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홍콩시위 출장기 ② "힘내세요"

나이스가이V 2019. 8. 26. 23:07

지난 17~19일 다녀왔던 홍콩시위 출장기 편을 올리려는데 25일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기사가 났습니다. 경찰이 권총을 뽑아든 사진이 아찔합니다. 저기 있었다면 저 장면을 찍을 수 있었을까. 늦지 않게 접근은 했을까. 뭐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제가 목격한 평화시위와는 딴판인 기사가 업데이트 되다보니 미리 써 둔 이 출장기를 올릴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어쨌든 그날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고, 홍콩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의미에서 올리기로 했습니다. 

 

18일 일요일 홍콩.

 

집회는 오후 2시로 예정됐습니다. 홍콩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아침의 여유를 즐겼습니다. 그래봐야 숙소 주변을 한 시간 남짓 걸어 다니는 정도였지만요. 사는 게 별 다를 것도 없지만 이국의 일상을 걸으며 보는 것은 즐겁습니다. 투명한 아침, 여유롭고 한가한 휴일의 모습에 덩달아 편안해집니다. 일이 아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집회가 열리는 빅토리아 공원에는 산책 중에 우연히 노선을 파악하게 된 트램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2시간쯤 먼저 도착한 공원에는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집회가 시작될 무렵 공원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공원으로 발을 들이지 못한 시민들이 주변 차도를 가득 메우고 섰습니다.

 

규모=전경은 사진의 절대 진리지요. 공원과 맞닿은 한 고층 오피스텔로 달려가 안내데스크로 달려갔습니다. “아이엠 포토그래퍼 프롬 코리아...”라는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크게 가로저으며 노우.” 그 옥상에는 두세 명의 기자들이 있었지만, 왜 쟤네들만 올라갔는지 묻지 못했습니다.

 

다시 정반대편에 있는 상가오피스텔 건물. 운이 좋게도 6층 정도 높이의 지상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차량 진입로를 따라 신나게 뛰었습니다. 내려다보며 찍는 전경은 대체로 평균이상입니다. 공원에는 빈 공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급히 찍은 뒤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한국시간으로 오후 4시가 가까웠습니다. 마감시간이지요. 사람 많은 곳에서 와이파이는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애간장을 태웁니다. 겨우 몇 장을 전송마감을 하고 한숨 돌렸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립니다. 억수같이 쏟아졌지요. 집회 참가자들이 일제히 거의 동시에 우산을 펴들었습니다. “우와~” 탄성을 절로 나오는 장관이었습니다. 우리의 탄핵촛불 때 어느 건물 위에서 내려다봤던 모습이 살짝 오버랩 됐습니다. 촛불 아닌 우산이었지만요. 사진을 다시 찍었습니다. 앞엣것은 무효. 우산으로 표현되는 인파 이미지가 훨씬 더 와 닿았습니다. 촛불이 그랬듯이.

 

앞서 홍콩경찰은 행진을 불허했지만, 시민들은 홍콩 시내를 행진했습니다. 주차장 위에서 탄성을 외쳤던 비였지만 행진을 따라가며 사진을 찍으려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비에 환호하다 곧 그 비 때문에 짜증이 솟는 참 단순하고 모자란 인간이지요.

 

양쪽 어깨에 카메라를 걸고 배낭에는 헬멧과 고글, 방독마스크와 필터 여러 개, 노트북과 충전기 등이 들어 묵직했습니다. 우비를 대충 걸쳤습니다. 우산이 있어도 받쳐 들 손이 없고, 우산 들고 인파 사이를 헤집기도 어려웠습니다. 우산행렬 사이를 지나는 동안 비의 절반은 참가자들의 우산이 막아줬습니다.

 

홍콩시민은 감동이었습니다. 행진하는 내내 외신기자인 한국기자들을 배려했습니다. 행렬이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을 때도 한국사진기자들을 위해 몸을 밀착해 길을 내 주었습니다. 차도 가운데 중앙분리대를 넘어갈 때는 카메라와 가방을 받아줍니다. 우산을 받쳐주면서요. 또 어떤 이들은 카메라 렌즈에 붙은 경향이라는 한글을 알아본 모양인지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힘내세요같은 짧은 인사를 선한 미소와 함께 던졌습니다.

 

긴 시간 비와 행렬 속을 걸으면서도 크게 지치지 않은 것은 홍콩 시민들의 따뜻한 환대때문이었다고 지금 생각합니다. “홍콩 사람들 매너 좋고 참 다정하다.” 함께 취재했던 Y통신사 후배와 수시로 공유했던 인상이었습니다.

 

내내 어딘가에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 신경을 썼습니다. 어둠이 내리고도 행진은 이어졌습니다. 낮보다 간격이 조금 느슨해졌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걷는 부모도 많았습니다. 딱히 정해진 종료지점 없이 걸었지만 앞쪽에서 어떤 마찰이 생겼다면 행렬이 느슨해지지도, 앞으로 걸어 나가지도 못했을 겁니다. 기대했던(?) 충돌은 없었습니다. 100만이 넘는 시민들은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평화롭게 걷고 안전하게 귀가를 했습니다.

 

언제나 늦게까지 남는 건 체력 좋은 청년들. 정부청사 건물 앞에 청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충돌가능성이 있다면 그 곳 뿐이었지요. 청년들은 청사를 둘러싼 대형 바리케이드에, 아스팔트에, 벽에 외치던 구호를 영어와 한자로 그려 넣었습니다. 일부는 레이저포인터를 정부청사, 경찰청사 건물에 쏘아대며 야유하고 또 환호했습니다. 이날 경찰은 어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보이지 않았습니다.

 

홍콩과 가까운 중국 선전에 장갑차와 무장경찰 등을 배치하며 2의 천안문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열린 집회는 정말 평화롭게끝났습니다. 충돌과 강경진압, 유혈사태로 번지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시위였다면 제가 홍콩에 출장을 올 이유는 없었습니다. 행진 동안 저는 꼭 바라는 것처럼 충돌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좀 인정머리 없이 잔인하지요. 출장 왔으니 좀 피곤하고 위험하더라도 거친 상황의 좀 더 센 사진을 은근히 기대했던 겁니다.

 

다음날인 19일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주말에 해외의 대규모 평화시위를 취재하고 귀국하는 전례 없는 출장이 됐습니다. 방독마스크와 고글은 깨끗하게 다시 가져왔습니다. 집에 들어와 월요일자 신문을 펼쳤습니다. 1면에는 주차장에서 찍은 우산전경 사진이 실렸습니다. 신문을 넘기다 9면 광고지면에 시선이 머뭅니다. “홍콩 시민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지켜봐 주시고 세계에 널리 알려 주세요.” 홍콩시민들이 경향신문에 낸 광고였습니다. 어제 이들을 보고 온 탓인지 짠했습니다. 행진 대열에서 한국기자들을 응원하던 홍콩시민들을 떠올립니다.

 

"힘내세요"

 

yoonj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