시간에 공사현장을 찾았습니다. 물론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를 고민하며 다녔습니다만, 막상 현장에서는 카메라를 놓고 일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사진 정택용

 

일하는 장면 하나 메인 컷으로 하고 나머지 전후 사진을 나열하는 식은 이번 다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사진 찍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또 누군가 이미 쓴 사진이나 기사보다 더 잘 찍고 쓸 자신도 없었고요.

 

정신승리법의 자기합리화가 작동했습니다. ‘막일에 직접 참여해 쓰는 글과 사진은 그 결과물이 비슷해 보일지라도 확연이 다른 것이다라고. 한 공간에서 함께 땀 흘리고 먼지를 뒤집어 써 본 뒤 쓰는 먼지’ ‘연대라는 단어가 그냥 눈으로 보고 쓴 단어와 어찌 같을 수 있냐는 겁니다. 땀 흘리는 모습의 사진 한 장이 어떻게 방금 와서 서둘러 찍은 사진과 같을 수 있냐는 거지요. 보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울림도 다를 것이라 믿었습니다.

 

결국 일하며 짬짬이 찍은 일꾼들의 모습을 모았습니다. ‘더운 날의 뜨거운 연대라는 것이 제가 찾은 최선의 답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어설픈 저를 환대해 주신 모든 분들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여러 도움을 주신 사진가 정택용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백컨대 꿀잠 공사에 참여한 날마다 정작 꿀잠은 제가 잤습니다.

 

yoonjoong

 

 

                                                      

 

[포토다큐] 마지막 한 명까지 직장으로 돌아가는 그날, 이 쉼터도 푹 쉬겠죠

 

지금도 무더위에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비정규·해고 노동자들이 지친 몸을 쉬어갈 수 있는 집이 지어지고 있다.

 

 

 

 

서울 신길동 골목. 낡은 4층짜리 다세대주택이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으로 리모델링되고 있다. 2년 전 기륭전자 해고노동자의 투쟁 10년을 돌아보는 토론회에서 공식 제안된 쉼터는 이후 법인을 설립하고 건물을 매입해 지난 5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현재 임대 중인 2, 3층을 제외하고 옥탑(쉼터·정원)과 지하(공연·전시장), 1층(카페·식당), 4층(쉼터) 공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완공을 앞둔 비정규노동자의 쉼터 '꿀잠'

 

현장에서는 자발적 ‘무보수 일꾼’들이 연신 굵은 땀방울을 떨궜다. 노동자, 종교인, 예술가, 학생, 시민 등 다양한 개인들이 합세했다. 대체로 생업의 기술과 거리가 있는 ‘막노동’이라 배우고 익히면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 5일, 꽃나무 정원이 들어설 옥탑이 북적였다. 쉼터가 될 옥탑방 외벽에 각목을 댔고, 한쪽에선 휴게용 벤치를 제작했다. 벤치 작업조 차광호씨(파인텍·옛 스타케미칼)와 김경봉씨(콜트콜텍)는 “내 집 짓는 마음”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긴 세월 거리에서 경험했던 숱한 쪽잠과 한뎃잠에서 오는 절실함 때문이다. 차씨와 김씨 등 노동자들은 작업이 끝나는 저녁이면 다시 동료들이 있는 광화문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공연, 전시 등 문화공간으로 태어나는 지하에는 ‘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프로젝트팀’ 등이 목공작업에 투입됐다. 쉼터를 설계한 정기황 건축가와 봉사자들이 합판과 각목을 재고 잘랐다. 절단기가 뱉어내는 톱밥이 온몸을 적신 땀에 고스란히 달라붙었다. 재단한 목재를 바닥과 천장, 객석에 붙여가자 공연장의 모습을 갖춰갔다. 공사가 진행되던 지난 20일, 개소식 전 첫 행사로 우리 시대 노동의 모습을 담은 책 <연장전>의 북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다. 

