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468

잠복근무(?)

'잠복근무'를 했습니다. 기자들의 일상다반사이기도 하고 제게도 익숙한 '뻗치기'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숨어서 뻗치기'지요. 사회부를 통해 한 대부업체가 불법대출 자료를 긴급히 폐기하려 한다는 내용의 제보가 있었지요. 서류를 차에 싣는 장면을 포착하는게 미션이었습니다. 착탈식 회사로고를 떼어내고 차는 멀찌감치 댔지요 현장에 먼저 도착한 후배는 업체의 출입문과 마주보고 있는 커피숍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품듯이 안고 들어가 우아하게 모닝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출입문을 주시했습니다. 제보 내용이 구체적이다 보니, 모든 움직임을 의심하며 보게 되고, 괜히 비밀스럽고 긴박해 보이기도 했지요. 직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들락거리고 차량 몇 대가 오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도..

사진이야기 2012.01.11

남쪽 하늘에 내리는 대북 전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례식이 열리던 시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는 자유북한운동연합, 북한인민해방전선 등 탈북자 단체 회원들이 모여 대북전단살포 행사를 열었습니다. '2천만 동포여 일어나라'라는 제목의 호소문 20만장을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으로 날려보내는 행사였지요. 전단에는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는 내용 등을 담았습니다. 풍선 속을 보니, 카다피와 김정일 위원장, 김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의 사진 등이 담겼습니다. 주최측은 묵직한 전단을 담은 대형 풍선 열 개를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북한 취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내신과 외신들에게 이만큼 적절하고 흡족한 취재가 없겠지요. 대한민국 언론과 세계의 유수 언론들이 취재경쟁을 펼쳤습니다. 10번째 풍선에 바람이 가득 찰때까지 회원들은 풍선을 잡고 줄..

사진이야기 2012.01.03

유지태와 김효진 결혼식장에서

지난 금요일 배우 유지태와 김효진이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연예인 결혼식에는 입사 후 처음으로 갔습니다. 한 10년 전 쯤 기억으로는 결혼식 취재를 미리 신청한 매체에 공개했지만, 지금 결혼식을 공개하는 연예인들은 없습니다. 소중한 결혼식을 수많은 매체들의 산만함으로 망쳐버리고 싶지 않는 것도 이유중 하나겠지요. 결혼식 포토세션 1시간 전에 신라호텔 영빈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영빈관 입구에는 대략 150명이 넘는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지요. 뭐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알만한 12년 차 기자인 저도 기가 질려 버렸습니다. 프레스가 적힌 카드를 받으려 명함을 내밀었더니, 미리 신청을 했냐고 물었고, 신청하는 것 몰랐다 하니, 원래 이러면 안되는데 하며 붉은 색으로 프레스가 적힌 목걸이를 건네 줍니..

사진이야기 2011.12.05

물대포, 정말 차더라

설마 했습니다. 설마 이리 추운날,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로 뚝 떨어진 날, 물대포를 쏠 줄은 몰랐습니다. 23일 밤 한미FTA 비준안 강행 처리에 반발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이날 밤 마감은 이랬습니다. 오랜만에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그 규모를 보여주려 했지요. 서울광장이 내려보이는 곳에서 서둘러 사진전송을 했습니다. 10여분 뒤 다시 광장을 내려다보니 참가자들이 더 늘어 있었지요. 다시 찍었습니다. 그리고 마감...'그새 또 늘었군'...다시 찍고 마감. 여하튼 어젠 그랬습니다. 본 집회가 끝나고 광장에서 을지로와 무교동 쪽으로 빠져나가는 집회 참가자들. 날이 추워 이쯤에서 끝나겠지, 싶었습니다. 그런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곳곳의 길목을 막아선 경찰. 이에 항의하는 시민...

사진이야기 2011.11.24

4년 만에 만난 원기

원기를 처음 만난건 4년 전 장애인그룹홈입니다. 포토다큐를 하기위해 찾았던 '개봉공동체'라는 가정에서였지요. 무연고의 장애인들이 훗날 홀로 설 수 있도록 가정을 이뤄 살며 자활능력을 기르는 곳입니다. 피 한방울 섞어지 않은 장애인들이 가정을 이루었지요. 원기는 그 당시 8살로 구성된 5남매중 막내였습니다. 땡깡을 부리다 엄마(사회복지사인 지도교사로 '엄마'라 불린다)의 불호령에 벌을 서기도 했지만, 막내 특유의 재롱으로 누나, 형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지요. 일주일 정도를 그 집으로 출퇴근 했으니 정이 들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을 못하고 살면서도 원기는 지금 잘 적응하고 살고 있을까, 삶의 기술을 제법 습득 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했지요. 지난 주말 두산베어스가 샘물지역아동센터 아이..

