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8

증명해야 하는 슬픔

지난 18일 36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앙상한 팔을 걷어 보이고 허리둘레보다 두 배쯤 커져버린 바지춤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앞서 한 정치인은 “제대로 된 단식이면 실려 갔을 것”이라 비아냥댔지요. 딸에 대한 사랑과 딸을 잃은 아비의 슬픔을 의심받아야 하고, 목숨을 건 단식의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참 잔인합니다. 겨울 나뭇가지 같은 아슬아슬한 몸을 드러내 보이고 딸과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에 통장까지 공개하도록 하는 가학적인 의심과 무책임한 발언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인간성이 상실된 이들에게 절망하다가도 ‘진상이 규명되고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동조 단식에 나선 시민들을 보며 다시 희망을 쥐어 봅니다. 목숨 건 단식에 ‘아빠’라는 이유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4시간 16분 동안의 사진전'

함께 슬퍼했고 함께 분노했던 세월호가 잊히고 있습니다. 사진가들이 나섰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를 사진으로 기록해 온 사진가들입니다. 자신의 사진 한 장을 들고 ‘4시간 16분’ 동안 서울 여의도를 출발해 광화문 광장까지 걸었습니다. ‘4시간 16분 동안의 전시’라는 소위 ‘걷는 사진전’이었지요. 기록되어 기억되는 것이 사진의 본질입니다만, 기억에서 잊히는 세월호 앞에서 새삼 ‘우리는 무엇을 찍는가’, ‘왜 사진을 찍는가’,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고민이 사진가들을 거리에 세웠던 것이지요. 사진기자인 저 역시 이런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진가들은 현수막 천에 출력한 사진을 각목에 고정해 어깨에 얹고 걸었습니다. 전시 소개글에 ‘사진가들이 각자의 십자가인 ..

사진이야기 2014.08.14

고마워요 샤이니

세상에는 기록될 만한 가치가 충분함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묻어두거나, 기록되지 않아서 기억되지 못하고 흘려버리는 일들이 있지요. 몇몇 소수의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다 사라지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저를 포함한 몇몇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을 여기 블로그에라도 남겨야 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 기록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다큐를 하던 중 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다영이의 엄마와 통화를 했습니다. 섭외에 어려움을 겪던 제게 다영이의 같은 반 친구 엄마들의 연락처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미안한 듯 물어왔습니다. “혹시 샤이니 사인을 받을 방법이 있을까요?” 다영이가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열성 팬이며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고 먼 훗날 샤이니의 디너쇼까지 보겠다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

사진이야기 2014.07.21

잊지 않을게

어김없이 다큐의 순서는 돌아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관련한 다큐를 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간 많은 기사와 사진이 나와서 다른 접근으로 사진을 담아내기엔 부담스러우면서도 막연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사고로 안타깝게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의 방을 떠올렸습니다. 아이들이 꿈을 키우던 방을 사진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했지요. 여기서부터 다시 여러 문제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습니다. 아이의 방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둔 부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가능했지만, 부모들에게 어떻게 다가가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것인가. 또 방이라는 공간으로 의미가 전달 될 수 있나. 기존 다큐에는 대체로 사진 앵글 내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인물의 행위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저 공간을 담은 사진은 낯설 것이 분명했습..

사진이야기 2014.07.14

기억해야 할 것

‘벌써 12년 전의 일이구나’하고 새삼 놀랍니다. ‘벌써’라는 말에 빨리 흘러버린 세월의 의미도 있지만, 그 세월동안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는 ‘망각’의 의미도 들었습니다. 2002년 6월13일 경기도 양주 56번 국도에서 미군 궤도장갑차량에 압사당한 고 신효순, 심미선양의 추모제를 다녀왔습니다. 좁은 국도변에서 30여 명의 추모객들이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이날 사고가 난 바로 그 지점에 사고현장 표지판을 설치했지요. 기억하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지만,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난 추모행사는 왠지 쓸쓸해 보였습니다. 12년 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 앞에서 많은 이들이 분개했습니다만, 광장과 거리에 가득했던 거대한 월드컵 응원의 열기가 시민들의 분개를 가려버렸습니다. 효순·미선이의 죽음과 관련..

사진이야기 2014.06.13

비는 눈물 되어

25일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번째 진도를 찾았습니다. 지난 번 진도를 찾았을 때 팽목항은 실종자 가족, 자원봉사자,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실종자 가족의 분노와 절규, 울음이 가득했었지요. 다시 찾은 팽목항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원래 진도라는 곳이 이런 모습에 가까웠겠다, 생각했지요. 풍랑주의보가 내린 진도에는 종일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팽목항 빨간 등대로 향하는 양쪽 난간을 따라 노란리본과 연등과 풍경들이 비에 젖은 채 흔들렸습니다. 휴일이라 가족 단위의 추모객들이 가끔 등대길을 찾았습니다. 우산을 받쳐 들고 천천히 등대 주변을 둘러본 부모는 함께 온 아이의 어깨를 가만히 감쌌습니다. 비바람이 거세지고 서너 명의 경찰 근무자뿐인 등대를 향해 걸어보았습니다.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향해..

사진이야기 2014.05.26

눈물의 진정성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 중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보수단체는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와 약속에 공감한다"며 한 일간지에 광고까지 실었습니다. 여간해선 볼 수 없는 대통령의 '눈물'에서 진정성을 읽었기 때문일까요. 또 다른 쪽에서는 똑같은 눈물을 ‘악어의 눈물’로 폄하하며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합니다. 사고 수습과정과 급히 쏟아낸 대책을 보며 신뢰를 줄 수 없다는 얘기지요. 요즘 정치인들의 눈물 사진이 자주 눈에 띕니다. 선거의 계절이기 때문일까요. 여하튼 이 사진들을 기억하는 것은 눈물 사진이 주목도가 높고, 신문지면에도 잘 반영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눈물에 약해지는 건 대한민국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겠지요. 정치인의 눈물에는 타이밍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울어야 될 때 잘 우는 것도 정치..

사진이야기 2014.05.23

꿈이었으면

오랜만에 올리는 글입니다. 세월호에 대한 얘기를 블로그에 쓴다는 게 죄스러웠습니다. 사고가 난 지 20여일이 지난 뒤에야 겨우 몇 줄 씁니다. 기록되어야 기억된다는 믿음으로. 진도에 머무는 동안 사고해역과 가까운 팽목항에서 5km쯤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진도 앞바다의 소박한 만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마을에 있는 펜션이었습니다. 매일 밤 지쳐서 돌아왔습니다. 같은 바다를 앞에 두고 팽목항의 ‘아비규환’과 숙소에서 느껴지는 ‘적막’. 그 간극이 참 묘했고, 휴가 때나 올 법한 펜션이라는 공간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늦은 밥과 급한 술 몇 잔 삼키고 잠을 청했습니다. 잠에 빠져드는 어느 지점에서 ‘이건 꿈이다’라는 주문을 외웠습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면서 눈을 뜨지 못한 채 ‘제발 꿈이길·..

사진이야기 2014.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