 

지난 20일 서울 신길동 비정규직노동자의 쉼터 ‘꿀잠’ 지하 공연장에서 첫 행사가 열리고 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왼쪽)이 쓰고 노순택 사진가가 찍은,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을 담은 책 <연장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완공 목표인 7월 말이 다가오자 건물 내·외부의 큰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특히 옥상정원은 쉼터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정원 조성에 참여한 가든디자이너 권혁문씨는 “자연 치유를 염두에 두고 꽃나무를 심었다”며 “노동자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계절 변화를 볼 수 있는 꽃나무로 조성된 옥상정원.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했던 황철우 서울지하철 2호선 승무원은 “당시 모두들 ‘가능하겠냐’고 물었어요. 근데 그게 되네요”라며 활짝 웃었다. 각계각층에서 마음을 모아 마련한 기금으로 건물을 매입했고, 이후 현장을 직접 찾은 개인들의 노력기부, 설계와 용접 등의 재능기부, 타일 같은 건축자재의 기부도 이어졌다. 하지만 리모델링 비용과 이후 유지운영비는 여전한 부담이다.

 

새참을 먹는 일꾼들. 심재현·최석희 건강한농부협동조합 조합원, 유흥희 기륭전자 분회장, 윤종희 기륭전자 조합원, 한경아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사무국장,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 정택용 사진가, 정기황 건축가, 황철우 서울지하철 2호선 승무원,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이단아 민주화운동정신계승연대 집행위원장, 이사라 문화기획자, 차광호 파인텍 조합원(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폭염 속 ‘뜨거운 연대’에 가담한 일꾼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지친 몸을 쉬어가는 노동자들의 표정이 그 위에 포개졌다. 꿀잠은 오는 8월19일 문을 연다. 

연일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진가 노순택의 말이다. “비정규노동자의 집은 하루빨리 쓸모가 없어지길 바라면서 지어지고 있다.”  

 

후원문의 (02)85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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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지난 6월 해외 출장 중 부서 단체 카톡방에 안부 인사를 남겼습니다.

경향신문 지구의 밥상기획 중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거쳐 케냐 나이로비에서 일정을 소화한 뒤 에티오피아로 출발하기 전날이었습니다.

 

케냐 일정을 끝낸 뒤 사진을 정리하며 골라낸 몇 장의 기념사진을 안부문자와 함께 보냈습니다. 뉘앙스를 알 수 없는 “(포토)다큐 하나 하자K선배(보조데스크)의 답글이 즉시 돌아왔습니다. ‘건강 잘 챙겨라는 통상적인 인사대신 말이지요. 그저 잘 지내고 있구나라는 말의 다른 표현쯤으로 이해했습니다. 국내 메르스 취재로 장기간 시달리던 터라 제가 보낸 한가한 기념사진에 골이 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존 기획에 집중해야 하는데 또 다른 기획을 도모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며 거부의 뜻을 밝혔습니다.

 

애초에 계획이 없었기에 사실 안 해도 그만인 다큐인데 에티오피아로 향하는 길 내내 다큐하나하자...다큐하나하자라는 문자가 환청처럼 들려왔습니다.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금세 고민에 빠져들었지요.

 

뉘앙스를 알 수 없는 안부인사 같은 지시를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문자를 보낸 이의 권위보다 그 짧은 문자 안에 간절한 바람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해외출장에 나선 사진기자가 기존 기획에 기획 하나를 더 챙겨온다면 이 얼마나 고효율적인 취재인가. 또 그간 포토다큐가 대체로 국내용 소재로만 다뤄지다 보니 다양성 측면에서 해외 다큐 하나 할 만한 타이밍이다.' 거부했던 다큐를 스스로 이런 합리화 과정을 거쳐 진행하게 됐습니다. 조직에 참 잘 길들여진 저를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밥상기획' 취재지역의 초등학교를 섭외해 사진을 엮어보자 생각했습니다. 이미 방학이 시작됐더군요. ‘그럼 아이들이 방학에 뭘 할까로 방향은 급전환됐습니다. 본 기획 사이에 곁다리 기획을 한다는 것은 조급해지고 산만해지는 일입니다. 몇 차례 더 방향이 흔들리며 틈틈이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큐 마감을 앞두고 아이들의 사진을 꺼내 이리저리 모아보며 왜 이 순간에 이 아이의 사진을 찍었을까’하고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냥 찍었더라도 그냥 찍은 그 이유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를 찾는다면 수많은 아이들 사진 중에 몇 장을 골라내는 기준이 될 것이었지요.