사진이야기 2011.11.14

신문사진 이렇게 다르다

오후 한가한 시간에 테이블 위에 있는 일간지 9종을 펼쳐 보았습니다. 각 사가 1면 사진을 무엇으로 썼나를 보는 겁니다. 전날 '수능'이라는 '거사'가 있었기에 수능 사진을 어떻게들 썼는지 보려는 것이지요. 예년 같으면 시험치느라 고생한 자녀를 안아주는 부모 사진, 혹은 수험생 기도+부모의 기도를 엮은 사진 등으로 전 신문이 도배를 했을 겁니다. 거의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각 사가 주목한 이슈를 사진으로 내세웠습니다. 어제는 수능시험도 있었지만,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309일 만에 내려왔구요. 국회 앞에서는 한미FTA반대 집회도 열렸습니다. 먼저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김진숙 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사진을 썼습니다. 물론 톱기사도 마찬가지구요. 조선일보..

사진이야기 2011.11.11

뻗치기..그 허무함에 대하여

"나온다~" 주변의 작은 분위기 변화에 무리속에 누군가가 외치고 삼삼오오 얘기나누며 시간을 죽이고 있던 기자들은 부산을 떨며 카메라를 급히 들고 자세를 잡습니다. 5초도 안되는 시간에 이뤄지는 것이지요. 흡사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에 동네사람들이 몰려드는 것 처럼 신속합니다. 금세 "에이~뭐야"하는 소리들이 이어서 흘러나옵니다. 보통 이런 상황들이 세 차례쯤 지나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요. 바로 압수수색 현장입니다. 취재를 위해 무작정 기다린다는 은어 '뻗치기'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현장이지요. 어제 검찰이 SK그룹 본사를 압수수색 했습니다. 오전 9시경부터 오후 7시까지 약 10시간을 사다리에 앉아 기다렸던 선배와 교대를 했습니다. 압수수색한 수사관들이 그..

사진이야기 2011.11.09

"원순씨, 여기 좀 봐주세요"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됐습니다. 선거기간 동안 양 후보를 오가며 사진 취재했습니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길고 지겹더니, 막상 끝나니 언제 지나갔냐 싶네요.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일인 26일에는 박원순 희망캠프 개표 상황실을 지켰습니다. 아침 일찍 투표장 취재갔던 선배께 부탁해 상황실 자리를 맡았습니다. 출구조사 발표는 투표가 종료되는 밤 8시.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아침 9시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취재경쟁이 워낙 심했고, 이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이 일찌감치 영역을 표시하도록 한 것이지요. 그리고 오후에 상황실로 갔습니다. 제 자리는 북새통 속에서도 얌전히 자리잡고 있더군요. 선배의 명함이 청테이프에 발린 채로. ^^ TV화면으로 보셔서 아시겠지만 팔다리를 제대로..

사진이야기 2011.10.28

아이는 일단 안고 보는 겁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후보들은 새벽부터 강행군을 하고 있습니다 후보의 보좌관 등 수행원들도 마찬가지지요 후보를 따라다니는 엄청난 수의 기자들도 자리다툼과 몸싸움으로 이제 시작인데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신문에는 무척이나 편안해 보이는 사진 한 장을 찍기위해 덥지도 않은 날씨에 땀이 범벅이 되고, 어정쩡한 자세 때문에 허리도 다리도 아파옵니다 어쨌든, 선거때마다 찍게되는 사진이 있습니다 후보와 기자들을 만족시키는 정형화된 사진의 최고봉은 '아기를 안은 후보'의 사진입니다 후보들은 아기가 '에 뛴다' 하면 일단 안아들지요 애초에 기자들의 요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거의 자동입니다 이에 익숙한 나경원 후보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을 것 같은 박원순 후보도 아이들이..

사진이야기 2011.10.13

"자유롭고 싶다"

국정감사가 한창입니다. 야당의 공격과 여당의 방어는 여전하구요. 의원들 사이에 설전과 고성이 오가지만 이를 지켜보고 있는 증인들은 목이 탑니다. 평소 떵떵거리며 폼깨나 잡던 각 기관의 기관장들이 연방 마른 침을 삼켜댑니다. 의원들의 다소 고압적인 질문에 당황하는 기색도 역력합니다. 국회의원들은 국감장의 스타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겠지만, 증인으로 나온 기관장들은 생애에 이렇게 긴 하루, 긴 시간에 치를 떨지 모르겠습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 입니다. 증인으로 나온 기관장이 선서를 한 뒤 업무보고를 합니다. 국감장에 걸린 사진 속의 무희와 액자에 반사된 기관장의 모습이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액자 속 무희의 자유와 액자에 갖힌 기관장의 부자유. 무희도 기관장도 자유와 해..

사진이야기 2011.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