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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선배와 사진다큐 회의를 했습니다. 보통 그렇지만 회의는 막연한 가운데 시작합니다. 막연함이야말로 회의의 조건인 셈이지요. 정동길의 어느 한적한 아지트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말들을 나눕니다. 적당한 조바심에 한숨도 더해 지곤합니다. 

 

막연함을 떨쳐내지 못한 채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며 회의 장소를 나서다 배롱나무 낙엽 앞에 멈췄습니다. 낙엽을 주웠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특유의 모양과 다양한 색의 변화가 보였습니다. 같은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뭉뚱그려 무슨 나무의 낙엽으로 불리기엔 이파리마다 개별성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회의 중에도 단풍으로 할 수 있는게 없을까’하는 얘기는 있었지만, 역시 막연했지요. 고개들고 걷다보면 그냥 밟고 지났을 것을, 회의에 한마디 나왔다고 낙엽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지요. ‘뭔가 될 것 같다.’

 

정동길을 걸으며 낙엽을 주웠습니다. 단풍과 은행나무 정도 아는 수준으로 말이지요. 줍고, 찍고, 묻고, 찾아가며 이파리가 떨어져 나온 나무의 이름을 적어넣었습니다. 벚꽃, 라일락처럼 절정의 꽃에만 주목했던 걸 반성하게 되더군요. 가을낙엽에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쓸쓸함이 있고, 흔히 말하는 삶의 여러 지점들과 만난다는 것도 새삼 새겼습니다. 낙엽이 어쩌면 나무의 절정일지도 모르지요.  

 

 

 

낙엽을 한 움큼 주워들고 바닥을 보며 걷는 중년 남자 둘을 지나는 이들이 힐끔거렸습니다. ‘뭐하려고 저럴까싶었겠지요. ‘다큐하겠지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더이상 낙엽을 주울 일이 없어진 직장인들이 기억 속 낙엽 줍던 어느 날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여섯 종의 낙엽을 사무실로 들고 들어와 신문지 위에 펼쳐놓았습니다. 이름을 비교하며 순서대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지요. 신문 위에 놓인 낙엽도 그림이 꽤 좋았습니다.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놀라운 건 낙엽을 이고 있는 지면에 서울식물원기사가 딱. 다큐의 필연성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

 

다큐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내내 낙엽은 신문지 위에서 말라갔습니다. 사무실 통로에 놓인 낙엽을 지나가며 본 선후배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왜 가져다 놓았는지?’ ‘낙엽이 어떤 다큐로 나올지?’ 이런 것도 이번 다큐에 의미를 보탰습니다. 낙엽 뒤에 플래시를 비춰 색과 모양이 더 도드라지게 한 뒤 접사렌즈를 이용해 하나씩 찍었습니다.

 

 

J선배는 다큐 글에서 말라가는 낙엽을 연탄불 위의 오징어같은 감각적 표현을 구사하기도 했지요. 가까이서 지켜본 자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이겠지요. ㅎㅎ '이제 치워야지' 했는데 J선배는 편집된 지면을 미리 출력해 낙엽 위에 붙여놓았습니다. ‘지나며 보던 낙엽이 이런 다큐가 되었습니다라는 것이지요.

 

좀 과장해 이번 다큐는 "설치미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평가합니다. ^^ 동료들과 과정을 공유한 것도 즐거움이었고요. 

 

 

[포토다큐] 정동길에 가을이 떨어져내렸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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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제가 사는 집 가까이에 백사마을이 있습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는 곳이지요. 이사 와서 자주 다녔습니다. 끊어진 듯 연결되는 골목을 무작정 따라 걷는 게 좋았습니다. 골목이 주는 묘한 위안이 좋더군요. 미로 같은 골목을 뛰며 놀던 어릴 적 추억이 소환되곤 했습니다.

 

 

13년 전 포토르포라는 기획면에 사진과 글을 실었습니다. ‘달동네 골목골목 꿈이 익는다는 제목으로 나간 기삽니다. 고단한 삶이 드러나는 곳이지만 골목마다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꿈을 읽으려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랬습니다. “중계동 산104번지에는 여느 해바라기보다 고개를 더 길게 빼고 있는 해바라기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동네의 바라기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이 심은 꿈이 아닐까.” 좀 오그라들지요?

