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106

내 자식같은 사진

사진을 찍기도 전에 사진 달라는 취재원의 말에 삐졌습니다. 꼭 필요하다면 사진 찍은 후에 물어도 될 것을. 작가라는 그는 쉬워도 너~무 쉽게 사진을 달라했습니다. 물론 “주세요”했는지 “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는지 정확한 멘트는 생각나지 않지만 받아들이는 제 입장에서는 마찬가집니다. 이미지 범람의 시대에 사진은 공짜라는 인식도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음 상해도 회사 찾은 손님인데 버럭 화낼 수도 없고 대신, 찍는 사진 컷 수를 대폭 줄이는 식으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내 사진은 그리 쉽고 간단한 사진인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령 비슷한 인물사진이 있는데 하나는 1년차 때 찍은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15년차 때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면 이 사진은 비슷하다 할 수 있을까요. 그 전..

사진이야기 2014.12.29

내 멋대로, 2014 내가 만난 사람들

한 해 동안 찍은 사진을 훑어보았습니다. 올해 제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사진 찍을 당시 상황들이 빠르게 스쳐갔습니다. 사진으로 기록된 순간은 더 또렷하게 기억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내가 올해 만났던 사람들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매년 10명 정도 그해 만난 사람을 기록해 두는 것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4년에 제가 만난 사람을 제 마음 가는대로 골라 정리했습니다. 여기에 끼지 못했다고 섭섭해 하실 분은 없으실 테지요. 이런 식으로 2014년을 정리해 봅니다. 건축가 승효상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입니다. 경향신문에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를 연재하고 있지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백사마을’ 재개발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분입니다.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마을은..

사진이야기 2014.12.23

실패한 새 사진

가창오리를 수소문했습니다. AI(조류플루엔자)를 매개했다하여 천덕꾸러기가 되기도 한 겨울철샙니다. 새 사진을 찍어본 지 오래고 해마다 변하는 서식지 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 분야에 전문가인 J일보 A선배께 전화를 했지만, 가창오리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건질 수 없었습니다. 선배의 조언대로 철새가 많이 관찰되는 지역의 철새조망대와 지자체에 문의를 했습니다. 결국 가창오리가 해남 지역에 가장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새를 찍으러 가는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해남 지역에서 철새 모니터링하는 분과 연락이 닿았기 때문입니다. 예보와 다르지 않은 날씨와 적절한 렌즈의 선택만이 관건이었지요. 머릿속에선 언제가 보았던 가창오리의 군무 사진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사진이었지요. ‘..

사진이야기 2014.12.17

앗긴 낭만에 대하여

엊그제 첫 눈이 내렸습니다. 기상청 기준으로는 첫 눈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국회에 출입하는 사진기자들은 이날 여야의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일정이 바빴습니다. 여야 아침 회의 등 촘촘한 오전 일정을 소화하느라 국회의사당 밖의 날씨에 그리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아니, 외면했다는 말이 맞겠네요. 당 대표실과 원내대표실, 회의장을 오가는 사각형의 복도는 꼭 다람쥐 쳇바퀴를 연상케 했지요. 유리문 밖으로 제법 굵은 눈발이 날렸습니다. 회의장으로 향하는 사진기자들은 밖으로 흘낏 눈길 한 번 주고는 걸음을 재촉합니다. 찰라의 시선의 의미를 저는 읽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지나쳤지만 가늘었던 눈발이 굵어지면 그것도 한순간인지라 카메라에 담아야겠다는 욕심이 일어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만 목격될 수 있는 ..

사진이야기 2014.12.03

사진 번뇌

충북 영동 백화산에 안긴 반야사는 일찌감치 해가 졌습니다. 일학 스님과 차담을 나눈 뒤 컴컴해진 대웅전 앞마당으로 나섰습니다. 방금까지 실내조명에 적응된 눈에 서서히 밤하늘의 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에 완전히 눈이 적응될 즈음 하늘 가득한 별들이 쏟아질 듯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 장면은 “아~”하는 감탄사 이상으로 표현할 길이 없네요. 별들을 한참 올려다보다 초등학생 때 경남 어느 산골로 갔던 교회 수련회를 떠올렸습니다. 그때 밤하늘에 별들은 어린 저를 압도했습니다. 은하수라는 것을 그날 처음 봤습니다. 그날 이후 세뱃돈으로 싸구려 천체망원경을 사서 하늘을 살피곤 했었지요. 템플스테이를 취재하러 온 절간에서 별 때문에 예배당 수련회를 떠올렸다는 게 재밌다 생각했습니다. 앞서 해가 넘어가기 전..