 

아이들의 눈망울이었습니다. 그 거부할 수 없이 맑은 눈빛이 카메라를 들게 한 것이었지요.

 

 

 

[포토다큐] '가난도 빼앗지 못한 눈빛'

 

아이들의 눈망울은 투명하고 깊었다.

먼 이국땅의 피부색 다른 동양인을 보는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370km 떨어진 시다마 존(Zone) 훌라 지구

(Woreda)는 한국월드비전(국제구호개발 NGO)이 지역 아동의 행복과 마을의 자립을 위해 후원 사업을 하는 곳이다.

 

훌라 지구의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의 주요 일과는 집안일을 돕는 것이었다. 10살 전후의 아이들이 초원에서 가축을 먹이거나 우물물을 긷는 모습이 흔했다. 듬성듬성 떨어진 농가를 잇는 거친 비포장 길을 걷는 동안 소를 치던 아이도, 나무를 타던 꼬마도, 삼삼오오 어울려 놀던 녀석들도 어느새 우리 일행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궁금증 가득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멀리서 온 손님의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를 신기한 듯 지켜봤다. 눈이 마주쳐 살람(안녕)”하고 손이라도 흔들어주면 정말 재미난 일이 벌어진 듯 까르르넘어갈 듯 웃었다.

 

 

아이들의 남루한 옷을 보고, 먹고 사는 것의 궁핍을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 아이들이 몰려왔을 때 무엇을 달라는 의미라 짐작했다가 즉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맑은 눈망울에 순박한 수줍음과 따뜻한 관심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수하고 천진한 표정 앞에서 가난을 전제로 한 선입견들은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대신 아이들의 그 눈빛을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눌러야 했다. 예쁜 눈에 어려 있는 꿈과 희망을 온전히 가꾸며 자라나길 바랐다.

 

월드비전이 2007년부터 훌라 지역의 교육 사업을 지원한 뒤 초등학교 입학률이 41.5%에서 98%, 문해율(읽고 쓰는 능력)34%에서 54%까지 올랐다. 한 교실 당 아이들이 85명에서 62명으로 줄었고, 책상 하나당 5명에서 3, 교과서 한 권당 7명에서 2명까지 보급되는 등 교육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2014년 기준)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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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새해 첫 포토다큐는 이왕이면 밝고 희망적인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10년 전쯤 새해에 한 기업의 신입사원 연수를 다큐지면에 썼던 기억도 났습니다. 소재를 고민할 즈음해 장안의 화제 고졸사원 장그래의 분투를 그린 드라마는 못 보고 대신, 만화 <미생>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만화를 덮자마자 이거다 싶었습니다. ‘고졸 신입사원을 다큐 소재로 결정한 것이지요.

 

서울시교육청을 통해 두 곳의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한 곳의 취업학생 명단과 담당교사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이미 사회인이 된 세 친구를 섭외했습니다. 각기 다른 직업이어야 할 것 등 나름의 기준으로 엄선(?)한 친구들입니다. 다큐 취재를 하면서 결국 성공한 친구들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취업하지 못한 더 많은 친구들의 아픈 상황을 외면한 것 같아 마음이 좀 쓰였습니다.  

