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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다큐

7년 전 게이(남성동성애자)를 소재로 사진다큐를 했습니다. 지면에 담지 못한 얘기를 모아 4회에 걸쳐 부서 블로그에 취재기를 올렸습니다. 일간지 취재 시스템에서 제법 긴 시간을 들여 취재했고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았습니다.

 

당시 블로그에 혐오의 표현과 종교적 교리로 반박하는 댓글이 몇 있었습니다. 그중 또렷이 기억에 남는 글은 당신, 게이지?”였지요내가 잘 써서 그랬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흘렀고 그때 인연은 이어졌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이고, 법과 제도로 인정되지 않는 성소수자의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집을 사진다큐로 다뤘습니다.

 

 

무지개집은 다양한 성적지향의 입주자들이 모여 사는 집입니다. “다큐가 되겠는지, 얼굴도 익힐 겸 간을 보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다 다소 차분해진 시간. 그 자리에서 동갑이라 말을 튼 한 친구가 저를 가만히 보다가 게이냐?”고 물었습니다. “난, 스트레이트(이성애자)”라고 하자, “왜 성소수자를 취재하느냐?”며 이어 물었지요.

 

좀 난감했습니다. 이미 취재 의도를 설명했는데 다시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지요. 언론은 소외받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들의 목소리를...”같은 틀에 박히고 고리타분한 얘기를 했습니다. 반응은 시큰둥했지요. 문득 생각했습니다. ‘약자’ ‘소수자라는 말도 거슬렸을까. ‘강자’ ‘다수자의 입장에서 너무 쉽게 던지는 단어가 아닌가 싶었지요.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적극 나서는 입주자들이지만, 불특정한 뉴스 이용자들에게 자신을 노출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매체를 통한 커밍아웃인 셈이지요. 우리사회의 혐오를 댓글로 마주하고 상처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그런 혐오에 대적해 싸워줄 인권감수성의 소유자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이 블로그를 통해 무지개집 입주자들의 용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누군가 저더러 성소수자(게이) 전문이라고도 하더군요. 1년에 한 번쯤 기획지면에 쓸까, 말까 한데 말이지요. ‘안다고 얘기하기엔 부끄럽고, 더 알려고 하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어설픈 몇 장의 사진과 짧은 글로 성소수자 가족공동체의 얘기를 했습니다. 그저 보여주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애자들이 공기처럼 누리는 권리를, 비이성애자들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성숙한 사회의 척도라 믿습니다.

 

7년 전 낯설었던 질문이 기억납니다.

왜 동성앱니까?”라 물었더니, 되물었습니다.

왜 이성애자인지 스스로 물어본 적 있나요?”라고 말이지요.

 

 

[포토다큐] 달라도 괜찮아요, 우리는 서로의 울타리...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집’ 사람들

경향신문 5월26일자 15면

 

 지난 20일 ‘무지개집’ 입주자들이 1층 공동공간에 둘러앉았다. 전날 이사 온 입주자가 공용주방에 내놓은 독일제 주방용품과 방대한 1인 살림살이로 얘기는 시작됐다. 입주하게 된 사연들, 간밤의 꿈, 사랑과 이별, 선거와 투표, 집 보수공사 등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주위를 맴돌던 반려묘 ‘온돌이(‘굴러온 돌’을 줄임)’가 나른한 하품을 해대는 동안 시끌벅적 수다와 웃음 속에 밤이 깊어갔다. 


서울 망원동에 자리 잡은 ‘무지개집’은 성소수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이다. 이 주거 기획에 참여한 전재우씨는 2011년부터 성소수자들의 공동체와 공간 그리고 주거 문제를 고민했다. “기존 집의 기능이 성소수자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꿈꿀 수 있는 집이 필요했어요.”
 

전월셋집과 고시원을 전전하던 이들이 전월세금을 빼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 전전긍긍하다 ‘주거문제를 공동이 해결하자’는 가치를 내세우는 ‘함께주택협동조합’을 만났다. 모두 조합에 가입하고 입주자격을 얻었다. 조합의 도움으로 사회투자기금 융자를 얻고, 부지를 찾아 집을 올렸다. 2016년 “안전한 곳에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재밌게 살아보자”며 입주한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 실험은 이제 만 2년을 넘어섰다.

 

현재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등의 성적 지향을 가진 13명의 사람들과 5마리의 반려묘가 함께 살고 있다. 전문직, 정당인, 예술가, 활동가, 취업준비생 등 직업도 다양하다. 나이는 20대에서 40대 후반까지. ‘생물학적’ 남녀 성비도 고려됐다. 지난 주말 성소수자가 아닌 비혼여성 영화인이 거주자 회의 끝에 ‘특혜(?)’로 입주했다. “잘 아는 분이라 모두 같이 살면 좋겠다고 하는데 비성소수자라 고민이었어요.” ‘킴(닉네임)’이 웃었다. 회의 결론은 이랬다. “비혼여성도 성소수자다!”      
 

공동체와 공간을 깊이 고려한 무지개집은 구조가 복잡하다. 1층 ‘흥다방’은 회의, 파티, 바자회, 소규모 전시회 등을 여는 공용공간이다. 2층은 1인 가구들이 같이 쓰는 거실, 주방, 화장실과 5개의 작은 방이 미로처럼 배치됐다. 3층은 커플 가구와 위기에 처한 성소수자가 일시적으로 머물 수 있는 쉼터 ‘홍인재’가, 4, 5층에는 2인 단독 세 가구와 공용세탁실이 있다. 누군가 집의 구조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아담하고 귀여우면서 답답하다.”

 

각기 다른 습관과 기대를 가진 이들이 어울려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집안 곳곳에 생활규칙과 청소당번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계단 및 공동청소와 쓰레기 수거, 외부인의 숙박, 세탁실과 공용공간 사용 등의 규칙을 세웠다. 그 외 필요사항은 입주자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고 썼다. 끝에 두 문장이 생활의 핵심이다. “시시때때 연중무휴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불편한 점이 발생할 경우에는 곧바로 소통한다. 각자 사생활을 존중하고 지켜준다.”  

 

무지개집 사람들은 서로에게 울타리였다. 입주자들은 ‘성장’ ‘안정감’ ‘디딤돌’ ‘자양분’ ‘도전’ ‘꿈’ ‘기회’ ‘가족’ 같은 단어로 공동체의 삶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맏형인 전재우씨는 “시간이 지나, 이 집을 거쳐 간 친구들이 여기 살면서 얻은 것을 재산으로 멋지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공동체’가 무지개빛 꿈과 희망을 함께 일궈가고 있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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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새해 첫 다큐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소재가 무겁지 않고 되도록 희망적일 것과 웬만하면 새해의 의미가 사진에서 읽히면 더 좋겠다는 것이지요.

 

이번 다큐는 ’다

 

'무술년 황금개띠의 해에 꽂혀 서둘러 결정했습니다. 이미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건, 제가 쉽게 생각하는 건 누구나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개 기사가 여기저기서 다뤄졌습니다. 장애인 안내견부터 입양견, 반려견, 유기견까지 사진기획도 다양했습니다.

 

고민에 빠졌습니다. 개 아닌 다른 소재는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12년에 한 번 오는 개띠 해의 첫 달에만 가능한 소재다보니 욕심을 죽일 수 없었던 겁니다.

 

'뭘 할까' 하던 중에 지난해 봤던 홀몸노인(독거노인) 가구 수증가에 대한 통계기사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정말 맥락없이 후욱~’하고 끼어든 겁니다. 당시 ‘2017년이 가기 전에 홀몸노인 사진기획을 해보자마음먹었다가, 잊어버렸었지요. 그래서 홀몸노인를 엮어 홀몸노인과 반려견의 얘기를 하게 된 겁니다. 

 

사진에 대한 고민이 깊었습니다. 사진이 끌고 가야하는 사진기획물이기 때문이지요. 어르신들의 집에서 긴 시간 머물며 깊이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얘기를 듣다보니, 할머니들에게 반려견은 사랑주고 위로받는가족이었습니다. 새롭지 않은 사실이지만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답이 되었지요.       

 

가족사진을 찍자

 

사진관 사진을 찍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조명을 세우고 검은 천을 내걸었습니다. 딱히 표정을 연출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르신과 반려견의 짙은 정은 자연스럽게 앵글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잘 나온 사진 몇 장을 인화해 보내드렸습니다. 사진기자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다큐의 완성은 기사 마감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사진을 받아든 것까지라 생각했습니다. 볼 때마다 미소 지을 수 있는 사진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포토다큐 '열 효자 안 부러운 '우리가족'입니다' (127일자 16)

 

 앵두야~ 다롱아~” 안분남 할머니(80)의 목소리가 리듬을 탔다. 강아지 두 마리가 달려와 할머니 무릎에 올라앉았다. 할머니는 강아지들을 품은 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는 서울 화곡동의 한 가정집 차고를 개조한 단칸방에서 혼자 산다. 남편과 사별 후 파출부, 막노동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고된 세월 반려견은 큰 위로였다. 5년 동안 키우던 개가 작년에 죽고 난 뒤 밥도 안 먹고 맨날 울었다고 했다. 이후 한 어미에서 난 새끼 두 마리를 얻어 키웠다. 둘 중 막내에게 먼저 보낸 개 다롱이의 이름을 물려줬다. “의지가 돼요. 밖에 나가있으면 생각나 오래 못 있어요. 얘들 보면 웃음이 납니다.” 할머니는 시종 강아지들을 부르고, 말걸고, 쓰다듬었다. “아이고 요것 좀 봐. 이뻐~.”

 

 서기분 할머니(72)는 반려견 햇님이와 안산 성포동의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3년 전 일을 그만두고 우울증이 왔어요. 인생이 끝난 것 같았어요.” 딸이 사준 강아지와 같이 지내면서 우울증은 사라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햇님이와 보낸다. “끊임없이 말을 하게 돼요. 이제는 눈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아요.” 할머니는 햇님이가 외로워 보여 한 마리를 더 들이고 싶지만 비용이 부담돼 엄두를 못 낸다. “병원 한 번 가면 얘는 15000원이에요. 나는 2000원인데말하는 동안에도 이 조그만 동반자와 수시로 눈을 맞췄다. “자식처럼 키워요.” 햇님이가 주인의 턱을 핥았다.

