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468

"그건 '니오타니' 예요"

아내가 (필립 퍼키스·박태희 옮김, 안목, 2014)라는 책을 내밀었습니다. 잘 알려진 책이고 사진이 제 밥벌이니 ‘사진강의’ 한 번 들어보라는 것이었지요. 필립 퍼키스는 사진가이며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쳤습니다. 50년간의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라는군요. 공군에서 기관총 사수로 복무하며 사진을 찍었다는 이력이 재밌습니다. 사진 셔터와 기관총의 방아쇠는 여러 의미로 잘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필립 퍼키스 책에는 사진과 삶에 대한 그의 경험과 철학을 담았습니다. 밑줄을 그은 문장이 여럿이었습니다만, 제 현실과의 거리 또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일부만 적습니다.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그의 당부입니다. “보여 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

사진이야기 2018.04.12

총 그리고 힐링

살벌하지만 ‘총 맞았다’는 표현을 종종 씁니다. 예정 없던 일을 떠안게 되거나, 막 일어난 '쎈' 사건·사고 지역에 갑자기 출장을 가게 되는 경우 그리들 말합니다. 지난 28일 강원 고성에 산불이 났고, 상황을 지켜보던 부장이 외부에 있던 ㄱ선배에게 출장지시를(총을) 내렸습니다(쏘았습니다). 뒷날 봄 스케치 출장 일정을 잡아놓은 저는 총을 피했습니다. “불났는데 꽃 사진은 좀...” ㄴ후배는 산불이 주말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산불 출장을 자원했습니다. 총부리를 제게로 돌린 것이지요. 불을 어떻게 찍어야 하나, 드론을 띄울 수 있나, 마스크는 몇 개쯤 써야할까, 서너 개 챙겨 온 미세먼지 마스크가 효과가 있을까, 신고 간 등산화는 열에 버틸까. 고성에 도착하니 큰불이 거의 잡혔다..

사진이야기 2018.04.02

사진기자들이 울었다

지난 블로그에 이어 평창패럴림픽 동안 짧게 메모했던 단상을 옮겼습니다. 폐막한 지 닷새가 지났지만 여운이 여전합니다. 3월11일 “파이팅”을 외치다. 크로스컨트리. 설상의 육상이다. 한국 신의현이 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사진이 될 것 같은 포인트를 옮겨가며 앵글을 잡았다. 전날 허둥댔던 바이애슬론 취재가 도움이 됐다. 북한의 마유철과 김정현도 첫 경기를 펼쳤다. 북한은 처음으로 동계패럴림픽에 나왔다. 경사로를 오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마유철과 김정현이 카메라 앞을 지나갈 때 동료들이 너나없이 외쳤다. “마유철 파이팅.” “김정현 힘내라.” 현장에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을 향해 소리 내 응원한 적이 있었던가. 두 선수는 나란히 최하위를 기록했다. 같은 경기에서 신의현은 동메달을 따냈다. 대한민..

사진이야기 2018.03.23

설상의 까막눈들

평창동계패럴림픽을 취재하는 하루하루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일과를 끼적거려 일기처럼 모았습니다. 훗날 사진과 함께 돌아볼 때 좀 더 입체적으로 기억이 소환되리라 믿어서지요. 패럴림픽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도 이 블로그를 서둘러 쓰게 했습니다. 관심이 이어질까 (3월6일) 관심을 받던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이어지는 패럴림픽 개막 사흘을 앞두고 평창으로 향하는 동안 설렘과 걱정이 뒤섞였다. ‘관심이 유지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관심이 줄어들겠지만 그 폭이 최소화됐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취재 온 동료 사진기자들의 수가 앞선 대회보다 줄어든 것으로 ‘관심'의 정도를 가늠한다. '언론의 외면일까, 국민 외면의 언론 반영인가?' 닭이냐, 달걀이냐 같은 물음이다. 답 없고 소모적이다. 사진기자들 ..

사진이야기 2018.03.16

'아름답다, 패럴림픽'

평창에 출장 왔습니다. 패럴림픽 개막 사흘 전에 와서 이제 일주일쯤 지났습니다. 보통 출장이 그렇듯 하루가 참 깁니다. 회사 출근시간보다 일찍 일을 시작하고 마감시간을 넘겨 일해서겠지요. 10년 전 베이징패럴림픽을 취재한 경험이 있어 패럴림픽 취재는 두 번쨉니다. 하계와 동계의 종목이 다르니 낯선 취재이긴 마찬가집니다. ‘어떻게 찍을까.’ 보이는 대로, 셔터가 눌리는 대로 찍히겠지만, 적어도 스포츠에서 장애인과 장애를 어떻게 드러내고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해 볼 좋은 기회지요. 쉽게 할 수 있는 취재가 아니라서 이번이 아니면 고민해 볼 기회가 다시 없을 지 모릅니다. 10년 전에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일정을 촘촘히 짜서 하루에 되도록 많은 경기(아마도 4종목쯤)를 보려고 애썼습니다. 당시 절단장애든, 시..