 

최근 백사마을 재개발에 관한 기사가 여기저기서 보였습니다. 가까이 살아서 눈에 더 잘 띄는 모양입니다. 그동안 마을에 빈집이 엄청 늘었다는 건 오가며 봐서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 놀던 구멍가게가 사라졌다는 것도 이미 알고 아쉬워했었지요. 문득 구멍가게 앞 평상에서 딱지놀이 하던 아이들은 어디로 떠나갔을까?’ 궁금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로 시작하는 다큐를 한 번 해보자 마음먹게 됐습니다.

 

 

 

 

13년 전 찍었던 구멍가게, 골목, 야경사진을 놓고 같은 자리에서 되도록 비슷한 앵글로 사진을 찍어보려 했습니다. 떠난 사람들, 사람이 떠난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3년 전과 현재를 나란히 보여주는 편집도 염두에 뒀었지요.

 

 

다큐를 하며 가난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말하는 것에 조심해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사진과 글이 깊지 못하고 언저리를 배회하다 만 것 같은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변명 같지만)

 

가난해도 정답던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제목으로 2018년 백사마을이 지난 6일 포토다큐면에 게재됐습니다. 온라인으로 기사가 나가고 곧 댓글이 하나 붙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읽은 댓글인데 부끄러웠습니다.

 

가난해도 정답다?
강윤중씨 당신이 가난을 알아?
실제 가난한 것이 얼마나 비통한지를...
바보네.”

 

기사 내에 가난해도 정답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제목으로 뽑은 표현이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가난을 경험하지 않았던 이들이 흔히 쓰는 상투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섬세하지 못했습니다.

 

잘 알지 못하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는 것은 늘 부담입니다.  

 

▶▶포토다큐-13년 만에 다시 찾은 백사마을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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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다큐

사진다큐는 소재를 찾고 회의하고 결정하고 연락하고 일정을 잡으면서 시작합니다. 일단 취재원을 만나 얘기 나누고 카메라를 들면 웬만하면 다른 소재로 갈아타기는 어렵습니다. 대체로 어렵게 취재를 허락한 취재원에 대한 예의도 아니지요. 마감시간이 제법 남았는데도 이미 급해진 마음에 이건 아니다. 다른 거 찾자는 결단은 좀처럼 내리지 못합니다.

 

이번 다큐도 그랬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여름휴가'를 찍어보자고 시작했지만 머릿속에 미리 그렸던 그런 휴가는 없었습니다. 달리 전개되는 상황과 애초의 의도 사이에서 수시로 갈등했습니다. 어정쩡한 상태로 이정도면 됐다’며 버릇처럼 합리화를 했지요. 

 

결국 이주노동자의 여름휴가는 바다로 놀러가는 하루짜리 캠프로 대체됐고, 피하고 싶었던 평범한 기념사진이 메인사진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나절도 안 되는 해수욕장 나들이로 지면을 채울 수 없어 다음날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의 공간을 찾았습니다. 전날과 상반된 분위기를 끌어들이는 것이었지요. 좀 억지다 싶었지만 뾰족한 대안도 없었습니다. 

 

명색이 사진다큐인데 사진이 상황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글을 위한 사진을 찍어 모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처음 기획한 그대로 결과물이 나오면 그것은 실패한 기획이라고 하더군요. 예상대로 되는 경우가 없다는 말이며,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기대보다 좋은 결과물을 얻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예민한 촉수로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찾아지는 것일 텐데 다큐가 점점 어렵게 느껴지는 건 그런 노력이 없다는 얘기겠지요.

 

머리가 굳어졌습니다. 더 알려고 하지 않고 경험으로 아는 수준에서 소재를 찾고 사진을 찍고 있는 겁니다.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니라 후퇴하는 것 같습니다. 적지 않은 연차에 쌓인 경험으로 부딪쳐 볼 것도 피해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부서 막내였던 20029장애인이동권으로 생애 첫 다큐를 했습니다.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습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지면에 다큐가 게재된 날 아침 아시안게임 취재를 위해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편집국 오전 회의가 끝난 시간, 열차에서 당시 부장이셨던 노재덕 선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큐 좋았어. 수고했어.” 3년차 때의 기억이 지금을 더 부끄럽게 합니다. 