 

흔히 농담하듯 '첫사랑에 성공했다면...' 고 또래였을 나이의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이 조금 부담되기도 하고 한편 설레기도 했습니다어쨌거나 기획의도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고졸 사원을 응원하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흡족할 만한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종일 지켜봐야 한다면 신입사원에겐 가시방석이자 엄청난 스트레스겠지요. 그래서 사진은 아예 연출해서 찍기로 했습니다. 직업을 짐작할 수 있는 배경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면을 머리에 그렸습니다. 적당한 조명으로 얼굴이 배경보다 조금 더 돋보이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표정에 자신감까지 담기면 그 이상의 사진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만날 세 친구를 지면을 통해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꽤 괜찮은 입사 축하 선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포토다큐 2015.1.17>


#그래, 해보는 거야...은행장까지

특성화고 출신 은행장 꿈꾸는 초보행원 한선영



“201번 고객님~” 고객을 부르는 한선영씨는 잔뜩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은행 서울 상일역지점. 오후 4시 영업종료시간인데 창구는 북새통이다. 선영씨는 숨 돌릴 틈 없이 고객을 상대했다. 자리 앞에는 노란병아리 그림 아래 초보행원이라 적힌 팻말이 놓여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그녀는 취업을 위해 인문계가 아닌 특성화고(서울 성동글로벌경영고 글로벌MD)를 선택했다. 선영씨는 3학년이던 지난해 우리은행 고졸 채용시험에 합격했다. “처음에는 하루를 어떻게 버틸까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요즘은 출근해 모니터를 켜며 오늘은 어떻게 지낼까하는 기대로 시작합니다.” 얘기하는 얼굴에 설렘이 가득하다. 가끔 까다로운 고객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객의 따뜻한 한마디에 감동하고 치유 받는다고 했다. “‘한선영이란 이름만 들어도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의 최종목표는 특성화고 출신으로 은행장이 되는 겁니다.” 그녀의 당찬 포부다.

 

#그래, 미쳐보는 거야...우리 회사니까

스펙초월 전형으로 입사한 신입사원 이강현

 


이강현씨는 중학생 시절 대졸 청년실업 문제를 접하고 대학 아닌 취업을 결심했고 마이스터고(서울 수도전기공고 에너지기계과)에 진학했다. 지난해 스펙초월 전형으로 한국남동발전의 신입사원이 됐다. 스펙초월 전형은 소셜리쿠르팅을 통해 온라인 과제를 수행한 지원자의 비전과 창의성을 보는 전형이다. 강현씨는 연수원 교육과 사업소 인턴 과정을 밟은 뒤 지난 12월 말 정식 입사식을 가졌다. 강릉 한국남동발전 영동화력발전처에서 신입교육을 받고 있는 그는 발전설비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 발전운전원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그는 요즘 출근길에 회사 건물이 눈에 들어오면 내 직장이구나하고 행복해 진다. “막내 사원으로 팀에 도움이 되는 것이 먼저라는 강현씨는 전문지식을 쌓아 회사가 신재생 에너지를 선도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맛을 보여주겠어...난 천생 요리사니까

퓨전요리 대가 꿈꾸는 신입사원 김성후


 

엄마 음식을 흉내 내 동생에게 맛보이며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는 김성후씨는 고민 끝에 특성화고인 서울관광고등학교 조리과에 지원했다. 롤 모델을 묻는 입학 면접관의 질문에 당연히 엄마라고 답했다. 성후씨는 롯데시티호텔 김포공항점 주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저녁 메뉴 준비로 분주한 주방에서 만난 성후씨는 조리사 복장이 잘 어울렸다. 인턴 생활을 거쳐 현재 불을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핫 파트에서 근무한다. 그의 손을 거치는 음식은 새우볶음밥, 쇠고기버섯볶음, 전가복, 갈비찜 등 10~15가지다. “제 새우볶음밥은 항상 발전합니다. 매일 작은 변화를 줘 음식을 창조하고 있어요.” ‘창조라 말하며 크게 웃었다. 자신감이었다. 그는 맛이 좋다는 손님의 칭찬에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는 천생 요리사다. “맨날 혼나지만 선배들 충고 새기면서 흠잡을 데 없는 사회인이 되고 싶어요. 훗날에는 퓨전요리에서 누구나 알만한 이가 되어 제 이름을 내건 식당을 열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성공한 앳된 세 명의 청년이 도전을 시작한다.

