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오월 어머니들'

나이스가이V 2020. 5. 21. 17:27

일주일간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국내 출장치고는 길었습니다. 내근에서 잠시 벗어났습니다. 현장으로 갔다왔더니 이렇게 글이 남네요. 현장 없이는 이 블로그도 존재할 수 없는 겁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부서의 사진기획 회의가 열렸습니다. 저도 기획 아이템을 하나 냈습니다. 아이템을 낸 자가 취재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낸 자와 일하는 자가 따로인 경우도 드뭅니다. 출장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의지의 근거는 내근의 갑갑함이었습니다. 출장을 떠났습니다. 518일자에 한 면이 배정됐고, 무엇이 되었든 채워야했습니다.

 

내근을 벗어나는 자유도 잠시, 어찌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찾아듭니다. 그게 현장이지요. 오랜만에 경험하는 설렘 같은 긴장도 따라붙습니다. 정해진 일정은 5·18유족회 사무실을 찾아가는 것뿐이었지요. 머릿속 기획이 어떤 식으로 구체화 될 수 있을지는 부딪쳐봐야 알 수 있습니다.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뭐가 될지 모를 아이템으로 방향을 틀 수 있음을 염두에 뒀습니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유족회 사무실에서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유족 중에 40년 전 광주에서 자식을 잃었던 어머니들의 연락처를 부탁했습니다. 연로하신 분, 멀리 타 지역에 사는 분들을 제외한 열다섯 분의 이름과 연락처와 집주소를 수첩에 옮겨 적었습니다. 유족회에서 섭외까지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으나, 이런저런 행사준비에 정신이 없어 보여 말을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섭외가 전부인 일이었습니다. 급히 옮겨 적은 연락처를 들여다봤습니다. 막연했습니다. 5월은 어머니들에게 바쁜 달일 테고, 한편 너무 슬픈 날들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심호흡과 함께 한 분 한 분 연결을 시도했습니다. 휴대폰 신호음이 길어지면 불안해지기도 했습니다. 긴 신호음 뒤에 받기도 했고, 아예 받지 않기도 했지요. 자녀나 요양보호사가 귀가 어두운 어머니를 대신해 전화를 들기도 했고요. 서너 분의 어머니들은 방문을 거부했습니다. 목소리에는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사진취재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면 수화기 너머 어머니들의 반응은 대개 엊그제 인터뷰를 해갔다거나 다 늙어서 무슨 사진을 찍나하는 완곡한 거절이었습니다. 마감해 메워야 할 빈 지면이 눈앞에 어른거려 좀 더 용기 내 매달렸습니다. ‘5월 광주의 아픔을 공감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덧붙였을 때 방문은 허락되었습니다. 섭외가 되면 즉시 어머니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동안 또 다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 일정을 잡는 식으로 취재는 진행됐습니다.

 

섭외와 이동, 인터뷰와 사진촬영으로 이뤄지는 취재는 예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하루 5~6명을 찍어 열다섯 명쯤 어머니들의 사진을 모으겠다던 계획은 첫날 폐기됐습니다. 15분 정도만 시간을 달라며 전화로 부탁은 했지만, 막상 집으로 들어서면 한두 시간은 기본이었지요. 그렇게 한 분 한 분 어머니들을 만났습니다.

 

간단한 질문을 준비했지만 막상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수없이 던졌을 질문이고, 그만큼 많이 대답했을 텐데 말이지요. 자식의 죽음을 어떻게 물을지 몰라 주저했습니다. 5월 그날의 일을 에둘러 물었습니다. 묻는 일이 정말 어렵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때 무등산 위로 날이 밝고 있었어요.” 밤새 아들의 시신을 찾아 헤맨 어머니의 40년 전 기억은 구체적이고 또렷했습니다. 흐려지지도 흐려질 수도 없는 기억이었지요. 얘기는 길어졌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손님에 대한 배려 같은 웃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지만, 세세한 기억을 꺼내다가 깊은 한숨을 뱉어냈고, 이내 눈물을 훔쳤습니다. 한 맺힌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 순간이 어머니들에게 위로일 수 있겠다 싶었지만, 내내 붉어져있는 눈시울을 보면서 이 순간이 위로일 수만은 없겠구나, 생각을 고쳤습니다. 귀가하지 못한 아들과 딸을 찾아나서 곳곳의 시신을 뒤지던 40대의 엄마들은 이제 80대 중후반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아홉 분의 어머니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사진기획이지만 정작 카메라를 든 시간은 짧았습니다. 검은 천을 배경에 걸었고 조명도 준비했습니다. 연출한 사진입니다. 처음에는 세월의 골이 새겨진 얼굴을 담담하게 찍어보고자 했습니다. 거기서 조금 나아가 자식이 그리울 때 어머니들이 들여다보거나 만져보는 물건이 있으면 같이 찍어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들은 겨우 한두 장쯤 남아있는 자식의 사진을 꺼내들었습니다. 얼마나 들여다봤을지 짐작도 할 수 없는 낡고 빛바랜 사진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자식을 추억할 어떤 물건도 남기지 못한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너무 울어서 남편이 자식과 관련된 모든 물건을 찢고 버렸다고 했습니다.

 

지그시 눈을 감은 어머니들.

 

셔터를 누를 때 전해오던 아픔이 사진에 오롯이 담겼으면 했습니다.

 

오월 광주를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서주신 어머니들께 감사드립니다.

 

yoonjoong

 

[사진기획] 오월 어머니들…마르지 않고, 마를 수 없는 굵은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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