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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가래질과 사진질

눈 스케치에 나섰습니다. 눈은 이미 그쳤습니다. 어디 다른 거 없을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만, 기본부터 챙기며 차차 떠올려 보기로 합니다. 서울 시내 경사가 많은 동네를 찾습니다. 쌓인 눈이 미끄러워 양팔을 벌린 채 뒤뚱거리는 출근길 시민을 사진에 담는 것이 1차 목표.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극적(?)인 그림이 되겠지’라는 ‘못된 생각’을 하면서 또 그런 생각을 애써 떨쳐내면서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닙니다. 사실 이날 받은 일에 마음이 크게 동하지 않았습니다. 뭐 그런 날이 있습니다. 큰 의욕이 없었던 것이지요. 이런 날은 이상하게 그림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일단 이동. 서울 창신동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다시 경복궁으로 이동했습니다. 경복궁은 제설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문화재보호재단에 속한 직원들이 전통..

사진이야기 2014.01.22

네 번째 가는 취재

‘1년이 금세 지났구나’하고 느끼게 하는 취재가 있습니다. 수능시험이 그렇구요. 또 하나가 특전사 ‘설한지 극복 훈련’ 취재입니다. 수능처럼 이 훈련도 매년 비슷한 시기에 진행돼 세월의 흐름을 아프게 확인시켜 줍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제가 특전사 취재를 명~받았습니다. 2년 연속이자 네 번째 취재입니다. 강원도 평창을 향해 해가 뜨지도 않은 올림픽대로를 달리며 ‘어떻게 다르게 찍을까?’하고 작년에도 했음직한 고민을 했습니다. 군부대 특성상 이런류의 취재는 수십 개의 매체들이 한꺼번에 몰립니다. 제게 좋아 보이는 그림은 타사 기자의 눈에도 그리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 거의 비슷한 그림이 각 신문의 지면에 반영되곤 합니다. 타사가 일제히 쓴 사진을 저도 찍어 게재했다면 물 먹지는 않았다며 위로할 수 있..

사진이야기 2014.01.10

안녕하지 못한 이유

지난 일요일 아침 선배의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도착한 회사 앞은 경찰, 철도노조원 등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입사 이후 정동길이 이렇게 밀도가 높았던 적은 본적이 없습니다. 회사 신분증을 내밀며 인파를 비집고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로비에서 상황을 지켰습니다. 현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노조원이 대치했습니다. 철도노조 간부를 연행하려는 경찰의 경고 방송과 노조원의 구호가 뒤섞였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경찰 체포조가 현관 유리문 앞으로 바짝 다가섰습니다.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밀어 붙이는 경찰에 노조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여의치 않았던 경찰은 망치 등을 동원해 현관 바깥쪽 유리문을 부수고 유리문 사이에서 저항하던 노조원들을 연행됐습니다. 내부 ..

사진이야기 2013.12.26

[포토다큐]'철거민'이라는 죄로

고민하고 발품 팔아 게재한 ‘다큐’에 애착이 더한 건 말해야 무엇 하겠습니까. 그간 장애인,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등 주로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만 다큐가 결국 바라는 것은 조그만 변화입니다. 오랜 세월 익숙하고 공고했던 틀이 단숨에 깨지거나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단한 벽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넓은 강에 작은 돌다리라도 하나 놓고 있다’면서 감지되지 않는 변화에 그리 자위하곤 합니다. 이번엔 겨울을 앞둔 철거민을 만났습니다. 개발지역에서 만난 철거민들은 저를 보자마자 자신들의 억울한 사연을 토해 냈습니다. 목소리는 금세 젖어들었고 눈시울은 붉어졌습니다. 그리고 얘기 끝에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습니다. “들어줘서 고맙다. 말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해진다..

사진다큐 2013.12.09

산수유 할아버지의 모델료

산수유 마을로 알려진 경기 양평 주읍리. 겨울 초입에 서리와 바람을 맞고 이파리를 모두 떨어낸 산수유에는 빨간 열매만 남았습니다. ‘자세 좋은’ 산수유를 찾아서 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두어 대의 차량이 지나갈 뿐 주민들이 보이지 않았지요. 마감시간은 다가오고 산수유나무 근처로 주민이라도 지나가야 사진이 되겠다 싶어 이 마을의 산수유 권역위원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분께 연락을 했습니다. 그는 “KBS ‘6시 내 고향’에서 촬영 나와 주민들이 거기 다 간 모양”이라면서 자신도 “촬영 때문에 공장 기계를 돌려야 하는데 고장 나서 애를 먹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더군요. 알아서 하란 얘기지요. ^^ 길가에서, 빛을 잘 받고 있으며, 여러 그루가 한데 모여 있는 산수유를 찾아내 앵글을 잡고 누구라도 지나가 주기를 기..