사진이야기 2018.03.13

"사진 기다리고 있다"

봄 사진을 찍으러 남도로 향하는 걸음은 가벼웠지요. 전날 숙취로 내내 졸면서도 차창 밖으로 흐르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풍광이 좋았습니다. 계획대로 되면 더없이 흐뭇한 출장이겠거니 했지요. 순천의 한 사찰에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린다는 홍매화를 담는 것이 첫 계획. 전남으로 들어서자 빗발이 굵어지고 바람이 강해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붉게 피었을 꽃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사찰엔 인적이 없었습니다. 홍매화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붉게 흐드러졌어야 할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나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내 수두룩한 나무엔 작은 꽃도 달리지 않았지요. 언제 꽃이 될까 싶은 꽃눈만 가지 위에 달렸습니다. 당황했습니다. ‘꽃이 폈다’는 걸 의심하지 않고 왔기 때문입니다. 즉시 계획을 수정했습..

사진이야기 2018.03.02

'향수 DNA'

지난 추석에 이어 설을 앞두고 5일장 취재차 다시 전남 신안군을 찾았습니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동일한 장소에 간다는 게 살짝 민망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가야했던 이유가 여럿입니다. 장이 열리는 날이 출장일정과 맞았고, 지난해 B컷(쓰지 못한 사진)이 되고 말았던 사진에 대한 아쉬움이 좀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잠깐씩 스쳤던 사람들의 따스함이 끌어당겼던 것이지요. 장날에 맞춰갔지만 사실 5일장 자체를 찍으러 간 것은 아닙니다. 설 대목장에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뭔가 설 앞둔 ‘설렘’과 ‘고향의 정’ 같은 걸 찍어낼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명절의 설렘과 정을 굳이 멀리까지 가서 찍어야 하나?’ ‘도시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골의 정서가 얼마나 가 닿을까?’하는 물음이 없진 않았습니..

사진이야기 2018.02.19

'밀가루는 어디갔나?'

매년 반복되는 취재를 가는 길엔 보통 ‘뭐 좀 다른 거 없을까?’ 생각합니다. 이 생각조차도 버릇처럼 반복되어 온 탓에 딱히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드믑니다. ‘뭐 별거 있겠어?’하고 말지요. 나름의 경험으로 머릿속에 많은 그림을 그려보지만 대게 현장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기 일쑤입니다. 만약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에 가까운 사진을 매번 찍을 수 있다면 카메라를 놓고 점집을 차려야지요. ^^ 오랜만에 여고 졸업식을 찍었습니다. 졸업장 수여 순서가 되자, 한 명씩 호명된 졸업생들이 단상 중앙에서 졸업장을 받아들고 자리로 걸어갑니다. 단상을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선 담임선생님이 일일이 축하와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식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팔을 벌리고 선생님에게 달려가 안고, 단체로 거수경례를 하고, 하트를 그..

사진이야기 2018.02.13

'1억 배우'보다 빛나는 '사진기자'

‘누적관객 1억 배우’라는 수식어가 익숙한 ‘배우 오달수’의 인터뷰 사진을 찍었습니다. 영화 의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라운드인터뷰’였습니다. 라운드인터뷰는 4~5개 매체를 묶어서 동시에 진행하는 집단인터븁니다. 인터뷰하려는 매체가 무지 많기 때문이지요. 대게 1시간쯤 진행되는 인터뷰에 앞서 4~5개 매체의 사진기자들도 무리지어 사진을 찍습니다. 10분쯤 시간이 주어집니다. 각기 조금씩 다른 위치에 선 기자의 카메라를 향해 배우가 시선을 골고루 주는 식이지요. 저같은 경우 대체로 시간에 쫓기며 말없이 찍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관계가 지워지고 셔터소리만 가득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그저 카메라가 되어버렸구나'하는 자괴감도 살짝 들지요. 제 나름의 요구와 표현으로 다시말해 '1대1'로 ..

사진이야기 2018.02.05

'계란후라이'와 연대

광화문 천막농성장에서 아침을 맞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김경봉, 임재춘씨가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주저 없이 들어서는 것으로 보아 늘 이용하는 식당인 듯 했습니다. 누룽지를 시켰습니다. 3000원. 가장 싼 메뉴였습니다. 식사를 절반쯤 했을 때 식당 주인아저씨가 누룽지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볶음김치를 한 접시를 내왔습니다. 밑반찬으로 김치, 멸치볶음, 어묵 등이 있어 부족하지 않았지만, 뭔가 특별한 것인양 ‘스윽~’ 테이블에 밀어 넣었습니다. “밥 다 먹었는데 진작 안 주시고...” 고마움에 슬쩍 농담을 건넵니다. 조금 뒤 이번엔 ‘계란후라이’를 인원수만큼 그릇에 담아 내려놓았습니다. 후라이는 순식간에 사라졌지요. 단골에 대한 서비스겠지만, 저는 그 밥상에서 '연대'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작은 계란후라이..

사진이야기 2018.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