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468

홍콩시위 출장기 ② "힘내세요"

지난 17~19일 다녀왔던 홍콩시위 출장기 ②편을 올리려는데 25일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기사가 났습니다. 경찰이 권총을 뽑아든 사진이 아찔합니다. 저기 있었다면 저 장면을 찍을 수 있었을까. 늦지 않게 접근은 했을까. 뭐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제가 목격한 평화시위와는 딴판인 기사가 업데이트 되다보니 미리 써 둔 이 출장기를 올릴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어쨌든 그날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고, 홍콩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의미에서 올리기로 했습니다. 18일 일요일 홍콩. 집회는 오후 2시로 예정됐습니다. 홍콩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아침의 여유를 즐겼습니다. 그래봐야 숙소 주변을 한 시간 남짓 걸어 다니는 정도였지만요. 사는 게 별 다를 것도 없지만 이국의 일상을 걸으며 보는 것은 즐겁습니..

사진이야기 2019.08.26

홍콩시위 출장기 ① 현장에서 안전이란...

“안전이 우선이야!” 편집국장께서 홍콩출장을 떠나는 제게 당부하셨지요. 말씀의 진정성을 의심하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안전이 우선이라 하셔서 결과물(사진)이 이것 밖에는...” 이런 말이 조직에서 먹힐 리 없지요. ^^ 급히 출장이 결정됐습니다. 쉬는 날 영화보러 가려다 부장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허겁지겁 회사 나가서 여권과 헬멧, 카메라를 챙겼습니다. 홍콩 시위를 취재하는 이들의 복장과 장비를 참고해 방독마스크와 고글, 형광조끼 등을 새로 구입했습니다. 저의 출장 소식이 알려지자 선후배 동료들이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몸조심하라”고. 목소리와 문자에는 친분만큼의 걱정이 스며있었지요. 전례가 드문 해외출장에 대한 부담에다 전장에 보내는 것 같은 주변의 반응에 괜한 찜찜함이 생겼습니다. 부..

사진이야기 2019.08.22

불빛빌딩과 물빛광장

열대야 사진을 찍는 명소가 있습니다. 여름에 빼먹지 않고 한 번은 찾는 곳입니다. 여의도 한강변의 '물빛광장'이지요. 폭염의 기운이 그대로 남은 광장의 물가에서 해 지기를 기다립니다. 열대‘야’이므로 밤 분위기는 나야지요. 출근 때 반바지를 챙기지 못한 걸 후회했습니다. 땀에 들러붙은 청바지에 두 대의 카메라를 어깨에 멘 제 모습은 지나며 마주치는 이들을 더 덥게 만들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요. 해가 저물기까지 제법 긴 시간. ‘치맥’을 잠시 떠올렸습니다만, 근무 중이라는 이유보다 혼자 앉아 먹는 청승승이 싫어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오후8시. 조금 어둑해졌고 셔터를 누릅니다. 매시 정각에 뿜어져 나온다고 써 있는 분수를 기다렸는데 안 나오더군요. 관리직원이 휴가 갔거나, 이 더위에 뭔가 문제가 생겼으리라 ..

사진이야기 2019.08.09

나는 그날 해바라기를 찍었다

오랜만에 나선 지방 출장이 의욕을 부릅니다. ‘1타3피!’ 한 번 나서서 3건을 처리하겠다는 것이지요. 회사 주변만 오가다 서울을 벗어나서 좋습니다. 그렇다고 들뜨고 신나고 그런 건 아닙니다. 일이니까요. 2박3일 일정을 짰습니다. 이틀째 경남 김해 취재가 메인, 앞뒤로 한 건씩의 사진취재를 엮었습니다. 김해로 가는 길에 경북 영주를 들러 한 건을 처리했습니다. 그날 저녁과 다음날엔 김해에서 예정된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지막 ‘3피’째 변수가 생겼습니다. 서울 가며 가까운 함안에서 해바라기를 찍을 계획이었는데 ‘아직 이르다’더군요. 망설였습니다. 확실히 펴 있는 해남을 가야하나. 이틀째 일정을 마치고 전남 해남으로 달렸습니다. 시원하게 펼쳐진 해바라기를 한 번 (찍어)보고 싶다는 애초의 생각을 떨치지 못..

사진이야기 2019.07.25

쓰지 못한 사진이 하는 말

쓰지 못한 사진이 말을 걸어옵니다. 사진다큐를 하면서 오래된 주상복합건물 벽에 새겨진 벽화를 찍었습니다. 건물 내부 ‘ㅁ’자 중정 위로 솟은 두 벽면의 부조인데요. 50년 전에 시내 중심에 지은 화제의 건물이라, 어느 이름 난 작가의 작품이겠지 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부조는 건물 벽에 시멘트를 바르던 미장장이가 새겨넣었습니다. 그가 누군지도 모르고, 찾을 수도 없었다는 얘기를 건물 관계자로부터 들었습니다. ‘무명의 미장장이가 남긴 50년 된 부조벽화.’ 이름 난 작가의 것이었다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을 테지만, 무명의 인부가 남겼다는 말에 울림이 생겼습니다. ‘다큐의 메인은 바로 이거다’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이 벽화 사진에 집착했고 글도 이 장면으로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오래된 건물 곳곳에서 ..

