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10년 전 눈물사진 한 장이...

나이스가이V 2020. 6. 23. 13:27

사진 한 장을 보며 10년 전 요맘때를 떠올립니다. 새삼스럽게 지금이 ‘20206이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기억을 더듬다 세월의 속도를 실감합니다. 사진은 10년 단위 같은 날 경향신문 기사를 살펴보는 모바일팀의 오래 전 이날이란 코너에 실렸습니다.

 

사진에는 짧은 머리의 청년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상황을 몰랐다면 눈물을 닦아주고 싶을 만큼 처절하게 우는 모습입니다. 정대세. 북한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한 그는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펑펑 울었습니다.

 

남아공월드컵 조별경기 브라질전에서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눈물 흘리는 정대세.

10년 전 저는 남아공에 있었습니다. 월드컵 출장 중이었지요. 정대세의 눈물은 2010616일 요하네스버그에서 펼쳐진 조별경기 북한-브라질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인민 루니’ ‘인민 호날두라 불리는 청년의 울음에는 월드컵 출전의 감동 이상의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누군가의 눈물 앞에서는 숙연해지는 것이 인정일 텐데, 저의 반응은 경기 시작도 안 했는데 쟤는 왜 울어?’ 수준이었습니다. 출전국 중 세계랭킹 꼴찌인 북한은 이날 랭킹 1위 브라질을 상대로 선전을 펼쳤고, 12로 패했지요.

 

이 눈물사진이 시선을 붙든 건 옛 취재의 추억이 돋아서기도 했지만, 그날로부터 정확히 10년 뒤 616일에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기 때문입니다. ‘눈물폭파라는 개연성 없는 두 사건이 10년 세월을 두고 같은 날 터졌다는 사실이, 또 그 이유로 온라인페이지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반휴면상태의 블로그를 깨우기에 이르렀습니다. 북한대표팀 출신으로 국내 K리그를 뛴 정대세와 남북화해의 상징인 연락사무소. 뭔가 연결되며 의미가 일어나는 것도 같습니다. 눈물과 폭파의 두 장면을 번갈아보면 마치 허물어진 남북화해에 흘리는 눈물 같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억진가요. ^^

 

눈물사진은 당시 추억들을 줄줄이 소환합니다. 10년 전 한 달 출장의 절반 이상을 룸메이트로 지냈던 한국일보의 선배는 이듬해 회사를 그만두고 전남 구례로 내려갔습니다. 참 멋있었던 기자가 10년 세월에 제법 틀이 잡힌 농부가 되었습니다. 그와의 인연은 질깁니다. 농부가 된 선배는 요즘 경향신문 인기연재물 원유헌의 전원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형님~, 벌써 10년입니다.” 블로그 올려놓고 전화라도 드려야겠습니다.

 

경기 기다리며 찍은 기념사진. 10년 뒤 한 사람은 사진가로, 한 사람은 농부로, 두 사람은 사진부장이 됩니다. 저는...

 

남아공 한 호텔방에 모여 라면에 누룽지를 말아먹고 있는 동료들.

또 하나. 당시 우리대표팀은 월드컵 원정 첫 16강에 진출했습니다. 벌써 몇 차례 우려먹었습니다만,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저는 경기사진이 아닌 제가 찍힌 사진 한 장을 남겼습니다.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건 그 위에 시간이 쌓여가기 때문이겠지요. 당시에는 좀 굴욕적이다 싶더니, 이젠 기자생활 인생사진반열에 올려놓기에 이르렀습니다. ㅎㅎㅎ

 

월드컵 16강전 우루과이 수아레스가 역전골을 넣은 뒤 내게 달려들고 있다.

눈물사진 한 장이 결국 10년 전 사진을 뒤지게 만들었습니다. 추억 돋는군요. 취재사진 속에 가끔 끼어있는 기념사진 속 저는 30대였군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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