 

 청주 수곡동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우기화 할머니(71)자식이 있지만 연락도 없고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혼자 외로이 살다 3년 전부터 이슬이를 키웠다. “밥 먹어라. 물 먹어라. 온 종일 대화해요. 산책 나가면 안 이쁘다는 사람이 없어요.” 꼭 손주 자랑하듯 말했다. “얘는 잘 때 등이라도 내 몸이 닿아야 잠을 자요. 벽을 보고 돌아누우면 저 보라고 짖어요.” 할머니는 얼마 전 병원 입원이 길어지면서 이웃에 맡긴 이슬이가 보고 싶어 자주 울었다고 했다. 서로 의지하며 든 정이 가족 이상이었다. 할머니는 품에 안은 반려견과 볼을 비비며 혼잣말을 했다. “나 죽으면 너는 몇 날 며칠을 짖을 것 같다.”

 

 홀몸노인에게 반려견은 가장 가까이에서 의지하는 가족이었다. 노인들은 개와 대화할 때 말머리에 엄마가또는 할미가를 붙였다. 자식처럼, 손주처럼 사랑을 주고 또 기댔다. 무료한 하루에 위로이자 기쁨이었다. 고달팠던 지난 삶의 얘기에 무거워졌던 표정도 반려견과의 생활을 얘기를 하는 동안에는 흐뭇한 미소와 함박웃음으로 바뀌었다.

 

 여기저기 아픈 몸과 반려견을 키우는데 드는 비용 등 현실적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어려움을 묻자, 안분남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즐거움에 비하면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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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공사 중인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에 대한 사진다큐 기사가 지난 29일자 지면에 실렸습니다. 전날 미리 온라인에 뜬 기사를 본 노순택 작가께서 격려의 메시지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사와 함께 올렸습니다.

 

지난 615일 열린 노순택 작가의 사진전 <비상국가> 작가와의 만남 뒤풀이 자리에 합류해 막걸리를 마시다 다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이니, 그의 지분도 들어있는 것이지요.

 

계획된 다큐 게재일이 한 달이나 남은 6월 말쯤, 분위기나 보려 꿀잠공사현장을 처음 찾은 것을 시작으로 주중 2~3차례 오후시간에 공사현장을 찾았습니다. 물론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를 고민하며 다녔습니다만, 막상 현장에서는 카메라를 놓고 일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사진 정택용

 

일하는 장면 하나 메인 컷으로 하고 나머지 전후 사진을 나열하는 식은 이번 다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사진 찍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또 누군가 이미 쓴 사진이나 기사보다 더 잘 찍고 쓸 자신도 없었고요.

 

정신승리법의 자기합리화가 작동했습니다. ‘막일에 직접 참여해 쓰는 글과 사진은 그 결과물이 비슷해 보일지라도 확연이 다른 것이다라고. 한 공간에서 함께 땀 흘리고 먼지를 뒤집어 써 본 뒤 쓰는 먼지’ ‘연대라는 단어가 그냥 눈으로 보고 쓴 단어와 어찌 같을 수 있냐는 겁니다. 땀 흘리는 모습의 사진 한 장이 어떻게 방금 와서 서둘러 찍은 사진과 같을 수 있냐는 거지요. 보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울림도 다를 것이라 믿었습니다.

 

결국 일하며 짬짬이 찍은 일꾼들의 모습을 모았습니다. ‘더운 날의 뜨거운 연대라는 것이 제가 찾은 최선의 답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어설픈 저를 환대해 주신 모든 분들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여러 도움을 주신 사진가 정택용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백컨대 꿀잠 공사에 참여한 날마다 정작 꿀잠은 제가 잤습니다.

 

yoonjoong

 

 

                                                      

 

[포토다큐] 마지막 한 명까지 직장으로 돌아가는 그날, 이 쉼터도 푹 쉬겠죠

 

지금도 무더위에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비정규·해고 노동자들이 지친 몸을 쉬어갈 수 있는 집이 지어지고 있다.

 

 

 

 

서울 신길동 골목. 낡은 4층짜리 다세대주택이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으로 리모델링되고 있다. 2년 전 기륭전자 해고노동자의 투쟁 10년을 돌아보는 토론회에서 공식 제안된 쉼터는 이후 법인을 설립하고 건물을 매입해 지난 5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현재 임대 중인 2, 3층을 제외하고 옥탑(쉼터·정원)과 지하(공연·전시장), 1층(카페·식당), 4층(쉼터) 공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완공을 앞둔 비정규노동자의 쉼터 '꿀잠'

 

현장에서는 자발적 ‘무보수 일꾼’들이 연신 굵은 땀방울을 떨궜다. 노동자, 종교인, 예술가, 학생, 시민 등 다양한 개인들이 합세했다. 대체로 생업의 기술과 거리가 있는 ‘막노동’이라 배우고 익히면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 5일, 꽃나무 정원이 들어설 옥탑이 북적였다. 쉼터가 될 옥탑방 외벽에 각목을 댔고, 한쪽에선 휴게용 벤치를 제작했다. 벤치 작업조 차광호씨(파인텍·옛 스타케미칼)와 김경봉씨(콜트콜텍)는 “내 집 짓는 마음”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긴 세월 거리에서 경험했던 숱한 쪽잠과 한뎃잠에서 오는 절실함 때문이다. 차씨와 김씨 등 노동자들은 작업이 끝나는 저녁이면 다시 동료들이 있는 광화문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공연, 전시 등 문화공간으로 태어나는 지하에는 ‘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프로젝트팀’ 등이 목공작업에 투입됐다. 쉼터를 설계한 정기황 건축가와 봉사자들이 합판과 각목을 재고 잘랐다. 절단기가 뱉어내는 톱밥이 온몸을 적신 땀에 고스란히 달라붙었다. 재단한 목재를 바닥과 천장, 객석에 붙여가자 공연장의 모습을 갖춰갔다. 공사가 진행되던 지난 20일, 개소식 전 첫 행사로 우리 시대 노동의 모습을 담은 책 <연장전>의 북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다. 

 

지난 20일 서울 신길동 비정규직노동자의 쉼터 ‘꿀잠’ 지하 공연장에서 첫 행사가 열리고 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왼쪽)이 쓰고 노순택 사진가가 찍은,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을 담은 책 <연장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완공 목표인 7월 말이 다가오자 건물 내·외부의 큰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특히 옥상정원은 쉼터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정원 조성에 참여한 가든디자이너 권혁문씨는 “자연 치유를 염두에 두고 꽃나무를 심었다”며 “노동자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계절 변화를 볼 수 있는 꽃나무로 조성된 옥상정원.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했던 황철우 서울지하철 2호선 승무원은 “당시 모두들 ‘가능하겠냐’고 물었어요. 근데 그게 되네요”라며 활짝 웃었다. 각계각층에서 마음을 모아 마련한 기금으로 건물을 매입했고, 이후 현장을 직접 찾은 개인들의 노력기부, 설계와 용접 등의 재능기부, 타일 같은 건축자재의 기부도 이어졌다. 하지만 리모델링 비용과 이후 유지운영비는 여전한 부담이다.

 

새참을 먹는 일꾼들. 심재현·최석희 건강한농부협동조합 조합원, 유흥희 기륭전자 분회장, 윤종희 기륭전자 조합원, 한경아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사무국장,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 정택용 사진가, 정기황 건축가, 황철우 서울지하철 2호선 승무원,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이단아 민주화운동정신계승연대 집행위원장, 이사라 문화기획자, 차광호 파인텍 조합원(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폭염 속 ‘뜨거운 연대’에 가담한 일꾼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지친 몸을 쉬어가는 노동자들의 표정이 그 위에 포개졌다. 꿀잠은 오는 8월19일 문을 연다. 

연일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진가 노순택의 말이다. “비정규노동자의 집은 하루빨리 쓸모가 없어지길 바라면서 지어지고 있다.”  

 

후원문의 (02)85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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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다큐

사진다큐 소재를 선택할 때 지금 왜 이걸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대게 시의적인 이슈거나 우리 사회의 만연한 문제와 그와 관련한 삶이 이유가 되지요. 이번에 지면에 실은 광화문캠핑촌다큐는 앞의 이유에다 ‘마음의 빚'이라는 사적 이유도 더해졌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반발한 예술인들이 광화문광장에 텐트를 치고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70일이 넘었습니다. 취재를 오가며 광장을 지날 때마다 부채감 같은 것이 달라붙었습니다. 하룻밤이라도 노숙에 동참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바쁘다, 날이 춥다 등 온갖 핑계를 둘러댔지요.

 

농성 첫날부터 광장생활을 하고 있는 페친노순택 사진가의 글과 사진을 볼 때마다 속이 따끔거렸습니다. 노 작가는 지난해 11월 어느 날인가 제게 광장에서 한 번 자 보라제안하기도 했었지요.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었던 광화문캠핑촌을 다큐 아이템으로 발제했습니다. 취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 순수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피하거나 미룰 수 없는 노숙 동참에 대한 의지는 굳어졌습니다. 그렇게라도 마음을 좀 보태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굳이 추운데서 자려느냐?’는 시선을 보낼 때 추위라는 단어를 하나 골라 쓰더라도 경험하고 쓰고 싶다는 오그라드는 멘트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입 밖에 낸 적은 없지만. 


 

이틀 밤을 텐트에서 잤습니다. 한파라더니 추웠습니다. 하지만 우려보다 추위는 덜 느껴졌습니다. 감각은 상대적이지요. 그보다 차량의 소음과 진동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몸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잠을 잤습니다. 아니 잠을 설쳤습니다. 불편한 잠자리였지만 광장에서 맞는 새벽은 개운했습니다


 

기사에 쓰지 못한 감사인사를 남겨야겠습니다. 도움이 될 거라며 소음용 귀마개를 건네준 사진가 정택용씨, 여분의 침낭이 있는 텐트를 권해주신 이웃 텐트 촌민분, 잠이 안 와 뒤척이는데 텐트 밖에서 춥지 않나?”며 챙겨주고 바람막이 비닐을 꼼꼼하게 덮어주던 노순택 선배, 또 반겨준 예술가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 훈훈함에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방이나 사무실에서 문득문득 캠핑촌의 촌민들을 생각합니다.  


*광화문캠핑촌 후원 신한은행 110-467-235902 송경동



 

[광장에 들어선다...연대와 예술, 광장이 몰아낸다...분열과 검열] 경향신문 2017년 1월14일, 17면     


고되지만 즐겁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반발한 예술인들이 지난해 114일 시국선언 후 광화문광장에 텐트를 치고 농성에 들어간 지 두 달이 훌쩍 넘었다. 칼바람이 불던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광화문캠핑촌에서 보냈다. 예술인들과 함께 노숙했다. 세월호 추모공간에서 이어진 광장의 양쪽 가장자리를 따라 50여 동의 크고 작은 텐트들이 자리 잡았다. 캠핑촌에는 예술인들뿐 아니라 노동자, 종교인, 시민들도 촌민으로 생활하고 있다.

