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106

이런 사진기자

군 사망사고 피해자 어머니의 인터뷰 사진을 찍다 멀찌감치 시선이 멎었습니다. 이웃 언론사 후배인 ‘으하하(이름 초성으로 가명 처리함)’기자가 또 다른 피해자 어머니의 얘기를 고개 끄덕여가며 듣고 있더군요. 앞선 기자회견 후 기자 대부분이 철수한 상황이었지요. 보통 사진기자는 캡션에 필요한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사라집니다. 이어지는 다른 일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뜨기도 하지만, 딱히 일이 없어도 바람같이 사라지는 멋(?)을 부립니다. 으하하 기자처럼 그리 긴 얘기를 들을 여유도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무언가를 끼적끼적 받아 적었고 한참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으 기자는 울분과 한숨으로 얘기하는 피해자 어머니 어깨를 쓸어주고 토닥였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그렇게 ..

사진이야기 2014.08.19

식겁한 날

어제 아침 ‘오늘은 조심해야지’하고 휴가 뒤 첫 출근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 때 외우는 징크스 같은 주문입니다. 몸 다치거나 '물'을 먹거나 하는 것을 조심하자는 의미지요. 결과적으로 이날 정말 식겁했습니다. 군 사망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국방부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한 뒤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국방부 정문으로 향했습니다. 위병들이 철제문을 닫아걸었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이 철제문을 부여잡고 오열했습니다. 그때 한 어머니가 철제문을 타고 올라 고함을 질렀습니다. 저는 뒤쪽에 서서 화각이 넓은 광각렌즈를 끼고 이 장면을 담았습니다. 잠시 뒤 뷰파인더 안에서 이 분이 제 쪽으로 떨어지더군요. 그 짧은 순간에 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생각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 찰나의 상황에 비해 생각이 조금 ..

사진이야기 2014.08.07

S선배 "어, 내가 불렀다"

브라질월드컵 러시아와 경기에서 이근호가 골을 넣는 순간에 무슨 생각들 하셨습니까?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먼저 그 짜릿함에 환호를 터뜨렸을 테지요. 집에서 혼자 중계를 보던 저는 생애 첫 월드컵에서 골을 넣고 격하게 환호하는 이근호를 보며 ‘저걸 과연 찍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부서에서 ‘S선배’가 브라질에 '특파'되어 있거든요. 월드컵 같은 큰 대회에 축구장 광고판 뒤로 앉아 있는 사진기자들은 초조하고 또 고독합니다. 제가 4년 전에 남아공월드컵을 다녀와 봐서 압니다. ^^ 누군가는 쉽게 “그냥 찍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만, 카메라가 좋아져도 결국 셔터를 누르는 것은 사람이기에 집중력과 판단력, 경험이 요구됩니다. 골도 순간이지만, 세리머니도 표정과 액션이 절정인 순간은 길어야 ..

사진이야기 2014.06.19

꿈이었으면

오랜만에 올리는 글입니다. 세월호에 대한 얘기를 블로그에 쓴다는 게 죄스러웠습니다. 사고가 난 지 20여일이 지난 뒤에야 겨우 몇 줄 씁니다. 기록되어야 기억된다는 믿음으로. 진도에 머무는 동안 사고해역과 가까운 팽목항에서 5km쯤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진도 앞바다의 소박한 만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마을에 있는 펜션이었습니다. 매일 밤 지쳐서 돌아왔습니다. 같은 바다를 앞에 두고 팽목항의 ‘아비규환’과 숙소에서 느껴지는 ‘적막’. 그 간극이 참 묘했고, 휴가 때나 올 법한 펜션이라는 공간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늦은 밥과 급한 술 몇 잔 삼키고 잠을 청했습니다. 잠에 빠져드는 어느 지점에서 ‘이건 꿈이다’라는 주문을 외웠습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면서 눈을 뜨지 못한 채 ‘제발 꿈이길·..

사진이야기 2014.05.10

B컷 그러나 내겐 베스트 컷

잘 알려진 전시기획자가 "신문에는 B컷 쓰고, 블로그에는 A컷 쓴다"는 말을 하더군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입니다. 가끔 제가 베스트라고 생각하는 컷이 배제되고 그저 평이해 보이는 사진이 지면에 실릴 때 조금 서운해 집니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나' 싶지요. 매년 반복되는 현장에서 조금 다른 사진을 찍으려는 노력은 사진기자의 존재 이유중 하나입니다. 어제 서울시에서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에 봄맞이 물세척을 실시했습니다. 이순신 장군 세척을 보다가 뒤로 보이는 세종대왕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세종대왕의 시선에서 이순신 장군을 보면 재밌겠다, 싶었습니다. 세종대왕 상 뒤로 걸어가며 제목도 생각했습니다. "이 장군, 시원하시겠소" "내 다 보고 있다" 등등. ^^ 뒷모습이라서 더 ..

