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잘 가세요, 강길이형"

나이스가이V 2020. 2. 2. 19:18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설 연휴 중에 받은 부고문자에서 그의 이름을 보고, 잠깐 부모상이겠지 생각했습니다.

 

[부고] 이강길(영화감독)씨 별세.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입니다. 저에게 이 감독은 새만금과 같이 떠오릅니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망가져가던 어촌마을이었습니다. 14년 전 새만금 갯벌을 소재로 사진다큐를 하겠다고 나서서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전북 부안의 계화였고 그곳에 있는 갯벌 배움터 '그레'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당시 취재 메모를 바탕으로 써두었던 글에 이 감독과 첫 만남의 기록이 남았습니다.

 

고 이강길 감독과 처음 만났던 계화도 갯벌 배움터 '그레'

 

그때 자다 일어난 듯 부스스한 모습으로 방안으로 들어서는 이를 계화도 어민 고은식씨가 소개해 준다. 새만금을 수년 간 영상으로 기록해온 이강길 감독이다. 서울사람인 이 감독은 부안에서 사는 듯했다. 인상이 강해 반사적으로 경계의 눈빛을 던진 것도 같다. 새만금 개발과 그로 인한 갈등의 과정을 꼼꼼히 기록해온 그는 계화도에서 마을주민 대접을 받고 있었다. 안팎의 사정에 밝은 그가 주민 사이에 벌어지는 오해와 갈등에 중재 역할도 많이 하는 모양이었다.……이 감독은 내게 열과 성을 다해 갯벌 상황을 설명했다. 다큐멘터리감독이 사진다큐를 하러 온 기자에게 최상의 정보를 주려는 것이었다. 물이 들고 나지 않는 갯벌에 비가 내리자 백합들이 물때인 줄 알고 갯벌 위로 올라왔다가 다 말라 죽었다고 했다. 내 성급한 마음은 벌써 지척에 있는 갯벌로 향하고 있었다……갯벌에 함께 들어가 줄 것을 부탁하자, 고씨는 어딘가에서 경운기를 몰고 나왔다. 걷기에는 너무 넓고 해질녘까지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상카메라를 든 이 감독이 동행했다……

 

이 감독과 함께 갯벌에 나가서 찍었던 죽어서 널려있는 조개들. 물 막힌 갯벌에 비가 내리자 물이 들어온 줄 알고 올랐왔다가 말라 죽었다.

 

제 기억 속 이 감독은 오지랖이 좋았고 첫인상과 달리 순박하고 천진했습니다. 그를 보며 다큐 작업을 하는 이의 자세는 저러해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이 감독이 촬영하던 부안 계화도 어민들은 그에게 모두 형님, 누님, 이모, 삼촌이었습니다. 넉살 좋게 끼어서 먹고 잤으며 함께 웃고 분노했습니다. 당시 그가 아니었다면 헤맬 수밖에 없는 취재였습니다. 막연했던 일이 그로 인해 가닥을 잡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의 존재가 비빌 언덕이었고 위로였습니다. 그를 만난 건 행운이었습니다.

 

계화도에서 그를 만났을 때는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막 끝난 2006년이었습니다. 그해 이 감독은 새만금 갯벌 10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다큐영화 <살기 위하여>를 발표했습니다. 앞서 2001년에는 <어부로 살고 싶다-새만금 간척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 2004년에는 <새만금 핵폐기장을 낳다>라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만의 뚝심으로 새만금 3부작이 남겨졌습니다. 또 부안의 방폐장 반대투쟁을 담은 <야만의 무기>(2010), 최근 몇 년 동안은 설악산 케이블카 찬반 논란을 기록했고, 지난해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을 내놓았습니다.

 

이 감독이 형이라고 불렀던 계화도 어민 고은식씨가 갯벌의 생명과 평화를 상징하는 짱뚱어 솟대를 다시 세우고 있다. 이 감독과 나는 이 장면을 나란히 서서 긴 시간 촬영했다.

 

이 감독의 작품이 웅변하는 것처럼 그가 다뤄온 주제는 자연과 생명, 평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사람들의 삶을 보듬었습니다. 영화감독이면서 운동가였고, 이 시대의 밀리고 쫓겨나는 이들의 벗이었습니다. 이 감독의 목소리 한 대목이 제 다큐기사에 남았습니다.

 

농지도, 땅도 없는 어민들이 스스로 생성된 갯벌에서 포획해 세금내면서 잘 살아왔는데 방조제로 금을 그어 놓고 조업은 불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배려해 준다는 식이지요. 환경 대 개발 사이에서 소외된 주민들의 삶은 고려되지 않는 상황들이 안타까워요. 잘 먹고 잘 살게 하겠다는 국책사업에 무너지고 해체되고 벼랑 끝으로 몰리는 삶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이강길 감독이 지난 설에 급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2년 전쯤 그가 설악산 케이블카 다큐작업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곳에서 사진다큐 하나 할 수 있을까 싶어 통화를 했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결국 다큐를 하지 못했고 그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언제 만나 소주 한 잔 하자는 게 그와의 마지막 인사가 돼버렸습니다. 참 좋은 기운을 주는 그의 살가운 목소리가 문득 떠오르고, 이내 그리워졌습니다. 영화감독으로 그가 남긴 소중한 기록들은 역시 현장을 기록하는 자인 저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새삼 고민하게 합니다.

 

지난 2009년의 이강길 감독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둘러 떠난 곳에서 그는 어떤 영상을 기록할까. 근황도 모른 채 쫓기듯 살다가 부고를 듣고서야 후회와 자책을 합니다.

미안합니다, 이강길 감독님. 하늘에서 안식과 평안을 빕니다.

 

잘 가세요. 강길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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