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7

우리의 목소리는 '예술'이다

새해 나의 첫 다큐는 무엇이면 좋을까. 보통은 뭔가 희망적인 것을 찾기 마련입니다. 여의치 않으면 ‘황금돼지의 해’니까 돼지와 연결되는 것은 없을까, 고민에 빠집니다. 빤한 고민에 답이 잘 찾아지지 않았지요. 머리를 쥐어뜯다 지난해 포토다큐를 결산한 마지막 다큐 글의 맨 마지막 단락이 불쑥 끼어듭니다. “한해의 포토다큐를 돌아보며 아쉬움도 남습니다. 놓치고 외면했던 삶들이 스쳐갑니다. 어두운 귀는 상처받은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고, 둔한 손은 그 삶의 순간들에 셔터를 누르지 못했습니다. 2019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에서 아파하고 상처받는 ‘작은 사람들’에게 더 깊이 공감하며 다가가겠습니다. 그 삶에 가만히 카메라를 들겠습니다.”(2018년12월29일자) ‘아파하고 상처받는 사람들...’..

사진다큐 2019.01.28

다큐 이상의 다큐...낙엽 지는 가을에

J선배와 사진다큐 회의를 했습니다. 보통 그렇지만 회의는 막연한 가운데 시작합니다. 막연함이야말로 회의의 조건인 셈이지요. 정동길의 어느 한적한 아지트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말들을 나눕니다. 적당한 조바심에 한숨도 더해 지곤합니다. 막연함을 떨쳐내지 못한 채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며 회의 장소를 나서다 배롱나무 낙엽 앞에 멈췄습니다. 낙엽을 주웠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특유의 모양과 다양한 색의 변화가 보였습니다. 같은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뭉뚱그려 ‘무슨 나무의 낙엽’으로 불리기엔 이파리마다 개별성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회의 중에도 ‘단풍으로 할 수 있는게 없을까’하는 얘기는 있었지만, 역시 막연했지요. 고개들고 걷다보면 그냥 밟고 지났을 것을, 회의에 한마디 나왔다고 낙엽을 들여다보게..

사진다큐 2018.11.04

"당신이 가난을 알아?"

제가 사는 집 가까이에 백사마을이 있습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는 곳이지요. 이사 와서 자주 다녔습니다. 끊어진 듯 연결되는 골목을 무작정 따라 걷는 게 좋았습니다. 골목이 주는 묘한 위안이 좋더군요. 미로 같은 골목을 뛰며 놀던 어릴 적 추억이 소환되곤 했습니다. 13년 전 ‘포토르포’라는 기획면에 사진과 글을 실었습니다. ‘달동네 골목골목 꿈이 익는다’는 제목으로 나간 기삽니다. 고단한 삶이 드러나는 곳이지만 골목마다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꿈을 읽으려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랬습니다. “중계동 산104번지에는 여느 해바라기보다 고개를 더 길게 빼고 있는 해바라기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달’동네의 ‘해’바라기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이 심은 꿈이 아닐까.” 좀 오그라들지요..

사진다큐 2018.10.08

버거운 다큐

사진다큐는 소재를 찾고 회의하고 결정하고 연락하고 일정을 잡으면서 시작합니다. 일단 취재원을 만나 얘기 나누고 카메라를 들면 웬만하면 다른 소재로 갈아타기는 어렵습니다. 대체로 어렵게 취재를 허락한 취재원에 대한 예의도 아니지요. 마감시간이 제법 남았는데도 이미 급해진 마음에 ‘이건 아니다. 다른 거 찾자’는 결단은 좀처럼 내리지 못합니다. 이번 다큐도 그랬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여름휴가'를 찍어보자고 시작했지만 머릿속에 미리 그렸던 그런 휴가는 없었습니다. 달리 전개되는 상황과 애초의 의도 사이에서 수시로 갈등했습니다. 어정쩡한 상태로 ‘이정도면 됐다’며 버릇처럼 합리화를 했지요. 결국 이주노동자의 ‘여름휴가’는 바다로 놀러가는 ‘하루짜리 캠프’로 대체됐고, 피하고 싶었던 평범한 기념사진이 메인사진이 ..

사진다큐 2018.08.23

이런 가족

7년 전 게이(남성동성애자)를 소재로 사진다큐를 했습니다. 지면에 담지 못한 얘기를 모아 4회에 걸쳐 부서 블로그에 취재기를 올렸습니다. 일간지 취재 시스템에서 제법 긴 시간을 들여 취재했고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았습니다. 당시 블로그에 혐오의 표현과 종교적 교리로 반박하는 댓글이 몇 있었습니다. 그중 또렷이 기억에 남는 글은 “당신, 게이지?”였지요. ‘내가 잘 써서 그랬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흘렀고 그때 인연은 이어졌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이고, 법과 제도로 인정되지 않는 ‘성소수자의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집’을 사진다큐로 다뤘습니다. ‘무지개집’은 다양한 성적지향의 입주자들이 모여 사는 집입니다. “다큐가 되겠는지..

사진다큐 2018.05.29

사진다큐의 완성은...

새해 첫 다큐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소재가 무겁지 않고 되도록 희망적일 것과 웬만하면 새해의 의미가 사진에서 읽히면 더 좋겠다는 것이지요. “이번 다큐는 ‘개’다” '무술년 황금개띠의 해’에 꽂혀 서둘러 결정했습니다. 이미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건, 제가 쉽게 생각하는 건 누구나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개 기사’가 여기저기서 다뤄졌습니다. 장애인 안내견부터 입양견, 반려견, 유기견까지 사진기획도 다양했습니다. 고민에 빠졌습니다. 개 아닌 다른 소재는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12년에 한 번 오는 ‘개띠 해’의 첫 달에만 가능한 소재다보니 욕심을 죽일 수 없었던 겁니다. '뭘 할까' 하던 중에 지난해 봤던 ‘홀몸노인(독거노인) 가구 수’ 증가에 대한 통계기사가 갑자..

사진다큐 2018.01.30

다큐의 개운치 않은 뒤끝-난민, 그들에게 한국은

포토다큐를 지난 토요일 지면에 내 보내고 찜찜한 뒤끝이 계속 되네요. 이번 다큐엔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난민 얘기를 다루었습니다.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사람들입니다. 책 등 난민 관련 책을 두 권 읽고, 난민지원단체 간사의 권유로 논문도 하나 읽었습니다. 지면에서 8매 정도의 글로 전달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등지고 온 난민들이라 신변의 위험은 늘 잠재되어 있는 것이지요. 카메라를 드는 것도 한참을 망설이고 머뭇거렸습니다. 난민을 돕는 단체를 통해 한 가족을 소개받았습니다. 코트디부아르 난민 마마두의 가족입니다. 부부와 두 아이가 서울 모처에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빈손으로 ..

사진다큐 2013.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