학교라는 보호막을 벗고 거친 사회에 힘찬 첫 걸음을 내딛는 이 시대 고졸 신입사원들에게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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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이번 다큐에서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예술가들을 만났습니다. 6년 전쯤 축제 현장 모습을 스케치해 다큐로 한 번 다뤘기에 이번에는 예술가에게 직접 다가가기로 일찌감치 마음을 굳혔습니다. 참여한 수 많은 예술가 중에 어떤 예술가를 선택할 것인가, 긴 고민을 한 끝에 한 영화감독의 작업에 꽂혔습니다. 그는 프린지에 참여한 예술가들을 즉흥적인 방식으로 담아내는 낯선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포함해 그의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만나는 예술가들의 얘기를 엮어 담아보자는 생각에 미친 것이지요.

 

이참에 저도 예술가가 되어봅니다. ‘사진을 찍는 내가 영화감독이 파인더를 통해 찍는 예술가와 그 작업을 찍는다’ ‘예술을 담는 그 예술을 담는다장고 끝에 닿은 개념이라 뭔가 그럴듯했고, 스스로 이 시도가 예술적이다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마음 먹은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저의 유연하지 못함과 게으름이 제일 큰 이유였지요. 고민을 온전히 지면에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것인가, 돌아보고 있습니다.

 

주위 선후배, 심지어 취재원에게도 엄살 부리듯 어려움을 많이 토로했던 취재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카메라를 들고 만났던 이들이 더 진하게 남습니다. 신지승 감독, 강신우 작가, 뮤지션 자이, 기매리 연출가, 배우 조용경 등 멋진 예술가들을 알게 된 것. 그만큼 제 삶이 풍성해 졌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낯선 예술, 거리로 나오다

 도시의 공허 메우는 비주류 예술가들의 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함께 외쳐요. 레디~ 액션

어둠이 내린 서울 홍대앞 거리에서 영화감독 신지승씨(50)가 선창하자 시민들이 따라 소리쳤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길거리 영화제작> 현장이다. 이번 축제에서 공연을 펼쳤던 여성뮤지션 자이가 신 감독의 사인에 맞춰 즉흥적으로 연기를 펼쳤다. 현장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시민들은 감독이 들이미는 카메라 앞에서 역시 즉흥적인 리액션 연기를 해내야 했다. 손이 모자란 현장에서 붐 마이크를 들고 슬레이트를 치는 것도 관객의 몫이었다. 그의 영화에는 전문배우도, 스태프도, 시나리오도 없다. 물론 출연료도 없다. 신 감독은 이번 작업은 자본 없이 길거리에서 기획·제작되고 극장이 아니라 거리에서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대 인근 소극장 ’. 연극집단 아해프로젝트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모티브로 한 <플랜B-두 덩치>를 무대에 올렸다. 주인공 용경이 산티아고를 여행하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연출가 기매리씨(28)는 반복되는 대사와 소리, 강렬한 시각적 효과, 제한적이고 비현실적인 표현으로 관객을 낯설게 했다. 낯섦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처럼 극중 배우는 수시로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였다. 당나귀 탈을 씌워 무대를 뛰게 만들고, 파티장면에서는 맥주병을 쥐어주며 춤을 추게 했다. 조용한 관객들 깊숙이 숨어있는 참여 욕구를 풀어내려는 시도다.

