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468

매번 실패하는 기념사진

인터뷰의 주인공을 앉힐 의자를 세심하게 놓으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인터뷰 장소인 카페를 둘러보며 사진 찍을 세 군데쯤의 공간과 동선을 미리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열린 문 사이에 둔 의자는 마지막 사진을 찍을 공간이었지요. 이날 주인공 이미지의 완성은 의자에 앉은 채 찍은 컷이었으면 했습니다. 자신만만한 ‘지존’의 모습을 연출해 담고 싶었습니다. 계산대로 3층 테라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그리고 의자에 앉혔습니다. 강렬하고 깊은 눈빛이 참 좋은 배우였습니다. 시간 단위로 반복되는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그였지만 스스로 연출하는 포즈엔 여유와 근성이 느껴졌습니다. 한 시간 주어진 인터뷰 시간에 사진기자의 시간은 10여분. 결과물이 그럴듯하다 할지라도 영혼 없는 사진을 찍을 가능성이 큰 ..

사진이야기 2014.09.29

고은비, 권리세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해 2월 다섯 명의 앳된 여성들이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섰습니다. 가요계 데뷔를 앞두고 있는 걸그룹이라고 했습니다. 신문사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데뷔를 앞둔 떨림인지, 아직 인터뷰가 어색해서인지 얼굴들이 다소 긴장한 듯 상기돼 있었습니다. 분위기를 말랑하게 만들 요량으로 “이 스튜디오는 예전 문화방송 라디오 스튜디오였다”는 공간의 역사부터 빨간 원색의 의자를 가리키며 “저기에 장동건, 김수현 등 대한민국 알만한 배우와 가수들 대부분이 앉았다”는 얘기까지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말요?” “와 신기하다” 곧 특유의 발랄함을 회복했습니다. 시답잖은 얘기에 웃어주는 센스 만점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스튜디오는 활기를 띄었습니다. 데뷔곡 중 손으로 연출할 수 있는 춤동작 포즈를 ..

사진이야기 2014.09.10

번개를 왜 찍을까?

번개 사진 찍어보셨나요? 지난 29일 밤 야근 중에 번개가 내려쳤습니다. 번개 칠 때의 행동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사무실 창을 열고 카메라를 하늘을 향해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릴리즈를 이용해 저속으로 촬영합니다. ‘똘똘한 놈 하나만 걸려라’는 심정으로 반복해서 셔터를 누릅니다. 창을 열면 저만치 서울N타워가 보여 다른 앵글을 찾아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한 자리에서 우직함만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하늘을 가르는 번개를 카메라에 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눈에 본 대로 사진에 새겨지지도 않고 셔터 타이밍을 놓쳐 눈으로만 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기술이나 경험보다는 운에 '잘~' 기대는 것이 최선입니다. 단순 반복 셔터질을 하다 문득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 물었습니다. 복잡한 작업이..

사진이야기 2014.09.03

소설을 품은 사진

가끔 어떤 장면은 ‘서둘러 셔터를 눌러라’ 명령을 합니다. 몸과 마음이 급해집니다. 흘러가버려 다시 담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 ‘아쉬움’이 생각보다 짙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자리 잡고 명령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일단 찍고 본다는 게 더 정직한 표현이겠지요. 경험적으로 이렇게 얻는 사진들은 신문에 쓸 사진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어디 쓰냐구요? ㅋㅋ블로그에 씁니다. ^^ 찍은 뒤에 무엇이 찍게 했는지, 왜 찍었는지를 다시 생각합니다. 그 ‘명령’은 장면을 기록하는 일에 익숙해진 몸의 명령인지, 움찔하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가슴의 요구인지도 답하기 어렵습니다. 사진을 노트북에 띄워놓고 다시 추궁합니다. 왜 찍었냐고. 찍은 당시의 상황을 세밀하게 더듬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모니터 위에서 보는 사진과..

사진이야기 2014.08.29

이런 사진기자

군 사망사고 피해자 어머니의 인터뷰 사진을 찍다 멀찌감치 시선이 멎었습니다. 이웃 언론사 후배인 ‘으하하(이름 초성으로 가명 처리함)’기자가 또 다른 피해자 어머니의 얘기를 고개 끄덕여가며 듣고 있더군요. 앞선 기자회견 후 기자 대부분이 철수한 상황이었지요. 보통 사진기자는 캡션에 필요한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사라집니다. 이어지는 다른 일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뜨기도 하지만, 딱히 일이 없어도 바람같이 사라지는 멋(?)을 부립니다. 으하하 기자처럼 그리 긴 얘기를 들을 여유도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무언가를 끼적끼적 받아 적었고 한참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으 기자는 울분과 한숨으로 얘기하는 피해자 어머니 어깨를 쓸어주고 토닥였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그렇게 ..