 

매서운 겨울 날씨도 그들을 막지 하지 못했다. 이순신 동상 뒤편에서는 예술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조형물을 제작했다. 붓으로 채색을 하자 흉상의 얼굴이 제법 또렷한 모습을 갖췄다. 바로 그 시간 조 장관은 국회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지했다고 실토했다. 연극인들은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개관식을 앞두고 조명과 음향시절 등 막바지 공사에 바빴다. 새로 입촌하는 노동블랙리스트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예술가와 어울려 코란도차량 모형의 집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광장 중앙 천막에서 지난달 문을 연 궁핍현대미술광장의 개막전시 <내가 왜>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판화가 이윤엽씨, 사진가 노순택·정택용씨, 송경동 시인 등의 작품과 촌민들의 바람을 담아 만든 가상의 호외광장신문이 전시됐다. 광장은 주말 촛불집회 행진 대열에서 인기를 끈 광화문구치소’, ‘우리 바뀐애등 조형물과 설치미술 작품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농성 첫날부터 텐트를 지키고 있는 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는 캠핑촌은 예술가, 노동자, 시민 등 참가자들이 공통의 목표인 대통령 퇴진까지 다양한 목소리와 예술행동이 표현되는 열린 곳이라고 말했다. “분노가 신나고 즐겁게 표현되고 있는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분주했던 하루가 저물자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촌민들은 핫팩을 넣은 침낭 속에서 잠을 청했다. 추위보다 더 두려운 건 머리맡을 빠른 속도로 지나는 차량의 소음과 텐트를 뒤흔드는 진동이었다. 밤새 추위와 소음과 진동에 뒤척거렸다. 텐트 내의 식수는 물론 기자가 뱉은 날숨에 실린 습기마저 바람막이에 얼어붙었다. 그래도 촌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비정상의 생활 속에서도 대통령 퇴진과 그 이후 열릴 정상화된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희망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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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새만금 방조제의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2주일쯤 뒤에 새만금을 찾았습니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새만금 개발 반대의 목소리도 잦아드는 때였습니다. 정보도 없이 뭔가 있겠지하고 새만금을 향해 떠났었지요. 물이 막힌 뒤 갯벌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말이지요. 당시 그 넓은 새만금 갯벌을 돌아다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마감일이 정해져 있는 지면을 메울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조급함에 여기저기 전화하던 끝에 전북 부안군 계화도로 찾아들게 됐습니다. 갯벌을 살리자는 어민들의 목소리가 남아있던 곳이었지요. 어민들은 평생직장인 갯벌을 잃게 될 불안감 속에서 그레질(조개 캐는 도구)’을 이어갔습니다. 자연의 물때에 따른 것이 아니라 방조제 공사의 필요에 의해 수문을 여닫아 물이 들고 났었지요. 어민들의 그레질은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새만금에서 돌아오는 길에 갯벌의 변화를 10년쯤 관심을 갖고 기록하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짐대로 되진 않았지만 2006년 이후, 2007, 2008, 2010년 그리고 물막이 이후 10년이 지난 이달에도 다녀왔습니다. 10년의 세월이 지났고 갯벌은 말랐습니다. 갯벌에 기대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신 구체화된 개발 얘기만 무성합니다. '왜 철 지난 새만금이냐'라고 하시겠지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간단히 소외되고마는 삶이 도처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여기저기가 새만금이란 생각입니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다섯 차례 계화도를 찾아 기록한 사진 일부를 정리했습니다.   


2006년







2007년











2008년









2010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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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2명, 산골분교 이야기  (12) 2014.03.31
Posted by 나이스가이V

지난 6월 해외 출장 중 부서 단체 카톡방에 안부 인사를 남겼습니다.

경향신문 지구의 밥상기획 중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거쳐 케냐 나이로비에서 일정을 소화한 뒤 에티오피아로 출발하기 전날이었습니다.

 

케냐 일정을 끝낸 뒤 사진을 정리하며 골라낸 몇 장의 기념사진을 안부문자와 함께 보냈습니다. 뉘앙스를 알 수 없는 “(포토)다큐 하나 하자K선배(보조데스크)의 답글이 즉시 돌아왔습니다. ‘건강 잘 챙겨라는 통상적인 인사대신 말이지요. 그저 잘 지내고 있구나라는 말의 다른 표현쯤으로 이해했습니다. 국내 메르스 취재로 장기간 시달리던 터라 제가 보낸 한가한 기념사진에 골이 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존 기획에 집중해야 하는데 또 다른 기획을 도모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며 거부의 뜻을 밝혔습니다.

 

애초에 계획이 없었기에 사실 안 해도 그만인 다큐인데 에티오피아로 향하는 길 내내 다큐하나하자...다큐하나하자라는 문자가 환청처럼 들려왔습니다.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금세 고민에 빠져들었지요.

 

뉘앙스를 알 수 없는 안부인사 같은 지시를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문자를 보낸 이의 권위보다 그 짧은 문자 안에 간절한 바람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해외출장에 나선 사진기자가 기존 기획에 기획 하나를 더 챙겨온다면 이 얼마나 고효율적인 취재인가. 또 그간 포토다큐가 대체로 국내용 소재로만 다뤄지다 보니 다양성 측면에서 해외 다큐 하나 할 만한 타이밍이다.' 거부했던 다큐를 스스로 이런 합리화 과정을 거쳐 진행하게 됐습니다. 조직에 참 잘 길들여진 저를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밥상기획' 취재지역의 초등학교를 섭외해 사진을 엮어보자 생각했습니다. 이미 방학이 시작됐더군요. ‘그럼 아이들이 방학에 뭘 할까로 방향은 급전환됐습니다. 본 기획 사이에 곁다리 기획을 한다는 것은 조급해지고 산만해지는 일입니다. 몇 차례 더 방향이 흔들리며 틈틈이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큐 마감을 앞두고 아이들의 사진을 꺼내 이리저리 모아보며 왜 이 순간에 이 아이의 사진을 찍었을까’하고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냥 찍었더라도 그냥 찍은 그 이유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를 찾는다면 수많은 아이들 사진 중에 몇 장을 골라내는 기준이 될 것이었지요.

 

아이들의 눈망울이었습니다. 그 거부할 수 없이 맑은 눈빛이 카메라를 들게 한 것이었지요.

 

 

 

[포토다큐] '가난도 빼앗지 못한 눈빛'

 

아이들의 눈망울은 투명하고 깊었다.

먼 이국땅의 피부색 다른 동양인을 보는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370km 떨어진 시다마 존(Zone) 훌라 지구

(Woreda)는 한국월드비전(국제구호개발 NGO)이 지역 아동의 행복과 마을의 자립을 위해 후원 사업을 하는 곳이다.

 

훌라 지구의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의 주요 일과는 집안일을 돕는 것이었다. 10살 전후의 아이들이 초원에서 가축을 먹이거나 우물물을 긷는 모습이 흔했다. 듬성듬성 떨어진 농가를 잇는 거친 비포장 길을 걷는 동안 소를 치던 아이도, 나무를 타던 꼬마도, 삼삼오오 어울려 놀던 녀석들도 어느새 우리 일행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궁금증 가득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멀리서 온 손님의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를 신기한 듯 지켜봤다. 눈이 마주쳐 살람(안녕)”하고 손이라도 흔들어주면 정말 재미난 일이 벌어진 듯 까르르넘어갈 듯 웃었다.

 

 

아이들의 남루한 옷을 보고, 먹고 사는 것의 궁핍을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 아이들이 몰려왔을 때 무엇을 달라는 의미라 짐작했다가 즉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맑은 눈망울에 순박한 수줍음과 따뜻한 관심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수하고 천진한 표정 앞에서 가난을 전제로 한 선입견들은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대신 아이들의 그 눈빛을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눌러야 했다. 예쁜 눈에 어려 있는 꿈과 희망을 온전히 가꾸며 자라나길 바랐다.

 

월드비전이 2007년부터 훌라 지역의 교육 사업을 지원한 뒤 초등학교 입학률이 41.5%에서 98%, 문해율(읽고 쓰는 능력)34%에서 54%까지 올랐다. 한 교실 당 아이들이 85명에서 62명으로 줄었고, 책상 하나당 5명에서 3, 교과서 한 권당 7명에서 2명까지 보급되는 등 교육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2014년 기준)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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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새해 첫 포토다큐는 이왕이면 밝고 희망적인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10년 전쯤 새해에 한 기업의 신입사원 연수를 다큐지면에 썼던 기억도 났습니다. 소재를 고민할 즈음해 장안의 화제 고졸사원 장그래의 분투를 그린 드라마는 못 보고 대신, 만화 <미생>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만화를 덮자마자 이거다 싶었습니다. ‘고졸 신입사원을 다큐 소재로 결정한 것이지요.

 

서울시교육청을 통해 두 곳의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한 곳의 취업학생 명단과 담당교사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이미 사회인이 된 세 친구를 섭외했습니다. 각기 다른 직업이어야 할 것 등 나름의 기준으로 엄선(?)한 친구들입니다. 다큐 취재를 하면서 결국 성공한 친구들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취업하지 못한 더 많은 친구들의 아픈 상황을 외면한 것 같아 마음이 좀 쓰였습니다.  