 

또 다른 축제공간인 서울월드컵경기장 기적의 책꽂이앞에는 예술가 강신우씨(31)의 설치·전시 퍼포먼스 <영원한 자막의 극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좁은 레드카펫 끝에 조그만 인디언 천막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관람객이 노트북 화면 위에 반복 재생되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마음에 드는 영문 이름을 골라 건반에 입력하면 강씨가 이를 음악으로 만들어 원래 자막 위로 흐르던 음악을 대체한다. 엔딩크레디트의 시 같은 형상이 아름다워 작업을 시작했다는 강 작가는 퍼포먼스는 세상에서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은유며, 관객의 행위는 잊혀져간 자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거리와 소극장 등 공연장에서 만난 프린지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실험하고, 장르를 넘어 교류하고, 관객들과는 소통을 시도했다. 비주류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창작과 꿈을 향한 열정이 흥청대는 도심 속의 공허함을 메워주고 있는 듯 했다. 1998독립예술제에 뿌리를 둔 민간예술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올해 16회째를 맞이했다.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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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4월이구나, 장애인의 날이 다가오는구나, 싶었어요"

"기자들이 (장애인에게) 대우 받으려면 4월 빼고 연락해야 돼"

윤수씨는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평소 잠잠하던 기자들이 최근 연락이 잦아지 조금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유독 저의 방문을 허락한 것은 11년 전 '장애인 이동권' 취재의 인연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지난 2002년 제 생애 첫 다큐의 '메인사진'이 휠체어 탄 윤수씨 사진이였지요.(맨 아래 사진)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도 궁금했고, 또 다큐가 게재되는 날이 공교롭게 '장애인의 날'이다보니 민망함을 무릅쓰고 연락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대우 받지 못할 연락에 미안함을 표했고 윤수씨는 쿨하게 받아주었습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다"는 윤수씨의 유머스러운 어법은 지난 세월에 전혀 녹슬지 않았더군요. 윤수씨의 어떤 모습과 얘기를 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앞둔 기사들은 흔히들 아프고 서럽고 외롭고 차별받는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사회적 배려와 복지 정책의 변화를 얘기하지요. 물론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굳이 저까지 삶 앞에 수동적인 수혜자로서의 장애인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윤수씨가 2006년 쓴 자전에세이 '꽃보다 활짝 피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자칭 '공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늘 유쾌하고 당당하게 살아온 모습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녀를 '당당한 공주'로 보여주는 것이 이번 다큐의 목적이었습니다.

 

늘 꿈을 위해 도전하고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중증장애인, 정윤수!

 

 

 

'나는 아름답다'

 

'장애인 이동권'보도 후 11년... 휠체어 탄 여행작가, 정윤수씨의 당당한 삶

 

 정윤수씨(42)는 자칭 공주. 꼿꼿이 고개 들고 우아한 삶을 추구한다. 그런 그녀에게 특별한 사진이 어울릴 것 같아 그녀의 임대아파트 작은 방을 스튜디오처럼 연출했다. 거울 앞에 앉은 그녀는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정성껏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화장을 머금은 얼굴이 거울 속에서 수줍은 듯 웃었다. “장애인이기 전에 예뻐 보이고 싶은 여자라고 했다.

 

 

 

 윤수씨는 11년 전인 2002년 경향신문과 인연을 맺었다. ‘장애인이동권보도를 통해서였다. 그간의 안부를 묻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며 신산했던 지난 시간을 특유의 유머로 요약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너무 갖고 싶었던 윤수씨는 7년 전 5월의 신부가 됐지만 결혼 생활은 2년을 넘기지 못했다. “돌싱이에요라며 웃으면서 상처가 깊다고 했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큰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두 팔을 예전처럼 쓰지 못한다.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왼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상처와 아픔에 주저앉을 그녀가 아니다.

