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59

답인 듯 위로인 듯

내가 찍은 사진에 자주 실망한다. 대개 같은 현장에서 찍은 다른 동료의 사진과 명확하게 비교될 때 그렇다. 고민하지 않았고, 움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정직한 결과물이다. 머리를 부여잡고 후회하지만 그때뿐이다. 수도 없이 반복돼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가끔, 최근 들어선 자주,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해왔던 일이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연차만큼 축적돼 온 무기력일까 싶기도 하고, 방향과 목표가 없어서일까 싶기도 하다. 사진 앞에 좀처럼 뜨거워지지 않는다. 심장이 뛰는 건 아주 오래전 퇴화된 감각처럼 느껴진다. 여느 때처럼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공허하기 짝이 없는 질문 앞에서 몇 장면을 떠올렸다. 어제 저녁자리에서 “일이 너~무 재밌다”며 짓던 후배의 표정, 1인 시위용 마..

기다림과 행운

취재했던 사진 원본 파일을 다시 들여다볼 때가 있습니다. 가끔의 필요를 대비해 마감한 사진 이외의 사진 파일들을 바로 삭제하지는 않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며 쓸모의 가능성이 거의 사라지고, 메모리카드의 공간이 부족해질 때 오래된 취재사진부터 삭제를 해갑니다. 파일 전량을 보관하는 이들도 있지만, 저는 그 방대한 양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사진 에세이를 쓸 목적으로 원본사진이 든 메모리카드를 다시 열었습니다. 비슷비슷한 한 뭉텅이씩의 사진을 조금 더 꼼꼼하게 보게 됩니다. 현장마감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여유 때문이겠지요. 다시 보이는 사진이 있습니다. 당시 골라내진 않았지만 더 선명하게 찍히거나 좋아 보이는 앵글의 사진이 있고, 찍으려 했던 의도에 더 어울려 보이는 사진도 뒤늦게 눈에 띕니다. 한번 봤..

사진이야기 2021.02.08

크리스마스 선물

제주 출장 나흘째 밤입니다. 밤마다 다음날 아침 날씨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해가 떠 줄까. 새해 지면에 게재할(수도 아닐 수도 있는) ‘신년호’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매일 해 뜨기 전 시간쯤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아침 날씨는 연일 ‘흐림’을 예보하고 있지만, 극적으로 하늘이 열리고 여명의 기운이 카메라 안에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지요. 제주에 오기 전 주간 날씨예보를 체크했고, 수요일(어제) 아침에는 원하는 느낌의 사진을 찍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정작 당일 아침엔 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뭐, 그런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출장 일정을 연장했고, 코로나에 들뜰 일 없는 크리스마스이브를 출장지에서 홀로 보내고 있습니다. 꼽아보니 송·신년호 사진을 찍기 위한 출장을 꽤 오랜만..

사진이야기 2020.12.24

쓰지 못한 사진이 하는 말

쓰지 못한 사진이 말을 걸어옵니다. 사진다큐를 하면서 오래된 주상복합건물 벽에 새겨진 벽화를 찍었습니다. 건물 내부 ‘ㅁ’자 중정 위로 솟은 두 벽면의 부조인데요. 50년 전에 시내 중심에 지은 화제의 건물이라, 어느 이름 난 작가의 작품이겠지 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부조는 건물 벽에 시멘트를 바르던 미장장이가 새겨넣었습니다. 그가 누군지도 모르고, 찾을 수도 없었다는 얘기를 건물 관계자로부터 들었습니다. ‘무명의 미장장이가 남긴 50년 된 부조벽화.’ 이름 난 작가의 것이었다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을 테지만, 무명의 인부가 남겼다는 말에 울림이 생겼습니다. ‘다큐의 메인은 바로 이거다’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이 벽화 사진에 집착했고 글도 이 장면으로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오래된 건물 곳곳에서 ..

사진이야기 2019.06.19

머물러 있는 사진

몇 달 전 어느 술자리에서 좋아하는 후배 사진기자가 술기운(?)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형님 사진은 늘 그대로에요.” “이 새끼 주글래?” 웃음 띤 채 말하기에 장난처럼 받았지요. 늦은 밤 “형님,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고, 그저 웃자고 했던 말이 아니었음을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친하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평소 느낌을 말한 것일 테지요. 며칠 전엔 한 친구가 제 사진에는 저만의 색이 있다고 하더군요. ‘너다운 사진’ ‘너니까 찍는 사진’ 같은 평가도 덧붙었습니다. 과찬이지요. ‘내 사진에 정말 그런 게 있기는 할까’ 고마웠고 한편 부끄러웠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칭찬과 돌직구가 엉켰습니다. 익숙한 시선과 몸에 새겨진 버릇이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반복적으로 찍어댔겠지요. 고민하는 척(그거라도 해야 할..