 

흔히 농담하듯 '첫사랑에 성공했다면...' 고 또래였을 나이의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이 조금 부담되기도 하고 한편 설레기도 했습니다어쨌거나 기획의도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고졸 사원을 응원하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흡족할 만한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종일 지켜봐야 한다면 신입사원에겐 가시방석이자 엄청난 스트레스겠지요. 그래서 사진은 아예 연출해서 찍기로 했습니다. 직업을 짐작할 수 있는 배경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면을 머리에 그렸습니다. 적당한 조명으로 얼굴이 배경보다 조금 더 돋보이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표정에 자신감까지 담기면 그 이상의 사진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만날 세 친구를 지면을 통해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꽤 괜찮은 입사 축하 선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포토다큐 2015.1.17>


#그래, 해보는 거야...은행장까지

특성화고 출신 은행장 꿈꾸는 초보행원 한선영



“201번 고객님~” 고객을 부르는 한선영씨는 잔뜩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은행 서울 상일역지점. 오후 4시 영업종료시간인데 창구는 북새통이다. 선영씨는 숨 돌릴 틈 없이 고객을 상대했다. 자리 앞에는 노란병아리 그림 아래 초보행원이라 적힌 팻말이 놓여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그녀는 취업을 위해 인문계가 아닌 특성화고(서울 성동글로벌경영고 글로벌MD)를 선택했다. 선영씨는 3학년이던 지난해 우리은행 고졸 채용시험에 합격했다. “처음에는 하루를 어떻게 버틸까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요즘은 출근해 모니터를 켜며 오늘은 어떻게 지낼까하는 기대로 시작합니다.” 얘기하는 얼굴에 설렘이 가득하다. 가끔 까다로운 고객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객의 따뜻한 한마디에 감동하고 치유 받는다고 했다. “‘한선영이란 이름만 들어도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의 최종목표는 특성화고 출신으로 은행장이 되는 겁니다.” 그녀의 당찬 포부다.

 

#그래, 미쳐보는 거야...우리 회사니까

스펙초월 전형으로 입사한 신입사원 이강현

 


이강현씨는 중학생 시절 대졸 청년실업 문제를 접하고 대학 아닌 취업을 결심했고 마이스터고(서울 수도전기공고 에너지기계과)에 진학했다. 지난해 스펙초월 전형으로 한국남동발전의 신입사원이 됐다. 스펙초월 전형은 소셜리쿠르팅을 통해 온라인 과제를 수행한 지원자의 비전과 창의성을 보는 전형이다. 강현씨는 연수원 교육과 사업소 인턴 과정을 밟은 뒤 지난 12월 말 정식 입사식을 가졌다. 강릉 한국남동발전 영동화력발전처에서 신입교육을 받고 있는 그는 발전설비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 발전운전원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그는 요즘 출근길에 회사 건물이 눈에 들어오면 내 직장이구나하고 행복해 진다. “막내 사원으로 팀에 도움이 되는 것이 먼저라는 강현씨는 전문지식을 쌓아 회사가 신재생 에너지를 선도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맛을 보여주겠어...난 천생 요리사니까

퓨전요리 대가 꿈꾸는 신입사원 김성후


 

엄마 음식을 흉내 내 동생에게 맛보이며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는 김성후씨는 고민 끝에 특성화고인 서울관광고등학교 조리과에 지원했다. 롤 모델을 묻는 입학 면접관의 질문에 당연히 엄마라고 답했다. 성후씨는 롯데시티호텔 김포공항점 주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저녁 메뉴 준비로 분주한 주방에서 만난 성후씨는 조리사 복장이 잘 어울렸다. 인턴 생활을 거쳐 현재 불을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핫 파트에서 근무한다. 그의 손을 거치는 음식은 새우볶음밥, 쇠고기버섯볶음, 전가복, 갈비찜 등 10~15가지다. “제 새우볶음밥은 항상 발전합니다. 매일 작은 변화를 줘 음식을 창조하고 있어요.” ‘창조라 말하며 크게 웃었다. 자신감이었다. 그는 맛이 좋다는 손님의 칭찬에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는 천생 요리사다. “맨날 혼나지만 선배들 충고 새기면서 흠잡을 데 없는 사회인이 되고 싶어요. 훗날에는 퓨전요리에서 누구나 알만한 이가 되어 제 이름을 내건 식당을 열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성공한 앳된 세 명의 청년이 도전을 시작한다.

학교라는 보호막을 벗고 거친 사회에 힘찬 첫 걸음을 내딛는 이 시대 고졸 신입사원들에게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yoonjoong



 


 

Posted by 나이스가이V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오면 강원도 어딘가 산골분교를 취재해 다큐 지면에 실어야겠다고 일찌감치 마음먹었습니다. 가슴에 담고 있는 사진 한 장 때문입니다. 강재훈 사진가의 들꽃 피는 학교, 분교사진집에서 본 사진이지요. 조회 시간인 듯 작은 조회대 위 선생님과 아래에 선 학생 하나. 차렷 자세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웃는 아이. 가슴 먹먹해지게 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을 본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만, 길게 마음 한켠에 간직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강원도 교육청에서 올해 입학생이 없는 강원도 내 분교의 자료를 받았습니다. 몇 군데 학교로부터 연달아 정중한 거절을 당했지요. 쉽지 않은 섭외에 다소 의기소침해져 학교 자료를 초점 없이 멍하게 바라보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학교. 인제초등학교 가리산분교. 이상하게도 취재가 될 것 같은 느낌이 왔습니다. 교사와 본교 교장선생님 허락까지 득했습니다. 이른 봄바람이 살랑거리던 날 가리산분교를 찾았습니다.

 

지난 2006년 인제에 큰 물난리가 나 고립됐던 마을의 분교였고, 그해 말 관련 취재를 위해 일대를 헤집고 다니다 잠깐 취재차를 댔던 기억이 있는 학교였습니다. 이런 걸 인연이라 하지 않나요? 취재 의지가 살짝 꺾일 무렵 극적으로 눈에 들어왔던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

 

 

<전교생 2명, 인제초등학교 가리산분교의 봄>

 

바람에 봄기운이 실려 오던 지난 17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초등학교 가리산분교를 찾았다. 인제읍내에서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따라 차로 30분 쯤 가면 닿는 아담한 분교다.

 

등교시간이 되자 선생님이 학교 밖에 나와 아이들을 기다렸다. 올해 3학년인 세욱이는 인근 다리까지 아빠 손을 잡고와 선생님을 보자마자 누렁이(학교 뒤뜰에서 키우는 개)’(집에서 키우는) 수탉 꽁지를 다 물어 뜯었어요하고 전날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풀어 놓았다. 조금 뒤 같은 반 선빈이가 포터 트럭에서 서둘러 내려 누렁이를 한참 쓰다듬은 뒤 해맑게 웃으며 선생님 손을 꼭 잡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손을 양쪽에 쥐고 도란도란 얘기하며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전교생 두 명, 교사가 한 명인 산골학교의 하루는 평온하게 시작됐다.

 

교실 가운데는 널찍한 책상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앉았다. 오붓하게 진행되는 수학시간. 교사는 바로 옆에서 아이들의 세 자릿수 뺄셈을 지켜보다 가끔 교탁 앞으로 나가 수식을 써서 설명했다. 선생님의 자리는 교탁이 아니라 아이들 사이였다. 수업에 속도감은 없다. 하지만 딴 짓하는 아이도, 수업에서 소외되는 아이도 없는 이상적인 수업이었다. 이어진 음악시간에 아이들은 장구의 옆줄을 조이면 달라지는 소리를 신기해하며 선생님의 ~더 쿵 덕장단에 맞춰 흥을 돋웠다.

 

 

 

음악시간이 미처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교사와 학생들이 교실을 나서고 있었다. 그제야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챘다. 겨울을 밀어내는 포근한 바람이 간질이자 아이들이 조른 모양이다. 즉흥적인 야외수업. 손에 책은 없었다. 초록으로 올라오는 새순을 만져보고 주위로 날아든 나비를 소리쳐 반겼다. 개울가에서 잠 깬 개구리도 쥐어 보았다. 신이 난 아이들은 다가오는 봄을 오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해발이 높고 산으로 둘러싸인 학교의 실내는 싸늘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송사리를 잡으러 갔다 온 선빈이가 교실에 들어서며 한쪽 구석에 깔려있는 전기장판으로 파고들었다. 세욱이도 선생님도 한 이불을 덮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 국어수업. 책 속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보다 괜찮은 분위기는 없을 듯했다.

 

 

낯선 수업 풍경이지만 놀이 안에 공부가 있다는 오세황 교사의 교육관이 수업 곳곳에 반영돼 있었다. “아동시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아이들이 충분히 누리면서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오 교사의 바람처럼 아이들의 말과 표정과 행동에서 행복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취재를 마치고 떠나는 내게 선빈이는 손수 예쁘게 색칠한 솔방울을, 세욱이는 고로쇠 물 한 통을 선물로 내 놓았다. 아이들의 따뜻한 정을 받아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따라붙는 긴 여운은 아이들에게 감염된 행복 바이러스가 아닐까.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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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고민하고 발품 팔아 게재한 다큐에 애착이 더한 건 말해야 무엇 하겠습니까. 그간 장애인,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등 주로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만 다큐가 결국 바라는 것은 조그만 변화입니다. 오랜 세월 익숙하고 공고했던 틀이 단숨에 깨지거나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단한 벽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넓은 강에 작은 돌다리라도 하나 놓고 있다면서 감지되지 않는 변화에 그리 자위하곤 합니다.

 

이번엔 겨울을 앞둔 철거민을 만났습니다. 개발지역에서 만난 철거민들은 저를 보자마자 자신들의 억울한 사연을 토해 냈습니다. 목소리는 금세 젖어들었고 눈시울은 붉어졌습니다. 그리고 얘기 끝에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습니다. “들어줘서 고맙다. 말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해진다.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고 했지만, 언제 강제철거가 집행될 지 모르는 철거민의 긴장과 불안이 제게 보내는 메시지는 기사를 통한 현 상황의 변화였습니다. 부담스러웠습니다. 예의 그 익숙하고 공고한 틀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기사가 나간 뒤 소심하게 문자를 보냈더니, 한 철거민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데 다뤄줘서 고맙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목소리에 살짝 물기가 어려 있었습니다.

일하다보면 속이 좁은 건 늘 접니다.

 

 

<떠날 수 없는데 떠나야 한다 '철거민'이라는 죄로> 

 

이번 겨울은 날 수 있을까요?”

개발지역 내에서 만난 철거민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물었다.

 

눈발이 흩날리고 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127. 경기 하남시 풍산동 하남미사택지개발지구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날이 저물자 거대하고 캄캄한 공사장에 불 밝힌 비닐집 한 동이 섬처럼 떠올랐다. 23년간 소규모 농사를 지으며 김치와 장류를 팔아온 이구선씨(65)의 집이다. 이웃인 이준봉씨(52)와 양금선씨(62)는 각각 섬유공장과 비닐집이 강제철거 된 뒤 터무니없는 보상금으로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해 이씨의 비닐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용역들이 감시해요. 무서워 잠을 못 잡니다. 밤새 누가 불을 지를까, 포클레인으로 눌러버릴까···” 세 여성 철거민의 두려움과 걱정이 한숨이 돼 집안 차가운 공기 속에 섞였다. 생계대책을 위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데 돌아오는 것은 고발과 감시, 그리고 법대로 하라는 으름장이었다. 비닐집 바로 앞에는 임박한 철거를 예고하듯 위협적인 포클레인이 벌써 몇 일째 서 있었다.