 

  윤수씨는 평생교육원에 다니며 웃음치료사, 자원봉사지도사,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등 자격증을 수두룩하게 땄다. “따 놓고 당장 쓰지는 못해도 내 만족이며 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여행작가 과정을 이수한 그녀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서울의 명소를 찾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장애인 시설 실태 조사원으로 활동하는 윤수씨는 학업에도 열심이다.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인 윤수씨는 요즘 과제 때문에 죽겠어요. A4지 한 장 치는데 15시간 걸려요. 살찔 시간이 없어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배워야 정책을 알고 그래야 바꿀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윤수씨에게 물었다. “웃지 마세요. 한복모델을 해보고 싶어요훗날에는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양성하는 학교를 세우겠다는 야무진 꿈도 갖고 있다. 비장애인의 선입견으로는 무모해 보이는 많은 일들을 그녀는 현실의 삶으로 끌어들이며 살아왔다. “절망의 끝을 맛본 뒤 열심히 노력해 현재의 삶을 만족하게 됐다는 윤수씨는 지금 이 순간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2013.4.20 15면)

 

 2013년 4월 안양천 벚꽃 나들이

 

2002년 9월26일 17면 장애인이동권 다큐 중에서

yoonjoong

 

 

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다큐 소재로 장애인을 가급적 많이 다루려 합니다. 2002년 생애 첫 다큐가 장애인의 이동권에 관한 것이었으니 저와의 인연이 깊습니다. 다큐를 시작하며 내세운 기획의도와 잘 부합하고 의무감, 책임감 같은 것도 생겼지요. 누가 물어오면 보통 위와 같은 식으로 답을 했습니다. 사실 10년 전 첫 다큐를 힘들게 한 뒤, 다음 다큐도 장애인 관련 소재를 찾고 있는 저를 보면서 내가 왜 장애인이라는 소재에 집착 하는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학교 인근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같은 교회에 다녔고 어머니끼리 친했고 해서 함께 다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몸을 휘청거리며 걷는 친구의 한 쪽 팔을 붙들어 주며 느린 걸음의 보조를 맞춰야 했습니다. 집 앞에서, 교실 앞에서 항상 저를 기다렸던 친굽니다. 함께 다니면서 귀찮기도 했습니다. 착하고 순하고 맑은 이 친구에게 짜증도 내고 혼자 달아나듯 멀리 앞서 가기도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주변의 시선이 영 싫었던 모양입니다. 민망하지만 학교에서 그런 제게 선행상을 주기도 했지요.

 

그로부터 세월이 훌쩍 흐른 2002년. 장애인이동권을 취재하면서 그 친구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이동권을 외치는 장애인의 현실을 면서 옛 친구가 몸으로 겪어 온 지난 세월이 얼마나 버거웠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냥 미안했습니다. 도움을 준 것보다 피하려 했던 모습이 더 강하게 남아서일 겁니다. 가져다 붙이는 것 같지만, 그런 미안함도 소재를 선택하는 데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다큐에는 평창스페셜올림픽을 앞두고 훈련 중인 지적장애인을 담았습니다.

 

 

 

 

그래, 할 수 있잖아”, “빨리 안 가도 돼. 천천히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크로스컨트리스킹 대표팀 김미나 감독(42)의 목소리가 함박눈이 내리는 평창 알펜시아 훈련장에 울려 퍼졌다. 김 감독을 포함한 코치진은 각기 다른 인지능력을 가진 27명의 지적장애인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해보자클래식 부문에 출전하는 권재문(19·지적장애2)에게 인사하듯 상체를 움직이라는 주문이다. 일부 선수들의 스키 신기와 맹추위에 흘러내리는 콧물 닦기도 코치진의 몫이었다.

