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106

안철수는 모른다!

지난 14일 서울 상계동 한 아파트 경로당. 노원 병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어르신들에게 인사방문을 할 예정이었지요. 널찍한 방으로 들어선 어르신들이 벽을 따라 'ㄱ'자로 놓인 의자에 앉았습니다. 한 할머니가 "고생많다"며 아들뻘 혹은 손주뻘 쯤 되는 기자들에게 요구르트와 마가렛트를 하나씩 돌렸습니다. 안 전 교수의 방문일정이 늦어지자, 한 고참 기자가 "어이 막내, 노래 한 곡 하지?" 반쯤은 장난이었지만 소박하고 정이 있는 간식에 대한 답례이자, 어르신들이 마냥 기다려 무료해지는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나름 공경의 마음이었다고 믿습니다. 할머니들의 박자 맞추는 박수는 이미 시작 됐습니다. 그 자리에서 젤 막내 기자가 망설이는 동안 허겁지겁 뒤늦게 등장한 더 막내 기자, 노..

사진이야기 2013.03.18

2억원 짜리 시계 보셨나요?

2억원 하는 시계 본 적 있으신가요? 그럼, ‘오데마피게’라는 시계 브랜드 들어보셨나요? 저는 이날 처음 들었습니다. 서울 변두리 아파트 값과 맞먹는 이 시계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지요.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이 해외 패션관을 열며 홍보 행사의 일환으로 선보인 시계입니다. 위도와 경도를 서울에 맞춰 서울의 일출과 일몰 시간이 표시된다는 세계 유일의 시계라는군요. 또 다른 낯선 브랜드 IWC 시계도 준비돼 있었는데요. 그 브랜드의 시계는 2억9000만원.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것도 아니고 다만 조금 묵직해 보이는 시계였지요. '묵직해 보!인!다!’는 건 만지지도 못했다는 거죠. 쫄았습니다. ^^ 사진을 찍으면서 이 사진이 신문 지면에 나갈 수 있을까, 자료를 제게 건넨 선배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지면에 ..

사진이야기 2013.03.01

개념 사진기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강행하고, 일본 정부 고위 인사들이 이 행사에 참석하면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은 하루종일 일본 규탄 집회로 북적였습니다. 행사의 일환으로 유관순 한복을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손색없는 그림이지요. 대사관 앞에 모인 수 많은 내외신 매체의 카메라가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남성이 "일본 물러가라"를 외치며 윗옷을 들어올리고 카터칼로 배와 팔을 번갈아 그었습니다. 카메라는 어린이들에서 이 자해하는 남성으로 일제히 옮겨갔습니다. 길게 빼지 않은 칼로 그어 긁힌 상처에 살짝 피가 맺혔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아이들 앞에서 무슨 짓입니까?"라며 C사 후배기자가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등지고 이 남성의 칼 든 손을..

사진이야기 2013.02.22

문재인의 흙구두

대선후보들의 행보에 '발언' 만큼이나 '이미지'도 중요합니다. 현장을 따라다니다보면 사진 앵글에 들어오는 후보의 표정과 행위는 좀 더 크고, 적극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습니다. 후보가 얘기를 하면 제스처를 써주길 바라고, 웃으면 목젖이 드러나도록 웃어주길 바라고, 아이를 만나면 안아주길 바라고, 거리에 포장마차라도 들어가면 떡볶이나 오뎅을 집어서 먹었으면 하고, 이왕 먹으면 맛있는 표정으로 한 입 거칠게 베어 먹길 바라지요. 이런 바람이 있으면서도 후보들이 이를 너무 잘 소화하면 조금 얄밉고, 이를 너무 모르면 답답하지요. 혹자는 연출이라며 정치인들의 사진을 폄훼하기도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데 의식하지 않을 이는..

사진이야기 2012.10.12

430:40:0

남들 다 논다는 일요일날 출근하는 게 이젠 너무 익숙한 연차입니다. 일을 하면서도 신기하게 몸은 휴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요일 국회는 대체로 평일보다는 한가합니다. 몸도 그 정도의 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난 3일 아침, 국회 기자실로 출근해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들어온 일정을 확인했습니다. 세상에 일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버릇처럼 먹던 달달한 커피 맛이 갑자기 써 지더군요. 먹다 만 커피를 버리고 첫 일정을 챙기러 나섰지요. 10시 27분 국회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실. 18대 법사위원 및 19대 법조인 국회의원의 대법관 추천 관련 성명 발표. 10시38분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비박(비박근혜) 김문수, 이재오, 정몽준 후..

사진이야기 2012.06.07

"박근혜 위원장님, 전 아닙니다"

지난 27일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관련 기사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공식일정은 없었습니다. '박 위원장을 찍어야 하는데...' 사진기자를 가장 답답하게 만드는 상황이지요. ^^ 이날 국회에서는 김종인 비대위원(정책쇄신분과 위원장)주재로 국민희망찾기 정책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간담회가 시작하는데 박근혜 위원장이 불쑥 간담회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일정에 없던 참석이었습니다. 박 위원장은 방청석 맨 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사진기자들은 자연스럽게 박 위원장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참석자들의 발언을 메모하는 박 위원장의 모습을 담기 위함이지요. 기자들이 앞뒤좌우 자리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는데... '누가 건드렸을까. 그냥 오가는 걸음의 진동 때문일까..

사진이야기 2012.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