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그때는 신기했고 지금은 안타깝다

나이스가이V 2016. 7. 1. 11:28

3년 전쯤 조영남의 청담동 자택을 찾았습니다. 한때 서울에서 가장 비싼 빌라로 알려진 곳이었지요. 그 값에 합당한 통과의례를 치르고 들어갔습니다. 통유리 밖으로 한강이 조망되고 휑할 정도로 넓은 거실의 벽을 따라 그의 화투그림이 포개져 있었습니다. 이미 진행 중이었던 인터뷰에서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답을 하고 있었지요. 그림이 거의 완성이 된 상태였고 배경부분에 덧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시선이 카메라 쪽을 향하다 말고 자꾸 그림으로 가서 붓을 놓고 기자를 보시라고 얘기를 할까 말까 망설였던 기억이 납니다. ‘꽃과콜라’. 말장난 같은 제목과 화투그림이 참 잘 어울렸지요.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자리를 옮겨 사진을 몇 장 더 찍었습니다. 한쪽 벽면에 책이 가득한 방이었지요. 피아노 앞에서 포즈를 요구하자 즉흥적으로 연주를 해보였습니다. 뭔가 특별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았지요. 책과 피아노와 그가 잘 어울렸지요.

 

 

현관 앞 작은 조형물에 제 시선이 머물자 그가 설명했습니다. 철근 위에 요강을 붙인 작품으로 요강을 3만원(혹은 5만원)에 사서 붙였는데 50만원에 팔린다고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예술이란 그런 것, 특별한 것도 아닌 것이라는 듯 말이지요. 그저 신기해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변기를 작품이라 내놓았던 마르셀 뒤샹의 을 떠올렸던 것도 같습니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가 쓴 책에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뒤집어 쓴 사인도, ‘접선기념이라고 적은 문구도 참 특이하다 생각했습니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는 책이었지요. 현대미술을 알기 쉽게 설명한 이 책을 보며 예술에 대한 그의 이해가 깊다고 느꼈습니다.

 

인터뷰 중 그가 보여준 여러 모습은 익히 듣던 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기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요즘 화투그림 대작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현대미술의 관행이라고 변명했지만 오히려 비난만 샀습니다. ‘숨겼고 속였다는 사실에 특별하게 여겼던 3년 전 인터뷰의 장면이 다르게 해석되는군요. 붓질하던 모습도, 요강 작품의 설명하던 모습도 말이지요. 당시 인터뷰 중 완성작품에 가까운 그림에 반복되던 붓질은 대작에 대한 양심적 거리낌이었을까, ‘내가 그렸다는 자기최면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도 합니다.

 

거짓이 그가 쌓아온 모든 것을 흔들고 있습니다. ‘한 방에 훅 간다는 말이 있지요. 내 안의 가짜와 거짓을 돌아봐야겠습니다. 쌓아 놓은 것이 없어 크게 잃을 것도 없지만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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