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투신 현장에 내가 있었다면

나이스가이V 2013. 7. 30. 08:00

  사진기자 케빈 카터가 아프리카 수단에서 찍은 ‘독수리와 소녀’는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굶주려 힘없이 웅크린 소녀를 먹잇감으로 노리는 것 같은 독수리의 모습은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이 사진에는 사진가에 대한 찬사뿐 아니라, “셔터를 누르기 전에 아이를 먼저 구했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케빈 카터는 시상식이 열린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자신의 차에서 자살을 했습니다. 사진에 대한 논란이 그가 자살한 이유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가 말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이지요. 다만, 그가 취재했던 수많은 전쟁과 죽음, 기아의 비참한 현장이 그를 늘 괴롭혔고 끝내 이를 견디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케빈 카터가 몇 장의 사진을 찍자 독수리는 소녀를 두고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만, 기자의 윤리, 특히 현장성이 강조되는 사진기자의 윤리를 얘기할 때 두루두루 인용되는 얘기입니다. ‘당신이 케빈 카터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뒤를 잇습니다. 비슷한 질문 하나 더. ‘카메라를 든 당신 앞에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 찍을 것인가, 구할 것인가. 현장에 있는 유일한 이는 바로 당신이다’ 언론사 입사 면접 때 간간이 등장하는 질문의 고전이죠. 답은 명징해 보이지만 사회경험이 없는 이에게는 상당히 잔인한 질문입니다.

 

지난 26일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가 이틀 전 예고한 대로 마포대교 위에서 투신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실종됐습니다. 투신 전 제보를 받았던 KBS의 촬영기자가 그 상황을 카메라로 찍고 있는 장면이 트위터에 올라왔습니다. 기자는 사건 발생 전 신고를 했다고 밝혔지만 ‘자살 방조’에 대한 비난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기자들이 이 사건을 접하면서 ‘내가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자문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날 저는 사건이 발생하기 10여분 전쯤 사건 현장인 마포대교를 지나갔습니다. 현장을 목격했다면 저도 갓길에 급히 차를 세웠겠지요. 저 혼자가 아닌 단체 관계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솔직히 그가 투신하지 못하도록 말렸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성대표의 위험성보다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에 더 무게를 뒀을 것 같습니다. 한강 다리 위에서 벌어졌던 숫한 퍼포먼스 현장의 경험이 그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무디게 했을 거라고 봅니다. 앵글 속에서 펼쳐지는 상황이 가끔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살방조 논란을 보면서 현장을 10여분의 시간차로 피해가면서 비난의 가능성도 피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찝찝한 기분입니다.

 

수많은 매체들이 출혈 경쟁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특종’뿐 아니라 취재 과정 도처에 널린 달콤한 유혹이 기자 개인의 양심이 고개 들지 못하게 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라면 다소 갈등을 하더라도 저의 양심과 상식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불어 눈앞에 펼쳐지는 위험에 카메라를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를 소망해 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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