 

 

같은 날 재개발지역인 서울 종로구 돈의문 1구역. 골목을 따라 사람들이 떠난 집들은 반쯤 부서진 채 흉물이 되었고 그 사이로 찬바람이 불어댔다. 골목 안 권계란 할머니(85)의 허름한 집은 3평쯤 돼 보였다. “못 가요. 이 추운데 어디로 가요. 돈도 없고 못 가요홀로 사는 권 할머니는 불편한 다리를 연방 주무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할머니 곁에는 집을 당일까지 비워달라는 부동산 인도 강제 집행 예고장이 놓여 있었다.

 

 

닷새 후인 122. “지금 용역들이 집을 둘러쌌어요.” 이준봉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강제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둘러싸 철거민들의 접근을 막았고 들려나온 살림살이가 트럭에 실렸다. 이어 포클레인이 큰 바가지를 휘두르자 비닐집은 무기력하게 허물어졌다. 23년의 삶이 불과 몇 분 만에 사라지고 맨땅이 드러났다. 망연히 바라보는 나이든 철거민 옆에서 앳된 용역 직원들이 잡담하며 웃었다. 용역과 집행담당자들이 떠나자 철거민들은 버려진 세간들 사이에서 다시 쓸 물건을 챙겼다. 쫓겨난 이들은 그저 긴 한숨만 내질렀다.

 

 

 

전국철거민협의회 이호승 상임대표(56)매년 전국적으로 2500여 곳이 개발되고 수백 곳의 강제철거 현장에서 반인권적이고 반인격적인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철거민의 현실적인 생계대책과 이주대책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철거민들에게 서럽고도 잔인한 겨울이 찾아왔다.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Posted by 나이스가이V

이번 다큐에서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예술가들을 만났습니다. 6년 전쯤 축제 현장 모습을 스케치해 다큐로 한 번 다뤘기에 이번에는 예술가에게 직접 다가가기로 일찌감치 마음을 굳혔습니다. 참여한 수 많은 예술가 중에 어떤 예술가를 선택할 것인가, 긴 고민을 한 끝에 한 영화감독의 작업에 꽂혔습니다. 그는 프린지에 참여한 예술가들을 즉흥적인 방식으로 담아내는 낯선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포함해 그의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만나는 예술가들의 얘기를 엮어 담아보자는 생각에 미친 것이지요.

 

이참에 저도 예술가가 되어봅니다. ‘사진을 찍는 내가 영화감독이 파인더를 통해 찍는 예술가와 그 작업을 찍는다’ ‘예술을 담는 그 예술을 담는다장고 끝에 닿은 개념이라 뭔가 그럴듯했고, 스스로 이 시도가 예술적이다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마음 먹은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저의 유연하지 못함과 게으름이 제일 큰 이유였지요. 고민을 온전히 지면에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것인가, 돌아보고 있습니다.

 

주위 선후배, 심지어 취재원에게도 엄살 부리듯 어려움을 많이 토로했던 취재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카메라를 들고 만났던 이들이 더 진하게 남습니다. 신지승 감독, 강신우 작가, 뮤지션 자이, 기매리 연출가, 배우 조용경 등 멋진 예술가들을 알게 된 것. 그만큼 제 삶이 풍성해 졌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낯선 예술, 거리로 나오다

 도시의 공허 메우는 비주류 예술가들의 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함께 외쳐요. 레디~ 액션

어둠이 내린 서울 홍대앞 거리에서 영화감독 신지승씨(50)가 선창하자 시민들이 따라 소리쳤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길거리 영화제작> 현장이다. 이번 축제에서 공연을 펼쳤던 여성뮤지션 자이가 신 감독의 사인에 맞춰 즉흥적으로 연기를 펼쳤다. 현장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시민들은 감독이 들이미는 카메라 앞에서 역시 즉흥적인 리액션 연기를 해내야 했다. 손이 모자란 현장에서 붐 마이크를 들고 슬레이트를 치는 것도 관객의 몫이었다. 그의 영화에는 전문배우도, 스태프도, 시나리오도 없다. 물론 출연료도 없다. 신 감독은 이번 작업은 자본 없이 길거리에서 기획·제작되고 극장이 아니라 거리에서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대 인근 소극장 ’. 연극집단 아해프로젝트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모티브로 한 <플랜B-두 덩치>를 무대에 올렸다. 주인공 용경이 산티아고를 여행하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연출가 기매리씨(28)는 반복되는 대사와 소리, 강렬한 시각적 효과, 제한적이고 비현실적인 표현으로 관객을 낯설게 했다. 낯섦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처럼 극중 배우는 수시로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였다. 당나귀 탈을 씌워 무대를 뛰게 만들고, 파티장면에서는 맥주병을 쥐어주며 춤을 추게 했다. 조용한 관객들 깊숙이 숨어있는 참여 욕구를 풀어내려는 시도다.

 

또 다른 축제공간인 서울월드컵경기장 기적의 책꽂이앞에는 예술가 강신우씨(31)의 설치·전시 퍼포먼스 <영원한 자막의 극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좁은 레드카펫 끝에 조그만 인디언 천막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관람객이 노트북 화면 위에 반복 재생되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마음에 드는 영문 이름을 골라 건반에 입력하면 강씨가 이를 음악으로 만들어 원래 자막 위로 흐르던 음악을 대체한다. 엔딩크레디트의 시 같은 형상이 아름다워 작업을 시작했다는 강 작가는 퍼포먼스는 세상에서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은유며, 관객의 행위는 잊혀져간 자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거리와 소극장 등 공연장에서 만난 프린지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실험하고, 장르를 넘어 교류하고, 관객들과는 소통을 시도했다. 비주류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창작과 꿈을 향한 열정이 흥청대는 도심 속의 공허함을 메워주고 있는 듯 했다. 1998독립예술제에 뿌리를 둔 민간예술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올해 16회째를 맞이했다.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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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포토다큐를 지난 토요일 지면에 내 보내고 찜찜한 뒤끝이 계속 되네요.  

이번 다큐엔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난민 얘기를 다루었습니다.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사람들입니다.

책 <내 이름은 욤비>난민 관련 책을 두 권 읽고, 난민지원단체 간사의 권유로 논문도 하나 읽었습니다.

지면에서 8매 정도의 글로 전달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등지고 온 난민들이라 신변의 위험은 늘 잠재되어 있는 것이지요.

카메라를 드는 것도 한참을 망설이고 머뭇거렸습니다.    

 

난민을 돕는 단체를 통해 한 가족을 소개받았습니다. 

코트디부아르 난민 마마두의 가족입니다.

부부와 두 아이가 서울 모처에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조카의 작아진 옷들과 장난감 등을 가득 들고 갔습니다.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가족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다시 찾았을 때 벽걸이용 가족사진을 액자에 담아 전달했습니다.

너무 선해 보이는 이 가족이 좋아하는 모습에 저도 참 좋았습니다.

가족사진 중 마마두의 얼굴이 조금 아웃포커스 된 사진을 보여주며 신문에 써도 되는지 물었고, 그는 흔쾌히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여러 차례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보였던 모습은 그가 만에 하나 다큐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상 내지는 보험이었나? 라고 제게 묻고 있는 중입니다. 옷과 사진을 챙겨가는 순간에 스스로 의심치 않았던 진정성이 신문 게재를 목적으로 했기에 거짓이었나? 라고 지금 묻고 있는 중입니다. 

 

 

 

 

 

 

 

 

yoonjoong

 

<난민, 그들에게 한국은 '좋은 나라'인가>

 

마마두씨(40)는 난민이다. 2002년 사업차 한국에 체류 중이던 그는 고국인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으로 귀국하지 못하다 상황이 진정된 2005년 돌아갔다. 사업 재개를 위해 친구들을 만나던 중 정권 와해를 위한 활동으로 오인한 친정권파 군인들의 습격을 받았다. 반정부 모임과 시위를 조직했던 전력 때문이다. 마마두씨는 한국으로 피신해 출입국관리사무소 난민실에 난민 인정 신청을 냈다. 4년이 지난 2009년 법무부로부터 불허 통지를 받았다. 이의신청과 행정소송으로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긴 난민 심사기간 동안 생계지원도 없고 합법적인 직업도 가질 수 없는 고난과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마마두씨는 2012년 아들의 수술과 치료 등의 이유로 ‘인도적 체류’가 허용됐다. “한국의 자유”가 좋다는 그는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니제르에서 온 난민여성 루카야씨(37)는 아이를 안고 난민지원단체 ‘피난처’에서 운영하는 난민공동체학교를 찾았다. 매주 토요일 성인 난민을 위한 요리교실과 한국어교실이 열리는 곳이다. 그녀는 반죽 위에 쪽파와 해물을 얹어 해물파전을 구웠다. 입맛에 맞는지 파전에 쉴 새 없이 손이 갔다. 이어지는 한국어교실. 루카야씨가 교사의 선창에 “가나다라...”를 따라했다. 돌 지난 딸이 옆에서 “다다다다”하고 엄마 흉내를 냈다. 새로 배운 단어를 곧잘 따라 읽는 그녀에게 교사가 엄지손가락을 내밀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먼 이국땅의 고단한 일상에서 공동체학교의 수업은 위로가 되고 있었다. 

  
음악교실에서 만난 자비(9)는 난민부모를 둔 아이다. 자비는 또래와 장난을 치다가도 금세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곤 했다. 한국어를 국어처럼 쓰는 자비의 국적은 말리다. 하지만 자비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인”이라고 했다. 국적을 가진 자비와 달리 상당수의 난민아동은 부모가 박해가능성 등의 이유로 자국 대사관에 출생등록을 하지 못해 무국적 상태로 살고 있다.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고시합격보다 어렵다고 할 정도로 난민 인정에 인색하다. 난민 신청자 5485명(2013년 5월말 기준) 중 난민 인정자가 329명, 인도적 체류가 173명, 불인정이 2550명이다. 매년 1000여 명 정도가 난민 신청을 하고 있다. 