 

대체로 경험(연차)이라는 건 내가 안다라고 착각하게 하는 것이지요. 안다고 생각할 때 고민과 질문은 사라집니다. 고민과 질문 없는 다큐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민망합니다.

 

[포토다큐] 이주노동자의 여름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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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사진다큐

7년 전 게이(남성동성애자)를 소재로 사진다큐를 했습니다. 지면에 담지 못한 얘기를 모아 4회에 걸쳐 부서 블로그에 취재기를 올렸습니다. 일간지 취재 시스템에서 제법 긴 시간을 들여 취재했고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았습니다.

 

당시 블로그에 혐오의 표현과 종교적 교리로 반박하는 댓글이 몇 있었습니다. 그중 또렷이 기억에 남는 글은 당신, 게이지?”였지요내가 잘 써서 그랬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흘렀고 그때 인연은 이어졌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이고, 법과 제도로 인정되지 않는 성소수자의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집을 사진다큐로 다뤘습니다.

 

 

무지개집은 다양한 성적지향의 입주자들이 모여 사는 집입니다. “다큐가 되겠는지, 얼굴도 익힐 겸 간을 보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다 다소 차분해진 시간. 그 자리에서 동갑이라 말을 튼 한 친구가 저를 가만히 보다가 게이냐?”고 물었습니다. “난, 스트레이트(이성애자)”라고 하자, “왜 성소수자를 취재하느냐?”며 이어 물었지요.

 

좀 난감했습니다. 이미 취재 의도를 설명했는데 다시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지요. 언론은 소외받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들의 목소리를...”같은 틀에 박히고 고리타분한 얘기를 했습니다. 반응은 시큰둥했지요. 문득 생각했습니다. ‘약자’ ‘소수자라는 말도 거슬렸을까. ‘강자’ ‘다수자의 입장에서 너무 쉽게 던지는 단어가 아닌가 싶었지요.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적극 나서는 입주자들이지만, 불특정한 뉴스 이용자들에게 자신을 노출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매체를 통한 커밍아웃인 셈이지요. 우리사회의 혐오를 댓글로 마주하고 상처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그런 혐오에 대적해 싸워줄 인권감수성의 소유자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이 블로그를 통해 무지개집 입주자들의 용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누군가 저더러 성소수자(게이) 전문이라고도 하더군요. 1년에 한 번쯤 기획지면에 쓸까, 말까 한데 말이지요. ‘안다고 얘기하기엔 부끄럽고, 더 알려고 하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어설픈 몇 장의 사진과 짧은 글로 성소수자 가족공동체의 얘기를 했습니다. 그저 보여주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애자들이 공기처럼 누리는 권리를, 비이성애자들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성숙한 사회의 척도라 믿습니다.

 

7년 전 낯설었던 질문이 기억납니다.

왜 동성앱니까?”라 물었더니, 되물었습니다.

왜 이성애자인지 스스로 물어본 적 있나요?”라고 말이지요.

 

 

[포토다큐] 달라도 괜찮아요, 우리는 서로의 울타리...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집’ 사람들

경향신문 5월26일자 15면

 

 지난 20일 ‘무지개집’ 입주자들이 1층 공동공간에 둘러앉았다. 전날 이사 온 입주자가 공용주방에 내놓은 독일제 주방용품과 방대한 1인 살림살이로 얘기는 시작됐다. 입주하게 된 사연들, 간밤의 꿈, 사랑과 이별, 선거와 투표, 집 보수공사 등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주위를 맴돌던 반려묘 ‘온돌이(‘굴러온 돌’을 줄임)’가 나른한 하품을 해대는 동안 시끌벅적 수다와 웃음 속에 밤이 깊어갔다. 


서울 망원동에 자리 잡은 ‘무지개집’은 성소수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이다. 이 주거 기획에 참여한 전재우씨는 2011년부터 성소수자들의 공동체와 공간 그리고 주거 문제를 고민했다. “기존 집의 기능이 성소수자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꿈꿀 수 있는 집이 필요했어요.”
 

전월셋집과 고시원을 전전하던 이들이 전월세금을 빼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 전전긍긍하다 ‘주거문제를 공동이 해결하자’는 가치를 내세우는 ‘함께주택협동조합’을 만났다. 모두 조합에 가입하고 입주자격을 얻었다. 조합의 도움으로 사회투자기금 융자를 얻고, 부지를 찾아 집을 올렸다. 2016년 “안전한 곳에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재밌게 살아보자”며 입주한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 실험은 이제 만 2년을 넘어섰다.