사진이야기 2019.06.19

버터링쿠키와 아메리카노가 문득 그리워진 날에

1년 전 이맘 때 평창동계패럴림픽 출장에서 돌아왔습니다. 이후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만, ‘1년 전’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그 사이의 많은 것들이 뭉텅 잘려나가 버리고 1년 전의 기억으로 즉시 빨려듭니다. 사진과 함께 기록된 기억은 좀 더 구체적인 기억으로 남는 모양이지요. 지난해 평창에서 올렸던 블로그를 찾아봤습니다. 하루하루의 단상을 써 모았던 글이 출장의 기억을 또렷하게 살렸습니다. 글의 시작은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일기처럼 모았다. 훗날 사진과 함께 돌아볼 때 입체적으로 기억이 소환될 것”이라 써 놓았네요. 동계올림픽에 비해 관심이 덜한 패럴림픽, 개회식 전에 이미 찾아든 피로, 미투·MB소환 등 굵직한 뉴스에 묻힌 대회, 규칙도 모르는 낯선 종목들, 동료 사진기자..

사진이야기 2019.03.20

안현수와 사골블로그

제 블로그에 의외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안현수입니다. 지금은 러시아 국적의 빅토르 안으로도 불리지요. 최근 그의 인터뷰 사진을 찍었습니다. 잊을 만하면 글 하나 올리는 나태한 무파워 블로그 15년째. 지금 이 글이 그에 대한 세 번째 글이 되는군요. +2019.2. 하남 자택에서 인터뷰 중인 안현수. 러시아 대표팀의 도핑 문제로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이후 언론과 가진 첫 인터뷰였습니다. 도핑 의혹, 은퇴설, 중국 국가대표 코치설, 한체대 플레잉코치설 등 온갖 ‘썰’들에 대해 맘고생하며 눌렀던 말이 많은 모양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언뜻언뜻 예전 그의 훈련장면을 떠올렸습니다. 그와의 첫 대면은 12년 전이었습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하고..

사진이야기 2019.02.15

'한 번 해볼까요'

올 겨울에 눈이 왔던가, 쌓인 눈은 본 적이 있던가, 싶습니다. 설 연휴 끝나고 출근했더니 강원 영동북부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답니다. ‘누굴 보내야 하나?’하는 부장의 눈빛을 읽었고, “제가 함 가볼까요?”라고 자원했습니다. 대개 ‘함 가볼까요?’라는 말에는 이런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일단 가서 보고, 아니면 마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 ‘대설’이면 사건·사고의 범주에 드는 사진을 찍어야지요. 내린 눈의 성격에 맞는 사진을 담아야 하는 겁니다. 인제군에 들어서니 날씨는 포근했고 하늘은 파랬습니다. 도로에 ‘대설’이 아니라 ‘소설’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한 번 가볼까요?”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부령이냐 한계령이냐를 저울질하다 한계령을 택했..

사진이야기 2019.02.09

새가 있는 풍경

앞서 올린 글 ‘새가 없는 풍경’에 이어지는 얘깁니다. 있어야 할 곳에 새가 없었으므로 당황했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어 다른 철새를 수소문했습니다. 순천만 습지의 흑두루미. 고창의 아름다운 석양을 아쉬워하며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흑두루미는 가능할까?’ 불안했지요. 순천의 한 모텔에서 잠을 설쳤습니다. 인근 나이트에서 나온 유흥객들 취기 섞인 말소리가 잠결에 들려왔습니다. 불편했던 잠은 다음날 일정의 불안감을 가중시키지요. 전날 꺾인 전의는 회복 기미가 없었습니다. 순천만생태공원. 취재지원을 하는 직원분은 때마침 해외출장 중이었지요. 난감했습니다. 전망대 망원경으로 멀찌감치 앉아 있는 흑두루미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고맙게도 전망대에서 만난 명예습지안내인이 저를 대신 안내했습니다. 그는 순천만 습지의..

사진이야기 2018.12.05

새가 없는 풍경

요맘때면 철새 사진을 한 번씩 찍습니다. 이왕이면 스케일이 크면 좋겠지요. 개인적으로 한 번도 찍지(성공하지) 못한 석양 속 가창오리의 군무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해봤습니다. 수일 전 올라온 어느 블로그 영상에서 새들의 멋진 군무를 볼 수 있었지요. '그래 가창오리 한 번 찍어보자.' 영상 속의 장소인 전북 고창으로 향했습니다. 미세먼지에 황사가 더해져 제대로 보일까 걱정이 들더군요. 이 상태로 저물녘에 군무가 펼쳐진다면 ‘가창오리떼가 미세먼지 속에서도 아름다운 군무를 펼치고 있다’고 설명을 쓰기로 했습니다. 오후 4가 못 돼 도착한 동림저수지는 바람이 불었고, 그래선지 걱정보다 하늘이 맑고 깨끗했습니다. 석양은 더없이 좋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망원렌즈를 장착해 저수지 이곳저곳을 살펴봤습니다. ..

사진이야기 2018.11.29