 

‘피난처’의 난민숙소이자 커뮤니티 ‘라이트하우스’의 집들이 날. 6년이 걸려 난민 인정을 받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욤비 토나(46)씨가 초대받은 이들 앞에서 난민을 얘기했다. “한국 사람들 1950년(한국전쟁)에 난민이었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난민이었어요. 우리나라(콩고) 괜찮아지면 다시 갈 거예요. 콩고에서 누가 물어보면 한국이 “감옥이었어요”라고 말하면 안 되잖아요. 좋은 나라 기억 남기세요. 누구나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어요.”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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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구나, 장애인의 날이 다가오는구나, 싶었어요"

"기자들이 (장애인에게) 대우 받으려면 4월 빼고 연락해야 돼"

윤수씨는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평소 잠잠하던 기자들이 최근 연락이 잦아지 조금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유독 저의 방문을 허락한 것은 11년 전 '장애인 이동권' 취재의 인연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지난 2002년 제 생애 첫 다큐의 '메인사진'이 휠체어 탄 윤수씨 사진이였지요.(맨 아래 사진)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도 궁금했고, 또 다큐가 게재되는 날이 공교롭게 '장애인의 날'이다보니 민망함을 무릅쓰고 연락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대우 받지 못할 연락에 미안함을 표했고 윤수씨는 쿨하게 받아주었습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다"는 윤수씨의 유머스러운 어법은 지난 세월에 전혀 녹슬지 않았더군요. 윤수씨의 어떤 모습과 얘기를 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앞둔 기사들은 흔히들 아프고 서럽고 외롭고 차별받는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사회적 배려와 복지 정책의 변화를 얘기하지요. 물론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굳이 저까지 삶 앞에 수동적인 수혜자로서의 장애인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윤수씨가 2006년 쓴 자전에세이 '꽃보다 활짝 피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자칭 '공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늘 유쾌하고 당당하게 살아온 모습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녀를 '당당한 공주'로 보여주는 것이 이번 다큐의 목적이었습니다.

 

늘 꿈을 위해 도전하고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중증장애인, 정윤수!

 

 

 

'나는 아름답다'

 

'장애인 이동권'보도 후 11년... 휠체어 탄 여행작가, 정윤수씨의 당당한 삶

 

 정윤수씨(42)는 자칭 공주. 꼿꼿이 고개 들고 우아한 삶을 추구한다. 그런 그녀에게 특별한 사진이 어울릴 것 같아 그녀의 임대아파트 작은 방을 스튜디오처럼 연출했다. 거울 앞에 앉은 그녀는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정성껏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화장을 머금은 얼굴이 거울 속에서 수줍은 듯 웃었다. “장애인이기 전에 예뻐 보이고 싶은 여자라고 했다.

 

 

 

 윤수씨는 11년 전인 2002년 경향신문과 인연을 맺었다. ‘장애인이동권보도를 통해서였다. 그간의 안부를 묻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며 신산했던 지난 시간을 특유의 유머로 요약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너무 갖고 싶었던 윤수씨는 7년 전 5월의 신부가 됐지만 결혼 생활은 2년을 넘기지 못했다. “돌싱이에요라며 웃으면서 상처가 깊다고 했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큰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두 팔을 예전처럼 쓰지 못한다.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왼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상처와 아픔에 주저앉을 그녀가 아니다.

 

  윤수씨는 평생교육원에 다니며 웃음치료사, 자원봉사지도사,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등 자격증을 수두룩하게 땄다. “따 놓고 당장 쓰지는 못해도 내 만족이며 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여행작가 과정을 이수한 그녀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서울의 명소를 찾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장애인 시설 실태 조사원으로 활동하는 윤수씨는 학업에도 열심이다.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인 윤수씨는 요즘 과제 때문에 죽겠어요. A4지 한 장 치는데 15시간 걸려요. 살찔 시간이 없어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배워야 정책을 알고 그래야 바꿀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윤수씨에게 물었다. “웃지 마세요. 한복모델을 해보고 싶어요훗날에는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양성하는 학교를 세우겠다는 야무진 꿈도 갖고 있다. 비장애인의 선입견으로는 무모해 보이는 많은 일들을 그녀는 현실의 삶으로 끌어들이며 살아왔다. “절망의 끝을 맛본 뒤 열심히 노력해 현재의 삶을 만족하게 됐다는 윤수씨는 지금 이 순간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2013.4.20 15면)

 

 2013년 4월 안양천 벚꽃 나들이

 

2002년 9월26일 17면 장애인이동권 다큐 중에서

yoonjoong

 

 

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다큐 소재로 장애인을 가급적 많이 다루려 합니다. 2002년 생애 첫 다큐가 장애인의 이동권에 관한 것이었으니 저와의 인연이 깊습니다. 다큐를 시작하며 내세운 기획의도와 잘 부합하고 의무감, 책임감 같은 것도 생겼지요. 누가 물어오면 보통 위와 같은 식으로 답을 했습니다. 사실 10년 전 첫 다큐를 힘들게 한 뒤, 다음 다큐도 장애인 관련 소재를 찾고 있는 저를 보면서 내가 왜 장애인이라는 소재에 집착 하는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학교 인근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같은 교회에 다녔고 어머니끼리 친했고 해서 함께 다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몸을 휘청거리며 걷는 친구의 한 쪽 팔을 붙들어 주며 느린 걸음의 보조를 맞춰야 했습니다. 집 앞에서, 교실 앞에서 항상 저를 기다렸던 친굽니다. 함께 다니면서 귀찮기도 했습니다. 착하고 순하고 맑은 이 친구에게 짜증도 내고 혼자 달아나듯 멀리 앞서 가기도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주변의 시선이 영 싫었던 모양입니다. 민망하지만 학교에서 그런 제게 선행상을 주기도 했지요.

 

그로부터 세월이 훌쩍 흐른 2002년. 장애인이동권을 취재하면서 그 친구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이동권을 외치는 장애인의 현실을 면서 옛 친구가 몸으로 겪어 온 지난 세월이 얼마나 버거웠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냥 미안했습니다. 도움을 준 것보다 피하려 했던 모습이 더 강하게 남아서일 겁니다. 가져다 붙이는 것 같지만, 그런 미안함도 소재를 선택하는 데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다큐에는 평창스페셜올림픽을 앞두고 훈련 중인 지적장애인을 담았습니다.

 

 

 

 

그래, 할 수 있잖아”, “빨리 안 가도 돼. 천천히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크로스컨트리스킹 대표팀 김미나 감독(42)의 목소리가 함박눈이 내리는 평창 알펜시아 훈련장에 울려 퍼졌다. 김 감독을 포함한 코치진은 각기 다른 인지능력을 가진 27명의 지적장애인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해보자클래식 부문에 출전하는 권재문(19·지적장애2)에게 인사하듯 상체를 움직이라는 주문이다. 일부 선수들의 스키 신기와 맹추위에 흘러내리는 콧물 닦기도 코치진의 몫이었다.

 

 

 

스노보딩 대표팀 김성태 감독(44)은 슬로프 출발지점에 선 선수와 눈을 맞추고 등을 토닥였다. 자신이 슈퍼맨이라 생각한다는 선수에게 , 슈퍼맨. 잘 하고 있어. 자신 있게라며 힘을 실어주고, ‘이 약한 선수에게 돌리고~ 돌리고~” 노래를 부르며 쉽고 정겹게 요구를 전달했다. 김 감독은 시간이 걸리지만 경기력이 향상되고 있다준비한 만큼만 실력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 지적장애인들의 축제인 스페셜올림픽은 동계·하계 대회가 각각 4년마다 열린다. 올해는 10번째 동계대회다. 지적장애인들의 대회인 만큼 다수가 참여할 수 있도록 경기에는 예선탈락이 없다. 선수의 예선기록에 따라 성적이 비슷한 8명씩 같은 조에 편성하고 각 조 1~3위에게는 메달을, 4위부터 8위까지는 리본을 수여한다. 승패보다 도전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이다. 김미나 감독은 대회를 통해 지적장애인과 가족이 용기를 얻고 사회구성원으로 당당히 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올림픽’,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은 111개국 33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오는 129일부터 25일까지 강원도 평창과 강릉 일원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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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강기자님...혹시...?"

"아니요. 저는 '일반'입니다"

공연을 앞둔 게이합창단 G_Voice의 연습을 취재하고 뒷풀이 자리에 끼었습니다.

처음 본 한 여성 객원 단원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물었습니다.

 

1년 반 전 '게이'에 대한 사진다큐를 한 뒤 형·동생하는 게이 친구들이 좀 생겼습니다.

게이는 일간지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않거나, 애써 외면하는 소재중 하나지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게이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한 번 더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국내 유일의 게이합창단을 다큐 소재로 잡았습니다.

 

연습실을 찾은 첫 날.

"여기 경향신문 강윤중 기자입니다. 아쉽지만 '일반'이예요."

"아~~" 단원들은 아쉬워하는 감탄사로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

지난해 인연으로 단원의 3분의 1정도는 낯이 익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뒷풀이 자리에서 스스럼 없이 웃고 어울렸던 것이지요.

'이반'이라는 의심을 받을 만도 하죠.

이날 술자리에서만 세 번 쯤 같은 추궁(?)을 받았고, 저는 세 번 부인했습니다. ^^

다수가 게이인 뒷풀이 자리에서 유일한 이성애자인 저는 '성소수자'였지요.

 

우리 사회에서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로 일컬어지는 성소수자들의 삶은 버겁습니다. 약자 중에서도 법과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부류입니다.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간헐적으로 그 삶이 보여지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견고합니다.

'다르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인정되고 있지 않지요.

 

G_Voice의 정기공연이 지난 10일 종로의 한 극장에서 열렸습니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장내 스피커로 음성이 흘러 나왔습니다.

"객석에는 LGBT 분들, 이성애자 분들, 스스로 이성애자라 착각하고 있는 분들이 앉아있습니다"

관객들의 큰 웃음을 유발하며 공연은 시작됐습니다.