 

현재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등의 성적 지향을 가진 13명의 사람들과 5마리의 반려묘가 함께 살고 있다. 전문직, 정당인, 예술가, 활동가, 취업준비생 등 직업도 다양하다. 나이는 20대에서 40대 후반까지. ‘생물학적’ 남녀 성비도 고려됐다. 지난 주말 성소수자가 아닌 비혼여성 영화인이 거주자 회의 끝에 ‘특혜(?)’로 입주했다. “잘 아는 분이라 모두 같이 살면 좋겠다고 하는데 비성소수자라 고민이었어요.” ‘킴(닉네임)’이 웃었다. 회의 결론은 이랬다. “비혼여성도 성소수자다!”      
 

공동체와 공간을 깊이 고려한 무지개집은 구조가 복잡하다. 1층 ‘흥다방’은 회의, 파티, 바자회, 소규모 전시회 등을 여는 공용공간이다. 2층은 1인 가구들이 같이 쓰는 거실, 주방, 화장실과 5개의 작은 방이 미로처럼 배치됐다. 3층은 커플 가구와 위기에 처한 성소수자가 일시적으로 머물 수 있는 쉼터 ‘홍인재’가, 4, 5층에는 2인 단독 세 가구와 공용세탁실이 있다. 누군가 집의 구조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아담하고 귀여우면서 답답하다.”

 

각기 다른 습관과 기대를 가진 이들이 어울려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집안 곳곳에 생활규칙과 청소당번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계단 및 공동청소와 쓰레기 수거, 외부인의 숙박, 세탁실과 공용공간 사용 등의 규칙을 세웠다. 그 외 필요사항은 입주자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고 썼다. 끝에 두 문장이 생활의 핵심이다. “시시때때 연중무휴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불편한 점이 발생할 경우에는 곧바로 소통한다. 각자 사생활을 존중하고 지켜준다.”  

 

무지개집 사람들은 서로에게 울타리였다. 입주자들은 ‘성장’ ‘안정감’ ‘디딤돌’ ‘자양분’ ‘도전’ ‘꿈’ ‘기회’ ‘가족’ 같은 단어로 공동체의 삶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맏형인 전재우씨는 “시간이 지나, 이 집을 거쳐 간 친구들이 여기 살면서 얻은 것을 재산으로 멋지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공동체’가 무지개빛 꿈과 희망을 함께 일궈가고 있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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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새해 첫 다큐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소재가 무겁지 않고 되도록 희망적일 것과 웬만하면 새해의 의미가 사진에서 읽히면 더 좋겠다는 것이지요.

 

이번 다큐는 ’다

 

'무술년 황금개띠의 해에 꽂혀 서둘러 결정했습니다. 이미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건, 제가 쉽게 생각하는 건 누구나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개 기사가 여기저기서 다뤄졌습니다. 장애인 안내견부터 입양견, 반려견, 유기견까지 사진기획도 다양했습니다.

 

고민에 빠졌습니다. 개 아닌 다른 소재는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12년에 한 번 오는 개띠 해의 첫 달에만 가능한 소재다보니 욕심을 죽일 수 없었던 겁니다.

 

'뭘 할까' 하던 중에 지난해 봤던 홀몸노인(독거노인) 가구 수증가에 대한 통계기사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정말 맥락없이 후욱~’하고 끼어든 겁니다. 당시 ‘2017년이 가기 전에 홀몸노인 사진기획을 해보자마음먹었다가, 잊어버렸었지요. 그래서 홀몸노인를 엮어 홀몸노인과 반려견의 얘기를 하게 된 겁니다. 

 

사진에 대한 고민이 깊었습니다. 사진이 끌고 가야하는 사진기획물이기 때문이지요. 어르신들의 집에서 긴 시간 머물며 깊이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얘기를 듣다보니, 할머니들에게 반려견은 사랑주고 위로받는가족이었습니다. 새롭지 않은 사실이지만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답이 되었지요.       