사진이야기 2014.11.10

세계적 사진가와 그냥 사진기자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존 스탠마이어는 자신의 휴대폰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흥미롭게 본 것은 한국의 일상과 도처에 널린 ‘다양한 색’이었습니다. 두루마리 휴지가 걸린 포장마차, 그릇에 담긴 반찬들, 화장실 소변기 위에 놓인 꽃, 비닐봉지 등에서 발견한 색들을 그의 개성적인 앵글로 보여줍니다. 정말 흥미롭다는 것을 그는 천진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위 사진 'Signal'로 World Press Photo (WPP·세계보도사진전) ‘2013 올해의 사진상’을 받았고, 세계의 식량위기, 민주화 운동, 빈곤과 환경 문제 등 선 굵은 작업을 하는 그의 눈에 한국의 사소한 것들은 특별했던 겁니다. 식량위기에서 포장마차 두루마리 휴지까지 그의 관심과 그것을 포착하는 시야는 대단히 넓..

사진이야기 2014.10.26

'내 어릴적 영웅'

홍콩영화 ‘지존무상’(1989), ‘천장지구’(1990). 따져보니 25년 전쯤에 제가 봤었군요. 스토리는 희미하지만 영화 속 배우 유덕화(류더화)에게 받았던 강한 인상은 남아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를 보며 뭉클해했고 극장을 나설 땐 자못 비장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보다 몇 년 전인 10대 초반엔 성룡(청룽)에 꽂혀 그의 브로마이드와 각종 사진을 모았고, 사진을 코팅해 책받침으로 사용하기도 했었지요. ‘천장지구’ 이후 성룡에서 유덕화로 갈아탔습니다. 영화 속 유덕화의 모습이 참 멋져 보였고 그런 그의 이미지에 열광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옛 기억을 살짝 푼 것은 ‘내 10대의 영웅’ 유덕화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지난 20일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보치아 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뭔가에 끌..

사진이야기 2014.10.24

그녀의 정체는?

그녀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인천아시안게임 북한 선수단 1진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던 날, 선수들 사이에서 니콘 카메라를 든 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성급한 걸음으로 출국장을 나오며 남한 쪽 사진기자를 향해 셔터를 마구 눌렀습니다. 그의 엉성한 자세를 보며 사진기자가 아닐 거라 생각했습니다. 예전 이산가족상봉 취재차 금강산에 갔을 때 카메라를 든 북측 인사의 대부분이 기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난 뒤 생긴 의심도 작용했을 겁니다. 드라마 속에서 보는 어설픈 사진기자 엑스트라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카메라를 든 자의 어색한 움직임은 사진기자의 눈엔 쉽게 포착됩니다. “북에서는 그리 찍습네다”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시선을 끄는 또 한 명의 사진기자가 있었으니 카메라를 멘 여..

사진이야기 2014.10.10

매번 실패하는 기념사진

인터뷰의 주인공을 앉힐 의자를 세심하게 놓으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인터뷰 장소인 카페를 둘러보며 사진 찍을 세 군데쯤의 공간과 동선을 미리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열린 문 사이에 둔 의자는 마지막 사진을 찍을 공간이었지요. 이날 주인공 이미지의 완성은 의자에 앉은 채 찍은 컷이었으면 했습니다. 자신만만한 ‘지존’의 모습을 연출해 담고 싶었습니다. 계산대로 3층 테라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그리고 의자에 앉혔습니다. 강렬하고 깊은 눈빛이 참 좋은 배우였습니다. 시간 단위로 반복되는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그였지만 스스로 연출하는 포즈엔 여유와 근성이 느껴졌습니다. 한 시간 주어진 인터뷰 시간에 사진기자의 시간은 10여분. 결과물이 그럴듯하다 할지라도 영혼 없는 사진을 찍을 가능성이 큰 ..

사진이야기 2014.09.29

소설을 품은 사진

가끔 어떤 장면은 ‘서둘러 셔터를 눌러라’ 명령을 합니다. 몸과 마음이 급해집니다. 흘러가버려 다시 담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 ‘아쉬움’이 생각보다 짙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자리 잡고 명령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일단 찍고 본다는 게 더 정직한 표현이겠지요. 경험적으로 이렇게 얻는 사진들은 신문에 쓸 사진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어디 쓰냐구요? ㅋㅋ블로그에 씁니다. ^^ 찍은 뒤에 무엇이 찍게 했는지, 왜 찍었는지를 다시 생각합니다. 그 ‘명령’은 장면을 기록하는 일에 익숙해진 몸의 명령인지, 움찔하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가슴의 요구인지도 답하기 어렵습니다. 사진을 노트북에 띄워놓고 다시 추궁합니다. 왜 찍었냐고. 찍은 당시의 상황을 세밀하게 더듬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모니터 위에서 보는 사진과..

사진이야기 2014.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