사진이야기 2014.08.19

그건 위로였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미사 POOL 취재(취재인원이 많고 장소가 협소할 경우 구역이나 일정을 나눠 취재한 뒤 그 사진 또는 기사를 공유하는 것)에 제 명단이 올랐을 때 그리 반갑지 않았습니다. 이른 토요일 아침에 100만 명 운집이 예상된다는 곳에 그것도 일하러 가야하는 것은 천주교인도 아닌 제게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요. 시복식을 며칠 앞두고 가톨릭 신자인 한 선배는 어디서 들었는지 저의 POOL 취재를 아주 부러워했습니다. ‘어디서 봐야하나, 볼 수는 있을까’ 걱정하더군요. 교인에게는 먼발치에서 점처럼 지나가는 교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겠지요. 이런 주변 반응에 조금 자극을 받아 비교적 가까이서 교황을 볼 수 있는 것을 복이라 생각키로 했습니다. 시복미사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의 인파는..

사진이야기 2014.08.17

'4시간 16분 동안의 사진전'

함께 슬퍼했고 함께 분노했던 세월호가 잊히고 있습니다. 사진가들이 나섰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를 사진으로 기록해 온 사진가들입니다. 자신의 사진 한 장을 들고 ‘4시간 16분’ 동안 서울 여의도를 출발해 광화문 광장까지 걸었습니다. ‘4시간 16분 동안의 전시’라는 소위 ‘걷는 사진전’이었지요. 기록되어 기억되는 것이 사진의 본질입니다만, 기억에서 잊히는 세월호 앞에서 새삼 ‘우리는 무엇을 찍는가’, ‘왜 사진을 찍는가’,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고민이 사진가들을 거리에 세웠던 것이지요. 사진기자인 저 역시 이런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진가들은 현수막 천에 출력한 사진을 각목에 고정해 어깨에 얹고 걸었습니다. 전시 소개글에 ‘사진가들이 각자의 십자가인 ..

사진이야기 2014.08.14

식겁한 날

어제 아침 ‘오늘은 조심해야지’하고 휴가 뒤 첫 출근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 때 외우는 징크스 같은 주문입니다. 몸 다치거나 '물'을 먹거나 하는 것을 조심하자는 의미지요. 결과적으로 이날 정말 식겁했습니다. 군 사망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국방부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한 뒤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국방부 정문으로 향했습니다. 위병들이 철제문을 닫아걸었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이 철제문을 부여잡고 오열했습니다. 그때 한 어머니가 철제문을 타고 올라 고함을 질렀습니다. 저는 뒤쪽에 서서 화각이 넓은 광각렌즈를 끼고 이 장면을 담았습니다. 잠시 뒤 뷰파인더 안에서 이 분이 제 쪽으로 떨어지더군요. 그 짧은 순간에 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생각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 찰나의 상황에 비해 생각이 조금 ..

사진이야기 2014.08.07

사진가 노순택

어떤 현장에서는 사진가 노순택을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까맣게 탄 얼굴에 등산복과 등산화를 신고 스윽 나타난 그는 참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지요. 용산, 평택, 제주 강정, 밀양에서 그를 만났고 쌍용차 해고자들 사이에서도 그는 보였습니다. 그의 카메라는 대한민국 갈등의 현장에서 권력을 조롱하고 권력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어루만집니다. 언론이 뜨겁게 모였다 빠져나간 곳에서도 그의 카메라는 머물러 있습니다. 어느 밀양 송전탑 관련 문화제에서 사회자가 “노순택 사진가도 함께하고 계십니다”라는 멘트를 할 정도입니다. 사진을 ‘업’으로 하는 직업인이지만 활동가이기도 한 것이지요. 금세 떠나버리는 사진기자보다 머물러 함께하는 사진가의 카메라가 더 ..

사진이야기 2014.08.06

버리지 못할 사진

메모리카드에서 사진을 지우다 문득 ‘두 개의 의자’가 나란히 있는 컷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인물을 찍기 전 노출을 보려고 대충 찍은 한 컷입니다. 평소 같으면 메모리카드에서 이미 지워지고 없을 사진이지요. 사라져 버릴 사진에 대한 갑작스런 애착이 생겨난 것인지 하여튼 지우지 않은 이 사진 한 컷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듯 했지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인물이 부재한 공간이 어떤 인물을 어렴풋이 그려내고 있는 것 같았지요. 물론 제가 찍었으므로 저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 빈 공간에서 사진의 대상을 추리해 내는 것이 재밌을 것 같았지요. 앵글 내 공간과 사물을 읽으며 사진의 대상을 찾아가는 것이 게임 같네요. ‘두 개의 빈 의자’는 취재 대상이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말합..

사진이야기 2014.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