 

 

 

손 맞잡고 외칩니다, 동성애도 사랑이라고

 

‘만루(닉네임, 25)’는 게이다. 늘 소외감을 느끼며 살았다는 그는 8개월 전 게이합창단 ‘지_보이스(G_Voice)’에 가입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단원들과 함께 어울리고 노래 부르며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만루는 지난해 처음으로 자신이 게이임을 고백했던(커밍아웃) 두 명의 친구를 ‘지_보이스’ 공연에 초대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친구에게 “내 얘기야. 들어줘”라고 문자를 보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제7회 지_보이스 정기공연 <체인G>’. 극장 내 300석의 객석이 가득 찼다. 객석에는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뿐 아니라 이성애자들도 상당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It’s raining man‘으로 시작한 공연은 단원들이 직접 작사, 작곡한 ‘나에게 가는 길’, ‘사랑은 하루도 사랑’, ‘수렁에서 건진 나’, ‘엄마, 아빠가 변했어요’ 등으로 이어졌다. 가사에는 게이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어렵고 두렵지만 한 걸음씩 자신에게 다가가며 얻는 변화의 기쁨, 서로에 대한 위로, 사랑과 행복을 진지하게 혹은 유쾌하게 풀어냈다. 노래에 곁들인 안무는 보는 재미를 더했다. 특히, ‘엄마, 아빠가 변했어요’의 가사를 쓴 아들의 공연을 보러 온 아버지가 무대에 올라 “우리 아들 정말 착하다. 내가 보증한다”며 관객들을 향해 아들 대신 구애해 큰 박수와 환호를 받기도 했다.
 ‘달의 요정 세일러문’ 등 색다르게 해석한 만화 주제곡, ‘바람이 분다’, ‘셀 블록 탱고(Cell block tango)’ 등 국내외의 알려진 노래를 편곡, 개사한 곡과 앙코르곡까지 모두 18곡을 소화했다. 여성 객원 단원 12명을 포함해 40명의 단원들은 2시간이 넘도록 관객들과 함께 호흡했다. 땀범벅이 되어 무대에서 내려오는 단원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공연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무대 뒤에서 다시 만난 만루는 “친구가 ‘잘 하더라’고 말해줘서 너무 좋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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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다큐 지면을 받아 가뭄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번 다큐에 강원도 화천귀농학교를 다녀왔고, 이번에 충남 예산의 농촌마을을 다녀왔으니, 올해는 유난히 '땅'과 인연이 많은가 봅니다. 

 

다큐의 정석은 뭐니뭐니해도 발품입니다. 제 기준입니다만. ^^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헤집고 다니며 묻고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기록하는 과정의 반복이지요. 

 

                                                                                                                 <말라버린 예당저수지 상류>

 

차를 타고 돌아다녔으니, 발품이 아니라 '차품'인가요. ㅎㅎ

여하튼 발품을 열심히 팔던중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 마을에서 변장복 할아버지 부부를 만났습니다.

30도까지 오르는 땡볕에 논에 나와 계시더군요.

 

할아버지는 이틀전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물을 댄 논과 그 옆에 붙은 흙먼지 날리는 논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평생 단 한 번도 놀린적이 없는 땅을 물이 없어 놀리게 생겼으니, 농사가 삶인 농부의 마음은 말라가는 땅처럼 타들어 갔겠지요.   

 

비가 봄 부텀 안왔시유. 바닥을 파도 물이 없시유. 평생 이런 거 처음이유.” 

걱정스럽게 마른 논을 바라보는 시선이 안타까웠습니다.

 

 

때가 지나가고 있지만, 며칠 내에라도 비가 오면 어린 모를 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에 할아버지는 마른 논에서 굵은 돌을 골라냈습니다.

 

 

노부부는 바닥이 드러난 작은 천에서 양수기로 살짝 고인 물을 긁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모터 탄다며 자꾸 양수기를 끈다고 면박을 줬습니다.

 

 

 

조금 무뚝뚝한 할아버지에 비해 할머니는 유머가 넘쳤습니다.   

처음 보는 제게 할아버지가 술을 너무 마신다며 일러 바칩니다.

 

이 마을에는 띄엄띄엄 농가가 있어, 노부부는 종일 둘이서 지내시 모양이었습니다.

적적한데 우연히 들린 제가 무척이나 반가웠나 봅니다.

자녀와 손주, 할아버지 건강 등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뭐라도 대접해야는데..."하시며 틈틈이 주스와 오가피즙, 홍삼 드링크를 가져다 주셨지요.   

 

예정했던 것과 달리 긴 시간을 노부부와 함께 있었습니다.

일도 일이지만, 제가 조그마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따뜻하고 융숭한 대접에 뭔가 답이라도 하고 싶어 두 분의 기념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할아버지가 쑥스러워하는 할머니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 놓으시더군요.

 

아마 글을 쓰는 이 시간 쯤에 댁에서 인화된 사진을 받아 보시겠군요.

사진이 마음에 드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빨리 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어디를 가나 이런 소중한 만남이 있어 좋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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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귀농·귀촌이 다시금 화두로 떠올라 귀농학교를 다녀왔습니다. 사진다큐을 위해서 말이지요. 찾은 곳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유촌리 '화천현장귀농학교'입니다. 이곳에서는 은행지점장, 관세사, 제빵사, 자영업 등 도시에서 각 기 다른 삶을 살았던 12명의 초보농부들이 5월 따가운 햇살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슬쩍 끼어 삽질도 해보고 잔일을 좀 해보았습니다만, 온 종일 땡볕을 받아들이는 몸의 노동이 쉽지 않았습니다. "다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어야 겠다"라는 가볍고 무책임한 말을 이제는 장난으로라도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  

 

 

귀농을 준비하는 예비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하. 밭을 갈고 흙을 쌓아 올린 두둑에 골을 만들어 희망을 담아 더덕 씨앗을 뿌린다. 막 농사를 시작해 아직은 고운 손과 팔뚝은 5월의 강한 햇살에 까맣게 그을려 있다.   

 

                                                         정성껏 씨앗을 뿌리는 손. 도시인의 고운 손이 강한 햇살에 까맣게 그을려 있다.

 

 강원도 화천군에 있는 ‘화천현장귀농학교’의 풍경은 건강하면서도 아늑하다. 도시를 떠나온 20~60대 12명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교육은 씨 뿌리고 수확하기까지 8개월 과정으로 진행된다. 요즘엔 서툰 솜씨로 관리기(농기계)를 운전해 밭에 두둑을 만들고 그 위에 검정 비닐을 덮어 호박, 오이, 고추 등의 모종을 심고, 두둑 위에 골을 내어 조, 수수, 더덕 등의 씨를 뿌리는 과정을 밟고 있다.

 

 

 

                                                               귀농학교 학생들이 밭에서 관리기를 이용해 흙을 쌓아 두둑을 만들고 있다.

 

                                             박기윤 교장(오른쪽)이 이날 심을 농작물의 특징과 모종을 심는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뙤약볕 아래서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교육생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새참으로 빵과 막걸리를 먹으며 귀농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나눠 갖는다. 도시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은 어느새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 

 

                                                  새참은 막걸리와 빵이다. 한 뼘의 그늘도 없는 밭 가장자리에서 여유로운 모습이다.  

 

12명중 가장 연장자라 '큰 형님'이라 불리는 허영씨(61)가 동기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며 활짝 웃고있다. 5년 전 은퇴하고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허씨는 "신기하고 재밌다"면서 "도시에 살며 받던 스트레스가 없어 건강이 좋아졌다"고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입학한 김형중씨(32)는 “행복해지기 위해 귀농을 결심했다”면서 “(교육을 받으며)생각했던 것과 다른 현실도 절감하지만 꿈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화천현장귀농학교 박기윤 교장(44)은 “귀농교육은 귀농인과 지역사회 모두에 도움이 되도록 유도하는 과정이며 귀농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예방주사가 된다”고 말했다. 

 

젊은 예비농부 김형중(32)씨와 김승현(23)씨가 하루 일과가 끝난 뒤 트럭에 기댄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고된 일을 하고도 표정은 밝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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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열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개막 당일 경향신문 스포츠면에서도 단 한줄의 개막소식을 접할 수 없었습니다.
개막 다음날 포토다큐를 위해 미안한 마음으로 경남 진주로 향하게 되었지요.

장진수군
(19.부산)13.87의 기록으로 100m 결승선을 통과한 뒤 코치에게 물었다. “나 몇 등 했어요?” “7등 했어. 뒤에 한 명 더 있다” “나이스~” 기뻐하는 모습만 본다면 1위를 차지한 것 같다. 지적장애인인 장군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진주시를 비롯한 경상남도 일원에서 제31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열려 5일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주경기장인 진주종합운동장 관중석에는 노인들이 경기장 지붕이 만든 그늘 아래 띄엄띄엄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텅 비다시피 한 관중석을 배경으로 활활 타오르는 성화가 묘한 대비를 이뤘다.

트랙과 필드에서는 각 시와 도를 대표하는 장애인 선수들이 묵묵히 경기에 임했다. 두 팔이 없어 옷소매를 바람에 날리며 달리는 선수, 의자에 몸을 단단히 고정한 채 창과 포환을 던지는 선수, 비장애인 가이드와 끈으로 손을 묶고 질주하는 선수, 온전히 가눌 수 없는 몸으로 위태롭게 트랙을 뛰는 선수, 날렵하게 생긴 휠체어로 레이스를 펼치는 선수 등 장애인 육상의 여러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번 대회는 16개 시.도를 대표해 선수와 임원 및 보호자 7000여명이 참가해 27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뤘다. 절단장애, 척수장애, 지적장애, 뇌성마비, 시각장애, 청각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같은 장애유형과 장애정도를 가진 이들과 조를 이루어 경기를 펼쳤다. 비장애인의 경기보다 조금 느리고 느슨하지만, 선수들 사이에 오가는 배려와 경기를 통해 얻는 자기만족은 비장애인들의 그것에 비해 월등해 보인다. 선수와 가족, 자원봉사자와 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모든 이들이 대회의 구호처럼 다함께, 굳세게, 끝까지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현옥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부장(46)장애인들이 건강하게 체육활동을 즐기는 것은 그 사회 선진화의 척도라면서 관중석이 썰렁한 것이 아쉽지만, 대회 유치를 자랑스러워하는 지자체의 열의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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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포토다큐를 맡았습니다
모두가 힘들게 시작하는 기축년이기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했습니다
포항 해병 1사단이 운영하는 겨울 캠프에 '가족반'이 운영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려운 시기, 힘든 훈련을 이겨내는 가족의 모습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지요

어떻게든 정해진 날 정해진 지면에 소화해야 하는 다큐이기에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현장에서 이게 아니다 싶으면 낭패입니다
생각하던 것과 다르게 흐르는 상황이라 조바심이 생기더군요
그 조바심을 자제하지 못하면 굉장히 추해집니다
속은 타들어가도 표정과 태도는 느긋해야 합니다
정성을 다하면 운도 따른다는 경험칙을 믿었습니다
메인 사진으로 쓴 아버지의 시선은 그런 결과물이란 생각입니다

