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아사리판

나이스가이V 2013. 2. 6. 18:31

시작부터 '아사리판'의 조짐이 보였습니다.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이 법원에 출두했습니다.

질서와 안전을 위해 미리 SK측과 얘기한 것과 다른 식으로 최 회장이 출두하자, 취재진이 엉겨 붙어 난장판이 됐습니다. 

 

나올 때는 이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SK측이 다시 제안해 취재진은 법원 밖 한 출입구에 포토라인을 치고 기다렸습니다. 출입구 앞에는 두 형제의 에쿠스 차량이 나란히 서 있었지요. 공판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이어 최태원 회장의 법정구속 속보가 휴대폰에 떴습니다. 최 회장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대신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 받은 최재원 부회장을 기다리며 라인을 지켰습니다. 

 

 

그때까지 차량 언저리를 지키며 분위기를 잡던 한 직원이 무전을 받더니 곧, 최 부회장의 차량이 법원 뒷쪽 출구입쪽으로 쏜살같이 달렸습니다. 기자들은 반사적으로 차를 따라 뛰었습니다. 최 부회장이 차량에 급히 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으로 찍었습니다. 본다고 다 찍는 것은 아니지요. ^^ 속도를 붙이기 전에 차량은 취재진에 둘러싸였습니다. 기자들은 짙은 선팅을 한 차창에 바짝 붙어 차창 속 최 부회장을 찍으려 했습니다. SK 직원들이 기자들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승강이가 벌어졌습니다. 몸싸움에 고성과 욕설, 멱살잡이가 이어지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차량이 취재진을 밀기도 했지만 뚫지 못했습니다. 약속대로 최 부회장이 내려서 한 마디 하는 것으로 정리하고 기자들은 차량에서 물러났습니다. "심려끼쳐 죄송하다" 한 마디 남긴 최 부회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차량에 올라 법원을 떠났습니다.

 

 

 

두 번 속은 것에 대한 반감과 거친 저지에 또 그렇게 거칠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지만, 사실 민망한 일입니다. 누가 이런 상황을 바라고 즐길 수 있겠습니까. 주변에 있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만 제공해 준 셈이지요. SNS를 통해 이 장면들이 어딘가에 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리 위로 들고 찍어 어떻게 찍혔는지도 모르는 사진을 한장 한장 들여다보았습니다. 멱살을 잡고 승강이를 벌이는 기자들의 손가락에 결혼 반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없이 좋았을 상황을 두고 '먹고 사는 건 이리도 치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기자들을 밀쳐낸 SK 직원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지난 일에 '만약에...'하고 조건을 달기 좀 그렇지만 약속이 지켜졌다면 고성도 몸싸움도 없었을 테고, 서로 망신스럽지도 않았을 테고, 블로그를 쓰지도 않았을 텐데요. ^^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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