사진이야기 2013.11.26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한달 전, 일을 위한 산행은 ‘그냥 노동’이라고 블로그에 썼습니다. 요즘 데스크가 자꾸 저를 산으로 보내는군요. 이번에는 새벽산행이었습니다. 약간의 무서움이 동반된 역시 '노동'이었지요. 새벽 4시50분 북한산성 성곽에 있는 ‘동장대(산성수비의 총 지휘소)’를 향해 걸었습니다. 달도 없어 완전 깜깜한 시간의 산행이었습니다. 홀로 산행이 부담스러워 취재차량 운전하시는 형님께 동행을 부탁했습니다. 헤드랜턴과 손전등이 비추는 딱 고만큼만 밝히면서 산을 탔습니다. 이 인공의 불빛 이외엔 까만 하늘에 맺힌 별빛이 전부. 사위는 온통 암흑이었습니다. 오가는 사람도 전혀 없구요. 열흘 전쯤 같은 취재 건으로 조선 숙종 때 지었다는 행궁(임금의 임시거처)터를 찍으러 다녀갔기에 행궁 옆길을 따라 동장대에 이를 수 있다는..

사진이야기 2013.11.19

'추억 선물'

그가 스튜디오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딱히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봤던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젊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80년대 인기밴드 다섯손가락의 리더 이두헌. 제가 10대 초반일 무렵 형이 샀던 것으로 기억되는 ‘다섯손가락’의 테이프를 집에만 오면 카세트에 꽂아놓고 반복해 들었습니다. 그가 작사·작곡한 ‘새벽기차’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등이 든 1집과 ‘사랑할 순 없는지’ ‘풍선’ 등이 수록된 하루 서너 번씩,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노래를 줄줄 외워 불렀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제법 감정까지 넣어 불렀던 것 같습니다. “희미한 어둠을 뚫고 떠나는 새벽기차는 허물어진 내 마음을 함께 실었네. 낯설은 거리에 내려 또다시 외로워지는 알 수 없는 내 마음이..

사진이야기 2013.11.15

산울림 김창완의 주름

인물 사진, 특히 연예인의 사진을 좀 다르게 찍을 순 없을까, 고민을 합니다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저 그런 빤한 사진을 찍고 비슷비슷한 사진이 신문에 실립니다. 산울림의 김창완을 카메라에 담을 때도 늘 그랬던 것처럼 다르지 않은 표정과 제스처를 요구했습니다. 그는 조금 어색해 했습니다. '자연스러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그가 표현한 어색함은 사진을 찍힌다는 사실보다,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는 저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겠지요. 만나서 인사하자마자 사진부터 찍는 것은 현실이 그러하더라도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시간에 쫓기듯 사진을 찍는 것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어색함을 누그려 볼 요량으로 “지금 표정 너무 좋아요”라고 역시 틀에 박힌 멘트가..

사진이야기 2013.11.08

사진기자의 한국시리즈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을 다녀왔습니다. 먼저 3승 고지에 오른 두산이 이날 삼성을 꺾으면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기자실에 들어서니 오랜만에 보는 스포츠지 선후배들이 반겨줍니다. 준플레이오프부터 수차례 연장 끝 승부와 한국시리즈를 취재하며 심신이 지친 선후배들은 특정 팀을 응원해서가 아니라 이날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다. 축적된 경험이 있는지 스포츠지의 한 선배는 "종합(일간)지에서 취재 오는 거 보니 왠지 불길한데..."하고 웃습니다. "대구 가게 되면 니 탓이다”라며 제게 미리 뒤집어 씌웠지요. 오후 6시 경기인데 3시쯤 도착해 자리 추첨을 했습니다. 매체가 워낙 많기 때문이지요. 선착순이라고 했으면 전날 와서 진을 쳤을 것이 분명하기에 나름 정..

사진이야기 2013.10.31

'아웃포커스를 허하라'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에서 배제된 윤석열 전 팀장이 국정감사에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사진기자의 카메라가 향할 대상은 자명합니다. 다음날 황교안 장관은 청와대 국무회의에 참석했고 23일자 경향신문 1면을 포함해 몇몇 신문이 박근혜 대통령 뒤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황 장관의 사진을 게재 했습니다. 전날밤 청와대에서 이 사진을 다른 사진으로 교체해 달라고 했다더군요. 사진 앵글 왼쪽에 있는 박 대통령의 얼굴이 ‘아웃포커스’ 됐다는 이유였습니다.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파문이 커지는 국정현안에 침묵하는 대통령과 수사 외압 의혹에 함구하는 황 장관을 한 컷에 잘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청와대에는 보통 신문사의 고참급 사진기..

사진이야기 2013.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