 

가족사진을 찍자

 

사진관 사진을 찍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조명을 세우고 검은 천을 내걸었습니다. 딱히 표정을 연출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르신과 반려견의 짙은 정은 자연스럽게 앵글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잘 나온 사진 몇 장을 인화해 보내드렸습니다. 사진기자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다큐의 완성은 기사 마감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사진을 받아든 것까지라 생각했습니다. 볼 때마다 미소 지을 수 있는 사진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포토다큐 '열 효자 안 부러운 '우리가족'입니다' (127일자 16)

 

 앵두야~ 다롱아~” 안분남 할머니(80)의 목소리가 리듬을 탔다. 강아지 두 마리가 달려와 할머니 무릎에 올라앉았다. 할머니는 강아지들을 품은 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는 서울 화곡동의 한 가정집 차고를 개조한 단칸방에서 혼자 산다. 남편과 사별 후 파출부, 막노동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고된 세월 반려견은 큰 위로였다. 5년 동안 키우던 개가 작년에 죽고 난 뒤 밥도 안 먹고 맨날 울었다고 했다. 이후 한 어미에서 난 새끼 두 마리를 얻어 키웠다. 둘 중 막내에게 먼저 보낸 개 다롱이의 이름을 물려줬다. “의지가 돼요. 밖에 나가있으면 생각나 오래 못 있어요. 얘들 보면 웃음이 납니다.” 할머니는 시종 강아지들을 부르고, 말걸고, 쓰다듬었다. “아이고 요것 좀 봐. 이뻐~.”

 

 서기분 할머니(72)는 반려견 햇님이와 안산 성포동의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3년 전 일을 그만두고 우울증이 왔어요. 인생이 끝난 것 같았어요.” 딸이 사준 강아지와 같이 지내면서 우울증은 사라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햇님이와 보낸다. “끊임없이 말을 하게 돼요. 이제는 눈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아요.” 할머니는 햇님이가 외로워 보여 한 마리를 더 들이고 싶지만 비용이 부담돼 엄두를 못 낸다. “병원 한 번 가면 얘는 15000원이에요. 나는 2000원인데말하는 동안에도 이 조그만 동반자와 수시로 눈을 맞췄다. “자식처럼 키워요.” 햇님이가 주인의 턱을 핥았다.

 

 청주 수곡동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우기화 할머니(71)자식이 있지만 연락도 없고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혼자 외로이 살다 3년 전부터 이슬이를 키웠다. “밥 먹어라. 물 먹어라. 온 종일 대화해요. 산책 나가면 안 이쁘다는 사람이 없어요.” 꼭 손주 자랑하듯 말했다. “얘는 잘 때 등이라도 내 몸이 닿아야 잠을 자요. 벽을 보고 돌아누우면 저 보라고 짖어요.” 할머니는 얼마 전 병원 입원이 길어지면서 이웃에 맡긴 이슬이가 보고 싶어 자주 울었다고 했다. 서로 의지하며 든 정이 가족 이상이었다. 할머니는 품에 안은 반려견과 볼을 비비며 혼잣말을 했다. “나 죽으면 너는 몇 날 며칠을 짖을 것 같다.”

 

 홀몸노인에게 반려견은 가장 가까이에서 의지하는 가족이었다. 노인들은 개와 대화할 때 말머리에 엄마가또는 할미가를 붙였다. 자식처럼, 손주처럼 사랑을 주고 또 기댔다. 무료한 하루에 위로이자 기쁨이었다. 고달팠던 지난 삶의 얘기에 무거워졌던 표정도 반려견과의 생활을 얘기를 하는 동안에는 흐뭇한 미소와 함박웃음으로 바뀌었다.

 

 여기저기 아픈 몸과 반려견을 키우는데 드는 비용 등 현실적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어려움을 묻자, 안분남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즐거움에 비하면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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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이스가이V

포토다큐를 지난 토요일 지면에 내 보내고 찜찜한 뒤끝이 계속 되네요.  

이번 다큐엔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난민 얘기를 다루었습니다.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사람들입니다.

책 <내 이름은 욤비>난민 관련 책을 두 권 읽고, 난민지원단체 간사의 권유로 논문도 하나 읽었습니다.

지면에서 8매 정도의 글로 전달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등지고 온 난민들이라 신변의 위험은 늘 잠재되어 있는 것이지요.

카메라를 드는 것도 한참을 망설이고 머뭇거렸습니다.    