군복을 입고 같이 구르지는 못했지만
포항 칼바람 속에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같이 하는 제가 안돼 보였는지 
다소 불편했을 저의 존재를 너그러이 봐준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 발 떨어져 지켜보는 입장이지만 가족을 관찰하며 저 역시 많은 배움이 있었습니다

늘 아쉽고 모자라다는 생각이지만, 다큐 하나를 끝내고 나면 얻는 것이 많습니다
그 무엇보다 사람을 얻는 다는것, 다큐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캠프에서 만난 분이 보낸 메일입니다


-강윤중 기자님 전남 여수에 사는 찬,승규아빠 조재남입니다. 해병대 캠프에서 추운 날씨에도 저희와 똑같이 뛰며 열심히 취재하시던 기자님 생각이 납니다. 저희 가족은 강기자님께서 보내 주시기로 한 사진을 매일 기다리고 있습니다.오늘 회사 퇴근하려는데 직원이 악수을 청하는겁니다. 경향신문을 구독하는데 저희 가족이 사진이 실렸다는 겁니다.보고 또봐도 직원인 걸 확인후, 근무 교대시 이야기을 해서.. 둘째 동생이 경향신문을 보고 전화도 오고 다른 해병친구들도 전화가오고...정말 스타가 된 기분입니다.추운날씨에 취재 하시던 강기자님이 생각납니다 소중하게 신문 간직하겠습니다.사진도 많이 있으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여수에 오실일 있으시면  연락주십시요. 싱싱한 회로 대접하겠습니다.-

사진 다 보내 드렸습니다!! ^^ 

Posted by 나이스가이V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열린 장애인올림픽을 다녀왔습니다
쉽지않게 가게 된 출장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은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보고 느낀것을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역시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사진기자를 하면서 평생 고민해야 할, 그리고 추구해야 할 것이겠지요
아래는 베이징에서 마감한 다큐입니다
수많은 사진중에 단 몇 장을 골라내는 일을 스스로 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입니다
고통속에 골라낸 사진입니다
어떻게 보실런지? ^^*

[포토다큐]불가능을 이긴 사람들 패자는 없다, 도전만 있다   
입력: 2008년 09월 15일 17:11:13
ㆍ2008베이징패럴림픽 ‘인간승리 드라마’

다리 못써도

아랍에미리트연합 바다니 모하마드가 남자400m T54에 출전해 장대비가 쏟아지는 베이징 궈자티위창 트랙을 힘차게 질주하고 있다.


팔 없어도

워터큐브에서 열린 여자수영 50m 자유형 S7에 출전한 후앙민이 한 팔로 물살을 가르고 있다.


의족을 착용한 일본의 마미 사토가 육상 여자 멀리뛰기 F44 결승에서 힘찬 도움닫기 후 착지하고 있다.


중국의 리옌후아가 여자휠체어농구 미국과의 경기에서 넘어져 도움을 기다리면서 웃고 있다.


보치아 3인조 BC3 부문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정호원과 박건우가 기뻐하는 뒤로 같이 동고동락 했던 코칭스태프들이 얼싸 안고 있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어라.’

의족을 끼고 질주하는 육상선수, 목발을 짚고 스매싱을 날리는 탁구선수, 팔 다리 없이 몸통만으로 물살을 가르는 수영선수, 겨우 라켓을 잡은 손을 쓸 수 없어 발등으로 공을 던져 올려 서브하는 테니스 선수, 손발이 자유롭지 않아 경기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입 끝의 감각으로 공을 굴리는 보치아 선수, 휠체어를 타고 곡예에 가깝게 코트를 누비는 농구선수, 손목에 줄을 매 활시위를 당기는 양궁선수. 어느 하나 쉬워 보이는 것이 없다. 그렇기에 장애인 선수들이 보여주는 모습 하나하나가 어떠한 노력의 결과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장애인 선수들의 도전과 열정 가득한 표정에서 정작 ‘장애’를 읽어낼 수 없다.

지금 중국 베이징은 올림픽에 이어 장애인올림픽의 열기로 뜨겁다. 연일 경기장 관중석을 가득 메우는 중국인들의 관심 속에 140여개국, 7000여선수와 임원진이 참가해 지난 어느 대회보다 큰 규모의 장애인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척수장애, 절단장애, 뇌성마비, 시각장애 등을 가진 선수들이 육상, 수영, 유도, 탁구 등 익숙한 종목과 보치아, 골볼, 좌식배구 등 다소 생소한 경기 등 20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루고 있다. 종목을 나타내는 영문과 장애의 종류와 정도를 나타내는 숫자로 다시 세부 경기로 나뉜다. 숫자가 작을수록 장애정도가 심하다.

경기는 비장애인들의 올림픽만큼이나 긴장감과 박진감이 있다. 때론 거칠다. 하지만 어떤 대회보다 따스하다.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경기의 매 순간순간에는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가 있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상황이면 어김없이 상대편 선수가 가장 먼저 손을 내밀고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격려해 준다. 각고의 인내와 피나는 노력으로 이 자리까지 온 것에 대한 존경이 이심전심으로 통하고 있다. 금메달을 못 따서 억울해 하는 사람도, 경기에 패했다고 격분하는 이도 없다. 이미 모두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승리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연출하는 진한 감동에 관중들은 환호와 큰 박수로 답하고 있다.

2008베이징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단지, 조금 불편할 뿐,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하루하루 증명해 보이며, 또다시 계속되는 인간 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베이징 | 사진·글 강윤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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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부터 3년째 새만금을 다녀왔습니다.
새만금 갯벌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해가 갈수록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개발이라는 거대한 구호앞에 갯벌에 기대살던 어민들의 삶에 대한 배려는 낄 자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개발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입니다. 안타까움을 달래줄  이도 없습니다. 언론매체 역시 개발 청사진에 대한 보도 일색입니다. 갯벌에 대한 관심을 끊다시피 한 언론에 대한 주민들의 원망도 있었습니다. 새만금 갯벌이 사라져가는 모습의 기록이 앞으로 개발과 환경논리의 갈등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 앞으로 계속 기록하며 지켜봐야 겠습니다.  


[포토다큐 세상 2008]그 차지던 갯벌“이젠 끝나부렀어”  
입력: 2008년 07월 27일 17:52:22
ㆍ물막이 2년 3개월 새만금의 ‘소리없는 절규’

“도장도 필요 없는 저금통장이었제. 거기서 자식 키우고 살림도 불렸는디…. 이젠 끝났어. 불쌍하게 돼부렀어.”

황량한 녹지로 변한 갯벌 마른 갯벌에서 먼지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해 뿌린 퉁퉁마디, 나문재, 칠면초 등 염생식물들이 자라나 갯벌의 모습을 지우고 있다. 환경캠프에 참가한 서울 방산고등학교 학생들이 풀 사이로 난 흙길을 걷고 있다.

전북 부안군 계화도 어민 이순덕씨(60)의 말에는 긴 한숨이 배어 있었다. 새만금 방조제가 물을 막은 지 2년 3개월. 바다에 일 나간 지 오래됐다는 이씨는 변해버린 갯벌을 보는 것이 속상해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고 했다. 어민들 삶의 근간이었던 풍요롭던 갯벌은 볼품없이 야위어 도리어 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민들의 삶은 새만금 갯벌처럼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다.

짠물을 머금어 윤기가 흐르던 갯벌은 없었다. 대신 붉고 푸른 풀들이 넓은 초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지난해 마른 갯벌에서 흙먼지가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뿌린 염생식물의 풀씨들이 길게는 무릎 높이까지 자랐다. 갯벌 들머리에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부들, 갈대 같은 민물 식물들이 눈에 띄었다. 염생식물 사이로 난 길을 밟았다. 감싸듯 당기는 부드러운 갯벌의 감촉은 없어지고 푸석거리는 바닥에는 먼지가 일었다. 걷고 걸어도 단단한 땅이다.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생명들의 썩은 냄새가 묻어났다. 길섶 군데군데 쌓인 조개더미와 언제 다시 나갈 기약도 없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배들이 하루 두 차례 물이 들고 나던 갯벌이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메말라버린 숭어 새만금 방조제가 하루 두 차례씩 들고 나는 물을 막은 지 2년이 넘었다. 황량한 사막을 연상케 하는 전북 부안군 계화도 갯벌에 숭어 한 마리가 갯벌처럼 앙상하게 말라가고 있다.

마른 땅이 끝나는 곳에는 염도가 떨어진 바닷물이 아직 고여 있었다. 고인 물 위에는 부유물들이 거품 띠를 이루며 이리저리 흘렀다. 갯벌 생명들의 활동이 잦아들면서 자체 정화능력도 잃고 있었다. 갯벌 위에 웃음과 활력을 드리우던 어민들의 ‘그레질(그레를 이용해 물 빠진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맨손어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몇몇 어민들이 물속에서 양수기 펌프를 이용해 바닥을 긁는 ‘차차차’라는 신종어업이 나타났다. 고인 물마저 빼버리면 끝이라는 듯 불볕더위 속에서 바닥의 조개를 싹쓸이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환경캠프의 일환으로 갯벌을 찾은 김승태군(서울 방산고 2)은 “길게 봐서 무엇이 이익인지 따져봤어야 했다. 어머니처럼 넉넉한 곳이 썩어가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야성을 잃고 망가져가는 갯벌을 체험하며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배우고 있었다.
짱뚱어 솟대 ‘갯벌을 살리자’며 세웠던 새만금 생명의 상징, ‘짱뚱어 솟대’가 갯벌 위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그동안 어민들의 삶처럼 잘리고 부러졌지만 다시 서서 갯벌을 지키고 있다.

최근 ‘전국의 새만금화’라 할 만한 ‘한반도 대운하’의 논란 속에 새만금의 외침은 묻히고 있다. 그러는 동안 새만금 갯벌에 기대어 살아온 생명들의 요구는 개발이라는 강력한 힘 앞에 날이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있다. 바다를 사랑하고 갯벌에서 더없이 행복했다던 이씨는 “그래도 둑을 터서 물이 들어오면…”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얘기했다.
녹슨 그레 계화도 어민 이순덕씨가 뒷마당에 놓여 있는 녹슨 그레와 물이 마른 지 언젠지도 모를 망태기를 바라보고 있다. 이씨는 갯벌에 나간 지 오래됐다고 했다.


막판 조개 싹쓸이 물 빠진 뒤 갯벌의 바닥을 긁는 ‘그레질’ 대신, 고인 물속에서 양수기 펌프를 이용해 바닥을 뒤엎어 조개를 싹쓸이하는 ‘차차차’라는 신종어업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글 강윤중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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