사진이야기 2018.07.31

"얘들아, 아저씨 신기하지?"

“앗살라말라이쿰” 엉성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자 아이들이 웃습니다. 수줍은 듯 혼잣말 같은 답인사가 돌아옵니다. 피부색과 옷차림이 다른 아저씨의 등장에 아이들의 호기심이 커졌습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비행기로 40분 거리의 라즈샤히주에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에 빠져들었습니다. 크고 또렷한 눈에 시선을 뺏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요. 게다가 그 안에 궁금증이 잔뜩 들어앉았습니다. 카메라는 반사적으로 작동합니다. “척! 척! 척!”셔터 소리는 “아, 저 눈 좀 봐”하는 감탄사처럼 울려 퍼졌지요. 꼬마들의 눈에 사진을 찍고 있는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들어있지요. 때 묻지 않은 선한 눈에 ‘사진 찍는 아저씨’에 대한 느낌이 드러나는 것 같아 재밌습니..

사진이야기 2018.05.01

"그건 '니오타니' 예요"

아내가 (필립 퍼키스·박태희 옮김, 안목, 2014)라는 책을 내밀었습니다. 잘 알려진 책이고 사진이 제 밥벌이니 ‘사진강의’ 한 번 들어보라는 것이었지요. 필립 퍼키스는 사진가이며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쳤습니다. 50년간의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라는군요. 공군에서 기관총 사수로 복무하며 사진을 찍었다는 이력이 재밌습니다. 사진 셔터와 기관총의 방아쇠는 여러 의미로 잘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필립 퍼키스 책에는 사진과 삶에 대한 그의 경험과 철학을 담았습니다. 밑줄을 그은 문장이 여럿이었습니다만, 제 현실과의 거리 또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일부만 적습니다.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그의 당부입니다. “보여 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

사진이야기 2018.04.12

사진다큐의 완성은...

새해 첫 다큐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소재가 무겁지 않고 되도록 희망적일 것과 웬만하면 새해의 의미가 사진에서 읽히면 더 좋겠다는 것이지요. “이번 다큐는 ‘개’다” '무술년 황금개띠의 해’에 꽂혀 서둘러 결정했습니다. 이미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건, 제가 쉽게 생각하는 건 누구나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개 기사’가 여기저기서 다뤄졌습니다. 장애인 안내견부터 입양견, 반려견, 유기견까지 사진기획도 다양했습니다. 고민에 빠졌습니다. 개 아닌 다른 소재는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12년에 한 번 오는 ‘개띠 해’의 첫 달에만 가능한 소재다보니 욕심을 죽일 수 없었던 겁니다. '뭘 할까' 하던 중에 지난해 봤던 ‘홀몸노인(독거노인) 가구 수’ 증가에 대한 통계기사가 갑자..

사진다큐 2018.01.30

이별의식

새 카메라가 들어왔습니다. 이 밥벌이 도구가 도착하자, 사무실에 있던 부원들은 박스를 뜯어 카메라와 부속 장비를 꺼내 살펴보고 정리하느라 부산했지요. 앞서 쓰던 카메라는 반납돼 한쪽으로 치워지고 있었습니다. 새 장비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지요. 저는 마감을 핑계로 그 부산함의 대열에 끼지 않았습니다. 또 다음날부터 사흘간 외부교육이 있어 박스를 뜯고 정리할 시간이 없었지요. 잘 됐다 싶었습니다. 원래 새 물건을 좀 묵혔다 쓰는 버릇이 있어, 최종 반납 독촉 때까지 시간을 끌었습니다. 니콘D4. 제 손에 들려 지난 5년의 시간을 새긴 카메라입니다. 제 40대 전반을 온전히 함께 했지요. 취미 아닌 밥벌이를 책임졌다는 사실에 좀 짠해 집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뉴스현장에서 저의 눈이 되고, 시선을 ..

사진이야기 2017.11.26

'눈이 하는 말'

야생동물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본 일이 있습니까? 전남 구례에 있는 야생동물의료센터를 다녀왔습니다.(9월23일자 포토다큐) 부상당하거나 어미 잃은 야생동물이 구조돼 들어와 치료·재활을 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찍어온 사진을 고르다 다시 한 번 야생동물들의 눈을 응시하게 됩니다.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서 야생동물을 찍을 수 있어 마주치는 눈을 바라보기도 했었지요. 사람 사진도, 동물 사진도 눈에다 포커스를 맞춰 찍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동물의 눈이 잘 보이는 사진 몇 장 모았습니다. 문득 ‘저 반짝이는 눈이 무슨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떤 슬픔 같은 게 읽힙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동물들이어서겠지요. 크게 다친 동물들의 폐사율이 높다고 하니, 아마 ..

사진이야기 2017.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