사진이야기 2014.04.11

넉가래질과 사진질

눈 스케치에 나섰습니다. 눈은 이미 그쳤습니다. 어디 다른 거 없을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만, 기본부터 챙기며 차차 떠올려 보기로 합니다. 서울 시내 경사가 많은 동네를 찾습니다. 쌓인 눈이 미끄러워 양팔을 벌린 채 뒤뚱거리는 출근길 시민을 사진에 담는 것이 1차 목표.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극적(?)인 그림이 되겠지’라는 ‘못된 생각’을 하면서 또 그런 생각을 애써 떨쳐내면서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닙니다. 사실 이날 받은 일에 마음이 크게 동하지 않았습니다. 뭐 그런 날이 있습니다. 큰 의욕이 없었던 것이지요. 이런 날은 이상하게 그림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일단 이동. 서울 창신동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다시 경복궁으로 이동했습니다. 경복궁은 제설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문화재보호재단에 속한 직원들이 전통..

사진이야기 2014.01.22

네 번째 가는 취재

‘1년이 금세 지났구나’하고 느끼게 하는 취재가 있습니다. 수능시험이 그렇구요. 또 하나가 특전사 ‘설한지 극복 훈련’ 취재입니다. 수능처럼 이 훈련도 매년 비슷한 시기에 진행돼 세월의 흐름을 아프게 확인시켜 줍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제가 특전사 취재를 명~받았습니다. 2년 연속이자 네 번째 취재입니다. 강원도 평창을 향해 해가 뜨지도 않은 올림픽대로를 달리며 ‘어떻게 다르게 찍을까?’하고 작년에도 했음직한 고민을 했습니다. 군부대 특성상 이런류의 취재는 수십 개의 매체들이 한꺼번에 몰립니다. 제게 좋아 보이는 그림은 타사 기자의 눈에도 그리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 거의 비슷한 그림이 각 신문의 지면에 반영되곤 합니다. 타사가 일제히 쓴 사진을 저도 찍어 게재했다면 물 먹지는 않았다며 위로할 수 있..

사진이야기 2014.01.10

산울림 김창완의 주름

인물 사진, 특히 연예인의 사진을 좀 다르게 찍을 순 없을까, 고민을 합니다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저 그런 빤한 사진을 찍고 비슷비슷한 사진이 신문에 실립니다. 산울림의 김창완을 카메라에 담을 때도 늘 그랬던 것처럼 다르지 않은 표정과 제스처를 요구했습니다. 그는 조금 어색해 했습니다. '자연스러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그가 표현한 어색함은 사진을 찍힌다는 사실보다,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는 저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겠지요. 만나서 인사하자마자 사진부터 찍는 것은 현실이 그러하더라도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시간에 쫓기듯 사진을 찍는 것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어색함을 누그려 볼 요량으로 “지금 표정 너무 좋아요”라고 역시 틀에 박힌 멘트가..

사진이야기 2013.11.08

사진기자의 한국시리즈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을 다녀왔습니다. 먼저 3승 고지에 오른 두산이 이날 삼성을 꺾으면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기자실에 들어서니 오랜만에 보는 스포츠지 선후배들이 반겨줍니다. 준플레이오프부터 수차례 연장 끝 승부와 한국시리즈를 취재하며 심신이 지친 선후배들은 특정 팀을 응원해서가 아니라 이날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다. 축적된 경험이 있는지 스포츠지의 한 선배는 "종합(일간)지에서 취재 오는 거 보니 왠지 불길한데..."하고 웃습니다. "대구 가게 되면 니 탓이다”라며 제게 미리 뒤집어 씌웠지요. 오후 6시 경기인데 3시쯤 도착해 자리 추첨을 했습니다. 매체가 워낙 많기 때문이지요. 선착순이라고 했으면 전날 와서 진을 쳤을 것이 분명하기에 나름 정..

사진이야기 2013.10.31

5분

창간기획을 아우를 사진을 찍기위해 강원 원주로 향했습니다. '우리 안의 우리'라는 주제로 이미 기사는 완성돼 있는 상태였구요. 기사의 대표 꼭지인 협동조합 사람들을 찍는 미션이었습니다. 일을 시키는 데스크의 표정에 살짝 드리운 그림자(?)는 확신하지 못하는 그림에 대한 미안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사를 쓴 후배 jd기자를 통해 섭외된 소속이 다른 6명의 협동조합원을 원주 시내 '밝음신협'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눈에 익은 건물이었습니다. 지난해 안철수 대선 후보를 동행해 취재한 '무위당 기념관'이 있는 건물이었지요. 참고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고 리영희 선생이 생전에 한 두 살쯤 많은 무위당 선생의 인간의 크기에 압도 당해 형님 내지는 어른으로 모셨다는 분입니다. 원주 협동조합의 정신적인 토대를 만든 ..

사진이야기 2013.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