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잠복근무(?)

나이스가이V 2012. 1. 11. 18:23
'잠복근무'를 했습니다.
기자들의 일상다반사이기도 하고 제게도 익숙한 '뻗치기'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숨어서 뻗치기'지요.

사회부를 통해 한 대부업체가 불법대출 자료를 긴급히 폐기하려 한다는 내용의 제보가 있었지요.
서류를 차에 싣는 장면을 포착하는게 미션이었습니다. 

착탈식 회사로고를 떼어내고 차는 멀찌감치 댔지요
현장에 먼저 도착한 후배는 업체의 출입문과 마주보고 있는 커피숍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품듯이 안고 들어가 우아하게 모닝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출입문을 주시했습니다.

제보 내용이 구체적이다 보니,
모든 움직임을 의심하며 보게 되고, 괜히 비밀스럽고 긴박해 보이기도 했지요.

직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들락거리고 차량 몇 대가 오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도 그리 보였지요.
딱히 제보 내용에 부합하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창 밖을 쳐다봤습니다. 
건물 수위 아저씨와 눈이 맞았습니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후배 기자도 수위 아저씨의 시선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두 세명이 불과 10m 안돼는 거리에서 커피숍 쪽을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지켜보기엔 딱 좋은데 너무 빤히 들여다 보이는 것이 문제였지요.
커피숍이 1층이며, 통유리에다 투명한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사실 그저 눈이 몇 차례 맞았을 뿐인데 우리가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후 시간에 서류가 옮겨질 것이라는 후배의 말을 듣고 가시방석같던 커피숍에서 일단 철수.

12시쯤 멀찌감치 업체 출입구가 보이는 곳에서 취재차량을 대놓고 하염없이 지켰습니다.
사실 슬슬 지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2시가 훌쩍넘자 제보가 맞는지를 의심했습니다.
졸리기도 하고...

2시40분쯤 되자 아침부터 골목 한켠에 세워져 있던 트럭이 후진으로 업체 출입구로 향했지요.
'이제 시작하는 구나'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차를 타고 그 앞을 지나니 카트에 누런색 자루들이 가득 실려있더군요.
지나간 방향 골목 끝에서 자루를 싣는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자루를 싣는 순간, 차로 그 앞을 지나며 유리창을 통해 두 차례 찍었습니다.
그야말로 '난사'를 했지요.


 


 


 


'잠복근무'는 생각보다 일찍 그렇게 마무리 됐습니다.
사회부 후배들은 늦은 밤까지 현장을 지켰답니다.

yoonj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