 

난민을 돕는 단체를 통해 한 가족을 소개받았습니다. 

코트디부아르 난민 마마두의 가족입니다.

부부와 두 아이가 서울 모처에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조카의 작아진 옷들과 장난감 등을 가득 들고 갔습니다.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가족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다시 찾았을 때 벽걸이용 가족사진을 액자에 담아 전달했습니다.

너무 선해 보이는 이 가족이 좋아하는 모습에 저도 참 좋았습니다.

가족사진 중 마마두의 얼굴이 조금 아웃포커스 된 사진을 보여주며 신문에 써도 되는지 물었고, 그는 흔쾌히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여러 차례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보였던 모습은 그가 만에 하나 다큐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상 내지는 보험이었나? 라고 제게 묻고 있는 중입니다. 옷과 사진을 챙겨가는 순간에 스스로 의심치 않았던 진정성이 신문 게재를 목적으로 했기에 거짓이었나? 라고 지금 묻고 있는 중입니다. 

 

 

 

 

 

 

 

 

yoonjoong

 

<난민, 그들에게 한국은 '좋은 나라'인가>

 

마마두씨(40)는 난민이다. 2002년 사업차 한국에 체류 중이던 그는 고국인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으로 귀국하지 못하다 상황이 진정된 2005년 돌아갔다. 사업 재개를 위해 친구들을 만나던 중 정권 와해를 위한 활동으로 오인한 친정권파 군인들의 습격을 받았다. 반정부 모임과 시위를 조직했던 전력 때문이다. 마마두씨는 한국으로 피신해 출입국관리사무소 난민실에 난민 인정 신청을 냈다. 4년이 지난 2009년 법무부로부터 불허 통지를 받았다. 이의신청과 행정소송으로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긴 난민 심사기간 동안 생계지원도 없고 합법적인 직업도 가질 수 없는 고난과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마마두씨는 2012년 아들의 수술과 치료 등의 이유로 ‘인도적 체류’가 허용됐다. “한국의 자유”가 좋다는 그는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니제르에서 온 난민여성 루카야씨(37)는 아이를 안고 난민지원단체 ‘피난처’에서 운영하는 난민공동체학교를 찾았다. 매주 토요일 성인 난민을 위한 요리교실과 한국어교실이 열리는 곳이다. 그녀는 반죽 위에 쪽파와 해물을 얹어 해물파전을 구웠다. 입맛에 맞는지 파전에 쉴 새 없이 손이 갔다. 이어지는 한국어교실. 루카야씨가 교사의 선창에 “가나다라...”를 따라했다. 돌 지난 딸이 옆에서 “다다다다”하고 엄마 흉내를 냈다. 새로 배운 단어를 곧잘 따라 읽는 그녀에게 교사가 엄지손가락을 내밀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먼 이국땅의 고단한 일상에서 공동체학교의 수업은 위로가 되고 있었다. 

  
음악교실에서 만난 자비(9)는 난민부모를 둔 아이다. 자비는 또래와 장난을 치다가도 금세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곤 했다. 한국어를 국어처럼 쓰는 자비의 국적은 말리다. 하지만 자비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인”이라고 했다. 국적을 가진 자비와 달리 상당수의 난민아동은 부모가 박해가능성 등의 이유로 자국 대사관에 출생등록을 하지 못해 무국적 상태로 살고 있다.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고시합격보다 어렵다고 할 정도로 난민 인정에 인색하다. 난민 신청자 5485명(2013년 5월말 기준) 중 난민 인정자가 329명, 인도적 체류가 173명, 불인정이 2550명이다. 매년 1000여 명 정도가 난민 신청을 하고 있다. 

 

‘피난처’의 난민숙소이자 커뮤니티 ‘라이트하우스’의 집들이 날. 6년이 걸려 난민 인정을 받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욤비 토나(46)씨가 초대받은 이들 앞에서 난민을 얘기했다. “한국 사람들 1950년(한국전쟁)에 난민이었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난민이었어요. 우리나라(콩고) 괜찮아지면 다시 갈 거예요. 콩고에서 누가 물어보면 한국이 “감옥이었어요”라고 말하면 안 되잖아요. 좋은 나라 기억 남기세요. 누구나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어요.”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Posted by 나이스가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