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7

물그림자

물에 투영된 산과 겨울나무와 석탑이 선명하다. 한 폭 그림처럼 시선을 잡는다. 거꾸로 봐도 다르지 않다. 무엇인 실재이고 무엇이 현상인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고, 빛이 변하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 물그림자다. 땅을 딛고선 것과 달리 물에 투영된 사물은 불안하다. 그래서 거짓이다. 눈을 즐겁게 하지만 만질 수 없는 신기루다.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신기루가 진짜를 대체하고 있을까. 나는 내 속에 얼마나 많은 거짓과 가짜를 참과 진짜로 가장하고 있는 걸까. 20여 년 전 복원됐다는 저 석탑도 백제의 탑은 아니다. 거짓을 투영하고 있는 연못 위 또 다른 거짓이라. 거짓의 거짓은 참인가, 더 큰 거짓인가. 물그림자를 보고 든 상념. 2015년 1월 23일. 익산 미륵사지에서 yoonjoong

연탄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달동네 104마을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사진 좀 찍어봤다는 이들은 한 번쯤 걸었을 곳이지요. 운동이라도 하려고 나설 때면 일부러 이 동네를 지나갑니다.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이 꽤 매력이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극적으로 또다른 골목과 연결이 되지요. 7년 전 중계동으로 이사 온 뒤 수도 없이 다녔던 동네가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낯설게 느껴집니다. 오래돼서 낯선 것들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카메라가 없어서 아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지난 4일 눈 많던 날, 104마을에는 골목골목마다 매캐한 연탄냄새가 떠다니고 있었지요. 연탄재를 찍었습니다. 서울 중계본동 104마을 골목에 정성껏 쟁여놓은 연탄재가 쌓인 눈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연탄재는 폭설이 쏟아진 이날 가파..

손편지

거리에서 우체통을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늘 거기 있었을 텐데도 개인적으로 쓰임이 없고 관심을 두지 않으니 보이지 않았을 수 밖에요. 파란 가을 하늘 빛과 대비되는 붉은 색이어서 눈에 띄었나 봅니다. 아니, 편지가 떠올려지는 계절이라 시선이 갔나 봅니다. 썼다 지웠다 하며 손으로 쓴 편지를 부친 기억이 십 수 년은 된 것 같습니다. 가끔 손으로 눌러 쓴 제 글씨가 낯설게 보입니다. 심지어 수첩에 긁적인 저의 글씨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태까지 생겼습니다. '내 주위에 누구의 글씨를 기억하고 있나?' 생각해 보니, 당장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e메일과 카톡이 대세인 시대에 손으로 쓴 편지는 이벤트에나 출연을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편지 한 통 써서 부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또 '누구에게 쓸 것인가' 고민에..

담벼락에 걸린 눈

영화 '이웃사람'의 원작 만화가 강풀씨의 인터뷰를 앞두고 시간이 남아 인근에 있는 팔판동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삼청동길 들어서서 왼쪽으로 있는 동네입니다. 조선시대에 열덟 명의 판서가 나왔다고 팔판동이랍니다. 묵직한 유래에 비해 이름은 다소 가벼워 보이는 동네지요. 아담한 이 동네는 골목을 따라 예쁜 카페촌이 형성돼 연인이나 관광객들이 많습니다. 카메라를 든 이들도 많구요. 일부러 오기 힘든 동네고, 시간은 때워야 하고, 오랜만에 여유를 누렸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어슬렁 거렸습니다. 한 번 지났던 골목인데 어떤 끌림이 있어 다시 한 번 걷게 되었지요. 저를 끌어들였던 것의 정체는 '벽에 그려진 눈'이었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매서운듯 하면서도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는 눈이었지요. 전봇대 옆, 쓰레기 ..

외로운 등

개화산에 취재갔다 등산로에서 우연히 한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어르신의 배낭에는 개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 '재밌는 장면'이다 싶어 서너장을 급히 찍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개가 참 호강하는구나' 정도의 생각이었지요. 수요일자 '포토에세이'에 쓰려고 사진을 '꼬불쳐' 놓고 몇 번이고 꺼내 보았습니다. 볼때마다 사진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재미있었던' 사진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묵직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최근 가난과 외로움에 힘든 노년을 보내던 노부부의 자살 사건도 사진 위에 어른거렸습니다. 사진 속 어르신 앞으로 길게 나있는 등산로도 살아갈 많은 날들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찍을 당시 개를 먼저 봤다면, 다시 사진을 볼때는 어르신..

하늘을 날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 전국체전 개막식. 몸에 줄을 매단 무희가 호숫가 하늘을 한 폭의 그림처럼 날아 올랐다. 주변의 배경이 생략된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느린 무희의 움직임을 쫓다가, 문득 '내가 날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카메라에서 눈을 떼는 순간, 막연한 꿈을 꾼듯 했고 놀이기구를 실컷 타다 바닥에 발을 디딘것 처럼 땅의 감촉이 한층더 단단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장자의 '나비의 꿈'을 생각했다면 너무 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