 

 

 

스노보딩 대표팀 김성태 감독(44)은 슬로프 출발지점에 선 선수와 눈을 맞추고 등을 토닥였다. 자신이 슈퍼맨이라 생각한다는 선수에게 , 슈퍼맨. 잘 하고 있어. 자신 있게라며 힘을 실어주고, ‘이 약한 선수에게 돌리고~ 돌리고~” 노래를 부르며 쉽고 정겹게 요구를 전달했다. 김 감독은 시간이 걸리지만 경기력이 향상되고 있다준비한 만큼만 실력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 지적장애인들의 축제인 스페셜올림픽은 동계·하계 대회가 각각 4년마다 열린다. 올해는 10번째 동계대회다. 지적장애인들의 대회인 만큼 다수가 참여할 수 있도록 경기에는 예선탈락이 없다. 선수의 예선기록에 따라 성적이 비슷한 8명씩 같은 조에 편성하고 각 조 1~3위에게는 메달을, 4위부터 8위까지는 리본을 수여한다. 승패보다 도전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이다. 김미나 감독은 대회를 통해 지적장애인과 가족이 용기를 얻고 사회구성원으로 당당히 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올림픽’,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은 111개국 33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오는 129일부터 25일까지 강원도 평창과 강릉 일원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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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포토다큐 지면을 받아 가뭄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번 다큐에 강원도 화천귀농학교를 다녀왔고, 이번에 충남 예산의 농촌마을을 다녀왔으니, 올해는 유난히 '땅'과 인연이 많은가 봅니다. 

 

다큐의 정석은 뭐니뭐니해도 발품입니다. 제 기준입니다만. ^^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헤집고 다니며 묻고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기록하는 과정의 반복이지요. 

 

                                                                                                                 <말라버린 예당저수지 상류>

 

차를 타고 돌아다녔으니, 발품이 아니라 '차품'인가요. ㅎㅎ

여하튼 발품을 열심히 팔던중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 마을에서 변장복 할아버지 부부를 만났습니다.

30도까지 오르는 땡볕에 논에 나와 계시더군요.

 

할아버지는 이틀전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물을 댄 논과 그 옆에 붙은 흙먼지 날리는 논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평생 단 한 번도 놀린적이 없는 땅을 물이 없어 놀리게 생겼으니, 농사가 삶인 농부의 마음은 말라가는 땅처럼 타들어 갔겠지요.   

 

비가 봄 부텀 안왔시유. 바닥을 파도 물이 없시유. 평생 이런 거 처음이유.” 

걱정스럽게 마른 논을 바라보는 시선이 안타까웠습니다.

 

 

때가 지나가고 있지만, 며칠 내에라도 비가 오면 어린 모를 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에 할아버지는 마른 논에서 굵은 돌을 골라냈습니다.

 

 

노부부는 바닥이 드러난 작은 천에서 양수기로 살짝 고인 물을 긁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모터 탄다며 자꾸 양수기를 끈다고 면박을 줬습니다.

 

 

 

조금 무뚝뚝한 할아버지에 비해 할머니는 유머가 넘쳤습니다.   

처음 보는 제게 할아버지가 술을 너무 마신다며 일러 바칩니다.

 

이 마을에는 띄엄띄엄 농가가 있어, 노부부는 종일 둘이서 지내시 모양이었습니다.

적적한데 우연히 들린 제가 무척이나 반가웠나 봅니다.

자녀와 손주, 할아버지 건강 등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뭐라도 대접해야는데..."하시며 틈틈이 주스와 오가피즙, 홍삼 드링크를 가져다 주셨지요.   

 

예정했던 것과 달리 긴 시간을 노부부와 함께 있었습니다.

일도 일이지만, 제가 조그마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따뜻하고 융숭한 대접에 뭔가 답이라도 하고 싶어 두 분의 기념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할아버지가 쑥스러워하는 할머니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 놓으시더군요.

 

아마 글을 쓰는 이 시간 쯤에 댁에서 인화된 사진을 받아 보시겠군요.

사진이 마음에 드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빨리 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어디를 가나 이런 소중한 만남이 있어 좋습니다.   

 

 

yoonjoong

Posted by 나이스가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